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4

    <324 – 거물의 낚시>

     

    이사장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함정을 잘 간파하셨군요. 잘하셨습니다.”

    “헤헤!”

    “누군가 호의를 보이고 득이 되는 제안을 한다고 반드시 좋은 결과가 따라온다고 할 수는 없답니다. 그 호의 자체가 약속을 어기도록 유도하는 함정인 경우도 이렇게 존재하니까요.”

    “너무 뻔했다고요~ 분명 내기를 했는데 이렇게 간단히 탑을 나가게 유도하면 의심부터 드는 것이 당연한 심리잖아요?”

    “후후. 호의를 가려 받을 줄 아는 신중함은 거듭 칭찬해도 모자라지 않겠군요. 싱군도 오크노디의 곁에 머무르면서 많이 보고 배우길 바랍니다.”

     

    역시 칼질 말고 뭐 하나 제대로 할줄 모르는 싱은 금붕어마냥 잠깐 사이에 파파의 이야기를 잊어버리고 속아 넘어갔다.

    그래도 머 내가 있으니까 괜찮겠지.

    50층이야 못 넘는 게 아니라 안 넘는 거니까.

    솔직히 말해서 이건 기회다.

    이번 회차의 유독 강한 조직력을 자랑하는 <재단>의 권력을 훔쳐볼 수 있는 기회.

     

    ‘아카데미로 바로 돌아가면 사건의 경과만을 간접적으로 겪게 될 뿐이지만 이렇게 밖에서 지켜보면 사건의 흐름을 전부 지켜볼 수 있지!’

     

    1학년 2학기에 등장하는 두 번째 챕터보스.

    <악의조직의 습격> 이벤트를 재단이 펼쳐내는 솜씨를 지켜본다.

    아카데미로 복귀하는 것은 그 뒤에 해도 늦지 않다.

    진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은 다소 감점이 따르겠지만 거기에 지불할 포인트는 충분히 있으니까!

     

    “근데 이건 그냥 시험이었어요?”

     

    머리를 쓰다듬어주겠다며 뻗던 이사장의 손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오크노디는 칭찬을 바라는 아이의 얼굴로 다가오는 손을 쳐다보지 않았다.

    점심을 먹고 나면 디저트를 먹어야 한다는 얼굴로 당연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처럼 말했다.

     

    “지역이벤트는 함정용 미끼로만 보여주고 실제로 실행하지는 않을 생각이었어요?”

     

    도이치 왕국의 인간군단.

    인류경계선 너머의 수인군단.

    종이 다른 두 종족 간의 종족전쟁이 열리지 않는 것에 아쉬움을 드러낸다.

    한두 명의 죽음을 논하던 아카데미의 모략과는 급이 다른 대사건이다.

    아니, 참극이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그런 엄청난 미래를 서슴없이 입에 담는 오크노디의 광기에 천하의 이사장조차 깜짝 놀랐다.

     

    “피할 수 있음에도 굳이 인간을 이용해서 펼치는 흉계는 대체로 아웃이 아니었습니까?”

    “에이. 이웃에 나라 하나만 있어도 치고 박고 싸우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요. 안 친한 엑스트라들이면 이벤트 좀 열고 그럴 수도 있죠!”

    “어느 쪽의 피를 보고 싶은 겁니까?”

    “음~ 굳이 따지자면 수인쪽?”

    “제국에서 수인들의 노예화가 공식적으로 불법으로 제정된 지 백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순수한 인간만을 인간취급 하는 인간우월주의자들이 있죠.”

     

    이사장은 그런 세간의 인식과 풍조 속에 차별 받고 억압당하는 수인들의 조직을 재단의 산하조직으로 거느리고 있다.

    재단의 장학생에도 엄연히 <이종족전형 장학생>을 일정숫자 모집하고 있을 정도다.

    이용할 수 있는 존재를 굳이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가려가며 차별하는 것은 어리석은 행동이다.

    애초에 수인차별이 무엇에서부터 기인했는가.

    자원의 부족함을, 영토의 부족함을, 인력의 부족함을 수인을 착취함으로써 해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수인들을 표면상으로는 ‘정치적인 지지세력’으로 탈바꿈하고자 일으킨 혁명으로 재단우호세력으로 만들어낸 입장에서 이유 없는 수인혐오는 성가시다.

    적어도 장래, 자신의 뒤를 이을 아이가 갖출만한 사고방식은 아니다.

     

    이사장의 눈이 가늘어졌다.

     

    “혹시… 당신도 그런 인간우월주의자입니까?”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우월주의란 재단의 정치적 후원세력을 죽이기 위해 탄생한 개념.

    세계각국의 통치자들의 이해와 수인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긴 도태된 하층민들의 결합으로 탄생한 자국민우선주의의 연장선상에 해당하는 이론이다.

    오크노디처럼 만인의 위에 군림할 아이에게는 어울리지 않는 패배주의적인 사상.

    재단을 물려받을 아이에게는 더욱 필요 없다.

     

    ‘조금… 교정이 필요할까?’

     

    만일 그렇다면 근본부터 뜯어고쳐야한다.

    이번 교육은 조금 길어질지도.

    아예 이참에 오크노디의 아카데미 복귀를 막아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을지도 모른다.

     

    “네에? 저 수인족 안 싫어하는데요.”

    “수인족에 비해 인간의 열등한 점을 세 가지 대보십시오.”

    “종족보너스가 별로고 한계돌파요구수치가 제일 높은데다가 최대로 늘릴 수 있는 키가 너무 작아요!”

    “한계돌파…?”

    “능력치가 일정수치 이상부터는 대부분 캐릭터 성장한계가 걸려서 특별한 아이템이나 업적으로 한계치를 올려야 하잖아요. 엘프는 민첩 90까지 그런 거 없고 오크도 근력 90까지 프리패스인데 인간만 죄다 70에서 막히고!”

    “디스트로이어가 참 많은 걸 알려줬군요. 역시 당신에게도 용사의 길을 걷게 하려는 건가요. 후후. 보는 눈이 같다는 점에서는 그도 참 여전하군요.”

     

    하지만 이 정도로 오크노디의 우수함을 알아주는 인재가 있다면 그리 나쁜 물만 들어서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해했습니다. 오크노디. 당신이 바라는 건 한계돌파에 필요한 업적 달성이었다는 것을. 그래서 그렇게나 살업을 갈망했었군요. 향상심이란 손에 피를 묻히길 두려워하지 않을 강한 욕구이죠.”

     

    이사장은 실익을 위해서 손에 피를 묻힐 참극을 권하였고, 오크노디는 효율을 논하며 편을 들 세력과 적이 될 세력을 뒤집자고 주장했다.

    심지어 그것이 행하지 않아도 될,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을 참극임에도.

    오직 자신의 강함만을 위해서.

    인간의 몸에 주어진 가능성의 한계를 돌파하고자.

    친애의 감정은 있지만 절제의 감정은 없다.

    생명을 존중하지만 효율 앞에 짓뭉갤 수 있다.

    이사장은 깨달았다.

    오크노디가 물러 터졌다고, 잘못 성장했다고.

    그런 인상은 전부 착각이었다.

    이 아이의 본질은 자신만큼이나 흉악하다.

    법과 도덕에 일그러지고 왜곡되더라도 존재의 본질, 힘에 대한 갈망이 거세당하지 않았다.

    저 귀여운 그릇의 내면에 깃든 자아는 인육의 포식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마인들보다도 더한 무자비의 극치로 이루어져있다.

     

    “무엇부터 시작할까요?”

    “50층 정복을 위해 수집품지원을 해주세요!”

    “힘은 충분할 텐데요?”

    “그래도 지원해주기로 약속했잖아요?”

     

    약속을 응용해 선의만으로 이루어진 함정으로 상대가 약속을 깨게 만드는 방법을 보여주고 함정에 빠지거든 교훈을, 함정을 피하거든 칭찬을 주려던 그의 교육마저도 뛰어넘었다.

    약속을 무기 삼아서 지원을 요구한다.

    자신의 입장을, 약속의 가치를 명확히 이해하고 대가를 징발한다.

     

    “하하하. 좋습니다. 레어등급으로 채워드리죠. 무기, 방어구, 곤충, 약초, 물고기. 당신의 특화가방에 해당되었던 분야의 수집품으로!”

    “아, 물고기는 괜찮아요! 낚시도감은 자기가 직접 낚은 것만 판정되거든요.”

    “그럼 이렇게 하죠. 낚시터를 하나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그곳에서 전부 낚아보십시오.”

    “와아! 파파 최고!”

    “후후. 아닙니다. 저야말로 낚시조차 ‘수집’의 대상이 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는걸요. 덕분에 새로운 돌파구를 하나 얻었습니다. 하하하하하.”

     

    인간성이 유린되는 대화를 주고받는 세상에서 가장 위험한 부녀의 대화 앞에서 싱은 제냐와 손오천의 고향이 파괴당하기까지 약간의 유예만이 남았음을 깨달았다.

    저들의 낚시라는 유희가 끝나는 순간, 인류경계선 너머의 수인들의 대수림은 불타기 시작한다.

     

    ‘지젤. 네가 남겨준 도구를 이렇게나 빨리 쓰게 될 줄은 몰랐군.’

     

    싱은 마법시계 밑에 숨겨둔 쪽지에 빠르게 글자를 적었다.

     

     

    * *

     

     

    ━━━

    낚시도감수집이 끝나는 순간, 대수림이 불타오른다.

    ━━━

     

    한 줄의 문장을 적을 수 있는 문자전송의 종이 위에 싱의 전언이 떠올랐다.

    오크노디와 싱 두 사람만이 훈련의 탑에 남았을 때, 무슨 일이든 도움이 필요한 사태가 닥친다면 반드시 사용하라고 남겨준 구명의 수단.

    그곳에 자신의 목숨을 기회와 맞바꾸어 전달된 정보가 지젤의 눈을 의심하게 만들었다.

     

    “도감수집… 대수림 방화…?”

     

    수집이라는 말은 그에게 너무나도 익숙하다.

    오크노디가 입버릇처럼 달던 말버릇이었으니까.

     

    -완두콩요리는 건강에 좋으니 몇 번을 먹어도 된다고요? 싫어요! 건강한 완두콩을 열 번 먹는 것보다 불량젤리 10종류를 먹는 쪽이 가성비가 더 좋은걸!

    -그래도 콩요리도 드십시오. 꼬마숙녀가 230cm까지 무럭무럭 자라려면 영양벨런스도 챙겨야죠.

    -도감수집은 첫 컬렉션 수집이 중요한 거 몰라요? 부자들이 괜히 온갖 산해진미를 골고루 먹는 것이 아니라고요.

    -자꾸 그러면 이사벨에게 뭐든 처음 먹는 음식에 완두콩을 더하라고 할 겁니다?

     

    콩 먹기 싫다고 투정 부리던 아이와 옥신각신하던 나날들이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좋은 기억은 사람을 따스하게 만든다.

    변치 않을 기억이라면 더욱 오래도록.

     

    “…비상연락망을 가동합니다. 암흑상회의 본신의 힘을 사용해야겠군요.”

     

    암흑상회란 아카데미 내부에서 지젤이 만든 사조직.

    그러나 동명의 조직은 아카데미 내부에서 탄생하기 전부터 일찍이 제국의 어둠에 싹트고 있었다.

    아무리 더러운 하수구에서도 바람에 날린 씨앗으로부터 꽃이 피어나듯이.

    제국의 더러운 오수를 먹고 자라난 <암흑상회>의 눈은 암거래와 밀매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 펼쳐져있다.

     

    “<혁명가>에게 전하십시오. 도이치 왕국의 대수림 인류경계선에서의 군단활동을 저지한다면 그가 오래도록 바라던 전폭적인 혁명지원을 약속하겠다고.”

     

    누군가가 도감에 수집할 물고기를 낚는 시간은 다른 누군가가 대륙에 닥칠 새로운 전란을 저지하기 위해 권력을 사용할 시간이었다.

    제국의 황제를 끌어내릴 요량으로 힘을 키워온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3인.

    삼대거악의 일원, <혁명가>.

    그의 힘을 빌리는 대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암흑상회는 지금까지 이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혁명세력에 더해야만 한다.

    그렇지만 이걸로 수인과 인간 사이에서의 평화를 연장시키고 오크노디가 피를 보지 못하게 막을 수 있다면, 마냥 비싼 대가는 아니다.

     

    “…그래도 이 구도는 위험하군요. 한시라도 빨리 오크노디를 이사장의 곁에서 떼어놓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참상이 앞으로 몇 번이고 더 일어나려 할지도 모른다.

    가뜩이나 재단이 인류경계선 너머의 온갖 소수민족의 땅을 침략하며 그들의 신앙의 상징을 꺾고 뿌리 뽑고 불태우며 호전성을 보이는 지금은 더욱 위험하다.

    오크노디에게 안 좋은 물이 들 수도 있다.

    한 번은 암흑상회의 힘으로 막았지만 솔직히 두 번은 어렵다.

     

    ‘애초에 암흑상회의 힘을 양지로 끌어낸 것부터가 심상치 않다. 어쩌면 이사장이 처음부터 노렸던 건 자신에게 방해가 될 이들을 끌어내려던 것은…?’

     

    피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손발이 싸늘해졌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낚시하는 부녀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