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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3

       파스모의 종족은 드워프였다.

       

       드워프는 엘프와 친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두 종족은 여론조차 비슷했다. 드워프도 금안을 매우 증오하고 싫어했다.

       

       드워프의 품에서 태어난 파스모였지만 눈이 노랗다는 이유만으로 저주받은 아이 취급을 받아 길라흐처럼 버려졌다.

       

       그래서 길라흐가 하이엘프니 뭐니 하며 지랄하기 전까지만 해도 나름 동병상련의 감정을 느끼기도 했었다.

       

       그러나.

       

       ‘뭔가 잘못됐다.’

       

       마왕군에 들어오고 몇 달 지나지 않아 생각이 바뀌었다.

       

       여긴 있을 곳이 못 됐다.

       

       ‘제아무리 주군이라도 여신을 상대로 이길 수는 없다.’

       

       파스모는 마왕의 계획을 듣자마자 직감했다. 그의 큰그림이 최종적으로는 모두 허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불멸자인 여신을 어떻게 쓰러뜨린단 말인가? 제아무리 다른 종족이 미워도 그렇지, 창조주에겐 대들 수 없는 것이 섭리이다.

       

       여기서 마왕의 뜻에 찬동했다간 죽기 딱 좋았다.

       

       그래서 이런 생각을 품게 되었다.

       

       적당한 때를 봐서 마왕을 배신하면, 자신에게 극대 이익이 돌아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실제로 천 년이 지나자 금안족의 인식은 변했다. 마법을 못 쓰는 게 무슨 장애냐며 권리 운동을 벌이는 자들이 생긴 것이다.

       

       이런 세상에서 마왕의 패도는 필요 없었다.

       

       그런데 그 누가 알았겠는가?

       

       천 년 넘게 감춰 온 자신의 이런 꿍꿍이가, 한낱 엘프 애송이에게 탄로 날 줄은.

       

       “……창천.”

       

       인형뽑기 팔에 잡힌 것처럼 몸이 붕 떴다.

       

       거대한 촉수에 붙잡힌 파스모는 한낱 벌레에 지나지 않았다. 벌레잡이풀에 사로잡힌 작은 풀벌레 말이다.

       

       “짐이 그대에게 무얼 시켰는지 잊어버린 것인가?”

       

       묵직하고, 근엄하며, 공포를 일으키는 목소리.

       

       파스모는 떨어지지 않는 입술을 겨우 움직였다.

       

       “주, 주군.”

       

       파스모가 주군이라고 부르는 유일한 남자.

       

       마왕(魔王) 파르켈수스.

       

       금안족의 화신이라고 부를 수 있는 괴물이, 지금 자신을 향해 아가리를 떡 벌리고 있다. 

       

       흡사 먹잇감을 입 안에 넣으려는 자세였다.

       

       “대답하라. 짐이 그대에게 무얼 하라고 다그쳤는가?”

       

       마왕이 재차 물었다.

       

       파스모는 누런 이빨을 딱딱 부딪히며 겨우 대답했다.

       

       “세, 세계수를 불태우라고 하셨습니다.”

       “그 다음엔?”

       “그 다음엔 정령계 침공의 선봉에 서라고 하셨습니다.”

       “그렇지.”

       

       마왕이 고개를 끄덕인다.

       

       “짐의 말은 어명이다. 맞나?”

       “맞습니다.”

       “어명은 명령이고, 명령은 군령이다. 그렇지 않나?”

       “그렇습니다.”

       

       마왕의 고개가 슬쩍 돌아간다.

       

       파스모의 등 뒤로는 활활 불타는 세계수가 있었다. 파스모가 이끄는 군대가 한 짓이었다.

       

       세계수는 사실상 전소였다. 흔적만 남기고 대부분이 말끔히 타버렸다. 남은 건 정령계로 향하는 포탈뿐이었다. 

       

       “창천.”

       “예, 주군.”

       “짐의 명령을 딱 절반만 이행하였구나.”

       

       파스모는 입을 다물었다.

       

       “왜 절반만 하고 나머지를 마저 하지 않았는지 말하라.”

       “저기, 저들이 정령계로 향하는 입구를…….”

       “정령계로 향하는 입구를 막고 있어서 진입하지 못했다고?”

       “그렇습니다!”

       “그래서. 도망치려던 참이었나?”

       

       잠깐만.

       

       도망?

       

       도망이라니?

       

       화들짝 놀란 파스모가 부리나케 고개를 내저었다.

       

       “아, 아닙니다. 도망이라뇨?”

       “그래, 도망이야 칠 수 있지. 군령을 어기고 말일세.”

       

       뭔가 이상하다.

       

       대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아닙니다 주군!”

       “어디 상관의 말을 안 듣는 아랫것이 한둘이던가? 이해는 하네. 이해는 해. 이런 경우야 굉장히 많이 봤지.” 

       

       억지도 이런 억지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촉수 끝에 달린 농포들이 빛을 발하고 있었다.

       

       마치 먹잇감을 노리는 맹수의 눈처럼 사나운 색감이다.

       

       “아니면 저들과 결탁했을 수도 있겠지. 저기 치녀 한 마리를 끼고 있는 엘프 애송이의 말대로 말이다.”

       “모함입니다, 주군!”

       “아, 그래?”

       “그렇습니다! 설마 저런 애송이의 말을 믿으시는 건….”

       “그래서, 도망도 아니고 배신도 아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짐 앞에서 명을 어기고 등을 돌린 이유가 무어란 말인가?”

       

       턱, 하고 말문이 막혔다.

       

       전투에서 도망이나 후퇴는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그러나 마왕은 지금 도망을 배신과 같은 선상에 놓았다.

       

       엄밀히 말하자면 논리적인 비약이지만, 이성보다는 감성과 선동으로 돌아가는 정치판에선 무의미한 놀음.

       

       이젠 자신이 어떤 변명을 해도 소용없었다.

       

       뚝, 뚝.

       

       녹진녹진한 붕대 위로 조금씩 기름방울이 맺힌다.

       

       마수의 땀이었다. 지금 파스모는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할 말을 신중하게 골라야 했다. 파스모는 우선 침묵을 선택했다.

       

       “변명할 기회를 주겠노라.”

       

       그러나 그가 묵비권을 행사하도록 가만히 둘 마왕이 아니었다.

       

       “상대방의 전력이 예상 밖이라 전략적 후퇴를 고려했다고 말하지는 않겠지? 아무렴, 사천 중 가장 뛰어난 게 자네이지 않나?”

       

       꽈아악.

       

       머리를 잡은 마왕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권모와 술수로는 자네를 따라잡을 자가 없지. 전략도 마찬가지고 말이야. 제아무리 적이 대정령 둘을 끼고 있다고는 하나, 10분도 채 버티지 못하는 건 말이 안 돼. 암, 그렇지. 그러면 사천 실격이지.”

       

       스스로 문답하던 마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해서, 그런 놈들은 참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데.”

       

       아.

       

       그제야 깨달았다.

       

       처음부터 자신은, 숙청 대상이었다.

       

       다음 순간, 파스모의 머리가 터졌다.

       

       

       **

       

       

       열매에서 과육을 짜내는 것처럼 진득한 소리였다. 마왕은 대가리가 사라진 창천의 몸통을 땅바닥에 내던졌다.

       

       철푸덕!

       

       싸늘하게 변한 깡통이 모래 위를 구르다가 멈췄다. 

       

       나와 버멜은 축 늘어진 시체를 보며 입을 다물질 못했다.

       

       “미친.”

       “…제 동료를 죽이다니.”

       

       나도, 버멜도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마왕이었더라면 파스모가 배신한 것을 알아냈더라도 우선 눈앞의 적부터 쓰러뜨리라고 압박했을 터였다.

       

       그런데 마왕은 죽였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창천을 골로 보내버렸다.

       

       우리 반응을 확인한 마왕이 신음하듯 웃었다.

       

       “이게 누구인가. 상천 아닌가?”

       

       신경 쓸 것 없다는 듯.

       

       마치 지금까지 너희들이 본 일은 별 거 아니라는 듯.

       

       태연자약한 태도를 유지하며 인사를 건네는 모습이 소름 끼친다.

       

       “이봐, 상천.”

       

       척, 척.

       

       내가 아무런 대답을 하지 않자 마왕이 가까이 다가왔다.

       

       “벌써 제 주군을 잊은 건가?”

       “누구세요?”

       “많이 섭섭하군.”

       

       마왕은 팔을 흐느적거리며 춤추듯이 걸었다.

       

       그리고 다음 순간.

       

       촤아악!

       

       허공 사이로 수십 개의 촉수가 짓쳐 들어왔다.

       

       “피해!”

       

       버멜의 신호를 듣기 전부터 몸을 움직였다.

       

       우리는 서로 반대 방향으로 굴렀다. 그 사이로 촉수들이 유려하게 들어왔다 빠져나갔다. 

       

       촉수가 지나간 땅은 움푹 파였다. 그것도 한 수십 미터 깊이로.

       

       “아, 이런…. 악수를 받아주지 않다니.”

       

       마왕은 혀를 쯧쯧 차며 촉수들을 회수했다. 그중 몇 개가 떨어진 파스모의 사체를 주워 돌아갔다.

       

       “상천. 자네 정말 많이 바뀌었군. 예전에는 대의를 위해서라면 작은 손실 정도는 감수할 줄 아는 아이였는데 말이야.”

       “제가 죽는 것이 작은 손실인가요?”

       “배신자의 죽음 정도야, 사실 손해도 아니지.”

       

       마왕이 기운을 끌어올린다.

       

       비호하는 정령이 없을 텐데도 마력의 흐름이 느껴진다. 분명 흡수한 전계정령왕의 권능을 사용하고 있는 것이리라.

       

       “저건….”

       

       [팔정도(八正道) 제3식(式)]

       

       [테슬라(Tesla)]

       

       파아악!

       

       뒤엎어진 땅에서 철가루가 솟아올랐다.

       

       사철이 자기장에 따라 모습을 바꾸었다. 어떤 것은 침(針)의 형상을, 또 어떤 것은 검(劍)의 형상을. 그래도 공통점은 있었다. 하나같이 날붙이라는 공통점 말이다.

       

       [팔정도(八正道) 제1식(式)]

       

       [쇼트(Short)]

       

       나는 사철이 쇄도하기 전에 마력을 차단했다. 그러나 그만큼 마왕이 마력을 퍼부었다. 

       

       “크윽!”

       

       끊어지는 양보다 입력되는 양이 훨씬 많았다.

       

       단순히 역량의 차이였다.

       

       나야 앨리스 한 명 분량의 마력밖에 다루지 못하는데, 마왕은 정령왕 두 체를 포함하여 수많은 정령을 먹어 치웠다. 간단히 계산해서 같은 기술로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도와줄게!”

       

       버멜이 바람 마법을 사용해서 보조했다.

       

       조금 전보다는 나아졌지만, 여전히 밀리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배신자에게 긴말은 필요 없다. 상천, 부끄러운 줄 안다면 짐의 손에서 얌전히 눈을 감거라.”

       

       여유로운 마왕의 모습을 보자니 욕이 나왔다.

       

       촉수와는 달리 사철은 피할 수 없다. 피하는 즉시 궤도를 틀어 살갗을 찢고 들어올 것이다. 그러니 막아야만 한다.

       

       그게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정말 좆같이 힘들다.

       

       입에서 울컥, 하고 핏물이 흘러나오려던 순간이었다.

       

       “마왕! 네 이노오오오옴─!!”

       

       약속했던 지원이 도착했다.

       

       이프리트는 죽고, 시큐엘은 은퇴. 거기에 에어리얼은 버멜과 계약을 맺은 이 상황에서, 자유롭게 움직이며 마왕을 상대할 수 있는 정령왕은 한 명뿐이었다.

       

       지군(地君) 노움.

       

       “기다려라, 꼬맹이들! 내가 왔다!!”

       

       노움은 옹성처럼 육중한 주먹을 휘둘렀다. 후우웅! 거센 바람이 뒤로 불어닥쳤다. 사철들이 바람을 타고 꽃가루처럼 흩어졌다.

       

       “아이고, 이게 누구신가.”

       

       마왕은 공격을 멈추고 노움과 대치했다.

       

       마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여신의 발닦개 아닌가?”

       “입 조심해라, 마왕! 여신님께 무례한 발언은 용서하지 않겠노라!”

       

       저벅.

       

       마왕이 앞으로 한 발자국 나섰다.

       

       저벅.

       

       노움도 물러나기는커녕 우리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가 네놈의 안식처가 될 것이다…. 마음의 준비를 해 두어라!”

       “안식처는 무슨.”

       

       마왕은 턱 부분의 촉수를 쓰다듬으며 나와 버멜, 노움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상천 하나에, 정령왕은 셋. 정령왕 둘까지라면 어떻게든 되겠지만, 상천에 지군까지 붙었으니 짐의 열세인가…….”

       

       큭큭.

       

       마왕이 웃기 시작한다.

       

       “…라고 너희는 계산했겠지.”

       “뭐라…?”

       “이 어리석은 것들아. 짐이 그런 것조차도 제대로 생각 못하고 무턱대고 나왔을 성싶으냐?”

       

       헛소리! 마왕이 그리 덧붙이며 촉수를 끌어모았다.

       

       “여긴 짐이 아니라 네놈들 무덤이다.”

       

       바닥을 나뒹굴던 파스모의 사체가 천천히 올라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글이 써지긴 써지는데, 계속 마음에 안 들어서 서너 번을 갈아 엎었습니다. 아무래도 완결이 다가오고 있다 보니 가능한 시간 내에서 제일 좋은 결과물을 보여드리고자 하는 마음이 커졌나 봅니다.

    덕분에 쓴 건 1만 2천 자 정도 되는데, 나온 건 한 편뿐이네요.. 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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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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