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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식탐食貪, 그리고 미식美食.

         

         좋은 먹거리에 대한 사람의 본능적인 갈망은 쉽사리 억누를 수 있거나, 냉정한 분별력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입의 욕구가 아니라고.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와인… 그러니까 포도주의 양조와 품종 재배에 대한 연구가 가장 심도 깊이 이루어진 게 실은 교회라던가, 중세 수도원은 사실 자급자족 문제와는 별개로 돼지 같은 걸 직접 키워서 잡아먹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탐식가의 소굴이었다던가 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동일한 질량의 깨끗한 물보다도 세정용 젤 상품이 압도적으로 가성비가 좋아서…라기보단, 그냥 생수 한 병이 뒤지게 비싸서 몸을 씻기는커녕 함부로 마시는 것조차 힘든 이 사이버펑크 세상은 존나 망한 게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는데….

         

         정말 수많은 천재들이 고심해서 만들어낸 조미료와 가공품, 대체 식품의 미쳐버린 기술력과 완성도가 그야말로 인류를 ‘캐리’ 해버렸다고 할까.

         

         약물로 때우거나, 건강은 일단 망가진 다음 다시 챙겨도 충분히 늦지 않은 의료 및 제약 환경도 크게 한몫 했다고 할까.

         

         비록 미국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지만, 건강 보험이 있는 것처럼 먹는 멋진 문화는 그대로 남아 찬란히 꽃피웠다는. 뭐, 대충 그런 얘기다.

         

         맛있다! 성분표를 보기만 해도 숨이 턱 막혀도!

         입이 즐겁다! 원산지는 실수로라도 확인하고 싶지 않지만!

         

         비싼 건 당연히 비싼 값을 하고, 싼 것도 자극적이고 중독성 강한 맛은 어떻게든 듬뿍 함유한 게 이 동네의 식품업이나.

         

         의외로 고가 요식업 쪽에선 잘나디 잘난 자연산 식재료가 아닌, 전용 저온 보관 카트리지에 오는 신선한 채소와 고깃덩이들이 최고로 평가된다고.

         

         스걱…!

         

         식사용 나이프가 흡사 버터라도 자르는 것 마냥 부드럽게 적갈색 고깃덩어리를 파고든다.

         

         마블링, 지방질 하나하나의 두께와 가열로 녹아내릴 범위까지 철저한 계산 하에 제조된 인공육의 아름다운 완성도는 정말 감탄을 참기가 힘들다. 더군다나 몇 번을 주문해도 같은 품질을 유지한 음식이 서빙된다는 건 크게 가산점을 줄만한 요소지. 암.

         

         “으음♪ 으으음……♬”

         

         어느새 가슴 한 켠에 추억의 맛으로 자리잡은 부들거리는 스테이크를 포크로 낚아 올려 덥썩.

         

         페어링한 술을 즐기는 건 나에겐 무리였으므로, 대신 듬뿍 남은 아찔한 감칠맛이 사라지기 전에 사이드로 나온 감자튀김을 더해 고소함을 추가로 즐기며 한 번 입안을 말끔히 씻어낸다.

         

         건너편에 앉은 상대야 특별히 예의를 차릴 관계도 아닐뿐더러, 같이 합숙을 하면서 하루 세 끼 같이 식사를 한 것만 셀 수 없이 많은 만큼 저절로 흘러나오는 콧노래를 구태여 참지 않고 흘려보냈고.

         

         여기는 정보 통신 지구 내의 한 추천 맛집.

         거기에 마주앉은 사람은… 당연하지만 천방지축 정보팔이 해커 마리나가 되시겠다.

         

         “…어떻게, 입맛엔 좀 맞아 우리 예쁜이?”

         

         “확실히 플라자 쪽 식당들이랑은 성향이 또 다르네… 즐길 수밖에 없게 설계된 과학의 풍미야. 그렇게 느끼도록 유도되는 것 같아서 기분은 이상한데, 겁나 맛있어…!”

         

         “좋아해줘서 다행이네. ……내 목숨값치고는 터무니없이 싸게 먹혀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지만. 설마, 객관적으로 봤을 때 그 수준이라고 평가한 건 아니지? 그냥 아는 사이라 많이 봐 준거지??”

         

         눈을 데구르르 굴린 그녀가 세트 메뉴에 포함된 드링크를 벌컥벌컥 들이켜더니, 웨이터를 불러 얼음 컵과 냉수를 따로 추가하기까지 했다.

         

         갑자기 만나자고 한 거에 어지간히도 놀랐던 모양이다.

         

         당시에 아무래도 급한 상황인지라 반항도 반항이고, 도망치는 걸 제로가 좀 과격하게 위협해가며 막아섰다고 들었는데 그것 때문에 오늘 내가 무슨 해코지라도 하려고 부른 걸까 경계했나?

         

         용병끼리 아웅다웅하는 거야 의뢰에 따라 어쩔 수 없고, 잽싸게 필요한 정보만 넘기고 빠져준 건 오히려 고맙게 생각하는 편인데.

         

         …아, 그렇다고 아예 할 말이 없는 건 또 아니지.

         

         “어차피 경매장 건물이야 통제 하에 놓여있던 상태여서 수고를 안 들여도 움직임이 뻔히 보였고, 또 드로이드 수리비도 따로 입금해주면 넘어가기로 약속했던 거니까 그건 별로 상관없어. 하지만….”

         

         “응응, 그래. 신경 쓰지 않는다면 나도 고맙… 하지만?”

         

         무심코 수긍하며 풀어졌던 마리나의 입가 근육이 내 훈훈한 미소를 보고는 파르르 경련했다.

         

         사람 얼굴을 보고 귀신이라도 본 것처럼 바짝 굳는 건 꽤나 실례인 처사이나, 내가 화나서 추궁하고 있다는 점을 알아주었다면 뭐 큰 불만은 없었다.

         

         “마리나 너, 그때 에나마 의뢰가 종료되자마자 파라다이스에 쪼르르 달려가서 내 위치와 신상 싹 팔아먹었었지? 그것 때문에 아론이 몸소 놀러 오질 않나, 이후로도 공권력이랑만 얽히면 라구스 지부장이 칼같이 전화하질 않나 진짜 생난리도 아니었거든?”

         

         “엣. 잠깐만, 화를 내는 건 이해하는데 그렇게 모르는 이름을 마구 대도……. 혹시 그 ‘아론’에, 그 ‘라구스’ 얘기야? 진심??”

         

         타이밍 맞게 에나마의 대항마 역할을 해준 건 참 고맙지만 파라다이스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메가 코프인 건 마찬가지.

         

         협력 관계라는 이름의 파트너쉽도 맺었겠다. 그걸 명목으로 아론 녀석이 이상한 부탁을 자꾸자꾸 해올까 봐 일부러 후다닥 네오 헤이븐으로 피신 온 것도 있었는데 완전 망했다니까?

         

         게다가 졸지에 그 독사 같은 놈이 사준 집에다 살림을 차려버렸으니… 나중에 수십 억짜리 일감을 던져주면 거절하기도 세상 눈치 보이게 생겼다고!

         

         지금 와서 잔뜩 벌었으니까 미리 갚아두겠다고 연락해봤자 받아줄 리가 만무하잖아.

         

         그, 기본적으로 나를 심각할 정도로 고평가하고 있는 인간이라 말을 잘못 섞으면 해괴한 오해와 착각이 심화될 것 같아서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먼저 연락하기도 싫어!

         

         “하여간 그러니까. 밥 한 끼로 퉁치기로 했던 거랑 별개로, 그 부분에 대한 빚이랑 내 마음에 남긴 배신감에 치를 위자료는 내야 하지 않겠어?”

         

         “…쓰읍, 뭐 좋아. 의뢰 과제도 거의 쉽게 업혀갔던 주제에 너무 단물을 쪽쪽 빨려 했다는 자각쯤은 나도 있으니까 그건 미안. 그래서, 내가 뭘 해주면 되는데. 어디 기업 전상망에 디도스 공격이라도 한 번 성대하게 걸어줘?”

         

         “뭐 그런 거창한 건 절대 아니고. 내가 그 우리 업계의 평균적인 실력이랑 상식을 잘 몰라서 해커 커뮤니티 쪽을 약간 실험대로 써먹은 전적이 몇 번 있거든?

         

         그것 때문에 빡친 애들이 넷 상에서 막 이를 박박 가는데. 전부 차단해버리는 것도 못할 짓이니, 왠지 마리나라면 그런 쪽으로 발이 넓을 것 같아서 해결책을 좀 물어보려고… 어흠.”

         

         “…….”

         

         기묘한 정적. 얘기가 잠시 끊어진 것 같길래 일단 남은 스테이크를 냉큼 집어먹었다.

         

         음, 역시 맛있다.

         거주구에서 원체 거리가 멀어서 재방문은 힘들 것 같지만, 이런 종류의 식도락이 가능하다는 걸 배운 것만으로도 보람찬 외식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지만 마리나는 자기가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의심하듯 머리를 삐딱하게 기울이더니, 이내 눈썹을 있는 대로 찌푸린 다음 앓는 소리를 내다가… 왁! 소리를 지르며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가.

         

         “그거면 되는 거였냐고!! 예쁜아, 너 경제 관념이 어디 이상한 거 아니야!? 내가 진짜 반푼이 해커이긴 해도, 기존 소프트웨어나 기성품 전자 장비를 쓰는 분야에서는 나름 순위권으로 꼽히는 고급 인력인데!”

         

         털썩!

         

         손님들의 시선이 집중되자 부끄러웠는지, 아니면 점잖치 못한 태도라 생각했는지는 몰라도 폭발한 감정을 헛기침과 함께 가다듬으며 곧장 다시 착석했다.

         

         아니, 당사자가 괜찮다는데 왜 저렇게 놀라는 거람. 나한테는 이게 나름 인맥의 유효 활용인데.

         

         고민 상담 상대나 순수한 노동력(Manpower)으로서의 가치는 몰라도, 다른 해커들에게 기술적인 부분에서 의지하기엔 검증하면 할수록 내 뇌가 너무 오버 스펙이라 소용이 없을 것 같다니까?

         

         심지어 이젠 독립한 제로가 전속 비서처럼 굴어서 웬만한 경우엔 용량 싸움으로 밀리지도 않을 것 같고.

         

         “거 엄청 맥빠져 하네. 싸게 먹혔다고 좋아할 때는 언제고.”

         

         “하아, 한순간에 블랙 마켓 용병이 아니라 저기 심부름 센터 직원 비스무리한 게 된 기분이라 그래…. 하지만 그게 예쁜이 부탁이라면 또 도와줘야지. 그럼 커뮤니티 닉네임이 뭔데, 거기서 아나스타샤 같은 특이한 이름을 본 기억은 전혀 없는데. 오, 나랑도 아는 사이 아니야 혹시?”

         

         “어….”

         

         맞다. 굳이 소셜 친구 추가를 하는 건 아니더라도 사선 경위나 그간의 활동 기록을 공유하려면 당연히 아이디부터 공유하는 게 먼저지.

         

         일부 친구들에게 못할 짓을 했다는 자각은 있겠다 반성은 충분히 끝마쳤다고 생각했는데… 내 일탈을 보여준다고 생각하니 뭔가 좀 입이 안 떨어지는데요.

         

         이게 어느 정도냐면, 무려 인터넷 검색 기록을 공개하는데 백만 원 정도밖에 안 주는 망가진 밸런스 게임에 참여한 수준?

         

         – 아샤님의 활동명은 idkHacking 이십니다. 지나친 겸손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상을 거스르듯, 자신만의 미덕을 실천하심과 더불어 역설을 통한 경고의 의미마저 담은…. –

         

         “얌마!!”

         

         자리에 있는듯 없는듯, 마리나에게 몸체 파괴에 대해 사과 받은 이후로 묵묵히 대기하고 있던 제로가 갑자기 쓸데없는 정보를 풀어놓으려 하길래 다급히 제지했다.

         

         자랑스러운 건 고사하고, 그런 거창한 뜻을 품은 게 아니라고 이 바보야!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능력 빨로 사기를 치고 있는 게 부끄러워서 자조한 거에 훨씬 더 가깝지!

         

         봐라. 마리나가 벌써 재밌는 건수를 물은 것 마냥 수비적인 포지션에서 탈피해 호들갑을 떨고 있지 않나.

         

         “…어라? 어럽쇼? 아니, 진짜?? 이런 미친, ‘해킹잘모름’이 예쁜이 너라고…? 다중 암호화 랜섬웨어를 뿌려서 데이터를 인질로 잡아놓고, 크레딧을 요구하는 것도 아니오 어디 한 번 풀어보라며 팔짱 끼고 구경한 악질 유저가?!”

         

         “그건. 그, 머리로만 알고 있던 네오 헤이븐 해커들과 약간의 친선전을 해볼 필요가 좀 있어서 부득이하게….”

         

         “5년 넘게 매일같이 게시판에 꾸준글을 올려대서 ‘실은 세밀한 업계 동태 파악을 위해 파견된 엘리시움 위장 직원이 아니냐’는 소리를 듣던 놈도 냅다 썰어버린, 관리자랑 유사한 권한을 휘두르는 사신이??”

         

         “그렇게 자꾸 이상한 수식어를 덧붙이는 건 에반데 진짜로…!”

         

         “유달리 공격적으로 떠들고 다니던 새끼들한테 재갈 물리듯이 배달 테러를 감행해대서, 드디어 이 음지에도 커뮤니티 평화를 위한 균형의 수호자가 나타난 것 아니냐는 소리까지 나오게 만든…!!”

         

         “시발, 거 좀. 그만!”

         

         응, 결심했다.

         

         오늘 당장 집에 돌아가는 대로 클리너를 돌린 것처럼 네트워크에 남은 그간의 흔적들을 싹 밀어버리고 깨끗하게 살도록 하자.

         

         그리고 겸사겸사 마리나의 아이디도 찾아내서 싹싹 조사한 다음, 이번엔 내가 밥 한 번 사겠다는 핑계로 불러내서 존나 괴롭혀야지.

         

         야, 넌 뭐 얼마나 얌전하게 놀았길래 사람의 약점을 이렇게 무자비하게 놀려대냐? 엉??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크아아아아악, 멈춰! 그만 긁어!!

    빨주노초파망고 님의 50코인 후원! 감사드립니다!! 재밌게 읽어주셨다면 저야말로 영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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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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