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2

       “여기 계신 분 중, 고아원에서 아이들이 어떤 음식을 먹으며 살아가는지 아시는 분이 계십니까?”

        

       “…….”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소피아의 눈이 아주 잠깐 반짝였고, 클레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보니 소피아도 어린 시절부터 스파이로 컸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짧게라도 고아원 생활을 해봤을지 모른다. 클레어야 나랑 같은 곳에 있었으니 바로 공감할 수 있는 거고.

        

       “제가 있던 곳에서는 묽은 포리지를 먹었습니다. 물을 너무 많이 타고, 제대로 간이 되어있지 않은 것이었죠. 맛은 거의 느껴지지 않고, 씹을만한 것도 거의 없습니다.”

        

       “…….”

        

       말하는 동안 누군가 딴지를 걸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다행히 아무도 그러지 않았다.

        

       “그리고 그것도 양이 많지 않았습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사실 사람에게 먹으라고 줄 만한 것은 못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포리지가 사람이 먹을 것이 못 된다는 소리가 아니다. ‘그’ 포리지가 사람이 먹을만한 것이 되지 못했다는 소리지. 사실 포리지라고 할만한 음식인가 싶다. 하다못해 뭔가 먹을만한 것이 있어야 음식이라고 할 수 있는 거지.

        

       “우리는 그걸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버텼습니다.”

        

       “아냐.”

        

       이번에는 내 말에 딴지를 거는 사람이 있었다.

        

       클레어는 진지한 표정으로 한 손을 살짝 든 채 말했다.

        

       “그렇지 않아. 나눠준 사람은 언니뿐이었어. 언제나 우리한테 나눠주고, 몇 스푼 안되는 걸로 끼니를 때웠잖아. 우리는 서로 먹으려고 싸웠으면 싸웠지, 누구 나눠주려고 하지는 않았어.”

        

       어, 그랬던가?

        

       그랬던 것 같기도 하다.

        

       사실 나도 그때는 클레어와 같은 나이이긴 했다. 신체나이는 크게 다를 것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신체나이가 그래도, 안에 있던 나는 성인이었다. 아무리 그래도 굶주린 아이들의 음식을 빼앗아 먹을 수는 없었다. 아무리 그런 상황이라도 그런 짓은 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리고, 사실 나는 그때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고 있었다. 내가 미래를 바꿀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결국 그렇게 될 아이들이니 하다못해 그 짧은 생에서 잠시라도 상냥한 사람을 만났다는 기억이라도 가지게 해주고 싶었다.

        

       게다가, 내가 구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그러니 그건 별로 자랑할만한 일은 아니었다.

        

       “…….”

        

       클레어의 말에 방 안이 침묵에 휩싸였다.

        

       “그리고 옛날이야기도 해줬고.”

        

       클레어가 덧붙였다.

        

       나는 뭐라고 할 말이 없었다. 그 옛날이야기들은 전부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들을 바탕으로 대충 꾸며낸 것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그렇게 대단한 말주변을 가졌던 것이 아니었기에, 이야기하다가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대충 지어내서 때웠고, 결말이 기억나지 않는 부분은 그냥 적당히 해피엔딩으로 꾸며냈다.

        

       앨리스는 이미 들은 이야기였지만, 다른 아이들은 아니었다. 특히 샤를로트의 표정이 굉장히 볼만했다.

        

       엄청나게 큰 충격을 받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왜, 내가 옛날이야기 같은 것도 할 줄 아는 게 그렇게 신기한가?

        

       신기할 만하지, 응.

        

       생각해보니 이건 꽤 괜찮은 갭인 것 같았다. 쿨뷰티 캐릭터가 과거에는 무척 따뜻하고 좋은 사람이었다는 것도 클리셰잖아.

        

       “……그리고 그런 곳에서 살았기에, 저는 달콤한 음식을 거의 먹어보지 못했습니다.”

        

       이 이상 그대로 뒀다가는 클레어가 계속 내 자랑만 늘어놓을 것 같아서, 나는 적당히 틈을 잡아서 내 이야기를 계속했다.

        

       “제가 달콤한 음식, 특히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것은 그 이유 때문입니다.”

        

       따지자면 원래 좋아하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그런 이야기를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안 그래도 레나한테 이 이야기를 해준 이유가 레나와 그 아버지와 연관된 이야기였으니까.

        

       ……어차피 거의 모든 컨셉이나 거짓말들이 다 까발려지지 않았는가. 이런 소소한 비밀 하나 정도는 가지고 있어도 괜찮으리라.

        

       “그리고, 언니가 나한테 말을 놓아주기를 바랐던 이유이기도 해.”

        

       이야기가 끝나자 클레어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했다.

        

       자기한테 시선이 모이는 것을 보고, 클레어가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 말했다.

        

       “언니는 그때 우리한테 편하게 말을 놓았으니까.”

        

       “……설마, 그렇게 딱딱한 존댓말을 쓰게 된 이유가…….”

        

       샤를로트가 중얼거렸지만, 나는 굳이 대답하지는 않았다.

        

       아무리 그래도 그걸 컨셉질이라고 어떻게 말하겠어.

        

       “…….”

        

       음, 처음에는 또 내 비밀이 하나 까발려지고 쪽팔림을 느끼게 될 줄 알았는데, 어떤 의미에서 이야기가…… 그, 잘 굴러갔다고 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최악의 상황은 면한 것 같았다.

        

       슬슬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자리를 파할까 생각하는데, 갑자기 샤를로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우리, 카페로 가요.”

        

       그리고 엄청나게 비장한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

        

       “……응?”

        

       “지금 당장.”

        

       자세히 보니 샤를로트의 눈가가 축축했다.

        

       ……설마 울었나? 내 이야기를 듣고?

        

       그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는데……?

        

       “저, 저는 나가서 기다릴 테니까, 얼른 준비하고 나와요. 알았죠?”

        

       샤를로트는 그렇게 말하더니, 바로 몸을 돌려서 방을 쌩하니 나가버렸다.

        

       …….

        

       뭐지, 이 상황.

        

       이대로 따라갔다가는 시간을 돌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카페의 파르페를 종류별로 전부 배 안에 넣어야 할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럼 저도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도록 하겠습니다.”

        

       그다음으로 일어난 사람은 레나였다. 레나는 나를 향해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인 채 뒤를 돌아 방에서 나갔다.

        

       “……하지 말라고 해서 미안해요. 이게 당신의 원래 모습이었군요. 가면을 벗은 거라면 축하해요. 저도 언젠가 당신처럼 될 수 있으면 좋겠네요.”

        

       그다음으로, 소피아가 내 손을 토닥이며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고,

        

       “저는 경황이 없어 아무 말 없이 듣고만 있었습니다만, 상황은 어느 정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원하신다면 디저트 만드는 법을 알려드릴 수 있습니다. 성심성의껏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로티가 아주 예의 바른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고 방에서 나갔다.

        

       “제도 안에는 카페가 많잖아요. 분명 다른 곳에도 괜찮은 곳이 있을 거예요.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그런 곳을 찾아서 같이 돌아다녀 보도록 해요. 저도 달콤한 디저트는 좋아하니까요.”

        

       미아는 조금 비장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고 나갔다.

        

       “…….”

        

       그 일련의 상황이, 내가 뭐라고 하기도 전에 연속적으로 일어나버린지라 나는 조금 어안이 벙벙했다.

        

       “이럴 것 같았으면 그냥 진작 말했으면 좋았을 텐데.”

        

       클레어가 짐짓 투덜거리듯 중얼거렸다.

        

       “그래, 맞아. 그냥 처음부터 이랬으면 좀 좋아?”

        

       앨리스가 눈을 가늘게 뜨고 나를 보면서 말했다.

        

       “……나도 나대로 생각이 있었으니까.”

        

       내 대답을 들은 앨리스는 한동안 나를 그렇게 계속 바라보다가, 결국 숨을 크게 내쉬었다.

        

       “뭐, 좋아. 그걸 부정할 생각은 없어. 덕분에 나도 이렇게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되었으니까.”

        

       “나도 마찬가지야. 언니는 말을 편하게 하건 높임말을 쓰건 언니잖아.”

        

       클레어는 웃으며 그렇게 말하더니,

        

       “그런데, 언니, 조금 전에 설명하면서 존댓말 쓴 건 알고 있어?”

        

       그렇게 물었다.

        

       “아.”

        

       그랬나?

        

       너무 오랫동안 그런 말투를 유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나온 모양이다. 지금까지 변명하거나 설명할 때는 언제나 존댓말로 해왔으니까.

        

       지금 이 방 안에서 있었던 대화 자체가 그런 분위기이긴 했고.

        

       “뭐, 괜찮아. 그게 잘못은 아니잖아? 언니도 의식해서 고치려고 하는 것 같고…… 음, 사실, 그 점이 언니 같은 점이긴 해. 완벽한 듯 보이면서도 어딘가 허술한 거. 그래서 인간답잖아.”

        

       “사실 그 완벽함도 따지자면 그 허술함 위에 계속 허술함을 덧씌워서 만들어낸 거긴 했지. 하얀 도화지에 색칠하듯 말이야.”

        

       앨리스가 옆에서 거들었다.

        

       “……지금 나를 놀리려는 거야, 아니면 칭찬하려는 거야?”

        

       어쩌면 부끄럽게 하려는 걸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나는 지금 격한 부끄러움을 느끼고 있었다.

        

       “봐, 능력 없으니까 밑천이 드러나잖아.”

        

       앨리스는 그렇게 말하면서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래야 실비아지.”

        

       “지금까지 이런 줄 몰랐으면서.”

        

       내가 항의하듯 그렇게 말해봤지만,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얼른 나가자. 애들 기다리겠다.”

        

       “……나갔다가는 그대로 카페로 끌려가서 배부를 때까지 디저트만 먹을 것 같은데.”

        

       특히 샤를로트는 한없이 진심 같아 보였다.

        

       “그러니까 그런 소리를 하지 말았어야지. 굶어서 달콤한 음식을 좋아하게 되었다는 말을 들으면 그 주린 배를 채워주고 싶어지잖아.”

        

       “너무 걱정하지 마. 내가 옆에서 도와줄 테니까.”

        

       그 카페는 1인 1세트가 기본일 텐데? 커피 같은 걸 마셔도 되기는 하지만……

        

       “……일단 레오랑 제이크도 부르러 가볼까.”

        

       만약에 정 못 먹겠으면 레오한테 좀 도와달라고 해야겠다.

        

       그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누나로 있었으니, 하루 정도는 나쁜 누나가 되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내 속이 뻔히 보였는지, 앨리스와 클레어는 웃음을 터뜨렸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후원감사는 금방 추가하도록 하겠습니다!

    =

    라이네리 님, 후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작품도, 이번 작품도 읽어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제 소설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지 않았다면 여기까지 쓰지도 못했을테니까요. 저도 소설을 읽다가 밤 늦게까지 계속 읽어본 적이 꽤 있습니다. 특히 웹소설이 그렇네요. 방 안의 불이 꺼져있어도 침대 안에서 뒹굴며 편하게 읽을 수 있어서 그런 걸까요. 그렇게 소설을 읽다보니 저도 쓰고 싶어졌고, 노벨피아에 글을 올리게 되고, 운 좋게도 여러분을 만나 지금까지 이렇게 쓰고 있습니다.

    제가 매일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글을 매일 기다려주시는 독자 여러분이 계신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제가 여기까지 글을 쓸 수 있었던 것 모두 독자 여러분 덕분입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후일담과 외전도 독자님께서 기대하시는만큼 뽑아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차기작에서도 잘 부탁드립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