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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6

       객실로 돌아온 니카는 두 호위가 이틀간 수집한 정보들을 경청했다. 그가 황금정을 찾은 가장 중요한 이유가 바로 그것이었다.

         

       제3 황비가 아들을 낳은 것은 몇 달 전의 일이었다. 그때만 해도 황태자 진영은 그 아이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황제는 병석에 누워서 의식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고, 설사 깨어난다고 해도 이미 장성한 황태자를 밀어내고 그런 핏덩이를 황태자로 삼는 짓을 하지는 못할 거라 여겼다.

         

       하지만 깨어난 황제는 이전에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정력적으로 정사에 임했다. 그는 황태자 진영이 추진했던 개혁을 모두 단칼에 철폐해버렸다. 황태자의 행보에 불만을 느끼고 있던 귀족들이 대거 황제를 조력했다.

         

       황태자 진영은 개혁을 추진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치적 무리수를 많이 던졌다. 그것은 모두 황태자가 곧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는 전제로 벌인 일이었다. 무수한 정적들을 양산하는 대신 신진들을 육성할 토양을 닦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채 성사되기도 전에 개혁이 불발로 돌아가고 말았다. 황태자 진영은 충분히 제 세력을 다지지 못했는데, 적만 불린 꼴이 되었다. 예전이었다면 그래도 내가 황태자인데 하고 뻗댈 수 있었겠지만, 귀족들에게도 제3 황비의 아들이라는 대안이 생겨버렸다.

         

       물론 이것은 황태자 자리를 잃을 만큼의 실책은 아니었다. 가진 자들은 기본적으로 환경이 급변하는 것을 싫어했다. 지난 십여 년간 쌓아 올린 관계망을 버리고 갓 태어난 왕자를 중심으로 새로 관계를 구축하려는 귀족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그러나 황태자가 지난 1년간 개혁이라는 이름으로 벌인 폭거가 걸림돌이었다. 그것을 무마하고 그들을 포용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정치적 부채를 감수해야 했다. 황태자가 중앙에서의 싸움을 포기하고 물러난 것도 시간을 두고 그 부채를 최대한 줄이기 위함이었다. 자신의 명성을 깎는 광대 짓도 그 과정에서 꼭 필요한 일이었다.

         

       그런데 황태자는 며칠 전, 그것을 일거에 해소할 실마리를 발견했다. 그것은 이곳에 도착하기 전에 첩보부로부터 받았던 소식 중 하나에서 포착한 것이었다.

         

       [제3 황비 파벌의 회의가 있었던 방의 벽난로에서 타다 남은 종이를 발견. 그것을 복구한 결과 ‘콤프라치코스’라는 이름을 얻어낼 수 있었음.]

         

       콤프라치코스?

       황태자로서는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다행히 그것은 그의 두 호위 중 한 명인 나타샤가 알고 있었다. 그녀는 현직 첩보부 소속 상급 요원이었기 때문이다. 그녀는 첩보부에서 파악하고 있는 콤프라치코스라는 조직에 대해 그에게 설명해주었다.

         

       “원하는 아이를 만들어준다고?”

       “네. 주로 부유한 사람을 대상으로 그들이 원하는 아이를 찾아준다고 하더군요.”

       “그러니까……인신매매 조직이군.”

         

       황태자는 눈살을 찌푸렸지만, 그 이상의 혐오감은 드러내지 않았다. 제국에서는 기본적으로 노예제가 합법이었다. 광산이나 기루에 팔려 가는 아이들을 생각하면, 콤프라치코스 같은 경우는 아주 건전한 편에 속한다고 할 수 있었다.

         

       제3 왕비 측 세력의 소식은 매일 꼼꼼히 확인하고 있는 황태자였다. 그는 이번 단서에서 중요한 흐름이 변하는 것을 느꼈다. 어쩌면 자신과 그녀와의 정쟁을 단번에 끝낼지도 모를 필살의 한 수가 있을지도 몰랐다.

         

       단순한 감이었지만, 그의 감은 적중률이 높았다.

       서류뭉치를 톡톡 두들기던 그의 손가락이 멈칫했다. 그녀가 아이를 사고파는 인신매매 조직과 연관될 이유는 한 가지밖에 없었다.

         

       “가짜 황자?”

       “전하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저도 이걸 보는 순간, 그걸 떠올렸습니다.”

         

       오랫동안 태기가 없던 제3 황비가 갑자기 자식을 배고 아들을 낳았다. 충분히 의심할 만한 정황이었다. 오랜 정쟁의 역사에서 가짜 핏줄을 데려와 계승권을 주장한 사례는 차고 넘쳤다.

         

       만약 그 사실을 증명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제3 황비를 끝장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황자가 5살이 되면 행하는 황실 대례가 있지 않습니까? 거기에는 혈통 검사 절차가 있을 텐데요? 제3 황비 측은 그것을 통과할 방법이 있는 걸까요?”

       “모르지. 나를 제거하고 황제 자리에 오르면 어떻게 될 거라고 여기는 걸지도……. 일단 조사해볼 가치는 충분하겠어.”

         

       아들을 낳기 몇 개월 전, 그녀는 마침 보르조미에 얼마 동안 휴양을 온 적이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황궁이 조용할 나날이 없다. 쉬고 오겠다’라며 황태자의 개혁에 반대하는 퍼포먼스라고 생각했는데, 어쩌면 그 이상의 진실이 잠들어 있을 수도 있었다.

         

       보르조미에서의 시간 대부분을 황실 휴양지에서 보낸 그녀였지만, 첩보에 따르면 잠시 외출하여 황금정에 들른 적이 있다고 했다. 콤프라치코스 같은 걸쩍지근한 조직과 몰래 접선했다고 한다면, 그곳이 유력했다.

         

       니카가 암행의 장소를 황금정으로 정한 것은 바로 그것을 조사하기 위해서였다. 보르조미에 거의 다 도착한 마당에 일정을 바꿀 수 없었던 그가 제3 황비 측의 경계를 피하려고 선택한 임기응변이었다.

         

       그런데 일을 서두르는 탓에 펠레빈과 미처 상의할 틈이 없었다. 하필 그의 대역인 코카 또한 황금정을 찾아버렸다. 이래서야 도저히 비밀스러운 조사라고 할 수 없었다.

         

       넷째 날 아침, 첩보부에서 보르조미에 제3 황비 파벌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는 소식을 알려왔다. 그것이 자신에 대한 습격이건, 비밀에 대한 증거인멸이건 이제 시간이 없었다.

         

       “속전속결로 끝내야겠어. 저쪽에서 어떤 조치를 해오기 전에 말이야. 오늘은 두 사람 다 날 호위하지 말고 조사에 전력으로 임해줘.”

         

       황태자의 선언에 두 호위는 곤란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러면 전하의 안전은요?”

       “이 호텔에 벌써 나흘이나 머물렀잖아. 여긴 안전해.”

         

       니카는 두 사람에게 자신이 습격을 예견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았다. 그것을 털어놓았다면 그들은 애초에 이 암행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드미트리 경은 새어머니가 이곳에 머물렀던 시점의 숙박 기록을 계속 조사해줘. 그리고 나타샤는 어제 말했던 유력한 증인을 캐보고. 알았지?”

         

       두 호위는 마지못해 그의 명령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이야기를 정리한 니카는 옷을 가다듬고 숙소를 나설 준비를 했다. 첫날에는 그렇게 질색했던 여장도 이제는 콧노래를 부르면서 했다. 심지어 그는 전신거울을 보며 이렇게 포즈를 취했다 저렇게 포즈를 취했다 자신의 자태를 점검하기까지 했다.

         

       “전하……엄청 즐거워 보이십니다?”

         

       기사의 지적에 니카는 뜨끔한 표정을 지으며 그를 돌아봤다.

         

       “그, 그냥 오랜만에 머리 비우고 게임만 즐길 수 있어서 그래…….”

       “응? 예전에는 게임이 지루하다고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다 예측 가능하다고…….”

       “게, 게임 나름이지…….”

         

       니카는 그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서둘러 숙소를 나섰다.

         

       주군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좋아해야 할지 걱정해야 할지 알 수 없었던 드미트리는 뒤통수를 몇 번 긁적이더니 임무를 위해 그만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만 가 보지. 아, 맞다. 나타샤, 나랑 바꾸는 게 어때? 당신이 조사해야 하는 건 전직 군인인 노인네이라며. 그런 인간은 내가 더 잘 캐낼 것 같은데…….”

       “탐문도 엄연히 높은 기술을 요구합니다. 훈련받은 제가 하는 게 훨씬 나아요.”

         

       그녀의 말에 드미트리는 두 팔을 들어 보였다.

         

       “하긴. 그런 방면에서는 첩보부원은 못 이기지.”

       “그건 둘째치더라도 황비의 몸에 대해서 질문해야 하는데, 그건 남자보다 여자인 제가 낫죠.”

         

       제3 황비는 황금정에 머무르는 동안 칼슨이라는 이름의 때밀이에게서 마사지를 받았다고 했다. 그의 손을 거치면 만성적인 근육통이나 어깨결림이 말끔하게 사라진다는 소문 덕분에 마사지를 받기 위해서는 몇 주 전부터 예약해야 할 정도로 인기 있는 사람이었다.

         

       몇 개월 전, 황비가 이곳에서 마사지를 받았다면, 임신 중이었을 테고, 때밀이가 그에 대해 뭔가 알고 있을지도 몰랐다.

         

       나타샤는 이미 그 노인에게 어떻게 접근할지도 미리 시나리오를 세워두었다. 모시는 귀부인이 임신한 몸인데, 몇 주 뒤 마사지를 받는 것이 가능하냐, 혹시 전에 임신부를 마사지한 적은 있느냐는 식으로 질문할 계획이다.

         

       두 사람은 각자 채비를 챙겨 숙소를 떠났다.

         

         

       ***

         

         

       황금정 최고의 인기 때밀이 칼슨은 목에 수건을 두르고 출근할 준비를 했다. 30년 동안 그는 단 한 번도 일정표에서 벗어나 행동한 적이 없었다. 지난 몇 달 동안을 제외하면 말이다.

         

       그는 자신이 지내는 보일러실 옆 토굴을 바라봤다. 그곳의 입구에는 이제 막 여행을 떠날 것 같은 사람들의 짐이 쌓여 있었다. 모두 두 명분이었다.

         

       “오늘이 마지막이군.”

         

       그의 말에 짐을 정리하고 있던 백발의 노인이 땀을 닦으며 그를 돌아봤다.

         

       “왜? 그래도 막상 떠난다고 하니까 섭섭한가?”

       “그럴 리가. 귀찮은 군식구가 사라져서 기쁠 뿐이야.”

       “여전히 솔직하지 못하군.”

         

       베르그송 자작의 전 집사인 바텔은 친구가 알게 모르게 그의 주인을 챙겨줬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행동에는 오랜 세월 사람과의 접촉을 피해온 자 특유의 외로움이 진하게 배여 있었다.

         

       “하필 이 겨울에 떠나나?”

       “어쩔 수 없네. 추적자의 눈길이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게 느껴지니까. 황태자의 방문 때문에 어수선한 지금이 빠져나갈 호기야.”

       “하지만 굳이 그렇게 해서까지…….”

         

       바텔은 친구가 무엇을 따지고 싶어 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 역시도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나이스와 몇 번이나 언쟁을 벌였었다. 하지만 그녀의 각오는 꺾을 수 없었다.

         

       “주인님의 선택이네. 나는 그분을 믿고 따를 걸세.”

         

       그는 그렇게 답하고는 다시 짐을 정리하는 일에 집중하는 척했다. 그러나 그의 머릿속에는 아나이스에 대한 걱정이 가득했다.

         

       ‘생존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저는 뭐든 하겠어요.’

         

       그녀가 이틀 동안 주루에 나가지 않은 것은 어느 귀족 노인의 바둑선생이 되어달라는 요청을 받아서였다.

         

       이 시대에 똑똑하고 젊은 여자를 말벗 겸 피후견인으로 두는 귀족 홀아비들이 많았다. 어린 조카들의 돌보미, 병시중 들 간호인, 고대어 글 선생 등 여러 이름으로 그녀들을 고용해놓고 그 이상의 관계를 요구하는 일이 적지 않았다.

         

       물론 아무런 일이 없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나 사교계에서는 이것을 원조교제 비슷하게 취급했고, 독신남이 고용인이라는 것만으로도 상대 여자는 자주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아나이스 같은 영지와 작위를 가진 귀족에게 그런 일을 제안하는 것은 모욕이나 다름없었다. 원래의 그녀라면 절대 그런 제안은 수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는 이곳의 포위망을 안전하게 빠져나가기 위해서는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이 절실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그것을 대가로 그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이미 사람들 앞에서 웃음과 말과 재주를 팔고 돈을 벌어봤기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수 있었다.

         

       그녀를 바둑선생으로 고용한 슈타니 공작은 이른바 ‘명예 공작’이었다. 공작이었기에 비상시 황제 선출권을 지니고 있었지만, 실질적인 봉토는 없는 사람이었다.

         

       물론 명예 공작이라고 해도 제국의 공작 위에 해당하는 지역이 봉토로 배정되어 있긴 했다. 그러나 이미 그 지역은 아래 작위의 귀족들이 영구 봉토로 나눠 먹었거나 제국 직할령으로 편입되었기에 큰 영향력은 발휘할 수 없었다.

         

       주로 그 지역에서 올라오는 소식을 정리해서 황실에 제출하는 게 그들이 하는 일의 전부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것만으로 어지간한 봉지 귀족 부럽지 않은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들은 어떤 소식을 과장해서 올리고 어떤 소식을 축소해서 올릴지, 어떤 사건을 이쪽 시점에서 바라보고 저쪽 시점에서 바라볼지 정도의 권한은 발휘할 수 있었다. 그들은 지방의 의사를 중앙에 전하는 일차적인 창구였다. 그들은 그런 의사 조율의 대가로 해당 지방의 귀족들에게 몇몇 이권을 관례로 받아냈다.

         

       아나이스는 슈타니 공작 정도의 권력과 재력이라면 이 도시에서 두 사람 정도는 몰래 빼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지난 사흘 동안 그가 바둑을 두는 와중에 은근히 추파를 던지거나 실수인 척 손을 대뜸 잡아도 웃으면서 받아줄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까지 하셨다고요? 아이, 공작님, 정말 대단하세요.”

       “맞아요. 여자들은 나이보다 능력을 본다고요. 공작님이라면 아직 정정하시죠.”

       “전하가 공자님을 파티에 초청 안 한 것도 각하의 노련미를 견제해서라고 봐요. 주변 여자들이 다 각하에게 반하면 어떡해요?”

         

       그녀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그의 허세와 자랑에 맞장구를 치며 주루 안으로 들어갔다. 지금까지 그녀를 선망하던 종업원과 손님들이 실망한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콧대 높던 그녀도 결국 돈과 권력에 아양을 떠는 술집 여자에 불과했다고 생각한 것이다.

         

       ‘괜찮아. 나 아나이스 베르그송이야. 지금은 그저 ’아냐‘를 연기할 뿐이야.’

         

       그녀는 자신을 경멸 어린 눈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마주할 때마다 계속 자신을 다잡았다. 원래 이곳에 들를 필요도 없이 바로 떠날 계획이었지만, 그녀를 담당했던 소모의 얼굴을 봐서 어쩔 수 없이 들렀다. 그래도 지금까지 잘 돌봐준 은혜를 원수로 갚고 싶지는 않았다.

         

       “도전권을 독점했다고요?”

         

       소모는 그녀에게 지난 이틀 동안 주루를 휩쓴 두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거 질투심이 마구 솟구치는걸. 웬 연놈들에게 자네를 양보해야 하니까 말이야.”

       “그, 그러게요.”

         

       옆에 있는 늙은 공작을 향해 싸구려 웃음을 보이며 오늘의 도전자들이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돌린 아나이스.

         

       그리고 그곳에 앉아 있는 사람 중 한 명과 눈을 마주친 순간, 그녀의 몸은 딱딱하게 굳고 말았다.

         

       “아.”

         

       그녀는 탄식을 삼켰다.

         

       프랑크 원더스타인.

       그녀가 찾아가려고 했던 남자가 그곳에 앉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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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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