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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루시 알른이 던전의 공략을 시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토비는 애버리가 사준 비싼 식사마저 내버린 채 바로 던전학 시험장으로 내달렸다.

   

   그 재밌는 던전을 설계한 알른 영애께서 직접 자신의 던전을 공략하는 법을 알려준다니!

   

   분명 배울 부분이 많을 터 아닌가!

   

   이런 귀중한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항상 어깨에 힘주고 다니는 것도 좀 역겹지 않아?♡ 어떻게든 덩치가 커 보이려고 노력하는 짐승 같잖아♡ 정작 그 속에 든 건 개 허접한 조루면서♡’

   

   전력으로 내달린 토비가 시험장에 도착했을 무렵.

   

   시험장 한 가운데에 떠올라있는 영상 속 루시 알른은 복도를 걸으며 누군가를 향한 매도를 내뱉고 있었다.

   

   고위 귀족의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치고는 너무도 저급한 언사.

   

   시험장에 머무르던 이들이 도저히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생각하는 가운데에서 당혹을 느끼던 토비는 그나마 친분이 있는 한 평민에게 이게 무슨 상황이냐고 물음을 던졌다.

   

   “…영애께서 이 영상이 녹화본이 아니라는 걸 저런 식으로 증명하고 계시는 거야.”

   

   방금 전 자신에게 시비를 걸었던 사람을 욕하는 것으로 이 영상이 실시간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증명하고 있단 이야기에 토비는 할 말을 잃어버렸다.

   

   명성 높은 알른 가문의 영애라 해도 다른 귀족을 상대로 저래도 되는 것인가?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풍경에 토비가 눈을 끔뻑이고 있으려니 어느새 그를 뒤따라 온 애버리가 목소리를 냈다.

   

   “저 정도면 예전에 사교계에서 하시던 것보다 온화하네요.”

   “럼…럼리 영애?!”

   

   흐트러진 머리를 다잡는 애버리의 모습에 토비의 친구가 경악을 표한다.

   

   여러 영애를 이끄는 성격 안 좋기로 유명한 귀족이 말을 걸었단 게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던 것이다.

   

   “여기는 어쩐 일이십니까?!”

   “그건 당신 옆에 있는 던전 바보한테 물어보세요. 평민은 평생 보기도 힘든 음식을 사주려 했는데 던전이란 이야기를 듣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다니.”

   “그야 저한텐 음식보다는 이 쪽이 더 중요하니까요.”

   

   뭐야?! 토비 얘 미쳤나?! 럼리 영애가 무섭지도 않아!?

   

   태연히 헛소리를 지껄이는 토비의 모습에 그의 친구가 눈을 떨었지만 정작 애버리는 고갤 내젓는 것으로 한심함을 표할 뿐 크게 화를 내진 않았다.

   

   함께 던전을 공략하는 과정에서 토비를 인정한 애버리에게 이 정도 무례는 크게 신경 쓸 것이 아니었으니까.

   

   당연한 이야기지만 토비 또한 이 사실을 알고 있었다.

   

   태어나면서부터 용병단이란 집단에서 자라온 토비에게 이런 눈치는 본능이나 다름없는 것이었으니.

   

   만일 애버리가 어느 정도 느슨한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토비는 이런 짓을 상상하지도 않았겠지.

   

   “그보다 럼리 영애. 예전에 비하면 온건하다는 게 무슨 이야기입니까?”

   “하아.”

   

   토비의 태연한 물음에 한숨을 내쉰 애버리는 어깨를 으쓱이고는 화면 속 루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말 그대로에요. 한창 사교계에서 활동하던 시절의 알른 영애는 저거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진 않았거든요.”

   

   루시가 벌인 여러 미친 짓거리를 제외하고 그녀가 지닌 조건만을 본다면 루시는 충분히 사교계의 중심이 될 수 있는 사람이다.

   

   왕국의 영웅 베네딕 알른의 하나 뿐인 딸이라는 지위만 해도 온갖 사람들이 달려들고도 남을 텐데. 거기에 사교계의 모두가 부러워 할 만큼의 미모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수도에서 벌어지는 파티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루시 알른은 자신의 존재만으로 무도회를 지배할 수 있는 사람이었으며, 왕족보다도 더 많은 시선을 받는 사교계의 꽃이었다.

   

   허나 그런 그녀가 모두의 미움을 사는 존재가 되는 데까진 채 1년이 걸리지 아니했다.

   

   루시 알른이라는 꽃에 자리한 가시는 단순히 따끔할 뿐인 물건이 아니라 자신에게 다가오는 사람을 찔러 죽이려 드는 흉기였으니까.

   

   “그 때 알른 영애의 모습을 보셨다면 왜 여러 귀족 분들이 알른 영애라는 이름에 치를 떠는 지 이해할 수 있을 거에요.”

   

   만약 과거 루시의 성격이 지금과 같았다면 그녀는 조이의 대척점에 설 정도로 거대한 세력이 되었을 것이다.

   

   영웅의 딸이라는 지위와 인형과 같은 외모는 일정 수준의 단점을 가리게 만들어줄 만큼 거대한 이점이었으니까.

   

   허나 당시 루시의 성격은 지금과 비할 수 없을 정도로 악독했다.

   

   “파티를 개최한 백작 부인에게 왜 이런 돼지 우리에서 파티가 열리나 했더니 돼지가 살고 있어서였다 그러지를 않나. 어느 자작 가문의 가주를 보곤 왜 아이가 없냐고 고자냐고 그러지를 않나. 자기한테 시비 걸었다고 한 영애의 머리를 꽃병으로 박살내질 않나.”

   

   루시가 일으킨 온갖 사고를 봐왔으며, 동시에 루시 알른이라는 영애가 저지른 여러 사고의 피해자가 되었던 애버리는 루시의 목이 붙어있는 게 기적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알른 영애께서 조롱하는 정도면 애교죠. 애교.”

   

   상상했던 것을 한참 뛰어넘은 이야기들의 항연에 토비는 어지간한 귀족들이 차마 루시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이유를 이해했다.

   

   말로만 들어도 이토록 어질어질한데 그 풍경을 눈으로 보았던 이들은 어떻겠는가.

   

   “첫 번째 방으로 넘어갔네요.”

   

   토비는 아직 들려 줄 이야기가 많은데 아쉽단 애버리의 혼잣말을 듣고 애써 고개를 돌렸다.

   

   화면 속에 나오는 루시는 무기도 방어구도 들지 않은 채 병사의 앞에 서 있었다.

   

   그를 본 병사는 무장을 하는 게 어떠냐고 권유했지만 그에 대한 루시의 대답은 핑계거리가 없어질까봐 그러냐는 조롱이었다.

   

   루시의 웃음소리를 듣고 분노한 것일까? 병사의 손에 힘줄이 새겨지더니 이내 그가 루시를 향해 창을 내지른다.

   

   빠르다. 우리가 상대했던 병사보다 훨씬 더 강한 상대야.

   

   1학년 던전이 아니라 상급생을 위해 만든 던전인가?

   

   무예특기생인 토비는 어렵잖게 병사가 내지르는 창을 따라잡았고.

   

   창이 내질러지기도 전에 이미 병사의 공격을 회피해버린 루시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저거 보고 피한 거 아니죠?”

   

   애버리의 중얼거림에 토비가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는 병사의 공격을 보고 피하지 않았다. 이미 어떤 공격이 올지 알고 있었기에 피하기 위한 자리에 가 있었던 것이다.

   

   “저 병사가 내지르는 공격은 열 번째까진 순서를 따르니까요. 던전을 설계한 알른 영애가 그 사실을 모르진 않겠죠.”

   

   첫 번째 방에 등장하는 적들이 내지르는 공격은 열 번째까진 언제나 동일하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을 암기해버린다면 누구나 병사를 넘어설 수 있다.

   

   ‘설마 나처럼 자그마한 여자애도 하는 걸 못 하는 머저리는 없겠지?♡’

   

   영애께서는 이를 이야기하고 싶은 것 같다만 그를 전하는 말투가 너무 도발적이야.

   

   덕분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를 기만이라 받아들이고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내지 않나.

   

   그 후에도 루시는 자기 나름대로 친절하게 던전을 공략하는 법을 알려 주었다.

   

   ‘풉♡ 약점이 공격 당할까봐 겁먹은 것 봐♡ 진짜 너무 추하지 않아?♡’

   

   병사는 자신의 약점을 지키는 것을 우선시하니 그 움직임을 잘 보면 약점을 알아차릴 수 있다는 것.

   

   ‘환상이 진짜인 줄 알고 허세 부리는 꼴이라니♡ 이렇게 허접한 장난질에 누가 속아 줘?♡’

   

   두 번째 방의 늑대를 잘 살펴보면 이상한 부분이 있으니 환각이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것.

   

   ‘으엑♡ 내가 귀여운 건 사실이지만 그래도 밟히고 싶다면서 달려드는 건 좀… 많이 역겹네♡ 건드리고 싶지도 않아♡ 생리적으로 무리♡’

   

   세 번째 방의 골렘 중에선 정해진 상대만 공격해야 한다는 것.

   

   그와 동시에 골렘이 죽지 않을 정도로만 공격해 제압하는 게 가능하단 것.

   

   ‘…까지!♡ 이렇게 힌트가 많은데 설마 하나도 못 알아차린 바보는 없겠지?♡ 만약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강아지한테 친구하자 권유하는 걸 추천할게♡ 아♡ 그런 바보면 강아지도 기겁하려나?♡’

   

   네 번째 방이 꿈이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는 수많은 단서들에 대한 설명.

   

   저를 이야기하는 루시의 어투는 분명 도저히 좋다 말할 수 없었지만 그 안에 담긴 내용들은 하나 같이 유용한 것들밖에 없었다.

   

   던전의 공략을 끝마친 토비조차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게 있을 정도였으니까.

   

   덕분에 시험장 안에서 루시의 던전 공략을 관전하던 이들의 분위기가 여러모로 달라졌다.

   

   던전 안을 산책하듯 돌아다니며 해답을 알려주는 그녀의 모습엔 던전의 설계자다운 품격이 담겨 있었으니.

   

   점차 루시의 실력을 검증하겠다는 이들보다도 루시가 공략하는 모습을 보며 배움을 얻고자 하는 이들이 많아져가는 것이다.

   

   ‘여기까지가 귀엽고 착한 내가 준비한 튜토리얼♡ 이것도 통과 못한 허접은 없겠지?♡ 만약 그런 바보멍청이가 있다면 1년 더 허접한 아카데미를 다니면서 자기가 왜 그렇게 멍청했는지를 후회해야 할 걸?♡’

   

   “미친?! 낙제라고?!”

   “졸업하고 바로 용병단에 들어가기로 했는데!”

   “안 돼애애애애!”

   

   시험장 여기저기에서 비명이 흘러나왔지만 그를 아는지 모르는 지 루시 알른은 계속해서 던전을 진행해나갈 뿐이었다.

   

   던전의 보스인 폐인과 만난 루시는 낙하의 속도를 줄이지 않은 채 그대로 바닥에 착지했다.

   

   어지간한 사람은 엄두도 내지 못할 기행이었지만 정작 당사자인 루시는 별 것 아니라는 듯 교복에 묻은 먼지를 털어내며 태연히 목소리를 냈다.

   

   ‘자!♡ 아카데미의 허접들!♡ 주목하도록 해!♡ 지금부터 너희가 얼마나 멍청한 지에 대해 조목조목 알려줄 테니까!♡’

   

   루시는 그리 이야기를 하면서 지하로 내려가는 문이 아니라 저택 쪽으로 발을 움직였다.

   

   ‘유령도 기겁을 하면서 도망칠 만큼 낡아빠진 이 저택을 봐봐♡ 바보에 멍청이에 허접허접이라도 눈이 있으니 보이는 게 있을 거 아냐♡’

   

   툭 건드리면 부러질 것처럼 보이는 그녀의 손가락이 창문을 가리킨다.

   

   바깥의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는 창문을.

   

   그 다음에는 천장을 가리킨다.

   

   방금 전 무너져 내렸다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멀쩡한 천장을.

   

   그 후에도 루시의 손가락은 멈출 줄을 몰랐다.

   

   침이 고장 나 같은 시간만을 가리키는 시계.

   

   얼굴 쪽이 흐릿해진 낡은 초상화.

   

   그 아래에 적혀 있는 괴상한 년도.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도 열 수 없는 문.

   

   누구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고,

   

   또 누구는 대충 만든 부분이라 생각하고 넘겨버렸고,

   

   또 다른 누군가는 알아차렸으면서도 유의미한 해답에 도달하지 못한 여러 요소들을 하나하나 지적한 끝에.

   

   루시는 다시금 0층이라는 숫자가 적힌 수정구 앞에 도착했다.

   

   ‘마지막!♡ 제일 중요한 힌트!♡ 이 수정구는 왜 갑자기 등장한 걸까?♡ 응?♡ 이쯤 되면 아무리 둔감해도 뭔가 이상하다는 게 느껴지지 않아?♡’

   

   …이렇게 단서가 많았단 말인가.

   

   루시가 만들어낸 던전의 해답에 도달한 토비였지만 그 또한 저택에 남겨진 모든 단서들을 모두 알아차린 것은 아니었다.

   

   정답에 도달하는 데에는 저 중 몇 가지 단서면 충분했으니까.

   

   정말 친절했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아직도 감을 못 잡은 바~보들을 위해 한 가지 단서를 더 줄게♡ 이 수정구의 기능엔 뭐가 있을까?♡ 하나는 위치를 저장하는 거고 다른 하나는?♡’

   

   “…이미 공략한 층계를 마음대로 이동하는 것.”

   

   멀지 않은 곳에서 들려온 어느 남자의 혼잣말에 토비가 고개를 돌렸다.

   

   그 곳에는 표정 관리를 할 여유조차 없는 듯 황망한 표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3왕자가 서 있었다.

   

   왜 저런 표정을 지으시지? 저 분은 이미 모든 기믹을 파악하고서 던전을 공략하시지 않았던가?

   

   당연히 저런 요소들에 대해서 알고 계실 텐데 도대체 왜.

   

   토비가 아서의 표정을 보고 고개를 갸웃거리던 그 때 화면 속에서 루시가 푸푸~하고 소리를 낸다.

   

   ‘시간 초과~♡ 여태까지 정답을 못 알아낸 멍청이들은 그냥 얌전히 내 귀여운 목소리를 듣고 내가 이렇게 멍청했다면서 한탄하도록 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루시 알른이 수정구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영상 속의 풍경이 뒤바뀐다.

   

   최초의 복도.

   

   기말시험의 던전에 도전한 이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 쯤 마주했을 장소의 끝.

   

   본래라면 벽으로 막혀 있어야 할 그 곳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만들어져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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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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