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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노스트럼 왕국 전체에 제국군이 나타났다!

     “…라고는 해도, 모든 영지가 세이레네와 같은 상황이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버지.”

     “그러냐?”

     “예. 아직 확인되지는 않았지만요.”

     나는 세이레네에서 다급히 지브롤터로 돌아온 다음, 현 상황에 대하여 좀 더 명확한 정보를 파악했다.

     “1/3은 거짓. 1/3은 소규모 게릴라전. 나머지 1/3은 세이레네 백작령과 같은 대규모 군대 파견을 통한 초토화작전.”

     모든 곳에 제국군이 나타났다고 하여, 모든 영지가 세이레네 백작령과 같은 상황이 되었다는 건 아니다.

     “바르셀로나 총독부와 같은 곳에서는 헛소문이 퍼진 게 와전되었을 겁니다. 제국 그림자들이 먼저 나서지 않는 한, 제국군이 나올 이유가 없죠.”

     “그들은 네가 수습했지.”

     “예. 누아르 덕분이지만요.”

     내가 세이레네에 내려가있는 동안, 누아르의 화이트들이 바르셀로나 총독부를 잘 정리해줬다.

     ‘총독부 행정관의 수가 100명 정도 남게 되어버렸지만.’

     나머지 200명은 어디로 사라졌냐고?

     음.

     ‘한 명당 두 명씩 상대하면 딱 200명이긴 하지.’

     약간의 전투가 있었다.

     그 과정에서 죽은 이들이 제법 되었지만, 지브롤터의 기사들은 중상을 입기는 했어도 죽지는 않았다.

     “아쉽구나.”

     “그들은 제국인들이니까요.”

     그들이 이곳에 온 게 바르셀 후작령이 망하고 난 뒤였으니, 그 짧은 시간 동안 100명이나 지브롤터로 전향할 마음을 가졌다는 게 더 고무적인 일이리라.

     “괜찮습니다. 이제 한 배를 탔으니, 그들은 내리고 싶어도 내릴 수 없게 되었습니다.”

     잘 된 일이다.

     잠재적 암살자 200명이 생기는 것보다는 걱정되기는 해도 신뢰는 보낼 수 있는 아군 100명이 생긴 게 더 나으니까.

     “문제는 다른 곳. 제국의 그림자들이 암살자가 되어 테러를 일으키는 경우.”

     모든 제국 그림자들이 중상급 기사급의 실력을 가진 건 아니다.

     “아니기를 바랍니다만, 지금 귀족 다섯 명 중 한 명은 죽었을 겁니다.”

     “……암살이지?”

     “예.”

     하지만 그들은 하급 기사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더라도, 자기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기본적으로 가지고 있다.

     “선전포고는 갑작스럽게 이루어졌지만, 제국은 이미 10년 전…아니 그 이전부터 전쟁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각 가문에 파견한 출신 불명의 집사라거나 메이드, 혹은 매수한 기사들이라거나.”

     “세이레네에서도 그런 징후가 나타났다고 했지. …영애는 죽었고.”

     “예.”

     세이레네 백작령에서 살아남은 이들의 발언이라거나 흔적 등을 조사해본 결과, 우리는 내통자의 존재를 확인했다.

     “10년 전, 아버지가 매국하기로 결정한 날. 그 때의 지브롤터에도 첩자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모르가니아의 첩자였죠.”

     “마찬가지라는 거구나.”

     “예. 지브롤터 수준으로 솎아내는 게 아니라면, 귀족들이 자체적으로 잘 막아냈기를 기도할 뿐입니다.”

     메이드가 갑자기 허벅지에 숨겨둔 칼을 찌를 수 있고.

     저택에서 불이나는 바람에 도망치는 사이 집사가 목을 그어버릴 수도 있고.

     혹은 기사 중 하나가 조는 사이에 들어온 암살자가 귀족 일가를 몰살할 수도 있는 법.

     “제국의 전쟁은 가장 짧게 정리하자면, ‘머리부터 시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휘체계를 무너뜨리기 위해 귀족들부터 죽인다는 거구나.”

     “예. 명령권자를 제거하여 지휘체계를 망가뜨린 다음, 오합지졸이 된 병사들을 하나씩 몰살하는 거죠.”

     “……적만 아니었다면 굉장한 전술가라고 할 수 있겠어.”

     “예. 그리고 그걸 실천하고 있는 게 가장 큰 문제이며….”

     나는 서재에 걸린 지도를 가리켰다.

     “노스트럼과 지브롤터 사이를 철저하게 이간질 시키려고 작정했다는 것이 두 번째 문제입니다.”

     “…….”

     “지브롤터, 바르셀로나, 모르가니아. 뭐, 바르셀로나는 지브롤터로 포함하도록 하죠.”

     너무나도 공교롭게도.

     “왕도 톨레도의 후방까지 적의 비행선이 상륙한 현재, 제국군이 공세를 펼치지 않는 곳은 이 두 곳 뿐입니다.”

     “의심받기 딱 좋은 환경이군.”

     “제국군이 일부러 정보를 퍼뜨리겠죠. 지브롤터와 모르가니아는 이미 제국에 붙었다.”

     “그럴 리가 없다…라고 생각하게 만들면서도 의심의 씨앗을 품게 만드는 것이 목표인가?”

     “예.”

     제국이 공격하지 않은 유이한 영지.

     세이레네 백작령의 영지민들처럼 당장 목이 달아날 상황이 아니고서야, 지브롤터와 모르가니아로 도망칠 수 있을까?

     “망설이는 귀족들이 있다면, 세이레네 백작가와 같이 초토화될 것입니다. 아마도 지금 제국군은 최소한 클레이돌 후작령에 결집했거나, 그곳을 보급기지로 삼고 사방팔방으로 흩어질 거거든요.”

     “세이레네 백작령을 다시 공격할 가능성은?”

     “그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해협을 지키려고 해도, 해군이 지금 없는데 어떻게 바다를 지킬 수 있겠습니까.”

     “…애초에 비행선을 중간에 요격하려면 해군이 아니라 공군이 필요하겠지.”

     “예.”

     일부 용기병들은 북방을 지키러 떠났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한 대가 아닌 십수 대가 함께 오와 열을 맞춰서 진격해오는 비행선을 상대로 쉽게 다가갈 수 있을까?

     “또다시 선택의 상황이로군요.”

     “여기에서도 선택이라.”

     아버지가 손으로 이마를 짚는다.

     “네 의견은 어떠냐. 나는….”

     “아, 방향성의 문제는 아닙니다.”

     “뭐?”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선택은 ‘어디를 살릴지’의 문제거든요.”

     아버지가 잠시 멍하니 나를 바라보다가 눈썹을 찌푸렸다.

     “어떤 곳은 죽게 내버려두겠다는 말이냐?”

     “우리는 신도 황금룡도 아닙니다, 아버지.”

     “…….”

     “지킬 수 있는 것만 지킬 뿐. 대를 위한 소의 희생이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아버지가 침음성을 흘린다.

     세이레네 백작령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에게 듣기 이전, 그 참담함 만큼은 병사들을 통해 보고를 들었기에 눈을 감지 못한다.

     “그레이.”

     “예.”

     “버리는 영지는, 전멸하겠지?”

     “그렇겠죠.”

     “……미안하지만, 그레이.”

     “괜찮습니다. 이미, 예상하고 있었으니까요.”

     나는 아버지의 서재 한 쪽에 보관된 캐롤라인을 하나 꺼내들었다.

     “모두를 살리는 방향으로 애써보자. 그 말이 얼마나 허황되면서 어처구니 없는 이상적인 말인지는 아버지 본인 스스로도 알고 계실 겁니다. 사실 어처구니 없긴 하죠. 지브롤터가 언제부터 그런 성인군자였다고.”

     “…….”

     “그러나 우리는 바뀌기로 했습니다. 노스트럼의 지브롤터가 아닌, 오직 지브롤터로서.”

     훗날을 위한 포석이든, 아니면 아버지가 차마 내게 말을 못하는 상황이든.

     “언젠가 미래, 누아르가 왕이 되든 아버지의 손자손녀가 왕이되든, 지브롤터가 협곡이 아닌 ‘백성을 지키는 수호자’ 이미지를 가져오려면 그런 모습이라도 보여야죠.”

     앞으로의 지브롤터를 위해서라도, 인간의 도리를 위해서라도 노스트럼의 백성들을 죽음으로부터 구할 필요가 있다.

     “사실 아버지나 저나, 진심으로 백성을 지킨다거나 하는 그런 낯간지러운 말을 하는 사람은 아니잖습니까?”

     “끄응….”

     “내 사람을 지킬 뿐, 그 이외에는 죽든 말든 상관없다. 저는 아직 그런 상황이지만…아무래도 아버지께서는 조금은, 벗어나신 모양이네요.”

     아버지는 변했다.

     “역시, 동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아버지가 되고 싶으신 겁니까?”

     “…처자식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

     아버지가 탁자를 손으로 두드리며 한숨을 내쉰다.

     “그리고 그렇기에, 또 네게 부탁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구나.”

     “익숙한 일이니까 마음껏 부려먹으십시오. 적이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황제를 상대로 휴식을 취한다는 생각은 이미 접었습니다.”

     현 시점.

     지브롤터에서 바깥으로 나갈 수 있는 마스터는 많지 않다.

     “아버지. 누아르를 믿으십니까?”

     “물론.”

     “그렇다면 간단하죠. 외부로 나가는 지브롤터를 셋으로 나누겠습니다.”

     나는 지도 위의 깃발을 각각 움직였다.

     “로버트 경에게 세빌리야-롤랜드 전선을. 멘테 경에게 남부 세빌리야를 맡기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왕도로 향하겠습니다.”

     “병사가 부족하지 않겠느냐.”

     “부족하죠. 모든 전역을 관리한다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능합니다. 그건 모두를 살리고자 하는 의지와 관계 없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영역입니다.”

     “…….”

     “그렇기에, 적들이 오는 방향을 정할 필요가 있죠.”

     나는 왕도의 인근을 손으로 가리켰다.

     “이곳으로, 모두 집결시킬 겁니다.”

     “…오로솔?”

     “예.”

     오로솔 아카데미에는 성벽이 있다.

     “부지가 상당히 넓고, 내부에 있는 강의동은 한 강의실마다 서른 명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아카데미를 난민 수용소로 만들 셈이더냐?”

     “전쟁이 일어났는데, 피난민을 들일 곳 정도는 있어야겠죠.”

     아버지가 진지하게 턱을 손으로 만지작거린다.

     실제로 오로솔 아카데미를 살펴봤기 때문에, 아버지는 이게 나름 현실성 있는 부분이라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려면….”

     “제국군이 죽이려고 하는 건 누굽니까?”

     “노스트럼의 백성들이지.”

     “노스트럼 백성들이 모두 오로솔로 모인다면, 그 때는 어떻게 될까요?”

     “…버려진 노스트럼 땅에 그대로 눌러앉거나, 아니면 오로솔로 진격하거나.”

     “예.”

     노스트럼의 모든 인구를 왕도 톨레도에 모은다.

     “모르가니아, 오로솔, 지브롤터.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우리는 이곳만 지키면 되는 일입니다.”

     “남북으로…잠깐. 아니지.”

     아버지가 손가락을 튕기며 자리에서 일어난다.

     “공수전환.”

     “예.”

     

     지킬 것이 많다면, 한 곳에 몰아넣고 그것만 지키면 된다.

     “모든 곳을 지킬 수 없다면 한 곳만 지키도록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 사이, 제국군을 공격하러 다니는 거죠.”

     “그러면 그들을 모으는 건 역시 ‘그것’이겠구나.”

     “예.”

     우리가 말하는 게 아니다.

     “왕명이 떨어졌는데, 그냥 그 자리에 가만히 있다가 죽으면 그건 자연사입니다.”

     나리아 여왕의 명령에 따라, 모든 왕국민은 오로솔 아카데미 모이게 되리라.

     “영주의 명령이 아닌 왕명입니다. 왕이 명했는데 귀족이 반대하거나 그런다? 반역이죠. 애초에 그렇게 할 인간이라면 이미 암살자에게 당해버렸을 가능성이 큽니다만.”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처럼 무능한 자,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의 뒤를 따라가는 게 인지상정.

     “협곡만 지켜주십시오. 북부가 뚫릴수도 있고, 남부가 다시 빼앗길 수 있습니다.”

     “오냐. 그래, 목숨을 걸고 지키도록 하마.”

     “…목숨까지 걸 필요는 없습니다. 아버지. 잊으셨습니까?”

     나는 지도의 협곡을 가볍게 두드렸다.

     “더 이상 지브롤터는 협곡에 목이 묶인 개가 아닙니다. 지브롤터가 있는 곳이 지브롤터죠.”

     “알겠다. 그러면 난민들의 인도에 대해서는….”

     “아버지. 아무래도 신경을 좀 많이 쓰신 것 같은데.”

     나는 손뼉을 쳐서 아버지의 주의를 환기했다.

     “지금부터 세인트 지오를 위시한 노스트럼의 충성병자들이 우리를 매국노라고 매도했던 것들이, 노스트럼의 만백성을 살리는 기적이 되도록 보여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간단하죠.”

     서재의 지도에도 아직 완벽하게 그려지지 않은 십수 갈래의 길.

     “오로솔 아카데미 덕분에 철도는 주요 영지를 향해 뻗어있죠. 적군이 그걸 이용하기 쉽다는 건…아군 또한 이용하기 쉽다는 뜻.”

     “…제국에서 보내준 배들이 노스트럼 백성들을 살리는 구조선이 되겠군.”

     바다도 하늘도 아닌 땅을 달리는 배지만.

     “그래. 사람 살리는데 검이든 약이든 뭐든 살리기만 하면 그만이지.”

     도구란 그 상황에 맞게 유용하게 쓰일 때 가장 가치있는 법이다.

     * * *

     1월 3일, 새벽.

     지브롤터에서 비행선 한 대가 왕도에 도착했다.

     

     오로솔 아카데미에 상륙한 비행선에서는 단 두 사람만이 내렸고, 그들을 맞이한 나리아 여왕은 곧장 왕명을 내렸다.

     잠시 뒤.

     노스트럼 대륙 곳곳에, 마도자동선이 바퀴를 가열차게 굴리며 전역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조선(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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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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