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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5

    빛의 맞은편에는 항상 어둠이 있다.

    이를테면, 휘황찬란한 빛을 내는 상가거리 귀퉁이의 이 우중충한 장소처럼 말이다.

     

    그 누구도 찾지 않았는지 인기척조차 희미한 작은 가게에는 이렇다 할 간판도 걸려져 있지 않았다.

    다만, 상품이 상자에 담겨 진열되어 있을 뿐.

     

    도무지 문이 열려있는지, 장사는 하고 있는 건지도 잘 모를 그곳에는 당연히 어린아이는 커녕, 눈길을 주는 손님조차 찾아볼 수가 없다.

     

    하기사, 정령절과 같은 특별한 날에 굳이 그런 보잘 것 없는 가게에 눈길을 주는 자는 필시 범인들은 이해할 수 없는 괴짜이거나, 분명한 목적을 지니고 있는 사람일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 손을 들었다.

     

     

    -딸랑.

     

    역시나 문은 열려 있었다.

     

    문 앞의 알림판이 ‘닫힘’이 아닌 ‘열림’으로 표시되어 있었으니 당연한 것일지도.

    그렇게 손님이 들어왔음을 알리는 방울소리를 들었는지, 창고나 다름이 없는 상태의 가게 안쪽에서 누군가 걸어나왔다.

     

    “하하, 오늘의 첫 손님은 낯익은 얼굴이로구나.”

     

    중후한 여인의 목소리.

    그녀의 모습은 역시나 익숙했다.

    하지만 낯이 익다니, 역시 그녀는 가면 너머의 얼굴을 단번에 알아차렸단 말인가.

     

    “…….”

    “그래,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

     

    그녀는 입가에 은은한 미소를 품으며 말했다.

     

    “그래, 이곳은 어떻게 찾았느냐?”

    “당신이 내게 남긴 물건을 보고.”

     

    그는 주머니에서 작은 열쇠하나를 툭, 꺼내보았다.

    그 열쇠는 언젠가 아이가 자신에게 선물로 주었던, 작은 오르골의 태엽열쇠였다.

    안타깝게도 오르골은 세월에 흘러가 없어져버리고 말았지만, 여전히 열쇠는 남아서 그 추억을 되새길 수 있게 해 주었다.

     

    열쇠만 보더라도 그 오르골에서 흘러나오던 음율, ‘프륑켈 거리의 장난감가게’가 떠오르게 하는 것이다.

    ‘프륑켈 거리’ 사실 그 힌트만 있으면, 거기에서 또 하나의 가게를 찾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이다.

     

    “메를린.”

     

    남성의 앳된 목소리를 들은 그녀는 한탄을 하듯이 그리 말했다.

    애석한 눈동자가 그의 얼굴을 훑으며 낮게 중얼거렸다.

     

    “아이야, ’그’가 보낸 거냐? 그래서 네가 내 목숨을 받으러 찾아온 거니?”

     

    ‘그’.

    선의 너머에서 살아가는 자들의 왕, 늙은이.

    그가 세번째 아이를 통해 자신의 목숨을 취하려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정말로 슬픈 일이 될 테지.”

     

    자신이 만든 최고의 인형에 찔리는 인형사라, 아마도 그것은 상당히 비극적인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그녀의 앞에 선 ‘인형’은 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저 조용히 가면을 벗으며 입을 열었다.

     

    “’그’와는 관련 없습니다.”

     

    이미 자신은 ‘그’가 아닌 다른 이에게 몸을 담은 자.

    자신이 메를린을 찾은 것은 고작 ‘목숨을 받으러 왔다’는 등의 그런 시시한 것이 결코 아니었다.

     

    “저는, 다른 분을 섬기고 있으니까요.”

    “다른 분이라니?”

     

    예상치 못한 대답에 그녀가 의문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말고 다른 세력이 이 에이레스에 들어왔다는 소식은 전혀 들려온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이미 에이레스는 ‘그’라는 거대한 고룡의 레어나 다름이 없는 상태.

    그녀가 알기론 그런 곳에 머리를 들이밀 수 있는 조직은 정말로 많지 않았다.

    설명을 원하는 듯 한 그녀의 눈빛에 서드는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분입니다.”

     

    그는 가만히 자신이 섬기는 자의 면면을 떠올려 보았다.

     

    어려보이나, 어린 것은 아니고.

    약해보이나, 약하지 않고.

    순수해 보이나, 영악하며.

    우둔해 보이나, 누구보다 지혜롭다.

     

    모든 것이 모순 그 자체인 그는, 단순히 말 몇 마디로는 설명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다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있었다.

     

    “저를, 구해주신 분이죠.”

     

    그렇다.

    서클로부터, 약으로부터, 그리고 동시에 ‘그’로부터 그녀는 자신을 구했다.

    그것이 그녀를 맹목적으로 따를 수밖에 없는 가장 큰 이유.

     

    그 사실 만으로 그녀가 악인인지, 선인인지, 어쩌면 무슨 생각과 계획을 갖고 있는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그리고 그분이 당신의 ‘인형’을 원하고 계십니다.”

     

    그녀의 입가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흥미로운 이야기로구나.”

     

    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손을 허공에 휘저었다.

    그러자, 보이지 않는 마력의 실이 그를 지나쳐 ‘열림’이라 쓰여져 있던 팻말을 ‘닫힘’으로 뒤집어버린다.

     

    그 광경에 그는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언제부터 실이 준비되어 있었던 거지요?”

    “하하, 그건 말해줄 수 없단다.”

     

    인형을 다루는 실을 드러내지 않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인형사의 자질이니까.

     

    ————-

     

    -타다닥-!

     

    그 뒤를 쫓는 부모도 없이 혼자서 초조한 표정으로 장난감 거리를 부리나케 뛰어다니는 한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는 한참을 달리다 인형들이 전시된 유리창 앞에 얼굴을 박고 무언가를 찾는 것 같아 보였다.

    정령절에 인파에 밀려 부모의 손을 놓쳐 길을 잃은 것일까?

    그 정도의 사안이 아니고서야 저렇게 얌전한 옷을 입은 아이가, 그것도 운동화도 아닌 구두로 저렇게 뛰어다닐 이유는 없을 테니까.

     

    그 모습을 보면 누군들 참견하지 않을 수가 없으리라.

     

    “저기……. 혹시 길을 잃었니? 엄마나 아빠는 어디에 있어?”

     

    누군가 다가오는 기척이 느껴진 그 소녀는 곧장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그런 거 아니니 신경쓰지 말게.”

    “응? 그, 그래?”

     

    그러나 놀랍게도, 저 끝에서부터 그렇게 달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이의 숨소리는 조금도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별로 오래 달리지는 않은 걸까?

    게다가 자신을 바라본 표정은 아주 평안하기까지 하다.

    그 모습을 보면 아이는 부모님을 잃어버린 것조차 아닐 수 있다.

     

    그가 ‘단순한 착각인가?’라고 생각할 찰나, 소녀가 말했다.

     

    “미안하네! 지금은 좀 바빠서!”

    “어? 어…….”

     

    그렇게 말하고는 또 쌩하니 가버리는 아이의 뒷모습을 망연히 쳐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걱정하는 눈길과 관심을 받은 것이 벌써 5번 째.

    루크는 벌써부터 정신적으로 지쳐가기 시작했다.

     

    ‘한정판을 구하는 것이 이토록 힘들 줄이야…….’

     

    루크는 새삼 메루루의 인기를 실감하고 있었다.

     

    가는 곳마다 매진, 아니면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그것도 아니면 현재 다이튼이 건네 준 돈으로는 구매할 수 없을 정도로 비싸던가.

     

    흥정도 잘 통하지 않았다.

    최대한 아양부리며 정가로 팔아달라고 부탁까지 해 봤는데, 그 돈에 미친 작자들은 오히려 자신의 그 행동을 보고 ‘값을 깎으려고 다른 누가 시킨 것 아니냐?’며 의심하는 바람에 거절당했다.

    사실 그건 어린아이의 가죽(?)을 이용하려는 루크의 입장에서보면 아주 틀린 말도 아닌지라 완강히 반박하지는 못했다만…….

     

    ‘과연, 장사가 안 되는 곳은 다 이유가 있나 보군.’

     

    심지어는 품질도 별로 안 좋아 보이는 것이 짝퉁이 아닐까 싶어서 별로 미련도 안 생겼다.

    누가 보면 여우와 신 포도 전략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실제로 그랬다.

     

    아마 그건 어떻게 산다고 해도 디아나가 며칠 가지고 놀면 고장나지 않을까.

     

    “하아. 메루루는 내 생각보다 훨씬 대단한 모양이로구나.”

     

    루크는 자신에게 자꾸 그런 말 하지 말라며 딱밤을 때리던 청년이 떠올랐다.

    솔직히 아픔이라고는 조금도 느껴지지 않을 정도였지만, 그 기분만큼은 확실히 전해졌으니 말이다.

     

    ‘정말로 이제 남은 게 없는 걸까?’

     

    어느새 외딴 골목길의 가게까지 와 버린 루크는 그렇게 한숨을 쉬며 터덜터덜 걷고 있었다.

     

    그 때, 루크의 전화기가 울렸다.

    확인해 보니, 그것은 다이튼이었다.

     

    사실 다이튼이 전화를 건 이유야 뻔하다.

    아마도, 이제 그만 찾으라고 하는 것이겠지.

     

    -루크, 그렇게 찾아도 없으면 그냥 오는 게 어때? 그 정도면 충분히 노력했다고 생각해. 네가 찾는 그거 말고 그냥 아무 인형이나 사서 가자. 뭐, 한정판이 아니면 어때. 디아나도 이제 알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지 뭐.

     

    “하지만…….”

     

    루크는 찜찜함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한정판이 아니어도, 선물을 받은 디아나는 기뻐하기는 하겠지만…….

     

    “하아. 어쩔 수 없지. 그렇게 하자꾸나.”

     

    디아나가 한정판이라는 특수성 보다는 메루루 그 자체를 더 좋아하기를 바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려던 찰나…….

     

    루크는 발견했다.

    박스에서 막 꺼내어 진열장에 전시되어 있는, 한정판 메루루의 인형을 말이다.

     

    루크는 곧장 걸음을 멈추고 외쳤다.

     

    “잠깐만, 다이튼. 발견한 것 같다!”

    -뭐? 진짜야?

     

    루크는 즉시 유리창에 얼굴을 착 붙이고 그 박스의 내용물을 유심히 살폈다.

    그것은 틀림없는 한정판 인형이었다.

     

    “그래! 틀림없어!”

     

    그것은 심지어 여타 짝퉁 제품들처럼 품질도 조악하지 않았다.

    게다가 어찌나 훌륭한 제품인지, 200명 한정으로 팔려나갔던 그 정품보다도 품질이 더 좋아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다만 문제라면, 가게에는 간판도 없고 문도 닫혀 있다는 것 정도일까.

    루크는 의아했다.

     

    ‘설마, 이 가게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건가?’

     

    오늘은 정령절, 정상적인 장난감 가게라면 오늘만큼은 무슨 일이 있어도 운영을 해야 시장경제에 따라서 돈을 벌 수가 있을 텐데.

    게다가 저 한정판 인형은 최근에 발매된 것.

    그런 것이 가게에 있다는 것은 분명 최근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렇게 루크가 그런 의문을 품으며 생각을 하고 있으니, 안 쪽에서 무언가 미세한 말소리가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다이튼, 잠시만 끊겠다.”

    -어? 그래, 알겠어.

     

    말소리가 들리는 것이 맞는지 더 자세히 확인하기 위해서 다이튼의 전화를 끊은 루크는 이내 귀를 유리창에 딱 붙이고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안쪽에서 무슨 말소리 같은 것이 확실히 들려오고 있었다.

     

    ‘그렇군, 그를 죽이려 하려는 건가…….’

     

    안쪽에서 들려온 대화소리는 루크를 멈칫하게 만들었다.

     

    “……죽여?”

     

    그렇게 그 내용을 우연히 들은 루크는 도대체 인형점에서 어떻게하면 ‘죽인다’라는 단어가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깊이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무언가 이거다 하고 떠오르는 이유는 마땅히 없다.

    어쩌면, 이 대화는 살인 모의일지도 모른다.

     

    ‘만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지금 한정판 인형이 문제가 아니로군.’

     

    루크는 꽤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내용을 조금 더 엿듣기로 했다.

    부디 심각한 이야기가 아니길 바라면서.

     

    ‘그래서……. 이런 일이…….’

    ‘어쩔 수 없는…….’

     

    하지만 뒷 내용은 대화의 소리가 너무 작아서 집중을 해도 도무지 잘 들리질 않았다.

    그렇게 루크가 청각에 집중하며 인상을 쓰던 찰나.

     

    -뚜르르르르….

     

    “흐약!”

     

    돌연 주머니 속에서 울려퍼진 전화기의 벨소리에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뭐야, 다이튼인가? 왜 갑자기 또 전화를?’

     

    루크가 당황하며 전화기를 확인해 보니, 발신자는 다이튼이 아닌 서드였다.

     

    서드는 원래 자신의 휴대폰이 없었으나, 최근에 예르나의 도움으로 신분이 생겨 휴대전화를 개통 한 덕에 이미 연락처를 교환한 상태였다.

    루크는 빠르게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이내, 다시 한번 전화벨이 울리기 시작한다.

    무언가 급한 내용이라도 있는 걸까.

     

    ‘정말, 곤란한 타이밍이군! 하필 이런 때에!’

     

    루크가 다시 한번 전화를 끊고 빠르게 문자로 ‘지금 내가 전화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라서, 잠시 후에 통화하면 안 되겠느냐?’라고 보내려던 순간, 또 한번 전화가 왔다.

    정말로 어지간히 급한 안건인 것이 틀림없다.

     

    하지만 역시 타이밍이 나빴다.

    이대로 있다 가는 아무것도 안 되겠다 싶어 어쩔 수 없이 전화기를 무음으로 돌려버리려던 순간, 닫혀 있던 가게의 문이 벌컥 열리며 익숙한 얼굴의 남자가 걸어나왔다.

    전화기에 정신이 팔려 내부의 발소리에 신경을 쓰지 못한 모양이다.

     

    “어? 서드? 네가 왜 거기에서 나오느냐?”

    “어, 스승님? 스승님이야말로 가게 앞에서 뭘 하고 계신 겁니까?”

     

    기막힌 우연이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게 머선 일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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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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