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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2

       니콜라이는 어렸을 때부터 사람의 호흡을 읽을 수 있었다.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어떤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할 때, 거기서 선명한 파장이 뿜어져 나왔다. 그는 그것을 통해 상대의 의도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것은 호사가들이 흔히들 입에 담곤 하는 독심술과는 결이 다른 것이었다. 그것은 개들이 주인의 손짓과 눈짓만 봐도 감정을 읽어내는 것과 유사했다. ‘이러이러한 파장을 뿜을 때는 이런 행동을 많이 하더라’라고 추측하는 통계학에 가까웠다.

         

       즉, 상대에 대해 잘 알수록 그것은 독심술에 가깝게 발전했다.

         

       특히, 게임에서는 정해진 규칙 위에서 상대의 선택지가 제한되었다. 예를 들어 가위바위보의 선택지는 고작 3가지. 그런 때, 그의 능력은 예언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힘을 발휘했다.

         

       그가 성장하면서 많은 사람을 만날수록 그의 힘은 더욱 발전했다. 10살이 넘어서서 그의 능력은 정말로 독심술이라는 이름에 걸맞은 수준까지 올라왔다.

         

       사람은 무한히 자유로운 선택지 위에서 말하고 행동하는 것이 아니었다. 신분, 사회, 환경에 따라 게임의 말처럼 정해진 대로 움직였다. 틀에 박힌 사람일수록 그가 하는 생각이 선명하게 손에 잡혔다.

         

       그에게 있어서 사람을 대하는 것은 게임의 공략과 다르지 않았다.

         

       보통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속내를 가늠하기 위해 사회적 신호를 익혔지만, 그는 그들보다 조금 더 내다볼 수 있었기에 적극적으로 사회적 신호를 이용하는 것뿐이었다.

         

       귀여운 아이가 되는 법.

       존경받는 주군이 되는 법.

       기대받는 황태자가 되는 법.

       기특한 제자가 되는 법.

         

       니콜라이는 인간은 그렇게 손에 넣은 ‘정석’들이 겹겹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의 나이 13살이 넘어서, 그는 세상과도 바둑을 둘 수 있게 되었다. 세상은 복잡 다변한 듯했지만, 그것은 거시적으로 보면 하나의 살아있는 생물도 같았다. 충분히 많은 정보가 있다면, 그는 어떤 현상의 원인과 해결책을 손에 쥘 수 있었다.

         

       그가 쇠락해가는 제국을 바꿀 개혁안을 짤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었다. 아니, 정확히 말해서 그것이 가능한 데에는 한 가지 요소가 더 작용하기는 했다.

         

       황실 극단의 부단장인 ‘뱀 마녀’ 메리사 세르펜티의 실종.

       황제의 조언자를 자처하며 그를 조종하고 제국을 뒤에서 쥐락펴락했던 그녀는 올해 초, 황제가 병석에 눕고 얼마 안 있어 황궁을 떠나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끌어모았던 파벌은 시간이 지날수록 불안감에 시달렸다. 그리고 점점 균열을 보였다. 황태자가 대리청정을 선포하고 정권을 잡을 수 있었던 것도 그 균열을 잘 노려서였다.

         

       메리사 세르펜티가 과연 무슨 목적으로 황궁을 떠났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는 여전히 수수께끼였다. 아니, 애초에 그녀의 정체에 대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녀가 어디서 태어나서 무얼 하다가 황궁에 흘러들어왔는지 아는 사람은 없었다.

         

       그녀는 기만과 속임수의 달인이었다. 제국의 내로라하는 정객들도 그녀를 상대하기 껄끄러워했다. 그녀의 계략에 이용당하거나 피를 본 인물이 한두 명이 아니었다.

         

       그런 마녀와 몇 년이나 대등한 승부를 펼쳐온 것이 바로 황태자였다. 황제가 그녀의 편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즉에 황태자의 손에 거꾸러졌을 것이다.

         

       그는 이제 누가 상대라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그의 파벌이 예측하는 최악의 시나리오인 눈을 새어머니가 낳은 동생이 황태자로 교체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도 니카는 자신에게 그것을 이겨낼 역량이 있다고 믿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내전이 벌어지기에 지금은 그저 이렇게 엎드리는 수를 취할 뿐이었다. 결코 아버지나 새어머니와 싸워서 이겨낼 자신이 없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는 이제 상대가 누구라도 두렵지 않았다. 이제 자신이 읽어내지 못할 인간은 없었다. 그가 가진 자신감은 오만이 아니었다. 인간은 조금 복잡한 퍼즐이고, 세상은 그보다 더 주사위를 많이 굴려야 하는 게임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태어나서 처음으로……그 자신감이 무너지는 소리를 들었다.

         

       역을 출발한 마차가 호텔 주차장에 도착한 것은 3시간 가까이 되어서였다. 원더스타인이 마지막 경기의 점수 계산을 마무리하는 것과 동시에 마차가 멈춰 섰다.

         

       “비겼군요.”

         

       그의 선언에 니카는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4번의 잇따른 패배 끝에 겨우 도달한 무승부였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그랬다는 것을 실감할 수 없었다.

         

       살아오면서 해왔던 어떤 승부와도 달랐다. 그가 가진 최고의 무기와 갑옷이 상대에겐 통하지 않았다.

         

       그는 다섯 번째 경기가 되어서야 겨우 그것을 내려둘 각오를 할 수 있었다. 파장을 느끼는 그의 능력에 의지하지 않고 순수하게 그의 머리와 기세만 가지고 덤벼들었다.

       그것은 공공장소에서 벌거벗은 채 마구 악을 써대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었다.

         

       “아.”

         

       한줄기 눈물이 그의 볼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것은 그가 지난 세월 동안 미처 흘릴 기회가 없던 것이었다.

         

       처음으로 만나는 미지의 존재에 대한 5살짜리의 공포.

       처음으로 한계를 맞닥뜨린 10살짜리의 무력감.

       처음으로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15살짜리의 수치심.

         

       다른 사람이라면 그 나이대에 당연히 겪었어야 할 경험을 그는 오늘 처음으로 맛봤다. 눈앞의 남자에게서.

         

       “그럼 마지막 내기는 없던 걸로 하고…….”

         

       원더스타인은 마술과도 같은 동작으로 손짓 한두 번에 테이블 위에 어질러진 카드들을 모두 품에 집어넣었다.

         

       “그럼 내일 저녁에 주루의 입구에서 봅시다.”

         

       그는 일행과 함께 마차에서 내렸다. 밖에는 그를 기다리는 수십 명의 인원이 있었다.

         

       “왜 이렇게 늦었어!”

         

       그중에 니카보다 한두 살 많아 보이는 검은 머리의 여자애가 그를 타박하고 나섰다.

         

       “중간에 동승객들과 간식 내기를 하느라 말입니다.”

       “간식 내기? 우린 당신들 생각해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팔자도 좋으셔.”

         

       서커스단의 단장이라고 했던가?

       자신보다 10살도 더 어린애한테 쩔쩔매는 그의 모습은 어딘가 우스꽝스러워 보였다.

       

       니카는 그들에 대한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보다 당장 그와 떨어지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는 가슴 속에서 꿈틀대는 감정들을 미처 정리하지 못한 채 그와 헤어졌다. 그리고 숙소에 들어가기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전하, 충격이 크신 모양입니다.”

         

       황실근위대의 분대장인 드미트리 카제노프가 그를 위로했다.

         

       “그대는 내가 져서 기쁜 모양이군.”

         

       니카는 말을 반사적으로 내뱉었다가 입을 딱 다물었다. 이렇게 주변 사람의 마음을 함부로 들여다보는 행동은 철이 든 이후로는 하지 않고 있던 것이었다. 측근들조차 마음을 닫아건다면, 자신은 그것을 또 의심하고 열어보기 위해 심력을 쏟아야 했기 때문이다.

         

       드미트리는 잠시 당황했지만, 금방 기척을 지우고는 피식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뭐, 세상 다 산 척 우쭐하던 꼬맹이가 질질 짜는 꼴을 보고 통쾌함을 느끼지 않을 어른이 있겠습니까?”

       “드미트리 경!”

         

       여자 호위가 그를 향해 힐난하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니카는 그녀를 향해 괜찮다는 제스처를 해 보였다.

         

       “괜찮아. 미티하고 약속한 거야. 내가 함부로 속내를 들추면, 꼭 솔직히 다 털어놓기로 했거든. 미안하군, 미티. 느닷없이 마음을 읽어서.”

       “이해합니다.”

         

       드미트리가 고개를 주억거렸다.

         

       “저도 제가 검술 천재인 줄 알았다가 처음으로 동년배에 깨졌을 때, 비슷한 기분을 느꼈죠. 그걸 무어라 표현해야 하나……. 참……쪽팔린다?”

       “드미트리 경!”

         

       니카의 입에서 웃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울적한 기분이 달아나는 것을 느꼈다.

         

       “됐어. 그만 나가서 쉬어. 좀 혼자 있고 싶군. 미티 말대로 좀……쪽팔려서 그래.”

         

       주군이 평소의 모습을 회복한 걸 확인한 두 호위는 절도 있는 자세로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전하, 그자와 한 내기는 어떻게…….”

       “약속대로 해야지. 카드 게임 몇 판 더 해달라는 건데 별일 있겠나?”

         

       니카는 호위들을 이만 물리고 침대에 드러누웠다. 마차를 타고 왔는데도 산행이라도 한 것처럼 온몸에 진이 다 빠졌다.

         

       그는 자신을 보며 미소 짓던 원더스타인의 얼굴을 떠올렸다.

       공포, 무력감, 수치심을 걷어내고 객관적인 눈으로 봤을 때, 상당히 잘생긴 미남자였다. 황궁에서 살아오면서 숱한 미남 미녀들을 봐온 그로서도 그 정도 인물은 보기 드물었다.

         

       ‘마지막으로 거는 건 제 볼에 입을 맞추는 것 어떨까요? 저는 네 번째 내기에 걸었던 것과 똑같은 것을 걸겠습니다. 앞서 졌던 내기의 내용들을 모두 백지화해 드리지요.’

         

       마지막 내기는 간신히 무승부로 틀어막았다.

         

       키예프에서는 친밀한 사이끼리 볼에 입을 맞추곤 했다. 남자 대 남자라고 하더라도 말이다. 그가 완전히 선을 넘는 부탁을 하는 건 아니었다.

         

       그러나 능글맞은 그의 말투에는 자신을 남장한 여자로 보고 놀리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그것이 그가 모든 것을 내던지고 승부에 임하도록 만들었다.

         

       물론 거기에는 원더스타인의 옆에 앉은 두 소녀의 살기 어린 응원도 한몫했다.

         

       ‘파장이 살벌했어.’

         

       니카는 원더스타인이 입맞춤을 입에 담는 순간, 자신을 죽일 듯이 노려보던 은빛 머리칼의 인형 같은 소녀와 머리카락을 들썩이며 불퉁한 표정을 짓던 6살짜리 꼬마를 떠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멋대로 오해들 하긴. 나는 남자라고.”

          

       

       

       니카는 코트를 벗었다. 안에 입은 옷은 땀으로 젖어 몸에 착 달라붙어 있었다.

       좁은 어깨, 잘록한 허리, 넓은 골반.

       전체적으로 체형이 여성스럽긴 했지만, 그는 분명 남자였다.

       

         

       ***

         

         

       숙소에 짐을 푼 우리는 다들 호텔에서 제공하는 목욕 가운을 입고 온천을 즐기기 위해 야외로 이동했다.

         

       “저녁 식사 전까지 가볍게 1시간만 즐기고 나오는 겁니다.”

         

       황금정의 온천은 크게 2가지로 나뉘었다.

       천상 욕탕과 그 외 나머지 온천들.

         

       천상 욕탕은 혼탕이라 수영복을 입고 입장해야 했고, 나머지 수십 개의 온천은 남녀를 구분해서 시간 단위로 빌릴 수 있었다. 천상 욕탕이 로비라면, 나머지 온천들은 개인실에 비유할 수 있었다.

         

       무려 절벽 끝에서 폭포가 되어 떨어지는 온천수를 감상할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천상 욕탕이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괴물 단원들은 그곳에 들어갈 수 없었다. 호텔 측이 위압감을 조성할 수 있다고 거부했기 때문이다.

         

       몸에 문신한 사람도 거절한다는 데 우리가 거기에 어떻게 더 따지고 들 수 없었다. 그래서 그들은 따로 온천을 빌려야 했다.

         

       그러나 그마저도 그들은 입구에서 실랑이를 거쳐야 했다. 그 이유는 랫맨들 때문이었다.

         

       키는 보통 사람의 절반 정도에 쥐의 머리를 가진, 전신이 털로 뒤덮인 수인, 랫맨.

       그들은 어딜 가도 천대받는 종족이었다. 심지어 괴물 단원들을 저주의 희생자들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조차 랫맨에 대해서는 혐오감을 감추지 않았다.

         

       천성이 비열하고 더러운 불결한 종족.

       그것이 랫맨에 대한 세간의 인식이었다.

         

       그러나 오랫동안 랫맨들과 지내본 단원들은 그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았다.

         

       랫맨들도 좋은 환경에서는 충분히 잘 씻고 다녔다. 맡은 일에 대한 열정도 책임감도 있었다.

         

       랫맨들이 비겁해지고 비위생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사회에서 그들의 처지가 그랬기 때문이다. 그들은 집을 구할 수 없어서 하수도에 기거하거나 거리에서 거적을 덮고 잤고, 시키는 일도 모두 보통 사람들은 안 하려는 불합리하고 비천한 일뿐이니 비겁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리고 랫맨이 전염병의 매개체 취급을 당하는 것은 높은 질병 저항력 때문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에 침입한 존재에 대해서 강력한 대항물질을 생성해냈다.

         

       그런 그들이 지저분한 곳에서 생활을 많이 했기에 온갖 병균을 몸에 지니고 다닌 것이다. 랫맨이 흑사병 당시 그 병원균으로 지목되어 대량 학살되었던 것도 그래서였다.

         

       랫맨이 몸에서 만드는 대항물질은 연금술 길드가 치료제를 만드는 데 좋은 재료가 되었다. 그 대표적인 격으로 ‘은하수’가 있었다.

         

       원래는 보석 트릴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 만들어진 가루 ‘별빛’을 녹여낸 물이라서 이름 붙여진 약의 이름이 은하수였다. 그것은 데볼루트를 무력화하는 힘이 있었다.

         

       후대의 연금술사들은 당연히 그 별빛이라는 재료를 수급할 수가 없었기에, 저주 역병에서 살아남은 랫맨들의 혈청을 뽑아 현재의 은하수를 만들어 냈다.

         

       그러나 은하수는 다른 치료제와 달리 양산이 힘들었다. 데볼루트는 통제 가능한 질병이 아니었다. 거기에서 적절하게 살아남아서 대항물질을 몸에 생성해낸 랫맨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여기까지가 가스통이 말해준 연금술 길드의 내부사정이었다.

         

       나는 내 곁에는 지난 1년간 미약한 데볼루트에 꾸준히 노출되어온 랫맨들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진화 연구소는 그들의 핏속에 정제된 은하수에 버금가는 데볼루트 저항물질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내가 그 사실을 알게 된 것은 최근이었다.

         

       원더스타인은 무슨 이유로 그들을 데리고 다녔을까?

       일부러 자신의 힘에 저항할 수단을 만들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그것에 대해 깊게 고찰하기 전에 멀리 카운터에서 클라라가 주먹을 불끈 들어 보이며 뛰어왔다.

         

       “단장님, 성공했어요!”

       

       협상이 타결된 모양이었다. 우리는 빌린 온천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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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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