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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그 쿨하고 시크하게 자기 일만 하던 잘난 애가, 닉네임은 해킹잘모름에 올리는 글은 하나같이 다수의 관심이나 대화를 요구하는 타입이라니. 프흡!”

         

         “그래, 그래. 마음대로 떠들어. …숭고한 실험과 데이터 수집을 위해서였다는 점만 기억해주고.”

         

         “아니~ 솔직히 예쁜이가 생각해도 웃기잖아. 능력이야 차고 넘칠 정도로 있었지만, 어울리지도 않게 일하면서 온갖 폼은 다 잡던 애가 실은 넷에선 해커끼리 노는 게 서툴러서 테스트를… 흣, 흐하하핫…!!”

         

         이런 시발. 그건 딱히 멋있는 척을 한 게 아니라 그만큼 거기, 에나마 작업이 나에겐 심각한 문제였기 때문이라니까!? 이걸 속 시원하게 말할 수가 없으니 더럽게 답답하네.

         

         한참 지나간 과거에 일어났던 일이라지만. ‘나’의 육체적 죽음과 그것에 대한 수용으로 한창, 매일매일 심란한 상태로 데이터 복구를 실행하고 최대한 티 안 나게 몇몇 개는 어둠 속에 묻어버리느라 당시엔 좀 바빴으니.

         

         제로의 딱딱한 대응도 있고, 그 탓에 같이 지내던 마리나에게 꽤 정색한 이미지로 기억된 건 불가항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뭐, 그렇기는 한데. 이건 무슨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그냥 참고 넘기기엔 너무 얄미운뎁쇼?

         

         “…….”

         “…아하핫♪ 하아, 휴우. 음~ 좋아! 내 얼굴이 다 화끈거리네. 농담은 이만 해둘까?”

         

         두고 보자, 기회만 보이면 내가 아주 확 그냥.

         

         어, 아닌가?

         굳이 참을 것도 없이 지금 당장, 여기서 뒷조사를 해서 실시간으로 너는 얼마나 흑역사나 적나 확인해줄까… 하는 의미를 담아 테이블에 턱을 삐딱하게 괸 채 노려보고 있었더니만.

         

         불길한 낌새는 또 귀신같이 눈치챘는지 만면에 한가득 띄고 있던 웃음기를 싹 주워담은 걸로도 모자라.

         

         드러나는 표정마저 짐짓 정숙, 근엄하게 가다듬은 그녀가 엿듣는 사람은 없나 주변의 눈치를 살짝 살피더니 목소리를 낮춰 은근한 태도로 다가왔다.

         

         특별히 그런 식으로 살펴야 할 만큼 비밀스러운 상담은 아니라 생각했지만, 밖에서 너무 대놓고 ‘해커 어쩌구~ 해커 저쩌구~’를 반복적으로 연호하는 것도 상당히 모양새가 별로이긴 했다.

         

         …법률적 보호 시스템이 미미한 취약 계층에서 일하는 소프트웨어 및 사이버웨어 기술자나, 여가 시간에도 적극적 의견 교류와 자기 계발을 멈추지 않는 전자 보안 전문가 정도로 순화한다면 모를까. 흐음.

         

         “정말 태연하게 말하는 걸 보니까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모양인데… 혹시 최근 게시판 안 본지 좀 됐어? 약간 신경은 쓰되 관심은 좀 멀어진 거 아니야?”

         

         “어, 지나치게 의미 부여하거나 거슬려 할 필요가 없다는 건 알긴 알지만. 개인 메시지로 하도 지랄하는 애들이 많아서 키려다 그냥 만다던가, 글 툭 던져놓고 댓글 알람만 보면서 딴짓한다던가. 요즘은 다른 취미도 생겼겠다 나야 잘 안 들어갔지 좀.”

         

         뭐라도 해야겠다 싶어서 지인한테 헬프 요청까지 날려놓고 정작 커뮤니티 활동은 안 했다니 그게 대체 무슨 소리냐! 라는 지당한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정말 구구절절 맞는 말이지만… 원래 10명이 흐뭇하게 좋아해준다 한들, 1명만 내키는 대로 침을 뱉고 가도 긁히는 게 사람이지 않나?

         

         거슬리는 건 거슬리는 거고, 띠꺼운 건 띠꺼운 거니. 대부분은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기거나, 일부는 마리나의 과장된 표현처럼 재밌어하긴 했어도. 소셜 계정에 로그인하면 제일 먼저 보이는 게 인신 공격에 스토킹 난장판인데 입맛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덕분에 그 차단 풀어달라며 애타게 울부짖던 친구의 사연까지 제대로 못 읽어본 건 살짝 미안하긴 하네. 어허허.

         

         “예쁜아. 너, 네오 헤이븐 해커 커뮤… 그러니까 이 동네 게시판의 전신前身이 뭔지는 알아?”

         

         “응…?”

         

         마리나가 뜬금없이 물어보는 질문의 의도는 몰라도, 그에 대한 답 정도는 확실하게 알고 있었다. 아무래도 내 지식 편향은 현재의 정보나 상식보다는 ‘네오 헤이븐’ 그 자체의 은밀한 역사나 비밀쪽으로 더 치우쳐 있었으니까.

         

         갈라치기로 쪼개진 네트워크 망에서 해커 커뮤니티의 탄생 배경이야 몇 가지로 간단히 줄일 수 있다.

         

         응당 넷상에서 소외된 너드들이 모일 곳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로 어느 해커가 딥 웹에 게시판을 만든 경우, 버려진 채널을 무단 점거하고 멋대로 모인 경우, 블랙 마켓에서 관리 차원으로 먼저 다크넷(Darknet; 접속 허가가 필요한 네트워크나 특정 소프트웨어로만 접속할 수 있는 오버레이 네트워크) 형식으로 제공한 경우.

         

         하지만 그 중에서도 네오 헤이븐은… 약간 유별나고 특별하다.

         

         “뭐, 데드 링크 놈들이 만든 걸 알고 있냐고 물어보는 거야? 그 기업 전쟁의 방아쇠를 당겼던 친구들.”

         

         대부분의 도시가 완전 전산화된 직후, 단일 통합 네트워크를 구축할까 말까 하던 격동의 시기에 기업들의 약점을 정확하게 찌른 엘리트 해커 무리.

         

         이렇게만 들으면 뭔가 두근거리고 멋있을지도 모르겠지만은. 남은 잔존 생존자의 성격으로 보나, 증언을 취합해보나 실상은 정치 감각이 떨어지는 방구석 천재 해커들이 작당 모의 한 번 잘못했다가 대형 사고를 친 거에 훨씬 가깝다.

         

         시스템이 완성되면 설 자리가 없어질까 봐 호기롭게 선제 공격에 나섰지만 그로 인해 사람들이 죽어도 너무 많이 죽었달까.

         

         결국 휴전이 이루어지자마자 데드 링크는 본보기 삼아 다신 고유 명사로 쓰이지도 못하게 갈갈이 찢겨 기록 말소형에 처해지고 아직도 남은 관련자들은 특급 지명수배자로 쫓기는 신세가 되었으니 말 다했지.

         

         …아, 그래도 보안 전문가와 기술자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가르쳐서 직업 권리 신장과 연봉 인상에는 획기적인 한 획을 그은 업계 대선배님들이기는 하네.

         

         만약 어떤 식으로든 도와주다 기업이나 기관 쪽에 걸리면 진짜 고문 풀 코스를 받고 뒤지겠지만!

         

         “얘는 무슨 위험한 걸 주제로 떠드는데 겁이 없어. 그래도 알고 있다면 얘기가 빠르겠네요~ 우리 해킹잘모름 씨. 네 사회 실험인지, 유희인지 때문에 저쪽 넷에선 아주 전쟁이 났어요. 전쟁.”

         

         “어허…!! 단어 선택 너부터 좀 조심해 줄래?! 그런 악질적인 행위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객관적 데이터 확보를 위한 테스트였……. 잠깐만, 웬 전쟁?”

         

         서면으로 온 선전 포고문을 내가 외면하느라 못 봤나? 이게 당최 무슨 미친 소리래.

         

         “아니, 바이러스 뿌리거나, 보안 취약점을 가지고 여럿이서 토론하는 게 그렇게 드문 일은 아니잖아? 그때 마켓에서 개최한 간이 테스트만 봐도 다들 뭐 하나씩은 품고 살더만. 살벌하네… 나한테 다들 그렇게까지 화가 잔뜩 났었어…?”

         

         백 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어 강림한 한국의 맛은 너무 매웠을지도.

         

         갑자기 심각해진 고민 상담에 내 가슴 한구석이 움찔하거나 말거나, 마리나는 즐겁게 손바닥을 쫙 펼치더니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어가며 설명을 계속했다.

         

         “그거 영향도 아직 남아있고. 이쁜이한테 개인적인 유감을 가지고 화난 놈도 몇 있겠지만, 전쟁 자체는 정확히 다른 애들끼리 났지?

         

         어떤 기기에도 적용 가능할 만큼 기이하게 범용성 높은 이용자 차단 코드를 보고 ‘그들’ 중 하나가 나타났다며 호들갑 떠는 놈들, 당장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정색하는 새끼들, 상도덕도 없냐며 좋은 코드 공유 받았으면 적당히 넘어가라는 애들….

         

         아, 한 판 붙어보거나 솜씨라도 엿보겠다는 집념으로 코드를 분석 중인 연구파도 빼놓을 수 없지. 신생 프로그래밍 이단아인지, 아니면 과거의 전설일지 정체를 두고 내기판도 벌어졌네 참.”

         

         “이런 개 미친….”

         

         아하~ 괜히 죄책감 같은 걸 가져서 손해볼 뻔했네요~

         

         그냥 지들끼리 착각하고 곡해하는 걸로도 모자라, 너드들 특유의 과대 망상 음모론까지 터져서 자연스러운 지랄판이 났다는 거잖아! 나랑 장난해?!

         

         어떻게 쪽지 보내면서 덤벼든 놈들이 더 정상인데. 걔들은 적어도 그런 미친 헛소리도 안 믿고, 조용히 물밑 협상으로 해결하려 노력이라도 한 친구들이었어!

         

         “설마, 게시판 기능이 답지 않게 구려 터져서 자원 봉사한다는 감각으로 공유한 게 그렇게 고평가 받을 줄은…. 커뮤니티 자체 권한을 되살리는 게 아니라 사이버웨어 설정을 덧씌우는 식으로 아이디어만 발휘한 건데, 너무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 건가.”

         

         “……인간 중추신경계에 직접 상호작용하는 세기의 발명품 중 하나를 마음대로 커스텀 한 것도 물론 크고. 기본적으로 해커 채널은 딥 웹이자 다크 웹이라, 접속하는 사람들의 식별 코드와 아바타를 제외하면 전부 평등하게 동일한 세팅으로 강제로 바꿔버린다고? 그걸 우회하고도 접속을 유지할 수단이 있다는 걸 공공연하게 알려준 셈이니, 악성 팬이 좀 생겨도 이상할 건 없지?”

         

         “이런 십.”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냐는 듯, 미묘한 표정으로 ‘잘 아는 애가 왜 이래?’ 하는 눈초리를 보내오는 마리나의 시선을 피해 눈가를 가린 채 고개를 푹 떨궜다.

         

         통한의 실수라 해도 좋으리라. 진짜 그런 기술적인 부분은 전혀 몰랐다.

         

         오버 스펙인 뇌가 마음대로 길을 찾아서 처리해버리니, 그냥 이런 것도 되는구나~ 하고 무심코 능력 빨로 넘어가버린 영역에서 이렇게 발목을 잡힐 줄이야.

         

         원래 게임과 비교해 따지자면 임플란트에 부여된 특수 능력은커녕, 애당초 스킬 트리에 존재하지도 않는 걸 보여줘서 다들 경악한 상황이라는 거구나. 음.

         

         그럼 지금 내 신상이 털리는 일이라도 생긴다면… 거 팬미팅 하나는 제대로 하게 생겼네?

         

         “좋오오았으…. 밥 잘 먹었어 마리나! 먼저 좀 가볼게!!”  

         

         “네에? 예쁜 해킹잘모름님, 어디를 그리 급하게 가세요~ 이제 막 재밌는 이야기가 되는 것 같은데 좀 더 노시지 않고~”

         

         “그런 사람 모릅니다. 착각하지 말아주세요. 전 재야의 몸으로 돌아가려는 평범한 익명 유저에 불과합니다. 예.”

         

         물 흐르듯이 부드럽게. 그대로 자리에서 일어나 도망가려던 내 팔목을 덥썩! 붙잡은 마리나가 웃음을 터트리며 손을 꼼지락거렸다.

         

         불구경은 즐겁다 이거지 아주. 어? 그러다 화재가 다른 장작으로 옮겨붙는 수가 있어. 처신 잘 하라고!

         

         “아니 아니, 자세한 내막을 알려준 건 진짜 큰 도움이 됐는데. 나도 일단 더 큰 문제가 안 되게 마무리는 해야 할 것 같거든?”

         

         지금 장난치는 게 아니라, 나에겐 제대로 수습을 해야 하는 중요한 이슈라는 걸 다시 한 번 확실히 하고 얼른 돌아가려고 했는데.

         

         막상 떼어놓으려 하니 그녀도 마냥 농담을 하고 있는 게 아니었다는 것처럼. 생각 외로 진중하고 핵심을 찌르는 제안을 하나 아무렇지도 않게 휙 던져왔다.

         

         “우리 예쁜이 아가씨. 전혀 모르고 있던 걸 보니까, 아마 다이브 상태로 커뮤니티를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유명세가 붙은 김에 한 번 제대로 둘러보는 건 어때? 혹시 알아? 네 사업이나 프로그램 개발에 써먹을 만한 인재가 있을지?”

         

         “……너어, 언제부터 알면서도 전혀 모르는 척했어!”

         

         이런 기회도 흔치 않다는 건 좋다.

         미움보다 호기심이 더 크다면 쓸만한 인맥이 단번에 생길지도 모른다는 예상도 괜찮다.

         

         그런데 사업이나 프로그램 개발 얘기는 따로 그녀에게 한 적이 없거늘, 역시 그때 백신 프로그램이 단번에 뚫렸던 만큼 단순 실력 차이라고 납득하고 넘어가진 않았던 걸까.

         

         “헤헤, 반은 추측이었지만! 그리고 내 기억력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정도 눈치는 챙기고 사는 편이라.”

         

         혀를 쑥 내밀며 배시시, 마리나가 밝게 웃어 보였다.

         

         얻은 정보를 적극적으로 악용한다거나, 음습하게 써먹겠다는 의도는 일절 보이지 않았으나.

         야릇한. 바라는 게 있는 고양이 같은 표정을 지은 그녀가 스윽 팔짱을 끼더니 조용히, 내 귓가에 대고 뭔가를 속닥거렸다.

         

         ….

         …….

         

         뭐? 망할 구독료 좀 깎아달라고? 그게 뭔 해괴한 부탁이여 대체.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호감고닉 사장님, 조금만 깎아줘요오오~~ 네?

    언제나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바쁘신 와중에도 남겨주시는 댓글, 눌러주시는 추천 모두 정말 큰 힘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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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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