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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5

       홀로 남은 도적은 바닥에 널부러진 자신의 동료들을 바라보다 기겁을 하더니 다급하게 말머리를 돌렸다.

       

       상대를 잘못 골랐다.

       

       당장 써먹을 수 있는 식료품을 가진 상인 하나에 여자 둘이 함께하기에 털어먹기에 적당한 상대라고 생각했거늘!

       

       제기랄. 일단 도망쳐야 해.

       

       저 년을 상대로는 살아남을 재간이 없어.

       

       “어딜 가려 그러는가. 귀중하지 않은 교보재여.”

       

       도적의 목적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저 멀리에 서 있던 가면 쓴 여자가 그의 앞을 가로 막고 있었기 때문에.

       

       “도망칠 수 있으리라 생각하는가?”

       

       그녀가 말머리 위에 손가락을 가져다대자 말이 움직임을 멈췄다.

       

       도적이 아무리 줄을 당기고 채찍질을 하더라도 똑같았다.

       

       방금 전까지 살아있던 말이 모형이 되어버린 듯한 광경에 도적은 손을 부들거리다 그 위에 있는 것을 모두 놓아버렸다.

       

       고수.

       

       자신 따위로는 감히 그 경지를 짐작할 수도 없는 압도적인 고수.

       

       운 좋게 이류에 올라섰다고 자만할 것이 아니었다.

       

       축하를 위한 고기와 술을 구해오자며 다른 분들을 꼬드기는 것이 아니었다.

       

       나지막히 아래를 바라보던 도적은 자신의 운명을 직감했다.

       

       이대로 죽는 건가?

       

       이렇게 죽는 건가?

       

       술자리를 만들 때면 죽는 건 전혀 두렵지 않다 외치던 그였으나 현실은 달랐다.

       

       죽음 앞에서 모든 인간은 평등했다.

       

       “살 방법을 알려줄까?”

       

       부들부들 떨리는 손만을 지켜보던 도적은 여자의 목소리에 고갤 들었다.

       

       “단순히 네 녀석의 목숨 뿐만이 아니다. 네 놈의 동료 모두를 살릴 방법이지.”

       

       여자의 목소리는 기이했다.

       

       귀를 뚫고서 뇌리에 직접 박히는 듯한 그 목소리는 도적에게 부정을 허용하지 않았다.

       

       헛된 희망을 품게 만들었다.

       

       “저… 정말입니까?”

       “그래. 본인은 거짓을 고하지 않는다.”

       “어떻게 하면 됩니까? 무어라도 하겠습니다. 무엇이든 하겠습니다. 그러니 제발.”

       “간단하다. 말에서 내려 저 아해와 싸워 이기거라.”

       

       도적은 여자의 손가락을 따라서 고갤 돌렸다.

       

       그 끝에 서 있는 것은 금색의 머리를 한 여자였다.

       

       끝이 어디에 달해있는지 짐작하는 것조차 어려운 상대가 아닌, 도적조차도 그 경지를 짐작할 수 있는 상대.

       

       저 여자는 나와 같다.

       

       이류의 초입에 머무르는 자.

       

       가능해. 충분히 가능해.

       

       저 정도 상대라면 나라도 이길 수 있어.

       

       “해볼 테냐?”

       

       선택지는 없었다.

       

       고개를 젓는 순간 어떤 꼴을 보게 될지 분명했으니.

       

       말에서 뛰어내린 남자는 허리춤에서 조잡스러운 검을 꺼내어 대창을 든 여성을 향해 돌진했다.

       

       서로 간의 인사?

       

       준비?

       

       그딴 건 생각지 않았다.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

       

       남자의 머릿속에 든 것은 저를 쓰러트리고 살아나가겠다는 생각뿐이었으니까.

       

       갑작스러운 기습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자는 능히 돌격에 대응을 해보였다.

       

       세찬 돌격이 창대에 가로 막힘에 따라 자연스레 대치가 만들어진다.

       

       *

       

       살아남기 위해 이를 악 문 도적의 얼굴을 살피던 엔리는 헛웃음을 흘렸다.

       

       동료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이를 악문 사람과 유희를 바라보듯 뒷짐을 진 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이라니.

       

       이래서야 완전 이 쪽이 악역이잖아요. 아라 씨.

       

       뭐. 그래도 확실히 창술의 연습은 될 것 같네요.

       

       상대가 최선을 다할 것 같으니까.

       

       대창을 손에 쥔 엔리는 도적의 다리를 눈에 담았다.

       

       육합대창도 창술인 이상 그 근간은 같다. 먼 거리를 유지하며 상대를 괴롭히는 것.

       

       그러니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상대방의 접근을 막고 주도권을 빼앗는 거다.

       

       이를 결정짓는 것은 첫 수.

       

       아피스에서의 엔리였다면 그녀는 여기서 발을 움직이지 않았을 것이다.

       

       상대가 들어오길 기다리며 그 의도를 끊어내는 데에 주력했겠지.

       

       허나 이 곳은 아피스가 아니고 그녀가 다루는 창술은 전혀 다른 것이니.

       

       엔리는 한 걸음 발을 앞으로 내딛으며 창을 내질렀다.

       

       첫 수. 발을 구르는 힘을 담아 그대로 내지르는 찌르기.

       

       급소를 노리고 날아드는 창 끝은 도적의 입장에서도 위협적.

       

       그는 다급히 몸을 틀어서 공격을 피해낸다.

       

       도적이 이 공격을 미리 파악하고 회피했다면 그는 창대 쪽으로 파고들 기회를 노릴 수 있으리라.

       

       허나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억지로 몸을 비틀어가며 선택한 회피는 상대에게 완벽히 주도권을 내어주는 선택지였던 것이다.

       

       주도권을 쥔 엔리는 쉴 새 없이 창대를 휘두른다.

       

       옆으로 휘둘러 타격.

       

       창 끝으로 다가오려는 상대를 위협.

       

       다리를 내리쳐 발걸음을 끊고.

       

       또 다시 공격.

       

       그 과정에서 도적은 단 한 번도 검을 휘두를 기회를 얻지 못했다.

       

       거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다.

       

       우선은 엔리가 지닌 대창이 길이였다.

       

       그 창의 길이는 무려 3M.

       

       도적의 조잡한 보법으로 몇 걸음을 걸어서야 겨우 도달할 수 있는 거리.

       

       대창의 끝이 그를 가리키는 한 도적이 어떻게 발악한다 한들 공격할 수가 없는 것이다.

       

       문제는 그 뿐만이 아니었다.

       

       대육합창의 근원이 되는 발구름.

       

       몸 전체를 이용해서 내지르는 공격에 담긴 힘은 결코 가볍지 아니하니.

       

       도적의 입장에서도 몸으로 받아내며 돌격할 생각을 하는 게 불가능해졌다.

       

       “빌어먹으으으을!”

       

       처음에는 살짝 긴장을 했던 엔리였지만 일방적으로 상대를 괴롭히고 있으려니 절로 입가에 웃음이 지어졌다.

       

       주도권이라는 게 참 좋기 하네요.

       

       뭘 하든 제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거니까.

       

       바꾸어 말하자면 이걸 놓치는 순간 그대로 밀려나게 될 것이라는 이야기였으나 그는 엔리에게 있어 해당사항이 아니었다.

       

       얼마 전까지 아라에게 죽어라 구르다 온 그녀다.

       

       한 순간의 방심으로 바닥을 구르기를 수도 없이 반복했는데 설마 실수를 저지르겠는가.

       

       그랬다가 어떤 꼴을 당할 줄 알고.

       

       엔리의 마음 속 깊은 곳에 박힌 공포는 그녀가 신을 낼 때면 등골을 타고 올라와 방심을 지워버렸다.

       

       – 무붕이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힘내! 도적! 넌 할 수 있어!]

       

       치열하게 흘러갈 줄 알았던 전투가 너무 일방적으로 진행된 탓일까.

       

       – 그래! 이대로 질 순 없잖아!

       – 한 번 보여줘!

       – 이렇게 이기면 기 살아서 겁나 깐족댄단 말이야!

       – 안대애에에에에. 지지마!

       

       시청자들이 도적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아니 이 인간들이.

       

       이 상황에선 날 응원하는 게 정상 아냐?!

       

       지라고 빌고 있는 게 말이 돼?!

       

       하. 이래서 포인트를 걸어야 한다니까.

       

       그래야 억빠해주는 사람들이 생기지.

       

       엔리가 실수를 일으켜 도적이 승리하길 바라는 시청자들의 모습에 엔리는 이를 악물었다.

       

       반골심리가 차올랐다.

       

       반드시 이겨 주겠어. 그 누구도 반박하지 못할 압도적인 승리를 만들겠어!

       

       그녀가 택한 것은 철저함이었다.

       

       하나의 변수도 주지 않고. 자그마한 신남조차도 억누르며. 거리를 벌리고. 상대를 괴롭히며. 데미지를 누적시켜. 무너트리는 것.

       

       “으아아아!”

       

       결국 견디다 못한 도적이 뒷일을 생각하지 않고 무작정 앞으로 내달렸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은 상태였다.

       

       데미지가 누적될 대로 누적된 그의 몸은 이미 최초의 날쌤을 잃어버린 지 오래였으니.

       

       지성을 잃어버린 그 몸은 엔리의 입장에서 괴롭히기 좋은 샌드백일 따름이었다.

       

       그렇게 도적은 시작한 그 순간부터 바닥에 널부러지는 그 때까지 제대로 된 공격 한 번 하지 못했다.

       

       압도적인 승리를 거둔 엔리는 대창을 어깨에 짊어지고는 어깨를 으쓱이며 아라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저 잘했죠? 엄청 잘 싸웠죠?

       

       자 빨리 칭찬해 주세요! 제가 시청자들에게 으쓱댈 수 있는 근거를 달란 말이에요!

       

       초롱거리는 눈으로 엔리가 칭찬을 요구하자 아라가 들으란 것처럼 헛웃음을 흘리더니 그녀의 앞으로 와서는 머리를 꾸욱 눌렀다.

       

       가면 탓에 표정을 볼 수는 없지만 그녀의 기분이 나빠 보이지 않는단 건 분명했다.

       

       “그래. 잘했다. 엔리.”

       “그쵸?! 저 잘했죠?!”

       

       후후후. 딱 대.

       

       아라 씨라는 이 세상의 권위자가 내 성과를 인정해줬다고.

       

       너희들이 아무리 날 억까하더라도 의미 없어!

       

       이제 얌전히 내 자랑을 들을 시간이다!

       

       너네들이 할 수 있는 말은 엔리 대다내! 뿐이라고! 알겠어?!

       

       “물론 고쳐야 할 부분이 여럿 있기는 하다만.”

       “…네?”

       

       저기 아라 씨? 저 지금 시청자들이 괴롭힌 걸 복수할 시간인데요?

       

       “우선은.”

       “일단! 일단 출발하죠! 퀘스트를 끝내야 하잖아요?”

       

       이대로 가다간 우쭐이고 나발이고 하루 종일 잔소리를 들을 것이라 판단내린 엔리가 다급히 말을 바꾸머 상인 쪽을 쳐다봤다.

       

       상행이 다급하다는 동의를 얻기 위해서.

       

       “…아뇨! 전혀 급하지 않습니다! 편하게 시간을 보내시죠!”

       

       허나 상인은 그녀를 도와주지 않았다.

       

       방금 전에 보았던 풍경 탓에 겁에 질려버린 상인은 아라가 무어라 하던 간에 고개를 끄덕일 준비가 되어있었다.

       

       안 돼. 이럴 순 없어.

       

       나 또 아무런 자랑도 못하게 되는 거야?!

       

       “그렇다고 하니 상행을 하며 느긋이 대화를 나누어 보자꾸나.”

       “흐아아아아앙!”

       

       *

       

       상행이 끝나 도시에 도착한 후 상인은 우리에게 보상을 쥐어주고서 도망치듯이 떠나가 버렸다.

       

       도적을 퇴치한 후로 계속해서 내 눈치를 보는 것이 그 때 보았던 풍경에 겁을 먹은 게 분명했다.

       

       참 겁도 많은 녀석이구나.

       

       그대의 호위로 찾아온 사람이 그대를 해할 리가 없거늘.

       

       – ㅇㅇ님이 1000원을 후원하셨습니다.

       [그런 거 보면 누구라도 겁 먹어.]

       

       – 그치.

       – 겁 먹는 게 정상이지.

       – 착한 호랑이도 옆에 있으면 무섭다고.

       

       “무서운가? 베개마냥 안고 있으면 기분 좋을 것 같다만.”

       

       어차피 호랑이 따위가 이빨을 드러낸다 하여도 귀여울 뿐이지 않나.

       

       놀이를 한다 생각하고 받아줄 수 있지.

       

       그리 이야기를 했더니 말이 안 통한다면서 시청자들에게 타박을 들었다.

       

       허어. 그대들의 상식과 내 상식이 다를 뿐이거늘 왜 이리 날 선 반응을 보이는지 원.

       

       “우와. 저 분 원래 주기로 한 것보다 더 많은 돈을 주셨어요!”

       “그래?”

       “어떡할까요? 사실상 이번 일을 아라 씨가 다하셨으니까…”

       “그냥 네가 다 가지거라.”

       

       그런 푼 돈을 내가 가져 무얼 하겠느냐.

       

       본인에게 있어 돈이란 얼마든 구할 수 있는 것에 불과하다.

       

       처음 네가 이룬 것이니 네가 가지는 것이 옳다.

       

       “흐음. 그치만.”

       

       주겠다 그러면 맘 편히 가지면 그만일 터인데 엔리는 쉬이 고개를 끄덕이지 못했다.

       

       하여간 평소에는 이것저것 잘 하면서 정작 중요한 문제가 되면 상식적인 판단을 한다니까.

       

       “그럼 이 돈을 가지고 함께 거리에서 노는 걸로 하죠?! 오늘은 제가 쏘는 걸로!”

       “굳이 그럴 필요는.”

       “됐어요! 화령 씨! 그보단 빨리 이 거리에서 할 만한 걸 이야기해 주세요!”

       

       이 곳에 오래 머물렀던 나이니 잘 알지 않느냐며 엔리는 날 재촉했지만 난 대답을 하지 못했다.

       

       본인이 이 지역을 오래 전에 와 본 적이 있는 건 사실이다.

       

       허나 그것은 본인이 아직 현대에 오기 전의 일.

       

       그리고 그 때에 이 곳은 자그마한 마을일 뿐 이렇게 그럴 듯한 도시가 아니었지.

       

       상황이 이러하니 본인이 어찌 여기를 알고 있겠는가.

       

       “어. 진짜요?”

       

       설아나 하린이에게 물어보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으려니 갑자기 엔리가 혼잣말을 내뱉었다.

       

       자신의 방송에서 무언가 이야기가 나온 걸 테지.

       

       눈이 흥미로 가득찬 걸 보면 무언가 재미난 것을 들은 듯 한데.

       

       “화령 씨.”

       “무어냐.”

       “여기에 도박장이 있다는 데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야! 그거 중독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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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The Heavenly Demon is Broadcasting

천마님 방송하신다
Status: Completed Author:
He couldn't pass his habits to others upon his return. The Heavenly Demon remained a martial art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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