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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전쟁에서 승리를 거둔 날로부터 닷새가 흘렀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하늘을 찌를 듯했던 생도들의 기세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아니, 차라리 그 정도라면 다행일지도 모른다.

         

       “우린 결국 다 죽을 운명인 거야….”

       “차라리 그때 죽었더라면 괴롭지는 않았을 텐데.”

         

       백우진이 무림맹의 지원군이 도착할 거라고 호언했던 나흘째 하루가 덧없이 흘러간 뒤.

         

       학관 내에 불온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주변을 꽁꽁 둘러싸고 있는 혈교도들이 서서히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는, 조만간 그들이 학관에 닿게 되면 우린 모두 죽게 될 거라는 그야말로 사기를 땅바닥에 처박는 소문.

         

       “어떤 새끼가 그런 소문을 냈을까.”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나갔다.

         

       사태의 심각성을 파악한 백우진이 뒤늦게 이를 바로잡고자 수색대를 꾸려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혈교도들의 동태를 파악했다.

         

       그리고…, 뜬구름과 같았던 소문은 사실이 되고 말았다.

         

       “…진짜였네.”

         

       소문은 진짜였다.

         

       학관이 자리한 산을 빙글 둘러싸고 있던 혈교도들은 실제로 이곳을 향해 진격해오고 있었다.

         

       소문이 사실이 되는 순간의 여파를 깨달은 백우진이 황급히 수색대의 입을 막으려 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들 중 하나가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는 바람에 소문은 사실이 되었고, 기세는 걷잡을 수 없이 꺾여만 갔다.

         

       “이 새끼가 또 말썽이네.”

         

       그래도 이를 통해 한 가지 알아낸 사실이 있다.

         

       수색대로 보고 들은 것들을 떠벌린 이는 다름 아닌 독고천에게 줄을 대고 있는 이였다.

         

       말인즉, 이 소문을 퍼뜨리기 시작한 원흉이 독고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

         

       한동안 휴식을 빌미로 잠잠했던 그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듯했다.

         

       그것도 아군의 살을 파먹는, 아주 좋지 않은 방식으로 말이다.

         

       “무섭다, 무서워.”

         

       권력의 무서움을 새삼 깨닫는다.

         

       모두가 하나로 똘똘 뭉쳐도 살아남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는 판국에 아군의 사기를 떨구다니.

         

       “나를 향한 지지를 떨어뜨리고 싶은 건가.”

         

       별안간 전쟁이 끝난 뒤에 적 지휘관의 목을 들고 나타났을 때부터 알아보았다.

         

       자신에게로 온전히 향해야 할 명성을 나눠 먹고, 자신을 끌어내린 뒤 재차 권력을 독점하려는 놈의 뻔한 술수 따위.

         

       알면서도 눈감아주었다.

         

       백우진이 원하는 첫 번째는 이곳 생도들이 무사히 살아남는 것이었기에.

         

       알량한 명성 따위, 제게 편승해 가져가는 것쯤 얼마든 묵인하려 했건만.

         

       “이 새끼가 선을 세게 넘네….”

         

       그는 편승이 아닌 제 자리 자체를 넘보고 있다.

         

       그것도 제 아군의 사기를 땅바닥… 아니, 나락까지 떨어뜨리면서까지 말이다.

         

       전쟁에서 승리할 때까지만 해도 굳건했던 그의 명성은 흔들리고 있다.

         

       이유인즉, 그가 전쟁 전에 호언했던 나흘이 훌쩍 지나고도 무림맹에서의 지원이 도착하지 않고 있기 때문.

         

       독고천은 그것을 집요하게 노렸다.

         

       혈교도가 전진해오고 있는 것과 백우진의 발언을 엮어서 함께 퍼뜨리고 있는 것.

         

       “백우진이 우리에게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닐까?”

       “그게 무슨 말인가! 우리 모두 그에게 목숨 빚을 졌음을 잊었나?”

       “목숨 빚이라니, 어찌 그게 그자 한 사람만의 공인가! 우리 모두가 합심하여 이뤄낸 결과 아니냔 말이야!”

         

       덕분에 서서히 파벌이 나뉘기 시작했다.

         

       백우진을 옹호하는 쪽과 독고천의 말에 홀라당 넘어가 그를 불신하기 시작한 쪽.

         

       하루가 멀다고 그들은 싸우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안 그래도 적은 인원이 둘로 나뉘기까지 하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게 될 터.

         

       그러기 전에 수를 써야만 했다.

         

       “결국 여길 빠져나갈 방도를 마련하는 게 제일인데….”

         

       가장 효과적인 건 포위당한 학관을 벗어나 도망치는 것이다.

         

       겹겹이 둘러싼 포위망을 뚫고 무사히 탈출할 수만 있다면 결국 모든 얘기는 한낱 언쟁에 불과한 수준으로 전락할 테니.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독고천의 얕은수 또한 완벽하게 봉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매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희생 없이 모두를 살릴 방법이.

         

       일부만 살려 도망치는 건 얼마든 가능할 것도 같은데, 그건 백우진이 원하는 일이 아니었다.

         

       “끄응….”

         

       시름과 함께 밤이 한창 깊어져 갈 무렵.

         

       “저어, 백 공자….”

         

       제갈연지가 쭈뼛거리며 그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무슨 일이야? 이 야밤에.”

         

       깊은 시름에 잠겨 있던 얼굴을 지워내고 웃는 얼굴로 그녀를 맞이하는 백우진.

         

       다른 이들에게는 시름하는 얼굴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지휘관의 시름 섞인 얼굴은 그 자체로 사기와 연결되기 때문.

         

       그때 제갈연지가 뜻밖의 말을 건네왔다.

         

       “저어…, 독고 소협이 백 공자와 대담을 나누고 싶다고….”

       “…독고천이?”

         

       그 말을 들은 백우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온갖 협잡질을 일삼고 있는 주제에 자신과 대담을 나누고 싶다니.

         

       꿀밤이라도 때리고 싶으면 때리라고 자리를 마련해주는 걸까.

         

       “백 공자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들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고 전해달래요.”

       “들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는다고….”

         

       궁금해졌다.

         

       대체 얼마나 맛있는 미끼를 구했길래 그토록 호언장담을 하는 것일까.

         

       자리에서 일어난 백우진이 곧장 그녀에게 말했다.

         

       “받아들이겠다고 전해. 독고천과 나, 단둘이 회의실에서 보자고도 전하고.”

       “알겠어요.”

         

       그녀를 먼저 떠나보낸 뒤, 백우진 또한 방을 나섰다.

         

       본청 건물에 임시로 마련해둔 회의실.

         

       그곳에 먼저 들어선 그가 상석에 앉아 독고천이 오기만을 기다렸다.

         

       이윽고 들려오는 발소리와 함께 문이 활짝 열렸다.

         

       앉아 있는 백우진과 안으로 걸어 들어오는 독고천 사이에 강렬한 시선 다툼이 이루어졌다.

         

       “오랜만이네.”

       “그렇군.”

         

       백우진의 말을 무덤덤하게 받아내며 맞은편 자리에 앉는 독고천.

         

       밖에서 안으로 들어와 자리에 앉기까지.

         

       독고천의 움직임을 눈여겨 살핀 백우진은 그가 달라졌음을 눈치챘다.

         

       ‘지나치게 여유로워.’

         

       행동 하나하나에 여유가 깃들어 있다.

         

       ‘여유라….’

         

       행동에 여유가 깃들기 위해선 마음 자체에 여유가 있어야 하는 법.

         

       그러나 독고천이 그런 여유를 즐길 만한 상황이던가?

         

       아니다.

         

       도리어 그는 다급해야만 옳다.

         

       정파 제일의 후기지수라는 명성부터 그가 쌓아 올린 모든 것들을 자신이 홀라당 먹어 치우지 않았나.

         

       그걸 되찾을 고민만 해도 머리가 많이 아파야 정상인데, 저 여유의 근원은 대체 무엇일까.

         

       ‘전부 내려놓은 건가.’

         

       그럴 리가 없다.

         

       처음부터 알지 못한다면 몰라도, 명성과 권력이 주는 맛에 길들여진 이는 이를 끊을 수 없다.

         

       잃었다면 그걸 어떻게든 되찾아올 생각에 잠식될 뿐.

         

       ‘무슨 꿍꿍이가 있다는 건데.’

         

       대담에 앞서 깊게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그가 어떤 말을 꺼내느냐에 따라 꿍꿍이 또한 제게 알려질 테니.

         

       “내게 긴히 할 말이 있다고 들었는데.”

       “그래, 아주 중요한 이야기다.”

       “말해 봐.”

         

       백우진은 자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거만함을 떨며 그를 아랫사람 대하듯 했다.

         

       그것이 독고천의 심기를 어지럽힐 수 있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번만큼은 그 또한 녹록지 않았다.

         

       속은 어떨지 몰라도 겉으로 드러난 부분 만큼은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다는 듯, 무표정으로 일관하며 이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혈교도들이 점차 거리를 좁혀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간 전부 몰살당할 것이라는 것쯤, 영특한 자네라면 잘 알고 있겠지.”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탈출을 시도해야 하는데…, 자네는 모두를 살리고 싶겠지?”

       “…….”

       “그래서 지금까지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고 있는 걸 테고.”

         

       사실이다.

         

       백우진은 지금까지 모두를 살리기 위한 방책만을 떠올리고 있었다.

         

       물론 그것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까지 구태여 알려줄 필욘 없겠지.

         

       “네게 제안할 것이 있다. 만약 내 수가 통한다면 네가 원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 거다.”

         

       과연.

         

       들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 넘치는 발언이 이해가 되었다.

         

       자신이 가장 바라는 것을 미끼로 달아두었으니 솔깃할 수밖에.

         

       “제안이라…, 일단 들어나 보지.”

         

       백우진이 관심을 보이자, 독고천이 입가에 옅은 미소를 그리며 입술을 뗐다.

         

       “별동대를 구성하고 싶다.”

       “…별동대?”

       “그래. 거기까지만 들어선 좀처럼 감이 잡히지 않겠지. 그런데….”

         

       그의 입가에 띤 미소가 의미심장하게 변했다.

         

       “성동격서, 라는 단어를 더하면 영특한 자네는 이해할 수 있을 테지?”

         

       별동대와 성동격서.

         

       두 단어를 듣는 순간 머리가 번뜩였다.

         

       그가 휘둥그레진 눈으로 독고천을 노려보며 믿기지 않는다는 투로 물었다.

         

       “미끼가 되겠다는 건가?”

         

       성동격서.

         

       동쪽에서 소리를 내고 서쪽을 공격한다는 뜻의 계책을 일컫는다.

         

       그것을 지금의 상황에 빗대어 본다면 별동대가 어느 한쪽으로 가 포위망을 흔들고, 본대는 느슨해진 포위망을 뚫고 탈출한다는 작전으로 변한다.

         

       그러나 이 작전에는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

         

       “그걸 펼치는 순간 별동대는 다 죽어.”

         

       포위망을 뒤흔들기 위해 반대편으로 보낸 별동대는 십중팔구 죽는다는 것.

         

       상대에게 확신을 심어줘야만 하기에 소수로 구성할 수도 없다.

         

       그렇다는 건 최소 수십, 많게는 백 단위의 생도들이 죽어나가야 한다는 뜻.

         

       독고천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이쪽을 노려보며 그의 말을 받아쳤다.

         

       “어느 정도의 위험은 감수해야지. 모두를 살린다는 이상만 좇다가 다 죽일 텐가?”

         

       통렬한 비판에 이를 악무는 백우진.

         

       그의 말이 맞다.

         

       하지만.

         

       ‘저거한테 들으니까 기분 되게 나쁘네.’

         

       독고천 따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까 기분이 몹시도 나쁘다.

         

       “그리고 무작정 죽을 생각도 없네. 나 독고천이 죽을 자리를 찾아 들어갈 것 같은가?”

         

       실로 납득이 된다.

         

       그 무엇보다 제 이익을 머리 꼭대기에 두는 인간이 죽을 자리에 찾아 들어갈 리는 없지.

         

       백우진은 기분 나쁜 속내를 숨기며 그에게 말했다.

         

       “적당히 흔들다가 학관으로 돌아올 예정이야.”

       “방벽을 이용해 수성을 하시겠다?”

       “아직 시설 자체는 튼튼하니, 며칠 정도는 버틸 수 있을 테지. 그 사이에 자네가 무림맹의 증원을 등에 업고 나타나면 그토록 바라는 모두가 사는 결말을 맞이할 수 있지 않겠나?”

       “…….”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위험부담이 굉장히 크다.

         

       특히 별동대에 걸릴 위험은 그야말로 죽음을 불사해야만 시도해볼 수 있는 수준.

         

       더군다나.

         

       “내가 눈엣가시 같은 널 죽이기 위해 지원을 포기하면 어쩌려고?”

         

       둘 사이에는 깊은 앙금이 있다.

         

       서로를 죽이고 싶을 만큼의.

         

       그러나 독고천은 그럴 리 없다며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자네의 행동은 가볍기 그지없으나, 마음가짐 하나만큼은 무겁더군. 그런 자네가 나 하날 죽이겠다고 수십, 수백의 생도의 목숨을 포기할 리가 없지.”

         

       실로 날카로운 통찰.

         

       백우진은 그럴 수 없다.

         

       차라리 이 자리에서 독고천의 목을 베면 베었지, 그런 말도 안 되는 수를 쓸 수는 없다.

         

       잠시 고민하던 백우진이 입을 열었다.

         

       “…인선은 어쩔 셈이지? 웬만해선 나서려 하지 않을 텐데. 그렇다고 원치도 않는 이를 죽음으로 내몰고 싶지도 않아.”

       “나와 파천신룡조, 그리고 스스로 자원하는 이들로 구성하면 되지 않겠나.”

       “자원할 이가 있다고 보나?”

         

       백우진의 물음에 독고천이 싱그러운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자리만 마련해주게. 그들을 설득하는 건 내가 할 테니.”

         

       자신만만한 태도로 대답한 그가 재차 물었다.

         

       “어떤가, 내 제안이?”

         

       이보다 좋은 작전은 없을 거라 확신하며 짓는 미소가 재수없다.

         

       마음 같아선 단칼에 거절하고 싶지만, 그보다 좋은 수가 떠오르지 않는다는 게 문제였다.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백우진이 결연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받아들이지.”

         

       백우진은 그를 한 번 믿어보기로 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에피소드는 다음 편 내지 다다음 편이면 끝날 예정입니다.

    고구마 없이 시원하게 쭉쭉 밀고 나가 보겠읍니당.

    그럼 다음 편으로 찾아 뵙겠습니다.

    읽어주셔서 매번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셔요. (_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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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 Drunk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주정뱅이가 되었다
Score 7.6
Status: Completed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I sent a 5,700-character message and ended up transported into a novel world once. Then after returning, I got reincarnated into a second martial arts novel by the same damn author. Only this time, I really didn’t write any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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