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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교통망의 발달에 따라 이동의 자유가 늘어나면서 많은 분야에서 혁신이 일어났다. 그러나 그것이 꼭 긍정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만은 아니었다.

         

       이동의 자유가 늘어났다는 것은 다시 말해 이동의 통제가 힘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했다. 수백 km 밖에 있던 군대가 하룻밤 새에 국경 근처에 나타날 수 있었고, 수배령이 내려지기도 전에 범죄자들은 외국으로 몸을 피할 수 있었으며, 사회에 곳곳에 퍼져 있는 불온 분자들이 필요한 순간에 한곳에 집결할 수 있었다.

         

       그래서 요인의 경호는 이제 단단한 보호보다 철저한 보안이 더 중요해졌다. 경호 대상의 이동 경로를 숨기고, 경호 대상이 머무르는 곳을 특정 지을 수 없게 하며, 경호 대상에 대한 사소한 정보도 나돌아다니지 못하게 막는 것이다.

         

       페렌츠는 황태자의 경호 책임자가 자신과 달리 시대에 뒤처지는 인물이 아님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 2주 동안 그는 목표에 대한 모의 암살을 몇 번이나 시도했지만, 변변찮은 계획조차 제대로 나온 적이 없었다.

         

       서커스 열차라는 눈에 띄기 짝이 없는 이동 수단에, 주변에는 조심성 없는 귀족 한량들이 가득했고, 그런 놈들을 이끌고 하는 짓이라고는 연회와 파티와 관광이 전부였다.

         

       내부에 정보원까지 심어둔 것을 고려하면, 이동 경로나 숙소는 둘째치고 간단한 습관에 대한 정보라도 알아냈었어야 했다. 하루에 화장실을 몇 번 간다든지, 손님 중 특별히 누구와 접촉이 잦다든지, 무슨 간식을 자주 찾는다든지.

         

       그러나 정보원은 그 약간의 정보도 알아내지 못했다. 황태자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듯하면서도 철저하게 자신을 숨겼다.

         

       흔적을 전혀 남기지 않는 사냥감. 페렌츠는 사냥꾼으로서 오싹함을 느끼는 동시에 손이 근질거렸다. 황태자 니콜라이. 과연 소문대로의 인물이었다.

         

       그가 속한 타이롭스 수렵회는 타이롭스 지방에 있는 부족들을 대표하는 사냥꾼들이 모여서 곰 사냥을 하던 전통을 이어가는 모임이었다. 과거 부족을 대표하는 사냥꾼들은 곧 전사 계급을 의미했고, 그들은 오늘날에 이르러 타이롭스 지방의 토착 귀족들로 성장했다.

         

       이 산업 시대에 수렵 사회 시절의 문화가 아직 남아 있는 것은 민속문화에 대한 주민들의 애착으로만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날의 대규모 수렵 활동은 지방 호족들이 정기적으로 교류를 갖고, 군사 훈련을 한다는 것을 의미했다.

         

       변혁의 시대에 재빠르게 변화의 물결에 올라탄 이들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것들을 산업 자본으로 전환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그보다 보수적이었던 이들은 서서히 시대에 도태되어 힘을 잃어갔다.

         

       타이롭스 지방의 전사들이 그랬다. 그들은 뛰어난 사냥꾼들이었지만, 그들이 무대로 삼던 숲은 삼림 개발 회사들이 장악했고, 그들이 지역에서 가지는 입지는 점점 좁아졌다.

         

       자본가들과 결탁한 영주들, 혹은 스스로 자본가가 된 영주들이 타이롭스 수렵회를 허용하는 것은 그런 불만을 가진 전사 계급을 한군데 모아서 관리하기 위함이었다. 무슨 행사가 있으면 참여해서 그들의 위신을 세워주고, 몇 가지 특권을 제공해서 그들의 소외감을 달래고, 마물이나 위험한 짐승을 잡으면 큰 포상금을 내려주는 것으로 그들을 길들였다.

         

       영주들은 그 대가로 토착민들과 갈등이 생겼을 때, 그들을 앞세워 진정시키거나, 중앙 정부와 갈등이 생겼을 때, 그들에게 책임의 소재를 떠넘기곤 했다.

         

       수렵회 안에는 그렇게 당장 주어지는 떡고물에 안주하는 이들이 있었고, 세태에 불만을 느끼고 칼을 가는 이들도 있었다. 페렌츠는 후자에 속했고, 그중에서도 가장 과격한 무리를 이끌고 있었다.

         

       그의 부족이 속한 지방을 통치하는 영주는 황태자 파벌의 열렬한 지지자였다. 절대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의뢰인 측은 황태자를 제거한다면, 페렌츠가 있는 지방의 영주가 쫓겨나고 그가 대신 영주로 추대될 것임을 약속했다. 암살 현장에서 붙잡히지만 않는다면 황태자 암살의 책임도 면해줄 수 있다고 의뢰인 측은 자신했다.

         

       페렌츠는 어렵지 않게 의뢰인이 누군지 추측할 수 있었다. 아마 얼마 전에 아기를 낳았다는 제3 황비 측일 것이다. 의뢰를 맡기러 온 대리인은 절대 그 이름을 입에 담지 않았지만, 그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실마리는 충분히 제공했다.

         

       정치적 혼란기는 전사들에게 있어서 출세의 장이었다. 페렌츠는 찾아온 기회를 잡을 생각이었다. 대리인은 일이 잘만 성사되면, 영주 자리보다 더한 것을 받을 수 있다는 암시도 주었다. 그렇게 페렌츠는 자신이 이끄는 무리를 데리고 사냥에 나섰다.

         

       암살 대상인 황태자의 코드명은 이요만테.

       그것은 곰 사냥꾼들이 어릴 때 치르는 의식에서 따온 것이었다. 사냥꾼들에게 있어서 곰은 포악한 맹수이자 숲의 신령이었다. 극복해야 할 숙적인 동시에 마구잡이로 잡아서는 안 되는 귀한 존재였다.

         

       이요만테의 과정은 이랬다. 일단 갓 태어난 아기곰을 마을로 데려와 사람 젖을 먹여 키우고 다음 세대의 사냥꾼들과 함께 자라게 한다. 그리고 곰과 아이들이 15살이 되면, 사람들은 곰을 마을 중앙에 묶어두고 함께 자란 아이들에게 그 ‘친구’를 사냥하라고 시켰다.

         

       평생 잊지 못할 눈물과 피가 흐르는 날. 친구의 죽음을 가슴에 새긴 아이들은 공포와 망설임을 극복하고 한 명의 어엿한 사냥꾼으로 다시 태어났다.

         

       이요만테라는 단어가 품고 있는 ‘15살짜리’, ‘곰’, ‘숲의 주인’이자 ‘사냥감’ 같은 내용들은 절묘하게 암살 대상을 연상케 했으며, 그와 동시에 이번 암살에 참여한 타이롭스 출신 전사들의 분위기를 다잡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내부 단속을 한다고 해도 계속해서 기회를 놓치게 되면, 조직의 분위기가 어수선해지고, 불안감이 전파되면서 이탈자가 나오기 마련이었다. 페렌츠는 그 한계를 이번 주까지로 봤다. 자칫 잘못하면 암살을 시도하기도 전에 역도로 고발되어 체포될 수 있었다.

         

       그래도 하늘이 그를 버리지는 않았는지, 오늘 그는 좋은 소식이 2가지나 생겼다.

         

       하나는 바로 황태자의 행적에 대한 정보가 손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동안 활약을 못 했던 첩자가 드디어 목표물에 대한 소식을 전해왔다. 황태자는 황실 휴양지에 머무르는 척하면서 한량들 10여 명과 최소한의 호위 병력만 데리고 유흥을 즐기기 위해 거리로 나왔다.

         

       두 번째로 좋은 소식은 암살에 쓸 만한 좋은 칼들을 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정보가 새는 것을 감수하고 어제오늘 근처 암흑가에 주먹들을 수배했는데, 무려 강력한 마도사를 몇 명이나 포섭하게 되었다.

         

       황태자의 방문에 납작 엎드리고 있는 다른 조직들과 달리 그들은 페렌츠가 무엇을 노리든 상관하지 않는다는 듯 그의 의뢰를 받아들였다.

         

       페레츠는 그들이 자신들의 목표를 알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아니, 분명 그럴 것이다. 저런 실력자들이 때맞춰 이런 지방 구석에 대기하고 있다는 것도 그랬고, 황태자의 군대가 근처에 있음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 또한 그랬다.

         

       ‘외국의 첩보원들? 아니면 황태자의 또 다른 정적? 됐어. 아무려면 어때.’

         

       그들의 전력은 페렌츠가 이끄는 암살단 전체에 견줘도 될 정도로 강력했다. 분명 유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강력한 마도의 힘이 발견된다면, 황태자 파벌들의 시선이 자신들에게 쏠리는 것을 분산시킬 수 있었다.

         

       마도사들 역시 페렌츠를 보고 같은 생각을 했다. 그들은 아나이스를 납치하기 위해 어제 막 이 도시에 도착한 참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원더스타인이 마침 이 도시에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함부로 행동에 나설 수 없었다. 아무리 그들이 부교주의 비호를 받고 있더라도 교주의 손에 직접 걸리는 순간 끝장이었다.

         

       그런데 마침 페렌츠가 이끄는 수렵회가 그들에게 접촉을 해왔다. 그들의 목표는 손쉽게 유추할 수 있었고, 그들은 황태자가 수십 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곧 황금정을 방문할 예정이라는 정보를 알려주었다.

         

       황태자 암살이 시도된 혼란스러운 현장에서 여종업원 한 명쯤은 사라져도 사람들은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모든 일은 황태자 암살이라는 이슈에 묻혀서 덮어질 것이다. 원더스타인의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페렌츠와 마도사들은 서로의 속내를 대충 짐작하면서도 묻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어 보이며 악수를 했다.

         

         

       ***

         

         

       니카가 이곳에서 단독 행동을 개시한 이유는 펠레빈이 예측한 대로 첩보부에서 보내온 소식 때문이었다. 첩보부원들이 감지한 몇 가지 움직임이 황태자의 감각에 걸린 것이다.

         

       아마도 대역으로 내세운 코카의 일행이 습격당할 확률이 70%, 황실 휴양지에서 자신이 습격당할 확률이 20%, 아무도 습격당하지 않을 확률이 10%.

         

       그렇게 판세를 읽은 니카는 급격하게 일정을 수정해 호위 두 사람만 데리고 무리를 이탈했다. 물론 그것만으로 결정한 것은 아니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더 있긴 했다. 거기에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 편하게 온천을 즐기고 싶다는 마음도 있다는 것을 그는 부정하지 않았다.

         

       “코카라는 귀빈이 천상 욕탕의 제일 좋은 자리를 전세 냈다고 하네요? 황태자가 아니냐며 사람들이 서로 수군대고 있어요.”

       “녀석이 이곳에 왔나.”

         

       대역의 일정은 전적으로 펠레빈이 관리하고 있었다. 니카는 그에게 자신이 황금정으로 간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가 이곳에 있는 줄 알았다면, 펠레빈은 대역을 다른 곳으로 보냈을 것이다.

         

       “괜찮을까요? 어제 황태자 일행이 시내의 숙소 마당에서 캠프파이어를 하다가 건물 절반을 실수로 태워 먹었다고 하더군요.”

       “훗, 첫날부터 사고를 쳐주는군. 걱정할 것 없어. 예상한 바잖아?”

       “하지만 굳이 이런 식으로 전하의 품격을 훼손할 필요가 있을까요? 혹시나 그가 더한 사고를 치면요?”

         

       니카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내가 녀석을 고른 이유는 단순히 나의 대외적인 이미지와 닮아서만 그런 게 아니야. 적당히 멍청하고 사람들 앞에서 큰 소리는 잘 내면서 크게 선을 넘을 배짱은 없는 녀석이라서 그래.”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나타샤를 돌아봤다.

         

       “거기다 녀석에게 딸려 보낸 근위대는 모두 드미트리 경이 몇 개월에 걸쳐서 골라낸 ‘불량품’들이야. 황실근위대 안에서도 실력도, 품행도 모두 형편없으면서 나와 반대 파벌에 조금씩 발을 걸치고 있는 녀석들. 내가 친 사고를 빌미로 황태자를 제대로 보좌 못 한 죄로 강등시키기도 좋지.”

         

       그의 답변에 나타샤는 만족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그렇고 나는 잠시 나갔다 와야겠군.”

       “그 내기 말인가요?”

         

       니카는 어제의 충격적인 패배를 떠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루가 지났는데도 그 굴욕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그는 패배의 대가로 앞으로 3일 동안 오후 시간대에 원더스타인과 함께 천하 주루에서 카드 게임을 해야 했다.

         

       “호위는 저 하나로 충분할까요?”

       “어쩔 수 없잖아. 드미트리 경은 내가 내린 임무를 해야 하니까.”

       “알겠습니다. 그러면 제가 전하의 옷을…….”

       “됐어. 설마 목욕 가운 혼자서 못 입을까?”

         

       황금정은 온천 호텔이라서 그런지 안에서 다들 목욕 가운을 입고 돌아다녔다. 이곳의 목욕 가운은 보르조미 지방 특유의 것으로 색과 무늬가 화려하고 허리띠의 폭이 넓은 것이 특징이었다.

         

       “10m 이상 거리를 두고 따라와.”

       “알겠습니다.”

         

       니카는 목욕 가운을 걸치고 객실을 나섰다. 최고급 호텔에서 제공하는 것답게 품질이 디자인도 확실히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많은 곳에 나오고 나서 자신이 실수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곳의 목욕 가운은 남자와 여자가 입는 법이 달랐다. 남자 쪽은 옷자락의 왼쪽이 앞에 가게 두었고, 여자는 옷자락의 오른쪽을 앞에 가게 두었다. 그리고 남자 쪽은 허리띠를 두 번 접었고, 여자 쪽은 허리띠를 한 번만 접어서, 허리띠의 폭이 여자 쪽이 2배는 넓었다. 거기다 허리띠를 묶은 매듭도 여자들은 보통 뒤로 하는 편이었고, 남자들은 앞으로 하는 편이었다.

         

       니카는 저 멀리 뒤에서 자신을 따라오는 나타샤를 노려봤다. 그녀는 그를 보며 장난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었다. 아까 그녀가 입은 것을 보고 따라 입을 때부터 그녀는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를 책망할 수는 없었다. 혼자서 할 수 있다고 나선 것은 자신이었으니까.

         

       암행을 나설 때, 여자로 오해받는 것에는 익숙했다. 이런 옷 따위 어떻게 입어도 상관없었다. 하지만 지금 만날 대상 앞에서 이런 옷을 입기 싫었다. 그럴 줄 알았다는 득의양양한 그의 얄미운 표정을 보기 싫었다.

         

       그는 숙소로 돌아가 다시 옷을 갈아입기 위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누군가의 목소리가 그를 붙잡았다.

         

       “니카 군?”

         

       니카는 이를 악물며 자신의 이름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긴 금발의 20대 남자가 그를 보며 생글생글 웃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일이 있었습니다. 다음주는 최소 5편은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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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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