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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2

    푸른 사신은 갑자기 끌려와 버린 이 세계가 조금 마음에 들었다.

    쿵. 쿵. 쿵.

    엄마 골렘의 걸음 소리가 크게 울릴 정도로 조용한 세계.

    주변에 아무도 없어서, 이 넓은 구조물에 단둘만이 있는 것 같은 오붓한 세계.

    애착 인간의 품에 안겨, 푹 기대도 아무도 보지 않는 세계.

    약간의 용기만 내면, 애착 인간과 계속 붙어있기 좋은 세계!

    애착 인간은 몰래몰래 자기 모자 위에 눈덩이를 쌓아 올리는 중이었다.

    “후후후.”

    애착 인간은 자신이 눈치채지 못한 줄 알고, 작고 수상한 웃음소리를 흘리고 있었다.

    푸른 사신은 모른 척하며 하늘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리자, 눈 덩어리들이 모자 위에서 흘러내렸다.

    그 모습을 보며 애착 인간이 비명을 질렀다.

    “안 돼…! 내 하얀 탑이!”

    위를 올려다보니, 하늘을 가득 채운 장막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덜너덜한 장막 사이로 밤도 아니고 낮도 아닌 애매한 빛의 하늘이 보였다.

    저 애매한 밝기의 빛이 이 세계의 ‘낮’이었다.

    신기해.

    그 외에도 이 세계는 푸른 사신에게 신기한 것투성이였다.

    ‘도대체 이 탑은 누가 만든 걸까?’

    애착 인간과 같이 오르고 있는 탑은 ‘엄마’가 있는 세계에서도 본 적 없는 거대한 구조물이었다.

    탑은 하늘에 닿을 것처럼 높고, 도시가 들어갈 만큼 넓었다.

    그중에 가장 신기한 것은 이 탑의 구조 자체였다.

    둥글둥글한 계단을 마구잡이로 붙여놓은 것 같은 형태.

    게다가 각각의 층에서 하늘을 바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진 구조였다.

    ‘왜 이런 구조로 만든 걸까? 어차피 하늘을 올려다봐도 보이는 건 검은 장막과 그 틈으로 보이는 실낱같은 하늘뿐인데….’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모든 것이 하얀색으로 뒤덮인 벌판에 질려버린 애착 인간이 투덜거렸다.

    “심심하네. 풍경도 전부 하얀색이라 지루해….”

    그리고 심심해진 애착 인간이 푸른 사신의 조그마한 손을 잡고 인형 놀이를 시작하자, 눈으로 뒤덮인 평원의 끝이 보이기 시작했다.

    눈으로 뒤덮인 평원에 억지로 이어 붙인 것처럼, 눈앞에 갑자기 바짝 말라붙은 밭이 나타났다.

    마치 겨울과 여름이 만나는 경계처럼 보였다.

    “밭이다!”

    분홍 소녀는 자세를 바로 하고 앉아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고는 비밀스러운 지식을 이야기해 주려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푸른 사신에게 소곤소곤 말했다.

    “할아버지가 알려준 건데, 태양이 있었을 때는 여기에서 음식이 마구마구 솟아났대. 신기하지?”

    “이 밭에서는 어떤 음식이 나왔을까? 통조림? 과자? 사탕?”

    분홍 소녀는 맛있는 음식들을 상상하는지, 히히 웃으며 기분 좋은 표정을 지었다.

    “그래서 나는 이 탑의 꼭대기를 꼭 올라가고 싶어.”

    <?>

    푸른 사신은 과자랑 이 탑의 꼭대기가 무슨 연관인지 알 수 없어서, 허공에 물음표를 만들어 냈다.

    “할아버지가 그랬어. 이 탑의 최정상 층은 하늘 장막 너머까지 이어져 있다고. 그리고 하늘 장막 위에서는 태양이 있대.”

    “언젠가는 태양을 볼 수 있겠지. 그리고 사탕이 잔뜩 자라는 ‘밭’도 있을 거야.”

    분홍 소녀는 꿈을 말하는 것처럼 히히 웃었다.

    ***

    송파구 외곽 제임스 타워.

    사건이 너무 자주 발생해서, 이제는 ‘임시’를 완전히 떼어버린 상황실.

    제임스는 그 상황실에 앉아서, 실시간 촬영 영상을 보고 있었다.

    서울숲의 ‘문명 파괴’가 없어진 것을 발견하자마자 서울숲 조사를 위해서 투입한 드론이 찍고 있는 동영상이었다.

    그 드론이 찍은 영상은 1초에도 몇 번씩 전후좌우가 마구마구 뒤집히고 난리였다.

    “음.”

    멀미가 날 것 같은 영상이었고 상당히 심각한 공간 왜곡이었지만, 제임스의 표정은 생각보다 밝았다.

    ‘이렇게나 서울숲을 돌아다니는 데도, 드론이 멀쩡하군.’

    이렇게나 공간이 짧은 간격으로 마구잡이로 뒤섞여 있다면, 드론이 날아가던 도중 갈기갈기 찢어질 법도 했으니까.

    이 정도 안정된 왜곡이라면 인간이 들어가도 팔다리가 찢겨나갈 걱정은 없었다.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죽을 위험은 없다 하더라도 출입 금지 조치는 꼭 필요해 보였다.

    인간이 저 안으로 들어간다면 그야말로 천지 분간을 할 수 없는 미로에 빠져서 영원히 빠져나오지 못할 가능성이 높았으니까.

    ‘그나저나 황금 사신이 엄청 많군.’

    까마귀처럼 나무 위에 잔뜩 앉아 있는 황금 사신들.

    낙엽 위를 뚜방뚜방 일렬로 줄을 서서 걸어 다니는 황금 사신들.

    공간 왜곡으로 공중에서 소나기처럼 떨어져 내리는 황금 사신들.

    두더지처럼 땅을 마구마구 파헤치고 있는 황금 사신들.

    드론에 찍힌 영상에는 황금 사신이 너무 많아서, 서울숲이 아니라 ‘황금 사신의 숲’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특이한 것은 서울숲에서 돌아다니는 황금 사신의 손아귀에는 물처럼 투명하고 청량한 푸른 빛을 띤 조각이 들려 있다는 점이었다.

    ‘도대체 저 조각이 뭐지?’

    하지만 드론의 카메라로는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었다.

    제임스는 피로로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머리를 환기할 겸, 책상 위에 놓아둔 커피잔을 들어 올렸다.

    ‘?’

    커피잔이 평소보다 조금 무겁다고 느껴져서 고개를 돌리니, 멋쩍은 표정의 황금 사신이 커피잔에 달라붙어 있었다.

    ‘앗! 들켰어!’

    황금 사신은 각설탕 하나를 커피잔 안으로 밀어 넣으며, 멋쩍은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왠지 커피를 한 모금씩 마실 때마다 조금씩 달아진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비밀이 있었군.’

    제임스가 별로 화를 내는 것 같지 않자, 황금 사신은 각설탕을 마저 집어넣고는 혀를 살짝 내밀어서 커피를 핥았다.

    ‘으앙! 아직도 써.’

    그리고 황금 사신은 혀를 내밀면서 인상을 잔뜩 찌푸렸다.

    제임스는 그 모습을 보고 황금 사신을 들어 올려, 가볍게 쓰다듬어 주며 젤리 하나를 입에 물려주었다.

    옴뇸뇸.

    황금 사신은 제임스의 손 위에서 젤리를 야금야금 뜯어 먹으며 행복한 것처럼 웃었다.

    ***

    세희 연구소 깊숙한 곳, 안락한 격리실.

    나는 예린이의 품에 안겨서 유령 사신을 데리고 놀고 있었다.

    ‘애도!’

    ‘으앙!’

    유령 사신에게 찔린 황금 사신이 히히 웃으며 의지를 내뿜었다.

    내가 지금 하는 놀이는 유령 사신에게 다양한 대상을 찌르게 만드는 놀이였다.

    유령 사신은 찌르는 대상이 바뀔 때마다 나이프의 생김새가 조금씩 바뀌었고, 외치는 의지도 조금씩 달랐다.

    나를 찌를 때는 ‘효도!’

    미니 사신들을 찌를 때는 ‘애도!’

    다친 오브젝트를 찌를 때는 ‘약도!’

    이런 식으로 다양한 의지를 뿜으면서 찌르곤 했다.

    붉은 사신이 끓이는 하얀 아귀탕을 찌를 때는 ‘갱도!’라고 의지를 내뿜었었는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네.

    그래서 여러 가지 오브젝트와 물건을 가지고 와서 찔러보게 시키는 중이었다.

    그때 내 더듬이를 냠냠 먹고 있던 예린이가 TV 화면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와, 황금 사신이가 가득해.”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돌리자, TV 화면에는 황금 사신들이 서울 숲 초소에 바글바글 모여있는 것이 비치고 있었다.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가득.

    그리고 TV 화면이 전환되더니, 뉴스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현재 오브젝트 협의회는 긴급 성명을 발표하고 서울숲 출입을 엄중히 금지한다고 밝혔습니다.]

    [현재 제임스 연구소의 최신 발표에 따르면, 서울숲을 중심으로 ‘공간 유실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서울숲 인근을 촬영한 자료 화면을 보면, 인간을 보호하러 나갔다고 보기에는 황금 사신이 너무 많이 파견 나간 것처럼 보였다.

    ‘이상하네.’

    뭐, 공간 왜곡 속을 돌아다니는 게 재밌어서 그런 걸까?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나는 TV에서 시선을 돌렸다.

    그리고 주먹만 한 미니 하얀 아귀를 잡아서, 유령 사신에게 들이밀었다.

    과연 어떤 의지를 내면서 찌를까?

    기대하고 쳐다보고 있었더니, 유령 사신이 칼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그대로 내리쳐 버렸다.

    ‘나이프다!!!!!’

    뀨힝힝.

    그렇게 하얀 아귀의 토실토실한 등 위로 칼이 박히자, 하얀 아귀는 구슬픈 소리로 울었다.

    하긴, 하얀 아귀에게는 그냥 칼이 어울리지.

    히히.

    ***

    퍼석. 퍼석.

    물기 하나 없이 완전히 말라버린 밭 위를 나아가자, 모래가 부스러지는 소리가 들렸다.

    애착 인간은 그런 모래 부스러지는 소리를 배경음으로 해서, 쉬지 않고 떠들고 있었다.

    “할아버지가 그때….”

    “푸딩이라는 게 있다던데….”

    할아버지 자랑이 절반, 그리고 맛있는 음식 이야기가 나머지 절반이었다.

    그렇게 애착 인간의 말을 듣고 있었더니 시간이 흘러, 장막 너머에서 내려오는 희미한 빛이 조금씩 줄어들었다.

    “잠깐 멈춰봐.”

    그 말을 듣고 푸른 사신이 엄마 골렘을 멈추자, 주변 그림자에서 기괴하게 생긴 괴물들이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브젝트!’

    진화액 냄새가 물씬 풍기는 해로운 오브젝트였다.

    “그림자를 먹는 마도서야.”

    분홍 소녀는 굉장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물로 만든 바늘 10개!>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의 표정을 보고 물로 바늘을 만들어 쏘아 보냈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었다.

    마치 그림자를 주먹으로 내려친 것처럼.

    “할아버지가 알려준 건데, 저 마도서는 죽이는 게 불가능하대.”

    “대신 같은 그림자에 들어가지만 않으면 괜찮아.”

    분홍 소녀는 굉장히 긴장한 표정으로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그림자 먹는 마도서에게 당하면 그림자를 일정 부분 빼앗기고, 한 명분의 기억을 통째로 잃어버린다고 했었어.”

    “하지만 내가 가진 기억은 할아버지뿐인걸. 절대로 잃어버릴 수 없어.”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의 말을 듣고, 그녀의 그림자를 내려다보았다.

    ‘!!!’

    푸른 사신은 애착 인간의 그림자를 내려다보고는 정말 매우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애착 인간의 그림자는 쥐가 파먹은 것처럼 죄다 뜯어먹혀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등록된 마지막 회차입니다


           


Seoul Object Story

Seoul Object Story

서울 오브젝트 이야기
Score 9.4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Humans, once the masters of Earth, were losing their place to the inexplicable phenomena known as Objects. And this is a story about becoming an Object and living worry-free in the Seoul of such a 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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