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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5

       

       

       

       

       

       235화. 깨지다 ( 5 )

       

       

       

       

       

       예로부터 파괴와 창조는 동전의 양면과 비슷한 성질인 경우가 많았다.

       

       불은 파괴와 새로운 시작을 상징했고, 인도의 시바는 창조를 위한 파괴의 신으로 유명하다.

       

       무언가를 만든다는 것은 헌 것을 파괴하고, 폐허가 된 위에서 피어나는 새로운 시작인즉.

       

       “전에 있던 거를 깔끔하게 부순 다음에 쓰는 편이 좋겠네.”

       

       케넬름의 말에 따르면, 지금 차원의 경계는 거의 다 허물어져서 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하였다.

       그런 것을 어설프게 살리려고 해봤자 오히려 일을 그르칠 가능성이 컸으니.

       

       애초부터 몽땅 치운 다음에 깔끔하게 내 방식대로 차원의 경계를 새로 만드는 편이 좋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해결해야 할 것이 여럿이다.

       

       ‘우선 차원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어도 되는 건지, 그걸 확인해야 해.’

       

       막무가내로 차원의 경계를 허물었다가 무슨 일이 일어날 줄 알고 그러는가.

       최악의 경우에는 경계가 없어져서 심연과 지상이 충돌하고 합쳐지는 사태가 일어날 수도 있다.

       

       침대의 끝에서 끝까지 크게 뒹굴며 곰곰이 생각했다.

       

       ‘에… 으어…’

       

       생각한다.

       

       “으… 우으….”

       

       진짜로 열심히 생각했다.

       갑자기 차원의 경계가 사라지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모르겠네.”

       

       결론은 모르겠다.

       

       솔직히 말하자면 조금 억울한 감이 없지 않다. 내가 이렇게 될 줄 알고 균열을 막 열었겠냐고.

       

       간당간당하게 숨통만 붙어있던 것에 내가 막타를 치게 될 줄은 진짜 몰랐지.

       

       “에휴. 불평해 봤자 뭐 하겠냐…”

       

       바뀌는 것 하나 없는 게 현실인데.

       

       ‘심연, 심연, 심연이랑 지상…’

       

       저번에 봤던 심연이 어떻게 생겼더라?

       

       지평선까지 크게 펼쳐진 붉은 황무지와 요사한 보랏빛의 독무, 하늘을 가득 채운 먹구름과 온갖 괴상한 식물들이 사는 곳이었다.

       

       “…어라?”

       

       뭔가 미묘한 위화감.

       

       그 희미한 실마리를 잡기 위해 잔뜩 집중했다.

       

       ‘하늘하늘한 천이랑 비슷하게 생긴 차원의 경계… 심연… 지상…’

       

       따로따로 흩어진 파편들.

       

       한참이나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고 있으니, 문득 몸 안에서 얌전히 있던 별빛이 살짝 움직이며 내 뒤통수를 툭 치고 지나갔다.

       

       “어?!”

       

       그와 동시에 번쩍 떠오르는 영감.

       

       벼락에 맞은 것처럼 정신이 번쩍 들며 하나의 추측이 지나갔다.

       

       “아니, 설마?”

       

       후다닥 몸을 일으켜 《세계 탐험 모드》로 향했다. 내가 집중하면 굳이 핸드폰을 안 써도 되지만, 귀찮았다.

       

       슥, 스슥ㅡ

       

       지상의 이곳저곳을 훑어본다.

       

       넓은 초원과 힘차게 흐르는 강물, 웅장하게 솟은 산맥. 보기만 해도 가슴이 뻥 뚫리는 풍경을 지나 계속해서 화면을 옮긴다.

       

       보면 볼수록 미묘했던 추리는 점차 확고하게 굳어가며 하나의 가설로 이어졌다.

       

       “……”

       

       진짜인가?

       

       “씁… 왜 심연이랑 지상의 모습이 조금 비슷해 보이지?”

       

       전체적인 모습을 본다면 분명 심연과 지상은 다르다.

       

       심연은 산맥이나 구릉지 하나 없이 넓은 황무지의 연속이고, 지상은 온갖 산맥과 언덕과 계곡이 있으니까.

       

       하지만, 어째서인지 심연과 지상의 모습이 계속해서 겹쳐 보인다면 그것은 기분 탓일까?

       

       거기에 차원의 경계가 하필이면 하늘하늘한 천의 모습으로 보였다는 것도 조금 신경 쓰였다.

       

       차원의 경계라고 한다면 구체의 모습으로 차원을 둘러싸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천이라니.

       

       ‘거기에 마모된다는 것도 사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데.’

       

       기억에는 없지만 최초의 하나였을 내가 만든 차원의 경계다. 아마 힘으로 따지자면 가장 전성기의 시절. 그럴 때 만든 경계가 겨우 시간 좀 지났다고 마모된다고?

       

       어림도 없는 소리.

       

       본래의 힘을 4할이나 소화한 지금이라면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지금의 내가 전력을 다하면 억겁이 아니라, 우주가 망할 때까지도 멀쩡한 것을 만들 수 있다고.

       

       ‘아마 원래부터 시간이 흐르면 마모되게 만들었다는 편이 합리적이지.’

       

       최초의 하나였을 내 의도는 그게 맞을 거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때의 나는 심연과 지상을 가르는 경계를 의도적으로 약하게 만들었다.

       

       적당한 시간이 흐르면 심연과 지상 사이의 경계가 무너지도록.

       

       “도대체 왜…?”

       

       왜.

       

       나는 왜 심연과 지상의 경계가 무너지도록 안배를 해두었을까.

       

       만약 시간이 흐르면서 경계가 자연스럽게 무너지도록 한 것이라면, 내가 이 경계를 건드리는 것이 맞는 걸까.

       

       “조금 더 알아볼 필요가 있겠네.”

       

       도대체 최초의 하나였을 때의 나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짓을 한 것일지.

       

       그저 단순히 새삥으로 갈아 치우면 될 것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조금 다르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 * * * *

       

       

       

       “흥, 흐흐흥ㅡ”

       

       쏴아아, 시원하게 떨어지는 물을 맞으며 케니스가 경쾌하게 콧노래를 불렀다.

       

       요즘 들어 케니스의 자존심과 자긍심, 자존감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은 까닭이다.

       

       어쩌다 꾸중을 들어 조금 침울할 때도, 거울을 보며 혼자 나는 누구?

       

       “인류 최초의 성녀의 후손이자, 직접 가르침을 받은 직계 제자.”

       

       하면서 되뇌이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이다.

       

       그녀의 기분이 좋은 것과는 별개로, 요즘 세상 돌아가는 꼴은 참으로 흉흉하기 짝이 없었다.

       

       겨울 동안 마수들이 지랄 발광을 하며 민심을 흉흉하게 하더니, 그간 쌓인 눈이 녹으며 봄이 됐으니 조금은 조용해진다ㅡ 싶으니까 이번엔 악마들이 말썽이었다.

       

       마수와 악마가 쌍으로 교대를 해가며 난동을 부리는 것이 아주 완벽한 호흡.

       

       마수가 난동을 부릴 적에는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라도 할 수 있었는데, 이 썩을 놈의 악마들은 허공이나 땅 속, 심지어는 침대 밑에서 불쑥불쑥 나타나기 일쑤였다.

       

       ‘거기에 더욱 심한 이상 현상은 따로 있으니까…’

       

       시간이 흐르며 유독 악마가 자주 나타나는 땅은 심연에 오염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일대의 땅은 붉게 메마르고, 사악하고 끈적한 독무가 흐르고.

       마치 심연의 일부를 뚝 잘라다가 지상으로 옮긴 듯 보였으니, 이를 ‘심연화’라고 칭했다.

       

       유니콘과 한스가 이르기를.

       

       “차원의 경계가 무너져서 그렇다고 합니다.”

       

       《푸르르륵… 이 차원의 경계라는 것은 차원을 보호하는 갑옷과도 같은 것인데, 그것이 지금 매우 약해진 상황이라네! 그래서 두 차원 간의 간섭이 매우 심해진 거지.》

       

       막막하다.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나타나는 악마도 대처하고, 점점 숫자가 늘어나는 심연화도 해결해야 할 텐데.

       

       그 원인이 차원의 경계라는 것이라고?

       

       “그, 그런… 그렇다면 그 차원의 경계라는 것을 어떻게 다시 고칠 수 있겠습니까?”

       

       《이히힝. 그건 우리 같은 미물들이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것! 이 세상에서 오롯하신 분께서만 가능하신 일이네.》

       

       “여섯 번째, 아니. 위대하신 하나께서 말입니까?”

       

       오직 신만이 차원의 경계를 고칠 수 있다.

       유니콘에게서 그런 말을 들은 이들은 도리어 조금 안심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휴. 그렇다면 한시름 놓았군요.”

       

       “허허. 그러게 말입니다. 위대하신 분께서 행하는 일이라면 전부 까닭이 있는 것이겠죠.”

       

       “이대로만 갑시다!”

       

       이건 필멸자의 손을 벗어난 문제다. 신만이 해결할 수 있다.

       그렇게 말을 들었더니 오히려 조금은 안심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아예 손을 놓는다는 뜻은 아니었으니, 결국 악마를 때려잡기 위해 밤낮없이 뛰어다녀야 하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쿠오오오!! 악마! 찢는다!!”

       

       “큰 뿔! 존나 큰 뿔! 내장도 존나 크겠지!!”

       

       “케ㅡ넬름께! 악마의 두뇌를 바치리라!!”

       

       그 과정에서 케넬름에게 훈련받은 전사들이 큰 공을 세웠다.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단련된 이들이 한 무리의 전차처럼 달려가서 악마들을 차곡차곡 다지는 그 모습이라니.

       

       “우웩! 우웨에에엑!!”

       

       제법 거칠게 살았다고 생각한 프리가가 그 꼴을 보고서는 하루 동안 고기를 못 먹을 정도였다.

       

       대충 그런 느낌으로, 만신전과 대륙은 악마의 난동을 제법 순조롭게 막아내고 있었다.

       

       사전에 마수의 궐기로 잔뜩 경계하고 있던 것이 첫 번째 이유였고, 악마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 두 번째 이유였다.

       

       ‘그래도 심연화로 땅이 오염되는 건 어떻게 막아낼 방법이 없으니…’

       

       케니스가 물기를 잔뜩 머금은 머리를 탈탈 털며 생각했다.

       

       악마는 죽이면 된다. 

       

       허나, 심연의 모습으로 변해가는 땅은 손쓸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지상에 박힌 심연은 마치 역병처럼 제 영역을 조금씩 넓히려는 성질마저 있었으니.

       그저 접근을 막아 독무에 죽는 이가 없도록 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사아아ㅡ

       

       몸을 은은하게 감싸는 별빛을 휘감으며 케니스가 주먹을 단단하게 쥐었다.

       별빛, 이 힘을 쓴다면… 심연의 오염을 어느 정도 막아낼 수 있지 않을까?

       

       할 수 있다.

       아니, 분명 가능하다.

       

       케넬름이 직접 가르친 별빛의 힘이라면, 분명 심연의 오염을 늦출 수 있을 것이다.

       

       ‘아빠한테 말해서 한번 시험이라도 해봐야겠다.’

       

       쇠뿔도 단김에 뽑으라고.

       샤워를 마친 케니스는 곧바로 데모닉에게로 향했다. 

       

       “좋다. 한번 해보자꾸나.”

       

       의외로 데모닉은 케니스의 제안을 시원하게 승낙했다. 데모닉이 반대할 것을 대비해 여러 반박할 준비를 마쳤던 케니스가 당황할 정도.

       

       “어… 전 하지 말라고 하실 줄 알았는데, 되게 별말 없으시네요?”

       

       “지금 상황을 알면 너도 그런 소리를 못 할 거다.”

       

       만신전과 각국의 수뇌부가 필사적으로 심연화에 대해 통제하고 있기에 민간에서는 심연화에 대한 사실을 모른다.

       

       그도 그렇다.

       한번 심연에 오염된 땅은 원래대로 돌아오지 않고, 점차 영역을 넓혀가며 진한 독무가 흘러 모든 생명을 녹인다.

       

       이런 사실이 알려져 봤자 혼란이 가속되기만 할 뿐.

       

       “그런데 요즘 심연에 오염되는 곳이 점점 늘어나기 시작했다. 증가하는 속도가 너무 빨라. 이제 숨기고 통제하는 것도 거의 한계에 다다를 지경이다.”

       

       “그러면 악마는ㅡ”

       

       “어차피 잔챙이들이다. 진짜 문제는 심연에 땅이 오염되는 거고.”

       

       그리 말하는 데모닉의 표정은 매우 심각했다.

       

       심연에 오염된 땅은 통제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던 차.

       

       마침 케니스가 자신의 별빛으로 이를 해결하겠다고 나선 것이니, 제아무리 데모닉이라도 이를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케니스와 데모닉은 성도를 나서 말을 타고 한참이나 달렸다.

       

       숲을 건너고 강을 두어 개 통과했을 무렵, 커다랗게 솟은 나무 울타리와 삼엄하게 무장한 기사들이 보였다.

       

       우뚝 솟아 펄럭이는 만신전의 깃발. 성기사들이다.

       그들은 어째서인지 바깥보다는 울타리 안쪽을 보고 있었다. 마치 울타리 안에 있는 것을 경계하는 것처럼.

       

       “하나 된 신의 가호가 있기를! 팔라딘님, 용사님! 고생 많으십니다!”

       

       성기사들의 빠릿한 인사를 받아준 케니스와 데모닉이 울타리 내부로 향했다.

       

       밖에서 보이지 않는 울타리의 내부에는 온갖 종류의 항마부가 가득했다.

       모두 독기와 사악한 기운을 정화하는 종류들.

       

       그중 적지 않은 숫자가 까맣게 오염되어 있다.

       

       치이익ㅡ

       

       “우윽.”

       

       곧이어 알싸하게 피부를 찔러오는 독기에 케니스가 작게 신음을 흘렸다. 

       

       “항마부를 받으렴. 독을 몰아내는 종류란다.”

       

       데모닉이 건넨 항마부를 들자 매섭게 몰려오던 독기가 훨씬 옅어졌다. 그제야 여유가 생긴 케니스가 울타리의 내부를 훑어봤다.

       

       먼저 커다랗게 솟은 나무의 벽이 보인다. 얼마나 크게 벽을 만들었는지, 성인 남자 두 명이 서로 목말을 태워야 내부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도대체 무슨…”

       

       동그랗게 공터를 둘러싼 울타리의 내부.

       본래라면 푸릇한 새싹이 올라와야 할 평원은 잔뜩 마르고 갈라진 검붉은 광야가 되어 있었다.

       

       치이이이…

       

       푸르른 평원과 검붉은 광야.

       

       서로 다른 두 개의 그림을 가위로 잘라다 붙인 것처럼.

       전혀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풍경이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다. 

       

       더불어 검붉은 광야에서 흘러나오는 보랏빛 독무가 초록빛의 평야를 야금야금 갉아먹으며 제 영역을 넓히고 있었으니.

       독무에 닿은 잔디는 녹아내리는 얼음처럼 물이 되어 뚝뚝 흘렀다.

       

       그 속도가 매우 느렸지만 꾸준하다.

       

       이런 독기를 뿜어내는 오염된 땅이 수십 곳이나 된다고?

       

       “케니스. 해볼 수 있겠니?”

       

       “…해볼게요. 아니. 꼭 해낼게요.”

       

       그제야 사태의 중함을 실감한 케니스가 각오를 다졌다.

       

       사아아아아ㅡ

       

       “……”

       

       한참이나 집중하며 케니스가 손안에 별빛을 모았다.

       

       상상하는 것이 곧 별빛이다.

       별빛은 가능성의 힘. 상상의 한계가 별빛의 한계.

       

       케니스의 고운 미간이 파르르 떨렸다. 한껏 집중하느라 땀이 비 오듯 흐른다.

       

       꿀꺽…

       

       이를 지켜보는 데모닉과 성기사들도 괜히 긴장하며 케니스의 손에서 빛나는 별빛을 바라봤다.

       

       “……하앗!”

       

       오랫동안 정신을 집중한 케니스가 두 손 가득 모은 별빛을 있는 힘껏 앞으로 뻗으며 크게 소리쳤고.

       

       콰앙!

       

       눈부신 폭발이 일어나 커다란 버섯 모양의 구름을 만들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항상 봐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다시 시작된 3일의 연휴…!! 그리고 예비군에서 돌아온 작가…!! 프리ㅡ덤!!

    – ‘신선우’님..!! 후원 정말로 감사합니다…!! 신의 계?획을 믿고 있어야 하는 이세계인들…!! 문득 하나의 명대사가 떠오르는군요…!!

    ??? : 너는 다 계획이 있구나??

    그럼요! 계획이 있을.. 겁니?다?? 그리고 저도 주문한 고라니 베개는 도대체 언제 오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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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Install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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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치형 무기 만들기 게
Status: Ongoing Author:
Out of boredom, I downloaded an idle weapon crafting g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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