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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그리고 결론부터 말하자면, 루크는 줄을 섰지만 인형을 살 수 없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그토록 줄이 길었으니.

     

    그래서 루크는 하는 수 없이 전략을 바꾸었다.

    직접 인형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하나하나 물어보기로.

     

    “정말 죄송한데, 그 인형을 양보해 줄 수는 없나요? 꼭 이 인형을 갖고 싶어하는 아이가 있어요. 돈이라면 내 용돈까지 조금 더 얹어 줄 테니까, 제발요…….”

     

    돈으로 해결하려는 루크가 하는 말은 확실히 기분이 나쁠수도 있을 법 한 이야기이기는 하지만, 누구도 모진 시선을 보내오지는 않았다.

    루크의 현재 모습은 영락없이 장난감을 못 사는 것에 충격을 받은 어린아이의 모습이었으니까.

    오히려 몇몇은 약간 불쌍하다는 듯 동정하는 모습까지 보인다.

     

    하지만 루크가 꼬깃꼬깃 제안한 금액은 수집가들의 마음을 돌리기엔 역시 턱없이 모자랐다.

    그냥 두어도 가격이 두배, 세배로 뛰어버리는 것이 한정판의 세계인데다, 애초에 수집가들에게는 그런 돈이 별로 중요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얘야. 이거 사려고 나도 어제부터 기다렸거든.”

    “맞아. 사자마자 남에게 돈을 주고 팔 거라면 그렇게 기다리지도 않았겠지.”

    “말도 안돼…….”

     

    루크는 망연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루크는 최대한 예의바르고 정중하게, 때로는 심지어 귀여운 척 아양을 떨어보기까지 했으나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무리 루크가 귀엽다고 해도, 애초에 200명에 들어가서 그 한정판을 구매한 사람들에게, 루크의 미인계(?)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이야기다.

    오히려 명절에 동생들의 고집에 의해서 자신의 수집품이 고장나거나 싼 값에 팔려나가는 경험을 해 본 사람들에게 루크의 그러한 접근방식은 오히려 역효과였다.

    물론 루크는 자신들에게 그런 슬픈 경험을 겪게 만든 동생들보다는 훨씬 귀엽고 예의가 바른 모습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 때, 그런 루크에게 구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크, 네 동생한테 꼭 선물하고 싶은 거라면 한가지 방법이 있긴 해.”

    “방법? 그게 뭔가?”

     

    말을 걸어온 것은 루크의 앞에서 같이 기다렸지만, 결국 순번이 밀려 구매하지 못한 청년이었다.

    그 둘은 이미 함께 줄을 기다리면서 꽤 많은 대화를 나누었기에 나름대로 유대감이라는 것이 형성된 상태였다.

    그래서, 청년은 루크에게 조언을 아끼고 싶지는 않았다.

     

    “아직 포기하긴 일러, 그 인형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여기만 있는 것도 아니니까.”

    “뭐? 그게 무슨 말이지?”

     

    흥미로운 이야기에 귀를 자신의 방향으로 쫑긋거리며 말 그대로 ‘귀를 기울이는’ 루크의 모습에 청년은 실소하며 말을 이었다.

     

    “200개 한정이라고는 하지만, 모든 물량이 이 가게에만 들어온 건 아니라는 얘기지. 아직 문을 열지 않은 작은 가게를 돌아다니다 보면, 하나쯤 구할 수 있을 지도 몰라. 아니라고해도 혹시 모르지, 적어도 비슷하게 생긴 짝퉁이라도 구할 수 있을지 말이야.”

    “과연, 그렇군!”

     

    루크는 청년의 말에 깨달음을 얻은 듯 했다.

    하긴, 과거와는 달리 현대는 대량생산의 시대.

    한정판이라고 해서 모든 물량이 전부 한 장소에만 유통되는 것은 현대 유통법칙에 어울리지 않는 비효율적인 방식이었다.

     

    “조언 정말로 고맙네!”

     

    루크는 청년의 아낌없는 조언에 고개를 깊게 숙이며 감사를 표했다.

    그 모습을 보면 ‘루크의 동생은 참 착한 언니를 뒀구나’ 하고 부러운 느낌마저 들었다.

     

    루크는 내려온 희망을 향해 두 눈을 반짝이며 두 손을 모으고 청년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그럼 그대도 이제부터 가게를 찾을 생각이겠군? 그럼 있을 만한 가게도 알고 있는 거겠지? 그럼 그 정보를 내게도 알려줄 수 없나?”

    “아니. 못 알려주겠는데.”

     

    루크는 청년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대답에 살짝 벙찐 표정을 지었다.

    마치 내려온 희망이 그대로 다시 거둬진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자신의 ‘두 손 모으고 올려다보며 부탁하기’가 전혀 쓸모가 없다니?

    심지어 그것은 비단 이 청년 뿐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소용이 없었다.

    그동안 만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지금 상황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는 것이, 루크에게는 더더욱 색다른 충격이었다.

    그래서 루크는 이제는 마법사답지 않게 무려 인정에 호소하며 외치기에 이르렀다.

    “뭐? 그게 무슨 말인가? 그대는 나와 같이 줄을 기다리기도 했으면서!”

     

    루크가 지나치게 충격받은 표정을 짓자, 청년은 그제서야 자신이 한 말이 어떻게 받아들여질 수 있는지 깨닫고는 식은땀을 흘리며 말을 정정했다.

     

    “아니, 사실은 그냥 나도 잘 몰라서 그래.”

    “모른다니? 그대가 말을 꺼내지 않았나? 나는 당연히 있을만한 곳도 그만큼 잘 아는 줄 알았는데.”

    “아, 사실은 그게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냐.”

     

    청년은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네가 찾는 인형을 발견한다고해서 그게 끝이 아니거든.”

    “끝이 아니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지?”

    루크가 의문스런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자, 청년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그 상품을 과연 구매할 수 있느냐하는 건 또 다른 문제야.”

    “상품이 있어도 구매할 수가 없다고?”

    그게 대체 무슨 말인가? 가게에 진열된 상품이고 엄연히 가격이 책정되어있는 것인데 구매를 할 수가 없다니?

    더더욱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에 루크가 인상을 찌푸리기 시작하자, 청년은 그 내막을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사기꾼들이 아주 많다는 이야기야. 이 장난감 가게는 커서 괜찮은 편이지만.”

    “사기꾼?”

    “그래, 사기꾼.”

    악질인 곳은 짝퉁을 진품인 것 처럼 속여서 정가에 팔기도 하고, 한정판이라면 가격을 정가의 몇배로 받기도 한다.

    한 두번 당해본 게 아니라서 더욱 그렇다.

    옛날에는 어쩔 수 없이 구매하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후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다보니 이제는 솔직히 이 가게 말고 다른 가게는 믿음이 안 간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이 가게가 많은 사람들이 줄을 잔뜩 설 만큼 인기가 있는 이유이기도하다.

    이 가게는 이 장난감상가에서 규모가 가장 커다란 만큼, 항상 정직하게 정품을 정가에 판매하니까.

     

    “그래서 난 피해야 할 곳은 말해줄 수 있지만, 어디가 괜찮은 곳인지는 말해주기가 힘드네. 이곳이 생기기 전까지는 나도 항상 피해만 봤거든. 게다가, 이런 한정판 상품을 구할 때는 특히나 더 조심해야 해.”

    “……그렇군. 기회는 있지만 ‘위험’하다는 건가.”

     

    그런 청년의 사연을 들은 루크는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까지 말하면 정말로 모른다는 이야기이리라.

     

    “그럼 적어도 내가 피해야 할 곳은 알려주겠나.”

    “그래, 혹시 메모할 거 있니?”

     

    청년이 손을 들어 무언가를 쓰는 시늉을 하며 묻자, 루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냥 불러주게. 기억할테니.”

    “으음…. 그냥 들으면 잊어버리지 않을까?”

    그런 청년의 말에 루크는 걱정하지 말라는 듯 가슴께를 두드리며 자랑스럽게 이야기했다.

    “그건 걱정할 거 없다. 난 외우는 건 잘 하니.”

    “그래? 그럼 뭐…….”

     

    루크가 자신의 기억력을 뽐내는 티없이 당당한 표정을 본 그는 뭐, 그럼 그러라는 듯이 이야기를 시작했다.

     

    “일단 가장 악질인 곳은 여기서 두 블록 직진하면 나오는 사거리 코너에 있는 루퍼트 인형점이야. 거긴 항상 한정판이라고 하면 2배를 부르지. 다른 인형들도 대부분 짝퉁이고 말야. 옛날엔 모르고 여러 번 당했어.”

    “그런가?”

    “그치? 안 산다고 하면 손님, 맞을래요?하고 위협까지 한다니까. 진짜 뒷골목 깡패인 줄 알았어. 그런 곳을 너 같은 여자애가 혼자 가면 아마 더 그럴거야.”

    “허, 정말로 손님에게 그런다고? 그거 정말 상상 이상이로군.”

     

    그렇게 루크는 ‘피해야 할 장난감 상점 목록’을 이야기하는 청년의 이야기를 맞장구치며 경청했다.

    재미있는 사실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 비슷한 피해를 겪은 다른 사람들도 루크에게 이야기를 해 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어느 상점은 서비스가 좋지 않다느니, 어느 상점은 애가 혼자서 가기에는 위험한 골목에 있다느니, 하는 이야기들을.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해준 덕분에 어느 상점은 괜찮다는 아주 유익한 정보들도 곁가지로 얻을 수 있었다.

     

    그렇게 주변 인형점에 대해 많은 정보를 얻은 루크는 활짝 웃으며 모두에게 감사를 표했다.

     

    “다들 정말 고맙네! 이 정도만 되어도 막막했던 탐문에 큰 도움이 되겠어!”

    “그래, 네가 원하는 인형을 꼭 찾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나도 응원할게. 아 참, 그리고 흥정은 반드시 해야한다.”

     

    심지어는 몇몇이 직접 안내까지 해 주겠다고 했지만, 그러기엔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정중히 거절했다.

    평범한 그들이 자신의 ‘속도’에 맞출 수 있을 리가 만무하니.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도움이 되리라.

     

    “그런데 정말 신기하기는 하군. 정말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이 그저 어린 여자아이가 정령의 힘으로 변신하여, 그 기원도, 목적도 불분명한 괴물들을 물리치는 유치한 이야기에 이토록 열광할 수가 있다는 게.”

     

    처음 루크가 자신들을 ‘결혼도 못한 사람들이면서 여자아이 장난감에 환장하는 이상한 사람들’취급을 할 때에는 다들 웃어넘겼다.

    말 하는 게 아무리 얄미워도, 차마 오늘 처음 본 아이의 딱밤을 때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자기가 하는 말이 뭔지 자기도 잘 모르는 것 같은 순수한 눈치였으니까.

     

    하지만 이 말은 선을 조금 넘었다.

    그들은 자신을 욕하는 건 참을 수 있었어도, 자신이 좋아하는 대상을 욕하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순애보였기 때문이다.

     

    -따악!

     

    “아얏!”

     

    결국 루크는 청년에게 딱밤을 맞고 말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근데 덕후들 사이에서 저러면 딱밤은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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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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