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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2

       

       

       

       

       

       322화. 깨지다 ( 2 )

       

       

       

       

       

       대격변의 시대.

       먼 훗날 지금 시대를 한 단어로 정리한다면 그리 적힐 것이다.

       

       태초의 신화적 존재와 대지를 함께 거닐었으며, 영광된 기적이 살아 숨 쉬는 대격변의 시대라고.

       

       우스갯소리로 자고 일어나면 세상이 한 번씩 바뀐다고 말하는 때였으니.

       그 말이 썩 틀리지 않았다는 사실이 작금의 흐름을 꿰뚫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리고, 북부에서 신의 손이 하늘을 찢고 강림한다.

       

       세상은 다시 한번 거대한 물결에 휩쓸리기 시작했다.

       

       쾅, 쾅, 쾅!

       

       “공작님! 공작님! 어서 일어나셔야 합니다! 공작님!”

       

       깊은 밤. 

       마수의 산 바로 아래 위치한 몬테그로스의 공작가에 난데없이 소란이 일어났다.

       

       “이게,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냐?! 마수의 습격이냐!”

       

       잠에서 깨어나 다급하게 일어난 루샨 공작이 늙은 집사를 붙잡고 외쳤다.

       오가는 하인이며 기사와 전사들이 모두 창 너머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의 표정들은 마치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혹은 넋이 나간 것처럼 보이기도 했으니.

       

       “저, 저기… 공작님! 창 밖에…!”

       

       “…창 밖에?”

       

       늙은 집사의 떨리는 손가락을 따라 루샨 공작이 천천히 시선을 돌렸다.

       

       이윽고 그의 동공이 더없이 확장된다. 

       

       까만 균열로 커다랗게 찢어진 하늘, 그 사이에서 더없이 거대한 별의 손이 내려온다.

       내려와서 무언가를 움켜잡는다.

       

       “아, 아아ㅡ!!”

       

       루샨 공작이 외마디 경탄을 지르며 무릎을 꿇었다.

       

       신의 손이다.

       지엄하신 여섯 번째 신의 손이다!

       

       “모두 무릎을 꿇어라! 경배! 경배하라! 신께서 지상에 임하셨다!”

       

       루샨 공작의 외침에 모두가 홀린 것처럼 무릎을 꿇고 이마를 땅에 붙였다.

       오들오들 몸을 떨며 경배의 기도를 외운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루샨 공작은 그리 신실한 신도가 아니었다.

       그저 정치적인 입장으로, 그의 딸이 사도였기에 적당한 태도를 취했을 뿐.

       

       진심으로 여섯 신을 믿고 따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저건 무어라 말인가.

       보는 것만으로도 경외심과 존경, 사랑, 헌신을 이끌어내는 저 팔은.

       

       ‘저, 저게… 신!’

       

       진정한 신의 일부를 목도한 이의 반응이었다.

       

       그저 하염없이 납작 엎드려서 얼마나 지났을까.

       

       문득 몸을 짓누르던 존재감이 사라졌음을 눈치챈 루샨 공작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창 너머를 살폈다.

       

       지평선의 끝부터 끝까지 찢어졌던 균열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고, 고요하게 달과 구름만이 흐르고 있다.

       마치 방금 본 것이 한 편의 환각처럼 느껴질 정도로.

       

       “…내, 내가 헛것을 본 건가?”

       

       “저도 봤습니다… 공작님.”

       

       “저, 저도! 틀림없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어요!”

       

       여기저기서 봤다는 이가 가득하다.

       루샨 공작이 미쳐서 헛것을 본 게 아니란 소리다.

       

       그렇다면 방금의 거대한 두 팔은 정말로 신의 손이란 말인데…

       

       “정말로, 정말로 엄청난 것을 봤구나…”

       

       황망한 정신을 부여잡으며 루샨 공작이 중얼거렸다.

       

       저 거대한 크기의 두 손.

       크기로 미루어 보아 굉장히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보였을 것이 분명하다.

       

       “…아니, 잠깐… 음?”

       

       문득 스쳐가는 번뜩임에 루샨 공작이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지, 집사! 집사!!”

       

       “예! 여기 있습니다!”

       

       “우리 영지에 숙소! 숙소가 얼마나 있나!”

       

       “수, 숙소… 말입니까?”

       

       난데없는 공작의 질문에 노집사가 잠시 당황했지만, 그는 벌써 수십 년이나 루샨 공작을 보필한 프로 중의 프로.

       

       이내 제 주인이 원하는 답을 빠르게 머리에서 꺼냈다.

       

       “흠. 정확한 수는 확인을 해봐야 알겠지만… 숙소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략… 열 곳 정도 있습니다.”

       

       “열 곳?! 겨우 그것밖에 안 되나? 공작령이 얼마나 넓은데 고작 열 곳?”

       

       “전에 추진하던 탄탈로스 관광 사업이 무산되면서 여관이 모조리 망했습니다…”

       

       “아, 그… 그렇군.”

       

       루샨 공작이 머쓱하게 머리를 긁었다.

       

       “에잇! 그러면 우선 만신전 북부 지부에 협조 공문부터 작성하라!”

       

       “알겠습니다. 그런데… 무슨 내용의 협조 공문을 쓰면 되겠습니까?”

       

       노집사의 질문에 루샨 공작이 눈을 빛냈다.

       

       북부의 부흥을 위해 한 몸 바친 그의 인생.

       여러 번의 좌절이 있었지만, 마침내 인생의 황혼기에서 북부의 부흥에 대한 기회를 잡았으니.

       

       “신도들의 순례에 대한 숙소 및 편의 시설 제공에 대한 내용이다!”

       

       루샨 공작의 눈에는 벌써부터 무수한 신도들의 향연이 보이는 듯했다.

       

       

       

       ***

       

       

       

       북부에서 루샨 공작이 깊은 밤에도 한 몸 불태워 사업 계획서를 작성하고 있을 때.

       

       과연 루샨 공작의 생각대로 북부에 내려온 신의 두 손은 아주 멀리 떨어진 곳에서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오… 오오… 여섯 신, 아니 하나 되신 분이시여…!”

       

       만신전에서도.

       

       “키히이익…?”

       

       “쉬이. 진정하거라, 나의 작은 비늘. 두려워하지 마.”

       

       남쪽 해안가에 위치한 아르테리스의 에이홉도 멀리서나마 거대한 두 손을 볼 수 있을 지경이었으니.

       

       어지간한 대륙의 모든 곳에서 신의 강림을 두 눈 똑똑히 볼 수 있었음이다.

       

       그리고, 이는 어중간한 정치적 입장을 취하고 있던 거물들이 움직이는 계기가 되었다.

       

       신이 지상에 기적을 베푸는 것과, 지상에 직접 강림하여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은 차원이 다른 이야기.

       

       신의 손이 강림한 밤이 지나고 날이 밝기 무섭게, 산처럼 가득 쌓인 여러 편지가 만신전에게로 쏟아졌다.

       

       “펴, 편지가! 너무 많습니다아!”

       

       “정리해라! 우선 가장 아래 있는 것부터 확인해서 답신하는 거다!”

       

       만신전의 모든 이들이 달라붙어서 필사적으로 답신을 써야 할 정도.

       그러나 적을 수 있는 말의 대부분이 유야무야 얼버무리며 넘어가는 내용임은 어쩔 수 없었는데.

       

       이는 만신전도 이게 무슨 일인지 정확히 모르고 있는 까닭이었다.

       

       ‘그토록 강렬한 신성력을 발했던 두 개의 손은 신의 팔임이 틀림없을 테지만…’

       

       그럼에도 신이 지상에 강림하였음을 공표하는 일이니 만신전은 더없이 신중한 태도를 고수하고 있었다.

       

       “안토니오 대사제님! 루이 42세 국왕께는 뭐라고 적을까요? 북쪽에서 나온 커다란 팔이 정말 신의 손이 맞는지 물어보셨고, 또… 어? 만신전에서 세례를 받고 싶다는데요?!”

       

       “…끄응. 미치겠군.”

       

       급한 대로 사람을 보내 정확한 진상을 알아 오도록 명했지만, 사람이 오가는 속도에 한계가 있으니 결국 시간이 걸릴 터.

       

       그동안 밀린 편지에 답신하느라 만신전의 모든 업무가 삼 일이나 중단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오, 다들 고생이 많으시네.”

       

       “…공녀니임… 제, 제발 좀 도와주세요… 편지가 너무 많아요…”

       

       편지의 산에 묻혀서 신음하는 안토니오와 케니스, 데모닉, 기타 만신전 인원들.

       

       어딘가로 휙 도망쳤던 프리가가 한 손에 든 과일을 베어 먹으며 여유롭게 나타났다.

       

       “에… 싫어. 재미없단 말이야.”

       

       질색을 한 프리가의 뒤로 먼지와 흙을 뒤집어쓴 성기사 한 명이 쓰러지듯 비틀거리며 달려왔다.

       

       “그, 급보…! 급보입니다…!! 북부의, 몬테, 그로스 지부에서 보낸… 급보…”

       

       기력을 다했음인지 말을 뱉음과 동시에 다리가 풀린 성기사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바로 옆에 서 있던 프리가가 늦지 않게 성기사를 받아냈다.

       

       “엇차. 세상에, 꼴이 말이 아닌데?”

       

       입술이 하얗게 갈라지고, 눈 밑에 거무죽한 그늘이 들어섰다.

       몇 날 며칠을 새서 달려온 것일까.

       

       기절한 와중에도 그는 꼭 말아 쥔 두루마리를 놓지 않고 있었다.

       

       프리가가 조심스럽게 성기사를 눕히고 두루마리를 케니스에게 건냈다.

       

       “이 사람은 내가 옮겨 둘 테니까, 그것부터 읽어봐. 대충 보니까 우리 집에서 보낸 것 같던데.”

       

       “아, 고마워요 공녀님! 그전에 잠시만요.”

       

       케니스가 잠시 정신을 집중하더니, 쓰러진 성기사에게 밝은 별빛을 투사했다.

       오색의 별빛이 스며들자 창백했던 성기사의 안색이 조금이나마 편해지는 것이 보였다.

       

       케넬름 성녀에게서 받은 특훈의 성과 중 일부다.

       

       “휴. 됐다… 부탁 좀 드릴게요 공녀님.”

       

       “오냐. 난 간다.”

       

       아삭아삭, 무척이나 신 과일을 한입에 씹어 먹은 프리가는 성기사를 번쩍 들고 방을 나섰다.

       

       “케니스. 어서 그걸 열어 보거라.”

       

       문제의 북부에서 도착한 문서다.

       분명 지금의 문제에 대한 모든 해답이 적혀 있을 터.

       

       “……아?”

       

       모두의 재촉에 조금 떨리는 심정으로 두루마리를 연 케니스의 표정이 서서히 알 수 없게 변했다.

       

       “무슨 내용인데 표정이 그런 거냐. 나도 한번 보자꾸나.”

       

       데모닉이 슥 끼어들어 케니스의 편지를 옆에서 훔쳐봤다. 그의 눈동자가 편지의 아래로 갈수록 크게 떨려온다.

       

       “이, 이건…”

       

       만신전 북부 지부에서 보내온 문서다.

       

       문서에는 북부에 나타난 신의 손이 나타난 간략한 경과와 신의 손께서 행한 일에 대해 놀랍도록 상세하게 적혀있었다.

       

       하늘에서 거대한 균열이 열리더니 두 개의 손이 지상으로 내려온 것.

       

       그 손은 탄탈로스의 방향에서 작은 회색빛 상자 같은 것을 들고 갔는데, 밤의 기병대의 전언에 따르면 신께서 가져가신 회색 상자 안에 들어 있는 것은…

       

       “회, 회색 괴물을… 신께서 직접 거두어 가셨단 말인가?!”

       

       데모닉의 눈이 더 없이 커졌다.

       

       지상에 강림한 케넬름 성녀의 말에 따르면, 회색 괴물은 리아의 영혼을 핵으로 삼아 성장한 괴물.

       

       그 괴물을 하나의 신께서 거두어 가셨다면…

       

       “잘됐군, 데모닉! 정말로 잘 됐어!!”

       

       안토니오가 환하게 웃으며 데모닉의 어깨를 두들겼다. 

       

       “하나의 신께서 직접 강림하셔서 녀석을 데려가셨으니, 리아의 영혼은 구원받은 것이나 다름없네!”

       

       안토니오의 말대로였다.

       

       대륙을 공포에 몰아넣던 회색 괴물이 해결된 것에 더불어, 리아의 영혼을 핵으로 삼고 있던 문제까지 단박에 해결된 셈이었다.

       

       자비롭고 또 자비로우신 하나의 신께서는 필히 리아의 영혼을 구제하셨을 테니까.

       

       “그, 그렇군요… 하, 하하… 정말로… 정말로 다행입니다…”

       

       털썩, 다리에 힘이 풀린 데모닉이 주르륵 등을 기대며 주저앉았다. 

       조금은 허무한 감정이 들기도 했지만, 그 이상으로 리아의 영혼이 구원받았다는 사실에 안도감이 밀려왔다.

       

       눈물이라고는 없을 것 같던 그의 눈에 작은 눈방울이 아른거렸다.

       

       이에 만신전의 식구들이 하나둘 모여 데모닉의 등을 토닥이며 위로했다. 그간 데모닉의 마음고생이 심했음을 아는 까닭이다.

       

       “흠…”

       

       소란 속에서 두루마리를 찬찬히 살펴보던 한스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이걸로 끝인 걸까?

       

       “…거대한 균열이라.”

       

       한스는 어째서인지, 이전에 유니콘이 염려스러운 목소리로 했던 말이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차원의 경계가 너무 얇아졌다고 했었나…’

       

       지평선의 끝과 끝을 가르는 거대한 차원의 균열이 열려 신이 강림하셨다.

       

       이전에 유니콘이 염려할 정도로 차원의 경계가 얇아진 상황에서 그런 크기의 균열이 열린 것이… 과연 괜찮을지.

       

       한스는 그것이 조금 염려스러웠다.

       

       “…뭐, 신께서 다 뜻하신 바가 있으시겠지.”

       

       아무렴.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시야에 두고 행하심이니, 분명 무언가 방법이 있으실 거다.

       

       

       

       ***

       

       

       

       《……키히?》

       

       눈보라 치는 탄탈로스의 입구 주변.

       사체 하나를 물고 있는 부정형의 회색 물체가 작은 균열 넘어 모습을 드러냈다.

       

       일찍이 회색 괴물이 만들었던 분신체다.

       

       본체의 지시에 따라 먹이를 구해왔는데, 어째서인지 둥지에 있어야 할 본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

       

       당황한 분신이 한참이나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본체를 찾아다녔다. 자신에게 주어진 지시는 먹이의 사냥.

       

       본체에게 먹이를 주어야 자신의 지시를 완수할 수 있는데, 도대체 본체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뽀득.

       

       오매불망 본체를 찾던 분신이 눈 밟는 소리에 몸을 확 돌렸다.

       

       본체인가?!

       

       허나, 분신을 반긴 것은 반가운 본체가 아니었다.

       

       차갑고 무정한, 그리고 날카로운 창 한 자루가 눈보라를 뚫고 분신의 몸을 정확하게 양분했다.

       

       서걱ㅡ!

       

       《ㅡ키햐아아악?!》

       

       “……ㅡ”

       

       창을 휘두른 밤의 기병대 단장이 혐오스러운 목소리로 낮게 울었다.

       

       아직도 저주받은 회색 괴물의 잔재가 남아있는가ㅡ.

       

       반으로 잘린 채 바닥에서 꿈틀거리는 분신을 수습한 단장이 걸음을 재촉했다.

       

       다각, 다각.

       

       요즘 밤의 기병대 사이에서 회색 괴물 관리 순번에 대해 불만이 많은 참이다.

       

       왜 빨리 자신의 차례가 돌아오지 않냐는 것이 그 불만의 이유.

       

       “……ㅡ”

       

       그런 와중에 마침 좋은 대체재가 생겼으니.

       다른 기병들에게 보여주면 참 좋아할 것 같다.

       

       단장의 발걸음이 조금 빨라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아직 오타 검수를 하지 못 했습니다…!! 늦지않게 오타를 검수하도록 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닷…!!!

    ===>> 오타검수 완료(18:59)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펼쳐놓은 보자기를 수습하는 것…!! 그것은 정말 중요한 일입니다…!! 제가 펼친 보자기를 하나씩 하나씩… 차근차근 모두 수거하는 날이 올 때까지… 저, 글쟁이!! 열심히 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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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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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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