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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323 – 생명의 저울2>

     

    오크노디에게 선악에 대한 구분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이 아이도 무엇이 악한 행동인지 나름의 기준선은 존재한다.

    인육을 먹거나 인간의 영혼을 먹는 행위.

    인간임을 저버린 ‘마인’들이나 할법한 행위.

    이것은 분명하게 드러난 오크노디의 지켜야 할 최소한의 선이다.

    그러나 동기를 위해 다른 동기의 고향을 파괴하는 행위는 범해서는 안 될 금기에 들어가지 않는다.

    이득이 되니까.

    합리적이니까.

    어차피 일어날 일이니까.

    카탈로그로 제시한 시점에서 재단이 전쟁을 일으킬 예정이라는 사실은 이미 확정되었다.

     

    “…잠깐만. 이사장의 카탈로그는 도이치 왕국의 군단을 죽이라고 했는데, 너는 그 반대로 수인들을 죽이겠다고?”

     

    주장의 섬뜩함에 이목이 끌려 눈치 채는 것이 늦었지만 오크노디의 결정은 더욱 위험했다.

     

    “넹!”

    “그건… 이사장의 제안과 정 반대의 행동을 하는 것임을 알고는 있냐?”

     

    칭호작 <천인베기>, <악연의시작>, 수집품 <천룡등갑>, <묘지기의 램프> 등을 얻기 위해 이사장이 설계한 일련의 계획.

    그 시작점에서부터 오크노디는 정반대의 행동을 하겠다고 결론을 내렸다.

     

    “네 친구들 중에는 제냐가 아니라도 수인인 녀석이 있을 텐데?”

     

    손오천.

    그 녀석과의 유대는 아무것도 아니란 말인가?

    오크노디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게 무슨 상관이에요?”

    “!!”

    “딱히 아무 상관없지 않나?”

     

     

    * *

     

     

    아카데미로 돌아가는 길.

    크루즈선에서 남은 포인트를 알뜰살뜰하게 쓰며 본전을 뽑는 학생들 사이로 지젤과 손오천, 이사벨 세 사람이 훈련시설을 걸어 나왔다.

     

    “후우. 거 더럽게 찝찝하네. 오크노디의 집을 생각해서 난이도를 올렸더니 어째 성에 차질 않아.”

    “확실히 환각마법에 의한 가상훈련은 실제 훈련에 비하면 훈련정도가 덜한 구석이 있군요.”

    “유니크요리… 아직도 감을 못 잡겠어. 아무리 애써도 희귀 근처도 가질 못하고 있어.”

     

    약 한 사람 훈련방향이 완전히 다른 사람도 있었지만 누구도 그녀를 비웃지 않았다.

    훈련에 임하는 마음가짐만큼은 진심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긴 항해를 마치고 배에서 내리는 날.

    지젤은 포인트가 제법 남은 것을 발견했다.

    모두가 경매도 끝나고 포인트의 큰 사용처는 이걸로 끝이라고 여겼지만 지젤은 달랐다.

    그는 남은 포인트를 이용해서 승무원들에게 다양한 정보를 구매했다.

     

    “이사벨. 새로운 요리레시피입니다. 받아두십시오.”

    “이건 주방장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건데!?”

    “…고마워. 이 빚은 나중에 이자까지 쳐서 갚을게.”

     

    이사벨에게 요리레시피를 넘겨준 것은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사정을 모르는 이들은 그렇게 여길 수 있다.

    그녀와 한 학기를 아카데미에서 함께 보낸 지젤의 생각은 달랐다.

    지금 이사벨은 심적으로 상당히 위축되어 있다.

    오크노디에게 은혜를 갚을 가장 확실한 방법.

    요리.

    그 무기를 재단에게 빼앗겼기 때문이다.

    오크노디는 새로운 레시피를 쫓아다닌다.

    그녀가 좋아하는 <수집>에 도움이 되기 때문에.

    새로운 레시피가 없다면 오크노디를 묶어둘 수 없다.

    그런데 재단에는 그런 레시피를 지닌 요리사들이 떼거지로 널려있다.

    이사벨이 오크노디의 곁에 머무를 수 있는 시간에 한계선이 생긴 것이다.

     

    ‘필요가 없다면 그 아이는 언젠가 우리를 떠나겠지. 마음의 거리가 아무리 가깝더라도.’

     

    오크노디의 주변인들이 대부분 실력자라는 사실도 이 가설에 힘을 더한다.

    지금도 도로시와 록펠은 오크노디와 만나는 경우가 거의 없고 헤스티아와 한때 척을 졌던 제국 격투가 귀족영애 롯토는 얼굴조차 보기 힘들다.

     

    ‘그나마 접점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오크노디와 같은 강의를 듣는 것. 하지만 언제까지 그 아이와 같은 강의를 들을 수 있을까?’

     

    오크노디의 성장속도는 같은 1학년 사이에서도 눈에 띄게 빠르다.

    2학기가 끝나고 2학년이 되면 지금과는 상상도 못할 정도의 성장속도로 자신들과의 차이는 더욱 벌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점점 같이 듣는 강의숫자가 줄어든다면.

    필요가 사라지고 접점마저 가늘어지는 끝에 완전히 단절된다면.

    오크노디와의 인연은 끊어지게 될 것이다.

     

    ‘설령 오크노디 본인이 원하더라도 그녀의 주변에 남게 될 이들이 한 눈 팔기를 허락하지 않겠지.’

     

    더욱 거물이 되어야만 했다.

    새로운 필요를 입증해야 했다.

    뒤처지지 않으려면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

    그는 암흑상회로 돌파구를 찾았다.

    이사벨의 돌파구는 새로운 레시피에 있었다.

    하지만 손오천의 돌파구는 무엇일까.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쥐방울 녀석이 강해지면 좋을 일이지 나쁠 일은 아니지 않냐.”

    “어른이시군요.”

    “섭섭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애들은 원래 쑥쑥 크기 마련이니까. 나중에는 오크노디가 230cm가 되어서 날 내려다보는 날이 올지 어떻게 알겠냐?”

    “…그런 꼬마숙녀는 보고 싶지 않군요. 230cm를 두고 꼬마라고 부를 수는 없으니까요.”

    “으하핫! 확실히 230cm는 곤란하지.”

     

    하지만 손오천에게도 정보는 필요했다.

    아니, 이 배의 누구보다도 지금 지젤이 얻은 정보는 그에게 가장 필요했다.

     

    “손오천 씨. 오크노디에게는 당신이 필요하지 않아질지 모르더라도 제게는 당신의 무력이 여전히 필요합니다. 세상에 강자는 많더라도 당신 정도의 실력자는 흔치 않습니다. 앞으로의 성장가능성을 포함한다면 더더욱.”

    “오우. 샌님 녀석, 낯간지럽게 뭐하자는 거지?”

    “곧 수인들의 대수림에서 전쟁이 일어납니다.”

    “!”

    “재단이 이미 엘프들의 세계수를 쳤습니다. 숲의 정세가 혼란스러운 틈을 노리고 도이치 왕국의 군단이 인류경계선으로 진격하고 있습니다.”

     

    손오천의 얼굴이 묘해졌다.

     

    “그래서 인간과 수인 사이에 전쟁이 재개된다는 건가? 뭐 들려줘서 고맙기는 하네.”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에 도리어 지젤이 놀랐다.

     

    “동족들이 죽을 겁니다. 신경 쓰이는 정보가 아니었습니까?”

    “동족은 무슨. 너는 저기 북부의 마기나 주워먹고 다니는 마인새끼들이나 남부도시국가연맹에서 잡신들 섬기는 종교쟁이들도 같은 사람 취급하냐?”

    “앗, 그건 좀.”

    “수인도 마찬가지다. 애초에 난 바위산 출신이라고. 대수림이 망하건 말건 알게 뭐야? 그래도 뭐 철이나 식량, 원자재 값은 오르고 주식은 재미 좀 보겠네. 근데 바나나는 원자재에 들어가냐, 사치품으로 들어가냐?”

    “제국에서는 사치품으로 분류됩니다만…”

    “그럼 안 되겠네. 싹 다 익절 해야 되겠어. 안데르센 패거리들이 하던 얘기를 주워들은 적이 있는데 전쟁이 나면 사치품 공장은 가동이 끊겨서 쫄딱 망할 수도 있다더라.”

     

    원숭이수인이 주식을…?

    바나나생산주를 익절해…?

    혼란에 빠진 지젤에게 손오천이 쿨하게 말했다.

     

    “폭락하고 돈 좀 지켰다 싶으면 나중에 한턱 쏘마. 아카데미 안에서는 무리고 밖에서.”

    “투자는 얼마나 하신 겁니까?”

    “많이는 아니고 한 금화 200개?”

    “그 많은 돈 놔두고 왜 평소에는 궁상 맞게 지낸 겁니까?”

    “오를 때까진 내 돈이 아니잖아. 게다가 요즘 시대에 금화 200개로 뭐해먹고 사냐? 산에 리조트도 세우고 케이블카도 설치하고 시설운용하면서 평생 날로 먹고 살려면 금화 1000개는 모아야지.”

    “…”

     

    환장하겠네.

    제국의 핍박 속에 변변찮은 일자리도 찾지 못해서 경호원 노릇이나 하던 불쌍한 사회적약자가 실은 주식에 재산 다 박고 궁상맞게 살던 주식충이었다니.

    동정심이 싹 가셔버린 지젤이 실눈 아래로도 다 감출 수 없는 떨떠름한 기색을 드러내고 말았다.

     

     

    * *

     

     

    오크노디의 인간성이 너무 걱정된다.

    손오천은 수인.

    대수림은 모든 수인들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 고향이 불타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손오천의 동족들이 잔뜩 죽어나갈지도 모른다.

    오크노디는 그것을 전혀 개의치 않았다.

     

    “조나. 당신의 도움이 필요하다.”

    “제 도움이라.”

     

    그나마 재단에서는 정상인으로 보이는 인물.

    한 차례 오크노디를 지켜주려는 행동을 직접 취하기도 했었던 자.

    집사 조나를 찾아간 싱은 생각보다 시원찮은 반응에서 무언가를 느꼈다.

     

    “당신도 오크노디를 막지 않을 작정인가?”

    “이것은 시험입니다.”

    “시험?”

    “이사장님이 손속에 자비가 없고 잔인한 구석이 있기는 해도 무턱대고 전쟁을 일으키실 분은 아닙니다. 하려면 할 수는 있지만 그분에게는 채산성이 맞지 않죠. 아가씨가 강하게 원하지 않는다면 굳이 피를 보려고 드실 분은 아닙니다.”

    “그럼 더욱 오크노디를 말려야 하는 거 아닌가? 그 아이가 마음먹기에 따라서 불필요한 피를 보게 된다는 말이 아닌가.”

     

    싱의 논리적인 지적에도 마나보드를 조작하며 업무를 보는 조나의 손은 멈추지 않았다.

     

    “저는 당신보다 먼저 아가씨를 알고 지냈습니다. 당신이 아카데미에서 보낸 아가씨와의 시간을 기억하고 그리 말하더라도 저는 아카데미 입학 전의 아가씨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는 확신하고 있다.

     

    “아가씨가 ‘이벤트’를 입에 담는 순간, 손해보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가씨는 <50층 정복 이벤트>를 입에 담으셨죠.”

     

    그로부터 수 시간 뒤.

    싱은 조나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알 수 있었다.

     

    “준비는 다 되셨습니까? 그럼 결론을 내려주시죠. 리스트에서 무엇을 고르시겠습니까?”

    “아무것도!”

     

    이사장의 얼굴에 놀라움이 스쳤다.

     

    “하나라도 당장 수행하러 나갔다간 탑을 떠나게 되잖아요. 그건 50층을 정복하기까지 탑을 떠나지 않겠다던 약속을 어기는 행위예요!”

    “호오.”

    “그러니 파파가 저희를 50층을 정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려면 탑을 벗어나지 않는 방법으로 도와줘야 해요. 안 그러면 파파가 거짓말을 한 게 되니까요. 제 말이 맞죠?”

     

    커다란 이익.

    거대한 사건.

    재단의 성향.

    동기의 위기.

    친구의 고향.

    수많은 요소에 현혹되어 눈이 흐려졌던 싱과 달리, 오크노디는 내기의 본질을 잊지 않고 있었다.

     

    ‘당했군.’

     

    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것조차도 시험이었다니.

    정말 질 나쁜 파파와 똑똑한 딸이다.

     

    ‘전부 알고 있었다면… 손오천의 고향과 동족을 치겠다던 이야기도 탑을 나가야 성립되는 사건. 그 또한 농담에 불과했던 거겠지.’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의 직감은 아직 긴장의 끈을 놓치지 말라며 연신 경종을 울렸다.

    어차피 나갈 생각이 없었다면 굳이 그런 애기를 할 필요가 있었을까.

    애초에 오크노디가 그런 부류의 농담을 하는 편이었던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돌아온 주변인만 피폐한 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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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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