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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4

   연마가 제압되며 라그렌에 있던 연기가 사라진 이후.

   독왕은 바로 인원을 추린 뒤 금역, 최후의 방주로 향했다.

     

   이번에는 익시온 놈들이 의도적으로 폭주를 일으킨 것이라고는 하나.

   금역이라는 것은 본디 원래도 종종 폭주하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각지에서 금역을 담당하고 있는 가문들은 이처럼 폭주하는 금역을 관리하는 방법을 알고 있었다.

     

   이는 라그렌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독왕은 바로 폭주하는 금역을 대처하고자 바로 인원을 꾸려 나선 것이다.

     

   ‘이쪽은 독왕에게 맡겨두면 된다.’

     

   문제는 라그렌만이 아니다.

   익시온은 현재 동시다발적으로 제국에서 관리하던 금역을 흔들어 놓고 있다.

     

   라그렌이야 독왕이라는 천하십강을 보유하고 있으니 조금 늦어도 대처가 충분히 가능하다지만.

   그저, 다른 대가문 쪽에 관리를 맡기고, 입구를 지키기만 하는 가문들도 없지는 않을 것이다.

     

   ‘금역이라는 게 동시다발적으로 폭주할 일은 없으니까.’

     

   제국은 땅덩어리가 크다.

   그러니 그들이 관리해야 할 금역 또한 많다.

     

   하지만 금역을 관리할 수 있는 수준에 가문은 한정되는 것이 현실이었다.

     

   이에 제국이 사용한 방법은 금역을 관리할 수 있을 만한, 저력을 갖춘 대가문들에게 다수의 금역을 관리하도록 명한 것이다.

     

   금역을 정기적으로 확인하면서 도는 건 대가문에도 여유 있는 일이었으니 말이다.

     

   제국으로서는 과한 전력 소비를 줄일 수 있고, 대가문으로서는 금역을 관리하는 만큼 황가에서 권리를 부여해주니 나쁜 것 없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오히려 악영향으로 작용하고 있었다.

   대가문이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한들 금역 다수를 동시에 어찌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본래라면 관리하던 금역이 동시다발적으로 폭주할 시, 다른 대가문에게 임시 도움을 취하면 되겠으나.

   지금은 제국 전역에서 금역이 폭주 중이니 도와줄 사람도 없다.

     

   그러니 분명히 제국은 금역을 포기하는 구역이 생길 것이다.

   혹은 나중에 있을 외교에 타격을 감안하고, 근처 나라에 도움을 청하던가 말이다.

     

   “시즐리!”

     

   그런 급박한 상황을 알기에 크라슈는 지친 몸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시즐리부터 찾았다.

     

   독왕이 최후의 방주를 막기 위해 황제와 직통을 할 수 있는 건 이곳에서 시즐리밖에 없다.

     

   그러니 크라슈는 시즐리가 있을 방문을 열었다.

   입구 앞에 대기 중이던 시즐리의 호위인 세라가 크라슈를 보자 고개를 숙여 보였다.

     

   크라슈가 시선을 옮기자 거기에는 시즐리가 누군가와 마법구를 통해 연락을 취하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크라슈와 눈이 마주치더니 잠깐만 기다리라는 듯 입가에 손을 올렸다.

     

   크라슈는 시즐리가 누구와 연락을 나누고 있는지 눈치챘다.

     

   제국의 황제 시리우스 에파니아.

   그와 연락을 나누고 있는 것이었다.

     

   “그럼 허락하신 걸로 알겠습니다.”

     

   시즐리는 그것을 끝으로 연락을 마쳤다.

   그러고는 이내 크라슈를 돌아보았다.

     

   “스타론에서 지원받는 걸 허락받아 놓았다.”

     

   그 말을 듣고는 크라슈가 멈칫하였다.

   왜냐하면 시즐리의 말대로 크라슈는 이 허락을 받기 위해 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타론에는 발하임이 있다.

   발하임이라 하면 세계 침식과 관련해서 전문적인 인력을 갖추고 있다.

     

   거기에 스타론과 제국은 거리가 멀지 않을뿐더러, 라헬른 아카데미의 텔레포트 수단을 이용한다면 더 빠른 이동도 가능했다.

     

   크라슈는 이러한 권한을 전부 가진 인물이었다.

     

   총학장인 듀란달과 바로 접촉할 권한과 발하임을 불러들일 수 있는 권한.

   거기에 유일하게 제국을 지키더라도 다른 말이 나오지 않는 스타론 인물.

     

   황가는 크라슈를 자기 입으로 직접 제국을 도운 영웅이라 공표했다.

   제국에서 황가의 힘은 절대적이다.

     

   그들이 공표하는 순간부터 크라슈가 아무리 스타론에 소속된 발하임의 사람이라고 한들.

   제국 전체가 크라슈에게 우호적인 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다.

     

   더불어 크라슈는 무려, 황녀의 약혼자라고 직접 공표가 났다.

     

   비록, 황제를 이어받을 권한이 미미한 4황녀라고는 하나.

   약혼이라는 말은 곧 제국의 사람이 될 이라는 소리와도 같았다.

     

   제국으로서는 스타론 보다 본인들이 훨씬 우월한 입장이라 판단하고 있을 터이니.

   시즐리가 시집을 오는 게 아니라 크라슈가 장가를 오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크라슈가 발하임에서 지원군을 불러온다고 하더라도.

   제국 쪽에서는 그것을 침략이라 여기지 않고, 후에 장가올 사위가 지원병을 끌고 왔다로 손쉽게 해석할 수 있다.

     

   물론 발하임과 스타론에서도 이 부분에 관해 반대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그들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강대국인 제국에게 빚을 지게 할 기회이니 말이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

     

   그러나 이러한 상황을 전부 만들어낸 것은 크라슈가 의도한 바가 아니었다.

     

   “시즐리, 처음부터 계획하고 있었냐.”

     

   이 상황을 만들어낸 인물은 다름 아닌 크라슈의 눈앞에 있는 이.

   시즐리 에파니아였다.

     

   처음부터 아무리 첩자 건이 있었다고 해도 구태여 라그렌까지 따라온다길래 의아하긴 했었지만.

   시즐리에게는 이와 같은 별개의 다른 계획이 있었음이 확신 되었다.

     

   크라슈의 물음을 들은 시즐리는 잔망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불쾌하게 여기지는 말아 줬으면 좋겠구나. 앞으로 제국과 여러 국가 사이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기에는 이보다 좋은 상황은 없지 않으냐.”

     

   시즐리는 크라슈가 세계 전역으로 뻗어 나가고자 함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에게는 어떠한 목표가 있다.

   하나, 그러한 목표에 나아가기에는 여러 장애물이 많았다.

     

   특히, 제국과 스타론의 사이를 고려해 본다면 크라슈는 제국에는 더더욱 발을 들이기 힘든 상황이었다.

   시즐리는 그 점을 눈치채고, 크라슈의 앞에 있던 거대한 장애물 하나를 냉큼 치워준 것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크라슈에게 알리지 않고, 독단적으로 행동했던 시즐리다.

   시즐리가 그 점은 조금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자 크라슈가 짧게 코웃음쳤다.

     

   “난 그런 걸로 불쾌함을 느낄 만큼 애가 아니다.”

     

   어릴 때 어른들이 다 너한테 좋은 거야라며 주던 것을 자신이 바라던 게 아니라는 이유로 뿌리칠 만큼.

   크라슈는 인생을 헛살아오지 않았다.

     

   죄다 쓴 거 좋은 거 가리는 거 없이 집어삼켜도 살아가기 바쁜 인생이다.

   그런데 냉큼 입에다가 꿀덩어리를 넣어준다는데 안 삼킬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잘했어. 네 판단은 옳았어. 덕분에 일이 훨씬 수월해졌으니까.”

     

   크라슈는 세상을 멸망에서 지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특히, 그는 자기 모자란 점을 무척이나 잘 자각하고 있었다.

     

   크라슈는 특출난 천재가 아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다른 이가 보기에 괴물이라 일컫는 이가 되었지만, 이는 크라슈의 악착같은 독기와 여러 우연이 겹친 끝에 도달할 수 있었던 영역이다.

     

   그에게도 여전히 모자란 부분들은 많았다.

   그러니 이런 분야에서 크라슈가 직접 나서거나 지휘하는 것보다는 이 분야에서 천재적인 이가 독자적으로 움직여 주는 것이 더 나았다.

     

   혼자서는 세계를 지킬 수 없다.

   그것을 알기에 지금까지 창공의 세대와 함께 성장해온 크라슈다.

     

   오늘 하링의 일부터 시즐리까지.

   크라슈는 자신의 노력이 헛되지 않음을 기뻐했다.

     

   “……그렇게 손쉽게 받아들일 줄은 몰랐구나.”

     

   크라슈를 보던 시즐리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엿본 기분이었다.

     

   그러자 어느새 그녀의 앞에 다가온 크라슈가 시즐리의 머리를 마구잡이로 헝그러뜨렸다.

     

   “끄잉악!”

     

   헝클어뜨려지는 머리카락에 시즐리가 비명을 지르자 크라슈가 씨익하니 웃어 보였다.

     

   “고맙다. 든든한 친구 둬서 손쓸 일이 줄었어.”

     

   어딘지 모르게 순박한 느낌까지 드는 미소.

   시즐리는 그 미소가 자신을 믿고 있었기에 나오는 미소임을 눈치챘다.

     

   시즐리는 조금 멍한 눈으로 크라슈를 보았다.

     

   어린 시절, 그와의 첫 만남부터 시작해 시즐리는 크라슈와 꽤나 집요하게 엮여왔다.

     

   처음에는 분명 흥미 반, 장난 반이었다.

   크라슈는 또래 아이 중에서 볼 수 없는 아이였다.

     

   그와의 대화는 재미있었다.

   어떤 농담을 던지더라도 그는 그 농에 맞춰 오히려 역으로 치고 들어온다.

     

   그 모습은 감히, 황녀에게 보일 만한 모습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즐리는 그것을 무엄하다고 생각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그것이 크라슈의 자연스러운 모습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흥미와 장난으로 다가간 관계였기 때문일까.

   시즐리는 재미는 있어도 크라슈와의 관계를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어쩌면 본디 자신의 성격이 그런 걸지도 몰랐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머리를 지닌 그녀는 사람을 상대할 때 가면을 써야 했다.

   그것이 바로 황녀라는 위치에서 살아남을 방법이었다.

     

   그리고 그러했던 가면은 너무 길어지고 말았다.

   어느새인가 시즐리는 가면을 벗는 모습을 잊었다.

     

   똑똑한 그녀이기에 가면을 구분하는 피로를 줄이고자 가면을 제 것으로 만들어 버리고 말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대가로 그녀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서 가면 없이 대하는 법을 잊고 말았다.

     

   그녀의 행동은 잔망스럽다.

   장난기가 넘치고, 진지함은 없으며 종종 주변 사람을 험하게 굴리기도 한다.

     

   제국을 위해 발 벗고 나서는 모습마저도 누군가에게는 장난스럽게 보일 만큼.

   그녀의 행동은 누구보다 가벼워 보였다.

     

   그렇기에 그녀는 이런 자신을 깊게 믿을 이는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자신도 이렇게 가벼운 사람은 믿지 못할 테니 말이다.

     

   크라슈와의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그와 이리저리 얽히며 끝내는 약혼자라는 관계까지 되었음에도 시즐리는 크라슈가 자신을 그리 깊게 생각하지 않을 거라 여겼다.

   그렇기에 이번 일도 당연히 네가 뭔데 이렇게까지 했냐며 쓴소리를 들을 거라 각오했다.

     

   그런데 돌아온 말이 고맙다니.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말이었다.

     

   ‘그렇구나.’

     

   시즐리는 덕분에 한 가지 사실을 알아챘다.

     

   크라슈는 시즐리와의 관계를 가볍게 여기지 않았다.

   그녀를 함께 해온 동료로서 신용했고, 그녀가 위험하다면 정말로 발 벗고 나설 만큼 아꼈다.

     

   그리고 시즐리는 아마 예전부터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지금까지 관망만 하던 내가 유달리 크라슈를 위해 이토록 움직였던 건.’

     

   크라슈가 자신을 진심으로 신용하고 있단 걸 은연중에 느끼고, 그의 신용에 보답하고 싶어서였던 거였다.

     

   황가에서 가족과도 연을 쌓지 못했던 그녀가 처음으로 진심이 담긴 연이었으니까.

     

   ‘그에게 가지는 게 고작 흥미라고 생각했다니. 참 바보 같기 그지없지.’

     

   그것을 뒤늦게 자각한 시즐리가 어이없는 실소를 흘렸다.

   시즐리의 뜬금없는 웃음에 크라슈가 슬쩍 헝클어트린 그녀의 머리를 다듬어줬다.

     

   “왜 음침하게 웃어. 무섭게. 머리 엉망으로 만들어서 열받았냐?”

     

   이런 부분이다.

     

   황녀라는 입장을 다 떠나 자신에게 사람답게 살갑게 굴어주니.

   이쪽도 무심코 자기 입장을 잊고, 사람처럼 살아 보려고 욕심을 낸다.

     

   그리고 시즐리는 자신에게 생긴 이러한 변화와 욕심이 싫지 않았다.

     

   욕심이라는 건 가지고 싶은 것.

   시즐리는 황가에 내려오는 버릇이 자신에게도 발현되었음을 자각했다.

     

   “시즐리 포인트 935점이다.”

   “응?”

     

   크라슈가 채 반응하기도 전에 시즐리가 어느새 고개를 번쩍 들었다.

   괜히 찔려 시즐리의 머리를 정돈해주던 크라슈는 시즐리의 공격에 당하고 말았다.

   

   크라슈는 자기 입술에 닿는 부드러운 느낌을 깨달았다.

   

   

   

   

   

   

   어딘가 감귤 향이 나는 향이 스쳐 지나간 후 시즐리는 입술을 뗀 채 늘 그렇듯 잔망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크라슈가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다.

   세라는 그 광경을 보고는 결국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나는 역시 낭군과 결혼해야 할 몸인 모양인 게야.”

     

   욕심 많은 황녀님은 자신의 유일한 욕심을 놓쳐줄 생각 없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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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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