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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무인의 경지가 높아지면, 한서불침이라 하는 수준에 이른다.

       한서불침이란 추위와 더위에 더는 몸이 상하지 않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이는 날이 추워도 체온이 떨어지지 않고 아무리 덥다 해도 체온이 치솟지 않아 몸이 상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신체의 항상성이며, 무학에서 흔히 말하는 부동심에서 심이란 마음과 몸을 한 데 이르는 것이니, 고수가 한서불침에 이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현상이라고 하겠다.

         

       다만.

       추위와 더위에 몸이 상하지 않는다는 말이, 곧 추위와 더위를 타지 않는다는 소리가 아니다.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추우면 춥다.

       마찬가지로 더우면 덥다.

         

       겨울이면 찬바람 불다못해 얼음 폭풍이 휘몰아치던 청의 집에서도, 자동 호신경이 체온을 보전해주는 상태에 이르고서도 그저 춥기는 매한가지라 덜덜 떨면서 특제 두 배 이불을 둘둘 두껍게 말지 않았던가.

       체온이 보전되니 이불만 말면 금방 뜨끈하니, 보온만 되면 금방 안락해질 뿐이다.

         

       다만, 추울 때는 그렇게 껴입거나 이불 두르면 쉬이 물리칠 수 있다.

         

       그런데 더위는 답이 없었다.

       이제까지는.

       이제부터는 한심한 내공, 한심공이 간다!

       한심한 시원함을 보여주마!

         

       ……이렇게 답을 찾았는데!

       찾았는데 왜 쓰지를 못해!

       설렁탕을 못 먹고 세상을 떠난 김씨 아내 역시 하늘에서 원통하여 가슴을 쳤을 것이 분명하다.

         

       참다 못해 혹시 내공을 살살 꺼내서 쓰면 괜찮지 않을까 하고 한심공을 살살 일으켜 보다, 하윽, 악, 뒈질 뻔했네. 하고.

         

       청이 한여름의 암캐마냥 축 늘어졌다.

         

       사실, 이제 팔월 말, 실은 지독한 더위가 한풀 꺾인 때였다.

       그럼에도 청은 체감하기에는 오히려 한여름보다 더 더웠다.

         

       빙백신공에는 사소한 부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빙백신공의 주인들은, 빙정의 신비한 효능으로 인해 추위에 무뎌지게 된다.

       추위를 안 타게 된다는 뜻이다.

         

       대신 반대로 더위에 민감해진다.

         

       그러나 빙백신공의 소유자가 뜨거운 남쪽 땅에 내려올 일이 무어가 있겠는가.

       그러다 보니 북해에서야 빙백신공은 완벽 그 자체인 무결점의 신공이지만, 중원 무림에서는 음, 와, 더워서 숨이 막힌다…….

         

       사실, 자기가 못 하면 다른 이가 해 줘도 된다.

       마차 안에 두 명이 있어서 둘 다 한심공 시원한 냉기를 부를 수 있지 않던가.

         

       그에 청이 사근하니 상냥한 목소리로 반대편 좌석에 가부좌를 턱 틀고 운기조식에 열중하고 있는 설이리에게 말했다.

         

       “이리야. 한심공 좀 써 주면 안 될까?”

         

       “네.”

         

       “안 된다는 거지?”

         

       “네.”

         

       청의 이마에 힘줄이 볼록 솟았다.

       아니, 이년은 지도 더우면서 왜 찬바람 한 번은 안 불어주고.

         

       아닌 게 아니라, 본래 더위를 많이 타던 설이리가 빙백신공까지 갖추지 않았던가.

       그러니 설이리는 이게 사람인지 폭포인지 턱끝으로 땀방울 떨어지는 속도가 매섭다.

       출도 이전 유료 목욕 시설의, 아주아주 뜨거운 증기탕에 모래시계 세 바퀴쯤 돌린 사람처럼 땀을 빼고 앉았으니.

         

       그런 꼴을 하고서도 가부좌를 틀고는 그저 계속 운기조식만 해대고 있을 뿐이다.

         

       그러고 나니 약이 오르기도 하고.

         

       언제부터 내공 수련에 이리 열심이었다고 이렇게 유난을 떠는데?

       내가 입혀주고 먹여주고 씻겨주고 재워주고, 심지어 무공 가르쳐 줘 영약 먹여줘, 온갖 은혜를 다 베풀었는데!

       내가 뭐 큰 거 바라나?

       그냥 시원하게만 해 달라니까.

         

       흥. 아주 수련한답시고 유난을 떠는데.

       얼마나 가나 보자.

         

       청이 보기에 어차피 얼마 못 갈 꼴이다.

       밥 먹는 시간 등등만 빼고 하루 온종일, 열한 시진동안 운기조식만 하고 있으니까.

       뭐든 적당히 해야지, 저렇게 전력 질주로 계속 달려나가면 금방 퍼져버리고 마니까.

         

       라고 생각했는데, 하루, 이틀, 석천현에서 자고 사흘, 안강현, 나흘, 평리현, 닷새째에 호북성에 접어들어 엿새 날에 죽산현에서 묵고.

       이레에 방현에 닿고, 여드레 지나 아흐레 날에 흥산에 닿았다.

       딱 열흘 되는 내일 밤이면 신녀문에 드는 여정이었다.

         

       그리고 설이리는 진짜로 하루를 쉬지 않았으니, 에라이. 진짜 쓸모라고는 하나도 없는 주제에 독하기만 한 년 같으니.

       내 근육이 녹고 뼈에 금이 갔는데도 아주 말도 없이 어기적거리며 돌아다닐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픈 줄 몰랐을 때 콱콱 주무르고 흔들어 눈물을 쏙 빼놨어야 하는데.

         

       뭐라고 하기도 뭐해서 더 짜증이다.

       수련한다는데 수련하지 말고 나 시원하게 빙공이나 뿜어줘 하고 땡깡을 부릴 수는 없지 않겠는가.

       청의 고향 식으로 하면, 시험공부를 아주 쌍코피 터지게 열중하는 친구에게 안 놀아준다고 섭섭하다 하는 꼴이다.

         

       하지만 굳이 이럴 거면 왜 같이 다녀?

       공부도 좋지만, 그걸 굳이 같이 여행까지 와서 하면 당연히 짜증이 안 나나?

       이걸 동행이라고 표현할 수 있나?

         

       사실, 이런 이유로 나흘째부터는 아예 청 역시 그래 넌 수련해라 나는 알아서 놀련다 했으니, 호위라고 붙여준 종남파 무인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개중 종남파 일대 제자 필무 도사는 용봉지회에서 몇 번이나 본적이 있었더란다.

       그야 항상 창빈이 앞에 앉아있었으니까.

       창빈의 소개가 정확히 이러했다.

         

       ‘여기는 필무, 종남의…… 그, 소인, 아니 제가, 아니 내가 제일 아끼는 동생……, 아니아니아니, 당연히 서문 소저도 아끼고, 그, 아닙니다, 아닙니다. 아낀다는 게 배분의 문제가 아니오라……’

         

       애완동물은 이제 반항기가 와서 말도 안 듣고, 애완동물의 본분마저 잊었으니 저건 그냥 땀이나 쭉쭉 뿜는 짐승이다.

       그러니 항상 애정 고픈 청이 다른 일행들에게 시선을 돌릴 수밖에는.

         

       청이 주목한 것은 말이었다.

       그러고 보니, 나, 말 탈 줄 모르네?

         

       말은 편리하다.

       당연히 내 다리 대신 걸어주는 다리가 네 개 있는데 편리할 수밖에는.

       그 편리한 기동성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무림인들이 말을 타는 일이 많지 않다.

         

       왜냐면 말은 의외로 관리해주기 귀찮은 생물이며, 그리고 무엇보다 무척 비싸다.

       어설픈 무관 제자가 말 타고 다니다가는 저기 황금 타고 다니는 얼간이가 있다면서 강도질 당하기 십상이었다.

         

       그리고 정 붙여놓으면 죽거나 사라진다는 슬픈 이유도 있었다.

       중원에서 말 도둑은 청의 고향의 자전거 도둑만큼이나 흔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고수가 되면 말이 편하지 않다.

       이미 자기 다리가 튼튼한데 굳이 짐승의 발을 빌릴 필요가 없을뿐더러, 말 안장에 앉아서 가는 승마감이 딱히 편하지 않아서.

         

       그러니 청도 사실 말을 타 보고 싶다고 한 번쯤 생각이나 해 봤지, 굳이 타려고 한 적은 없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청은 말보다 빠르다.

       고수쯤 되면 다들 말보다 빨리 달릴 수는 있지만, 청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지치지도 않고 쭉쭉 달려 나간다.

       천하의 신투마저 따라잡기를 포기한 청의 경공이 아니었던가.

         

       그러니 말을 타 보는 역사적인 순간!

         

       “오. 생각보다, 별거 없네?”

         

       “균형 감각만 있으면 말 위에 타는 정도야 어려운 일도 아닙니다. 어려운 일은 그 말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승마술이지요.”

         

       “음. 어려우려나. 왕궁둥아, 좀 달려 볼래?”

         

       그에 필무 도사가 멈칫했다.

         

       “방금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 얘 이름이 왕궁둥이야. 뒤에서 보니 궁둥이가 아주 대문짝만하더라고. 야, 가자! 음. 가지 않을래? 가지 않으시겠습니까? 야? 왕궁둥? 말 안 들을래?”

         

       청이 배운 대로 말허리를 툭툭 두드리며 옆구리를 찔러 보았으나, 왕궁둥이는 너는 찔러라 나는 내 갈 길 가겠다며 따각따각 평보를 고집할 뿐이었다.

       뭐지? 삼재가 꼈나?

       왜 짐승 새끼들이란 하나같이 내 말을 안 들어 처먹을까.

       저기 마차 안에 있는 설암캐년이나 여기 왕궁둥이 이 녀석이나.

         

       왕궁둥이라는 말에 사심 없이, 그저 어쩔 수 없는 반사 반응으로 저도 모르게 청의 안장 뒷부분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필무가 깜짝 놀랐다.

         

       “위험합니다.”

         

       “응? 위험해? 여기서 속도 좀 오른다고 위험할 것 같지는 않은데?”

         

       “그게 아닙니다.”

         

       말이란 생물은 생각보다 더 놀라운 아주 근육덩어리라서, 가장 느리게 걷는 평보 상태에서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동작들이 가능하다.

       돌거나 뛰거나 눕거나 심지어는 곧장 뒤로 반 바퀴 회전할 수도 있다고.

       그러니 의외로 평보에서 많은 사고가 나는 이유가 말이 흥을 주체하지 못하면 예기치 못한 동작으로 낙마하게 되는 것이라고.

         

       “음. 하지만 이래서야 빠르지도 않고.”

         

       “애초에 짐말이라 그렇습니다. 보아하니 특히 겁이 많은 녀석이라 무리에서 절대로 이탈하고 싶지 않은 기색이로군요.”

         

       “음.”

         

       청이 마차 빠지면 귀신같이 멈춰서서 저를 돌아보던 긴 대가리, 말이라서 그런지 대가리도 참 말상이던 그 눈빛을 떠올렸다.

       인제 보니 똑똑해서 야 꺼내라 하는 게 아니라, ‘잉잉 주인님 느낌이 이상해요 힘들어요 빼주세요’ 하고 도움을 청하는 눈빛이었던 모양.

         

       음. 똑똑한 혈통마인줄 알았더니.

       잡종말이었구나.

         

       청이 왕궁둥의 갈기를 살살 쓰다듬었다.

         

       어쨌거나 예정에 없던 승마 수업은 심심하면 한 번 씩 받아보았다.

       왕궁둥이는 도대체 앞으로 나설 생각이 없었으므로, 다른 종남 제자의 말을 잠깐 빌려서 달려보았다.

       평보, 속보, 구보 순으로 점점 빨라지고, 말의 전력질주인 습보가 있으나 아주 숙련된 기수에게도 대단히 위험한 동작이라면서 체험 학습은 할 수 없었다.

         

       “그래도 대단히 잘 타시는군요.”

         

       “뭐 이 정도야.”

         

       “그, 음. 조금 다르긴 합니다만. 솔직히 말하자면, 서문 소저는 승마에 전혀 재능이 없습니다.”

         

       승마 교관의 평가로는, 타고난 균형 감각이 탁월해서 말 위에 잘 붙어있을 뿐, 말을 탄다고 표현하기는 좀 어렵다나 뭐라나.

         

       “엥. 그게 그거 아닌가? 어쨌거나 말 위에 타고 있는 거잖아.”

         

       “그. 말이 힘들어합니다.”

         

       승마란 능숙하게 말을 모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함께 달리는 말에게도 기수가 맞춰 박자를 맞춰주며 편안한 짐짝이 되어주어야 한다.

       그러나 청은 그냥 자기 편한 자세로만 딱 붙어있으니, 청이 편한 만큼 말에게는 계속 불편한 시간이라고.

         

       어쨌거나, 왕궁둥이 때문에 일정도 바꿔야 했다.

       왕궁둥이 내 거라고 자랑했다가(종남 제자들의 시선이 일제히 무례해졌지만, 청은 어른으로서 관대히 용서해주었다), 말의 관리법을 듣다가 생긴 일정 변경이었다.

         

       청이 듣기로는 영리하고 온순하며 애교가 많은 짐승이라기에 신녀문에 들여서 한 마리 키우면, 심심할 때 제자들이 타고 놀 수도 있고 밭일할 때 쟁기도 끌고 물품 사러 나갈 때 수레도 끌고 좋을 것 같았다.

       그런데 들어보니 웬걸.

         

       말은 겁이 많아서 더욱 위험한 맹수라고.

       뒷발에 제대로 채이면 무인이라도 한 방에 숨이 끊어지고, 콱 물리면 팔다리가 덜렁덜렁, 아예 뚝 끊겨나갈 수도 있었다.

       엉덩이 뒤에 뭐가 있으면 깜짝 놀라서 날뛰니 마방에서 쉴 수 있도록 해 줘야 하는데, 또 말이란 무리 생활을 하는 짐승이라 혼자 있으면 외로움을 버티질 못한다고.

       게다가 많이 먹고 많이 싸는 생물이라서 하나 기르자면 할 일이 태산이었다.

         

       위험한데 까탈스럽고 여러모로 품이 많이 드는 짐승이었다.

         

       그러니 어째.

       설가상회 마방에 맡겨두는 수밖에는.

         

       그리하여 열흘째, 자귀현!

         

       “호위해줘서 고마웠어. 조심히 돌아가. 우리 문파가 금남이라 여기까지 와 줬는데 차 한 잔 대접할 수가 없네. 미안.”

         

       “괜찮습니다. 다음에 또 뵙겠습니다.”

         

       필무 도사가 척 포권을 취했다.

       어차피 우리 같은 후기지수인데 말 놓고 편하게 하재도 끝까지 정중함을 유지하는 필무 도사였다.

       애가 참 반듯하니 괜찮기는 하네.

         

       다만, 필무의 의견도 들어보아야 한다.

       필무 도사는 이전 용봉지회에서 청이 너네 도사 놈들 배분 높은 어르신 보고 인사도 안 하냐면서 행패를 부리는 순간을 함께했었다.

       그게 아니더라도 창빈 도사가 친구도 아니고 어르신도 아닌 애매한 지점에서 쩔쩔매는 모습을 몇 번이나 보기도 했고.

         

       마부는 설가상회 소속이고, 마차도 설가상회 마차고, 말은 두 마리 중 하나가 청의 말이고 하나는 설가상회 말이지만, 어차피 둘 다 같이 돌아갈 녀석들이었다.

         

       그래서 자귀에 들른 김에 상회에 반납하고 걸어가려 했더니, 마부가 그러실 필요 없으니 제발 평생의 소원이라며 바래다 드리도록 허락을 좀 해 달라나 어쨌다나.

       그리도 간곡하게 부탁을 하니, 뭐.

         

       그리하여 따각따각 마차 타고, 건너편엔 땀 쭉쭉 빼는 설이리를 두고, 드디어 집 나의 달콤한 집 신녀봉에 이르는데.

       

       “멈춰라!”

         

       내가 내 집 올라가는 높디 높은 산길이 저 앞에 코앞인데, 바로 신녀문 산문 앞에서 신녀문 제자의 귀가를 막아서는 이들이 나타난 것이다.

       뭔데? 감히 신녀봉 앞마당에서, 신녀문이 두렵지도 않은, 음, 어라?

       

       청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생각해보니 신녀봉 앞마당이 안전하기는 한가? 싶어서.

       

       장명이 때도 이 앞에서 당시엔 버거웠던 대장급이 둘이나 지키고 있었지.

       지금이라면 물론 한 칼에 머리 두 개 띄울 자신이 있기는 하지만, 그때는 지금보다 경지도 낮고 어리, 지는 않고 나이가 더 많았지? 그때가?

       

       그리고 마교 새끼들도 이 앞에 있다가 사람을 납치해가질 않나.

       

       이번에는 아예 떼로 몰려왔는데?

       신녀봉 앞마당, 도대체 이래도 괜찮은 것인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글 계정 이용하시는 분들 중에 혹시 노벨피아 접속이 잘 안되는 분들이 계신가요?
    방금도 노벨피아 접속이 안 되기에 이리저리 시도해 보았더니, 로그인만 하면 무한로딩 먹통이 되다 연결불가가 뜨네요.
    혹시 제 컴퓨터만 이러한 거면 포맷을 한번 하고, 같은 증상이 있으신 분들이 계시면 피디님 통해 전달해 드리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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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Am This Murim’s Crazy B*tch

I Am This Murim’s Crazy B*tch

이 무림의 미친년은 나야
Score 4.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became a female character in a martial arts game I’ve played for the first time. I know absolutely nothing about Murim, thoug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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