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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5

        

         “아유… 내가 상용 소프트웨어 쪽은 내가 정말 달달 외우고 있는데. 이 비싼 최신 백신이 예고도 없이 뚫린 것도 그렇고, 나중에 보안 로그를 훑어봐도 깨끗한 것도 그렇고! 완전 독자적인 스타일로 구축돼서 돌아가는 게 딱 우리 이쁜이 사장님부터 연상되더라니까??”

         

         “네이 네이~ 그러셨겠죠.”

         

         대실이 필수적인 피시 카페라 생각하면… 비싼 것 같기도 하고, 나름 합리적인 것 같기도 하고.

         

         나랑 한없이 쾌활하게 떠들다가도, 가게의 결제 요청 내역을 보자마자 ‘2시간씩 2인 커플 할인 옵션을 받고도 6천 크레딧은 너무 바가지야!’라며.

         

         빼액! 소리를 내지르고 투덜거리는 마리나의 전환 속도는 몇 번을 봐도 정말 여전히 경이로웠다.

         

         단순히 경박하거나 기분에 따라 휙휙 바뀌는 문제가 아니라, 매사에 시작과 끝맺음이 확실한 성격이 반영된 결과라는 걸 여러 번 겪어봐서 그럴까.

         

         돈을 받고 여러 일을 대신 처리해주는 용병업에 깊게 몸담을 거라면 미련이 적은 깔끔한 태도 자체는 충분히 본받을 만할지도 모르겠네.

         

         …위에서 세는 게 몇 배는 빠를 고소득자면서, 돈귀신이라도 들린 것처럼 틈만 나면 정보 팔이 부수입 욕심내는 것만 뺀다면 말이지.

         

         머리에 들은 게 너무 많아서 평소에도 입이 근질거리는 걸, 겁나 뒤틀린 방향으로 해소하는 일종의 취미 생활일지도 몰라 진짜로.

         

         아, 그리고 착각하고 있는 부분도 잊지 말고 정정해 줘야지.

         

         “서비스 운영이나 판매 사업 자체는 엄밀히 다른 전문가 분이 도맡아서 하고 있는 거고. 난 개발자 겸 업데이트 제공자에 불과하니까, 자꾸 사장님이라 부르면서 놀리지 좀 말지? 아까 준 할인 코드가 다른 기능을 겸하게 되는 수가 있어.”

         

         “헤에~ 그런 게 가능해? 역시 구독제 소프트웨어라 그런가, 코드 자체에 고유 값이나 연산 매커니즘 포함된 타입이 아니라 메인 서버에서 실시간으로 처리해주는 방식인가 봐?”

         

         “아니, 네 계정은 어차피 알고 있으니까 그냥 밴 때려 버린다고.”

         

         “……진짜 미안. 적당히 까불게.”

         

         상대를 신나게 두들기다가 카운터 펀치 한방에 녹아웃 당한 권투 선수처럼, 마리나가 해쓱한 얼굴로 방안으로 호다닥 도망쳤다.

         

         얘는 농담 따먹기를 좋아하면서도 수위 조절엔 굉장히 민감하단 말이지.

         

         혹시 인터넷 연결이 없는 상태에선 그라운드 제로 프로그램에도 치명적인 허점이…? 같은 엉뚱한 생각이 훤히 드러난 얼굴로 깐족대길래, 실없는 농담 삼아 엄중한 경고를 날려주었더니 저런다.

         

         뭐, 마리나의 닳고 닳은 양심만 믿기는… 솔직히 좀 어려우니까.

         

         오늘 나눈 이야기는 종류 따지지 말고 전부 비밀로 남기겠단 약속을 두 번 세 번 확답 받았지만 약삭빠른 그녀로부터 저런 분석인지, 장난인지 모를 의뭉스러운 떠보기를 들으면 싱숭생숭한 건 어쩔 수 없지 않나?

         

         지금도 내가 만든 작품들이 어디선가 맹렬하게 분석되고 있다는 둥,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둥.

         그런 으슬으슬한 소식을 좀 듣는다고 쉽사리 겁을 먹거나, 그런 단면적인 정보만 보고 함부로 덤벼든 놈들과 싸움이 일어났을 때 지리라는 생각은 전혀 안 들지만 영 찝찝한 건 똑같네. 흐음.

         

         “근데… 저 괴한? 아무튼 네 보디가드 씨는 진짜 여기 안에도 안 들어 온대? 분명 어디서 만나본 것 같은 사람의 기색이라 신경 쓰이는데… 막상 매칭되는 이름은 없단 말이야.”

         

         “그으으거에 대해선 너무 깊이 따지고 들지 않는 걸 난 강력 추천하고 싶은데.”

         

         네트워크나 사이버 어쩌구 관련 기업들이 몰려 있는 구획 인근이라 그런가? 청결한 건 당연했고, 실내 디자인도 썩 세련된 게 괜찮았지만.

         

         그런 건 어차피 쳐다볼 일도 시간도 없을 예정이겠다. 두 사람분의 고급스러운 안마 의자처럼 생긴 누울 자리와 뇌파 접속용 전극 패드가 주렁주렁 달린 접속기의 상태를 먼저 바쁘게 점검한 마리나는, 아마 최후의 최후까지 내가 먼저 설명해 주기를 바란 질문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이걸 어째, 그건 내가 뭘 해줄 수 없이 피차 어색한 구렁텅이로 빠지는 지름길이야….

         

         극진한 대접도 가끔 체험하면 럭셔리한 맛이 있다며 즐길 수 있을지 몰라도, 매번 외출할 때마다 이러니 불편한 내가 괜히 점점 집에서 가만이 자택 근무하는 걸 선호하게 되는 게 아니라니까?

         

         “마사나리! 우리 이미 두 시간 정도 선불로 끊었거든? 진짜 거기서 이용 시간 끝날 때까지 계속 기다릴 거야??”

         “…….”

         

         가게 입구 근처 벽에 기댄 채 제로 몸체 중 하나와 뭐라뭐라 떠들고 있던 그녀는 내 목소리와 동시에 ‘두 시간 이상’이라는 키워드를 얻자마자 곧장 등을 떼고 고개를 숙여 수긍하는 자세를 내보이더니… 만류할 틈도 없이 반대로 시야에서 훌쩍 떠나갔다.

         

         ……이런 십, 저기요. 아예 안 보이는 곳으로 가라는 게 아니라, 그냥 방으로 들어와서 편하게 기다리던가 하라는 뜻이었는데 난.

         

         – 아나스타샤님의 대외 활동에 공식적으로 간섭할 권한이 없는 만큼 비상구 쪽을 확보해 지키며 대기하겠다고 합니다. 다행히 이 사업장은 구조가 두 갈래로 단순해서 정문 출입구를 제게 맡기겠다더군요. –

         

         “아, 예. 그러셨어… 그래 그럼.”

         

         물리적 거리가 몇 걸음이나 된다고. 바로 밀착해서 동행하는 걸로도 모자라 마리나가 대충 넘긴 내부에 있는 전자기기들을 스캔하던 또 다른 제로가 곧장 그녀의 쿨한 보고인지 업무 통지인지를 전달해주었다.

         

         거 드로이드를 세상에서 제일 비싼 무전기나 전화기로 아는 것도 아니고 이게 무슨 짓이야.

         

         제로야, 넌 이런 취급을 받아도 괜찮니 진짜? 맨날 도움이 된다면 뭐든 충실하니 마냥 좋다고 하지만 말고!

         

         하아… 호들갑 좀 그만 떨고 들어오라 불러들이면 명령을 따르겠다며 굽히겠지만, 본인이 저러는 편이 더 일하기 편하다면야 뭐.

         

         대체 어디 기업 임원이니, 책임질 밑사람들이 많은 직위의 사람들은 이 악덕 고용주가 된 것 같은 미묘한 느낌을 어떻게 컨트롤하는 걸까? 다음에 찬스가 있으면 적당한 사람한테 물어보던가 해야지 원.

         

         풀썩.

         

         “그래서, 이걸로 네 부계정을 써서 같이 가상 현실에 접속하자는 거지? 게에에이… 크흠! 연구소에서 봤던 건 고사하고, 시중에도 이것보다 정교한 모델은 훨씬 많지 않아…?”

         

         아직 특별히 뭘 한 것도 없거늘. 연이은 정신 공격으로 묘한 피로감이 누적된 몸을 의자에 내던진 채로 떠들려다가 황급히 말을 고쳤다.

         

         무심코 친구랑 떠들듯이 ‘게임 컷신에서 플레이어 캐릭터가 쓰던 것보다 허접하다.’ 같은 소리를 중얼거릴 뻔했네.

         

         마음 편하고 우호적인 관계를 맺은 이들은 많아졌어도, 이렇게 실없이 떠들만한 상대는 좀 적었으니 그 탓인가? 으음, 분위기를 타서 입이 가벼워질 것 같아.

         

         엥, 그런 게 필요하다면 이젠 헬레나가. 동거하는 제로도 있지 않냐고?

         

         가족이자 최애인 그녀에게 커뮤니티 관련 얘기는 못하지…. 더군다나 헬레나는 간혹 육식 동물 같은 눈동자로 지켜보는 일이 잦아져서 좀.

         

         그리고 제로는 주어지는 정보를 꿀꺽꿀꺽 삼키는 순백의 도화지 같은 녀석이라, 인간의 ‘날 것 모습’을 빅데이터로 흡수하기엔 아직 너무 일렀다 멋대로 판단한 점. 모두가 이해하고 동의해 주리라 믿겠다.

         

         “예쁜 아가씨답게 부르주아 티를 내기는, 뭐 어때! 지금 피코초(ps), 펨토초(fs) 단위로 성사가 갈리는 작업을 하는 것도 아닌데. 대신 여기도 짬내서 게임하거나 회사에서 차마 못할 일이나 잠깐 보려는 사람들 노리고 굴리는 가게니까, 남은 자료나 흔적 데이터 같은 건 오히려 더 신경 써서 깨끗하게 삭제해준다고.”

         

         “굳이 따지자면, 자본가 같은 것보단 완전 역으로 촌놈 내용물에 더 가깝다고 생각하지만…… 뭐 알았어.”

         

         시간을 꽉꽉 채우리란 보장은 없지만 로그아웃 시의 뻐근함을 줄이려면 조금이라도 편한 자세를 취하는 게 상책.

         

         탱글탱글한 쿠션 사이로 몸을 비비적거리며 밀어 넣음과 동시에, 건네진 접속기를 머리와 목 주변에 둘러 간편하게 착용했다.

         

         성능보단 편의성을 추구한 요 싸구려 접속기의 생김새를 굳이 묘사하자면… 넥 밴드 헤드셋과 머리띠를 합친 형태의 액세서리에 흡착형 전극이 주렁주렁 달린 모양새?

         

         늘어나는 전선들을 전부 쫙 당겨 빼낸 채로 멀리서 보면 고대 이집트에서 주술이나 제사에 사용할 법한 요란한 장신구와 흡사하게 생겼을지도? 아니, 장비의 크기나 두께 자체는 휴대성을 고려해 꽤 콤팩트해서 그렇진 않으려나.

         

         사라락… 톡!

         이것도 어느새 충분히 익숙해진 행위의 일부.

         

         늘어진 머리카락을 살짝 귀 뒤로 넘겨 정리한 다음, 틈새를 헤집어 맨 살에 차곡차곡 전극을 붙인다.

         

         양 귓가에 하나씩, 이마 쪽에도 좌우로 둘, 가슴팍은… 억지로 속옷 들추긴 싫으니까 대충, 마무리로 사이버웨어 기능이 포함된 통신 임플란트에 제일 가까운 피부에도 찰싹.

         

         “헷갈리지 않게 계정 잘 확인하고~ 들어가서 프라이빗 스페이스로 초대 주면 나도 곧장 바로 넘어갈게.”

         

         “아무리 그러신다 한들, 보모 수당은 별도로 안 챙겨드립니다 가이드 씨.”

         

         어린애를 타이르는 말투를 대강 받아 치고 눈을 감았다.

         

         천천히 잠에 든다던가, 의식이 몽롱해진다던가 하는 건 없었다. 이건 수면 마취 같은 게 아니라 미래의 일상적인 로그인, 네트워크에 사용자의 정보와 인식을 넘겨버리는 행위였으니까.

         

         지끈! 원인불명의 두통이 발생했다고 믿은 순간, 감각이 현실로부터 유리되었다가 단숨에 전신을 옥죄며 돌아온다.

         

         거슬리는 느낌에 무심코 눈꺼풀을 깜빡였다 생각했더니 어느새 풍경은 일변.

         

         실제로는 아마 이를 악물고 눈을 뜨고 있었다 해도, 머리는 일변한 배경을 원래부터 그랬다 자연스럽게 받아들였으리라.

         인간의 인지가 구멍 난 부분이나 부족한 파트를 제멋대로 보완해서 메꿔버리도록 우리의 뇌는 프로그램 되어있으니.

         

         천장이 내려앉을까 걱정되는 커다란 크리스탈 샹들리에에, 으리으리한 킹 사이즈의 베드에 각종 가구와 장식품들까지 싹 완비된 아론의 사무실과 비슷하게 생긴 영역.

         

         여기가 바로 사이버 공간에서 기본으로 제공되는 프라이빗 스페이스(Private space; 개인실).

         옛날로 치면 프로필 페이지, 마이 룸 등 각종 커스터마이징이 가능한 사이버 스페이스 이용자의 휴식 공간 겸 대기실이다.

         

         다른 말로 하면 마리나의 개인 취향이 듬뿍 반영된 모습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잘 안 쓴다던 부계정이라 그런가? 얼핏 화려해 보여도 대충 카탈로그에서 비싼 물건들 몇 개를 뒤섞어놓은 것 같네.

         

         비싼 물건을 본 딴 데이터 쪼가리는 많지만 일체감이나 통일감이 전혀 없다고 할까, 어쩌면 나도 여러가지를 많이 경험한 덕분에 안목이 좀 생겼을지도? 흐흠.

         

         물론, 괴리했던 오감이 돌아오며 달라진 건 그것뿐만이 아니다. 사실 가장 큰 변화는 외부가 아닌 내부에 있었으니까.

         

         “후아…!”

         

         훨씬…까지는 아니고, 아마도. 기존보다 약간 더 늘씬해진 팔과 다리, 오랜만에 높아진 눈높이의 소중함을 절절히 체감하며 높은 곳의 공기를 만끽한다.

         

         프라이빗 스페이스와 더불어 많은 사람들이 가상으로 도피하게 만드는 양대 산맥, 두 가지 원흉 중 하나. 이게 바로 그 유명한 아바타(Avatar) 시스템이 되시겠다.

         

         흔한 스킨과는 다르다 스킨과는! 개인에 따라 천차만별로 다르겠지만 높은 안정성을 가지도록 오감을 전자 신호로 구현하여 어느 정도 피드백이 되게 구현한 뇌의학과 공학의 정수이니까.

         

         …미묘하게 상반신 앞부분의 무게감이 과하게 설정된 건 일단 무시하도록 하자.

         마리나 이 자식, 지도 이렇게 안 크면서 뭔 놈의 바디 슬라이더를 이따구로 잡아 놨담.

         

         내 동기화 아이디를 쓰는 것도 아니고, 맞춰 놓은 데이터도 없어서 그런지 어색한 느낌은 강했지만 그래도 감개가 무량하다.

         

         그래, 하루 아침에 모든 게 다 크고 멀어 보이는 신세가 된 적이 있다면. 반대로 갑자기 쭉쭉 늘어난 기분을 낼 수도 있어야지.

         

         하지만 마리나를 본 뜬 얼굴로 당사자를 맞이하는 건 좀 그림이 이상하니, 대충 사이버웨어 어디에 저장한 내 신체 측정 데이터를 불러내서 덧씌우고 얼른 링크 초대를 보내야….

         

         “…………잠깐만.”

         

         우뚝.

         외형을 덧씌우려던 생각을 멈추고, 준비되어 있던 시스템 명령어들을 다급히 취소. 보류했다.

         

         심리 상태를 극단적으로 반영한 듯, 입안에서 수분감이 사라지고 초조한 두근거림이 올라온다.

         

         지금 내 용무만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급하게 하는 게 맞다. 그거야 당연한데.

         

         떡 본 김에 제사 지낸다고. 잠시만 짬을 내서, 포기한지 오래되었던 염원 하나를 소박하기 실현하고 손님맞이를 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지나친 성형은 피어난 애정과 거부감이 들어 포기했고, 추가 임플란트 개조는 의사 소견으로 인해 막혔다.

         화장이나 스타일링 수준으로 만들 수 있는 범위의 차이는 아니었으며, 이미 현실이 충분히 가상 현실 게임 같았기에 일절 즐기지 않았다.

         평정을 이루는 심상 세계나, 어비스 다이브 상태에선 내가 나 자신이라 인지하는 형상을 취하는 게 가장 안정되어서. 또 변화를 줘봐야 제로 말고는 볼 사람도 없다는 뜻에서 배제했었다.

         

         

         빌린 계정의 설정을 함부로 허락도 없이 만지작거리는 건 분명 예의가 아니다. 아니기는 한데….

         

         그러나 지금, 이 순간만은. 잠시 옛날의 기억을 되새기며 기회가 없어서 치르지 못했던 나만의 작은 장례식을 거행하는 것 정도는 용서받을 만한 행위가 아닐까.

         

         몰입도 자체가 전혀 다른 아바타의 성별을 바꾸는 건 그 어디에서도 추천되는 행태가 아니겠지만, 지금은 또 개인의 성별과 지향 선택에 관대한 시대가 도래했으니 어디 한 번.

         

         “…….”

         

         조심스럽게. 그 어떤 코드 뭉치와 프로그램을 조형하던 것보다 공을 들여서 한 픽셀씩 허공에서 뽑아낸 기억 속의 편린을 이어 붙여 재현한다.

         

         매일 아침마다 세수하고 이를 닦으며 보던 거울 속 모습, 간혹 가족과 친구들끼리, 혹은 어쩌다 찍었던 사진이나 동영상 등에 남은 빛 바랜 추억을 반추하며 조각난 퍼즐의 파편을 하나하나 제자리에.

         

         목소리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내가 기억하는 나의 음성과 타인이 듣는 진짜 음색이 워낙 다르다는 얘기를 많이 들어서. 그런 것까진 개의치 않아도 괜찮겠지. 다 자기만족에 불과할진대.

         

         적당히 짧은 머리 스타일, 나름 평균보다 위를 주장하고 싶은 이목구비, 관리 같은 건 생각도 안 해서 좀 거칠었던 피부.

         

         한 걸음, 또 한 걸음. 차분히 ‘나’를 되짚어가는 구도자 같은 기분을 한껏 내고 있었는데.

         

         …시발, 마리나 이 거짓말쟁이.

         명색이 해커라 그런가? 아니면 초대 링크 따위 안 보내도 자기가 만들어둔 계정이라 가능했던 걸까.

         

         대체 언제부터 거기서 묵묵히 지켜보고 있었냐 너?!

         

         “어, 아니. 미친. 이건 그러니까, 그게….”

         “…….”

         

         필시 세상 우스운 광경이리라, 서양인에 비해 체격이 왜소하다고는 해도 성인 남자의 입에서 계집애 소리가 흘러나오는 걸로도 모자라 우스꽝스럽게 두 손을 휘저어가며 하던 일을 부인하려 하는 건.

         

         심지어 조형을 하던 도중이라 드러난 알몸을 임시로 비활성화되어 있던 여성복으로 황급히 가리기까지 했다.

         

         부디 오해하지 말아달라. 감히 과거를 부인하는 게 아니라, 어디까지나 조용히 홀로 무른 부분을 되새기던 걸 불시에 들켜서 지어낼 변명조차 안 떠오를 정도로 당황한 쪽에 가까웠으니.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한 발 늦게나마 아무것도 아닌 척 연기라도 할까 고민했지만.

         

         내 의도와 뜻은 몰라도 그 안에 담긴 감정의 깊이를 알아준 걸까, 진지하고 심각한 표정으로 턱을 만지작거리며 고민하고 이쪽을 살피던 마리나의 입이 스르륵 열렸고.

         

         “…혹시, 아시아계를 특별히 좋아해? 얼굴도 딱히 못난 건 아니고 허우대도 멀쩡한데, 분위기가 영… 어디 던져 놓으면 굶어 죽을 듯이 비리비리한 걸. 아, 본인이 약간 마음대로 휘두를 수 있는 심약한 타입을 선호하나?”

         

         “이런 시발, 그게 아니야아아아악—!!”

         

         단번에 나올 타이밍만 재고 있던 내 순수한 감동을 깨부쉈다.

         

         응, 그래. 이해한다.

         구구절절한 걸 넘어 22세기 추리 소설에도 소재로 쓰이기 힘든 복잡한 경위를 첫눈에 얼추 짐작해서 배려하는 건 내막을 아는 사람이 아니고서야 절대 불가능하지. 암.

         

         ….

         …….

         

         아무리 그래도. 뒤질래, 진짜?! 무슨 평가가 그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네? 그 분탕 녀석이 남장 미소녀였다고요? (아님)

    늦어서 죄송합니다! 실은 후반부 묘사에 훨씬 힘을 싣고 싶었는데 이미 욕심 부리다가 연재 시간이 한참 지나서…. 네.
    잊지 말고 추후에 분량을 더더욱 늘리는 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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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I Became a Sub-Heroine in a Cyberpunk Game

Status: Ongoing Author:
No matter how many times I repeated the episodes, I couldn't clear the true ending of the open-world shooting RPG, Neo Haven. Just when I thought I finally cleared the hidden true ending... they want me to actually clear it without any help from the game system or save/load featur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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