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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6

     [제국력 1월 7일 저녁, 노스트럼 왕국 오로솔 아카데미.]

     오로솔 아카데미에는 대량의 제국산 물품이 있다.

     방학을 아카데미 기숙사에서 보내기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위해 아카데미에서는 그동안 방학 기간에도 숙식할 수 있도록 시설을 마련했고, 당연히 그에 따른 식자재도 대규모로 준비되어 있다.

     물론 양은 제한적이다.

     

     제국산 과자나 음료가 많이 비치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걸 삼시세끼 주식으로 먹을 수는 없다.

     이건 어디까지나 비상식.

     바르셀로나에서 기사단의 호위와 함께 배송되는 밀가루를 이용하여 정해진 수량의 빵을 만들기 전까지, 갑작스레 들이닥친 난민들에게 지급될 임시일 뿐이다.

     노스트럼은 이 위기를 당장 극복할 능력이 있는가?

     있기는 하다.

     그 노스트럼의 안에 지브롤터가 포함된다면, 물리적인 위기는 어떻게든 당장은 넘길 수 있다.

     길면, 두 달.

     어쩌면 한 달 남짓일지도 모른다.

     ‘황제가 가만히 있겠냐고.’

     황제는 노스트럼의 땅을 원하지, 노스트럼의 사람을 원하지 않는다.

     설령 노스트럼의 땅에 많은 이들의 피가 흘러 땅속으로 스며든다고 하더라도, 십수 년에 걸친 토지정화 사업을 통해 지력을 회복시켜 어떻게든 사용할 것이다.

     

     즉.

     “도련님. 바르셀로나에서 보고가 들어왔습니다.”

     “말해.”

     “바르셀로나 평원의 밀밭에 불을 지르려고 한 제국 병사를 확보했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죽여야지.”

     노스트럼인들이 전부 굶어 죽도록 아사를 노리는 공격도 들어오기 마련.

     ‘황제답네.’

     황제는 회귀 전,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이 도망친 왕도를 포위하여 내부의 식량이 고갈되기를 기다렸다.

     ‘황제가 다른 건 몰라도 보급은 철저하게 했었지.’

     아이페리아 인더스트리의 창고를 털어 확보한 군수물자의 보급은 끊기지 않았고, 나는 한 달의 기간 동안 제국군 인간 병사들이 굶주리고 배고프다고 칭얼거리는 걸 본 적이 없었다.

     ‘흠결이 있다면 삼시세끼 내내 비스킷을 먹는 날도 있었다는 정도?’

     하도 먹던 음식의 레퍼토리가 변하지 않아 질린다는 이야기는 나왔어도, 적어도 톱밥 섞인 호밀빵에 가루 태운 묽은 수프를 먹어서 ‘이거 먹고 머스킷 들어 올릴 힘은 있겠냐?’라는 소리를 들은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쩌겠어. 황제 본인이 솔선수범해서 그렇게 먹었는걸.’

     경우에 따라서는 아무것도 먹지 않고도 이주일 이상을 아무렇지 않게 버틸 수 있는 마스터의 신체와 일반 병사의 신체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면 안 되는 법이기는 하다.

     하지만 그래도, 역시 사람이 과자만 먹으면서 살 수는 없다.

     이미 만들어진 음식을 아껴 먹으면서 굶주린 배를 채울 수는 있지만, 가을에 새로 추수하여 미래를 기약하려면 농사를 지어야 한다.

     그 농사.

     제대로 지을 수나 있을까.

     ‘당장은 생각하지 못하겠지. 다들.’

     전쟁이 일어난 지 이제 막 1주일이 지났다.

     오로솔 아카데미로 와서 세이레네 백작령에서 일어난 일을 듣고 살아남았음에 감사하는 단계.

     나리아 왕녀를 중심으로 한 아카데미 학생회가 사실상 왕국의 신하들이 되어 움직이는 걸 보며, 노스트럼 왕국에 아직 희망이 있음에 감사하는 단계.

     아직, 강력한 적과 나아지지 않고 악화일로를 걷기만 하는 현실에 절망하고 좌절하는 그런 단계까지는 아니다.

     아직은.

     “경.”

     “예, 바르셀로나 총독 각하.”

     내게 보고하러 온 금발의 남자가 정중한 자세를 갖춘다.

     “자네는 왜 황제를 배신했지?”

     “…….”

     

     눈앞의 남자.

     “나는 자네가 누군지 안다. 201호의 블론드. 제국인이면서 학생회 임원이며, 동시에 유학생으로 파견된 그림자의 대표격인 존재지.”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스타시아와 함께 장학생으로 온 이들 중 가장 권한이 높은 대표격인 존재다.

     

     상급 기사.

     마스터는 되지 못한 듯하지만, 1학년 때부터 제국 그림자들 사이에서 두각을 드러냈던 자.

     “자네가 입고 있는 제복과 완장은 학생회의 것이 아닌가.”

     “누아르 도련님이 계실 때부터 여러모로 많은 도움을 받았습니다.”

     “누아르가 도움을 받았으면 받았지, 누아르가 도움을 줬을 것 같지는 않은데.”

     “대련 상대로 많이 도움을 받았습니다.”

     “아, 그쪽.”

     나는 보고서를 내려놓았다.

     “그래서 왜 제국을 배신하고 노스트럼에 붙기로 한 거지?”

     “…….”

     “이것저것 재지 말고, 솔직하게 답했으면 좋겠는데.”

     “진짜로 솔직하게 말해도 되는 겁니까?”

     “물론. 나름대로 공이 있지 않은가. 자네 덕분에 내가 오로솔 아카데미에 있던 유학생을 청소하지 않게 되었으니.”

     바르셀로나의 행정관 200명을 치워버린 것처럼, 오로솔 아카데미에서도 한 차례 내부 정리를 할 필요가 있었다.

     “절반은 아스타시아 황녀님의 공이었습니다. 저희 중 대부분은 그분을 따르기로 했거든요.”

     “아스타시아를.”

     “예.”

     “줄을 잘 잡았군.”

     “원래 저희 같은 자들은 살아남을 수 있는 줄을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노스트럼에 유학생으로 보내졌다는 것은 인질로 잡혀서 버림패로 쓰일 수도 있는 자들이었죠.”

     블론드가 담담하게 말한다.

     “총독 각하께는 진심으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내게?”

     “총독께서 아스타시아 황녀님을 누구보다도 아껴주신 덕분에, 저희를 바라보는 노스트럼 학생들의 시선도 그다지 적대적이지 않았거든요. 덕분에…나름, 재미있는 학창 시절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재미라.”

     거짓을 말하는 눈치는 아니다.

     무언가를 숨기고 있는 것 같기는 하지만.

     “설마 이 미개한 나라의 사람들을 보고 희망을 봤다거나, 제국으로 돌아갔다가는 그림자들에게 밀려 높은 자리를 노리지 못할 것 같다거나, 잔인할 정도로 모두를 죽이는 그런 학살을 보고 정의감에 불타올라 견딜 수 없게 되었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

     “설마 내가 그런 말을 믿을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총독 각하.”

     블론드는 침을 꿀꺽 삼키더니, 자신의 목 안으로 손을 집어넣었다.

     “로켓?”

     목걸이 끝에 달린 동그란 황금의 로켓.

     “제 이유입니다.”

     딸칵, 하는 소리가 나더니 안에는 수수하게 생긴 금발 여학생이 활짝 웃고 있었다.

     “……누구지?”

     “트레시아라고 합니다.”

     “…….”

     누구지.

     일단 매국노는 아닌데.

     “그냥 아카데미 2학년 재학생입니다. 1년 후배죠. 지극히 평범한 아카데미 학생이며 평민입니다. 학생회 활동을 하는 저를 보며 관심이 있다고 하더군요. 노스트럼 사람과 사귈 수 없다고 정중히 거절했더니 하는 말이….”

     블론드가 로켓을 닫으며 피식 웃었다.

     “지브롤터의 후계자분도 황녀님과 사랑을 나누는데, 그게 무슨 관계가 있겠느냐면서 화를 내더군요.”

     “음.”

     “그런 이유입니다. 제가 내세울 수 있는 이유는 이것 하나뿐입니다.”

     “그런 거라면, 어쩔 수 없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나라를 배신하게 된다.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희대의 매국노가 따로 없지만, 개인의 입장에서 보면 희대의 사랑꾼이 되는 법.

     “잘 잡았네.”

     여러 의미로.

     “제국 그림자 중에서도 황제 편에 서려고 하는 자들이 있었을 텐데.”

     “…….”

     “아. 이제는 없다는 거군.”

     아카데미 유학생이나 직원 중에 일부 실종된 자가 있겠지만, 그건 지금 중요한 게 아니다.

     “그러면 내가 최소한 오로솔 아카데미 내부에서 내응이 일어나거나 소요 사태가 일어날 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건가?”

     “…유학생 중에서는 적어도.”

     “그렇다면 다행이고.”

     변수가 줄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손을 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났던 일들이 이렇게 현재를 돕는 건가.”

     “아카데미를 운영하는 측에 계셔서 잘은 모르셨겠지만, 오로솔 아카데미 내부의 학생들끼리는 여러모로 많이 친해졌습니다.”

     “그런가.”

     회귀 전에는 아카데미를 다녔다.

     하지만 이번 생에는 아카데미를 다니지 않았다.

     “부럽군.”

     “…예?”

     “나중에는 학생의 입장에서 내가 만들어 낸 아카데미에서 다녀보고 싶어질 지경이야.”

     아스타시아의 입을 통해 대신 많이 듣기는 했지만, 과연 오로솔 아카데미는 어떤 곳이 되었을까.

     

     윈체스터 총장이 최초의 입학식에서 선언했던 것처럼, 왕국과 제국이 서로 다툼을 끝내고 안녕과 화합을 추구하는 안식의 장이 만들어진 걸까.

     현실은 비록 전쟁 중이지만.

     정작 이 교육의 현장을 피난민을 수용하는 곳으로 만든 것도 나지만.

     “졸업 후의 진로는 정했나?”

     “예?”

     “전쟁이 없었다면, 졸업 후에는 무엇을 할 예정이었냐는 질문이야.”

     “…전쟁만 아니었다면, 아마도 황녀님의 졸업 이후에는 정식으로 총독 각하와 결혼식을 하셨겠죠.”

     “그랬겠지.”

     “아직 임무가 내려오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입학할 때 주어졌던 임무를 계속 이어 나가겠죠.”

     “왕국 내부의 정보를 파헤치는 것?”

     “결혼하여 왕국에서 살며 그 정보를 모으는 것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위장과 첩보가 아니겠습니까?”

     “…….”

     생각해 보면.

     “자네는 자네의 아버지가 증오스럽지 않나?”

     블론드 또한, 황제의 자식이다.

     “죄송합니다. 저는 태어나면서부터 연금 공방에 버려져서.”

     “음.”

     “황제 폐하를 아버지로 느끼기에는 너무 먼 곳에서 자라서, 제게는 그저 군왕으로서 느껴질 뿐입니다.”

     “그런가.”

     어쩌면 유학생으로 보내진 이들 전부 블론드와 결이 비슷한 존재일지도 모른다.

     합스베르크답지 않으면서도 능력은 출중하기에 노스트럼과 어울릴 수 있었던 이들.

     “아참. 자네, 그거 알고 있나? 오로솔 아카데미의 졸업식은 말이야, 앞으로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

     “예. 그날이….”

     “1월 31일이었지.”

     1월의 마지막 날.

     “2월이라는 한 달의 방학이 주어지고, 그동안 다음 학기를 준비하는 시간을 가진다. 원래는 1월 초에 이미 이루어졌을 행사. 그게 왜 미루어졌는지도 알고 있나?”

     “…나리아 여왕 전하의 즉위식 때문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래.”

     나리아 여왕 등극의 사전 작업 중 하나였다.

     졸업이 먼저냐 즉위가 먼저냐를 두고 이견이 있었지만, 학생의 신분이고 뭐고 당장 세인트 지오 노스트럼을 쳐내고 나리아가 왕위에 오르는 게 우선이라는 의견이 중론이었다.

     그래서 기간에 여유가 생긴 것.

     “오늘이 1월 7일이니까, 사실상 얼마 남지도 않았군.”

     “혹시 졸업식 진행하시려고 하는 겁니까…?”

     “전쟁 중에도 할 건 해야지.”

     “…….”

     “농담이야. 졸업식 같은 걸 지금 했다가 무슨 사고가 일어나려고.”

     그저.

     “졸업식이 그날이라고 하니, 일종의 ‘데드라인’이 생긴 것 같은 느낌이거든.”

     

     한 가지, 목적이 생겼을 뿐.

     “…이 말씀, 제게 해주셔도 되는 겁니까?”

     “후후후.”

     유능하면서 자기 주제를 파악하는 자는 언제나 환영이다.

     그러면서 동시에 내 사람이든 혹은 내 동료의 사람이든,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자라면 더더욱 환영이고.

     “그림자들에게 전해. 마음 졸이지 말라고. 이 전쟁, 오래 끌 생각은 없거든.”

     “…예?”

     “애초에 오래 끌면 안 되는 전쟁이야.”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패배를 향해 다가가는 건 우리다.

     “모든 노스트럼을 총살할 수 없다면, 모든 노스트럼을 아사시킨다. 나라면 그렇게 할 거거든.”

     “…….”

     “농사를 지으러 갈 때마다 총에 맞는 게 아닐까 두려워하면서 농사를 지어야겠지. 잠을 자야 하는 시간에 흡혈귀 병사들이 밭에 불을 지르는 걸 감시해야 할 테고. 애초에 흡혈귀 병사들, 인간처럼 밥을 먹지 않아도 조금 더 버틸 수 있지 않나?”

     “예, 뭐.”

     블론드가 나를 무언가 다른 존재로 바라보는 것처럼 보이지만, 나는 역지사지로서-내가 황제의 위치에 있을 때의 선택을 말할 뿐이다.

     황제의 입장.

     그리고 황제 또한, 나의 입장에서 내가 생각하는 움직임을 읽고 있을 터.

     쿵쿵쿵.

     밖에서 노크 소리가 거칠게 울린다.

     “들어와.”

     “기, 긴급 보고드립니다…!”

     안경을 쓴 청년, 학생회 완장을 착용한 자가 달려왔다.

     “왕도 톨레도 후방, 해안가 쪽으로 제국군의 배가 약 60척 가량 상륙…!”

     “하.”

     역시나.

     “대륙을 돌아서 왔군.”

     예상대로.

     “바다를 날아왔군.”

     “바다를…?”

     “대륙을 건너오자니 모르가니아의 비룡기사단에 걸릴테고, 실제로 계속 시늉을 하며 용기사들의 발을 묶었지. 협곡의 남북으로.”

     비행선의 항행을 감시하는 감시를 넘어, 아예 바다를 크게 둘러 후방까지 침투하기에 이르렀다.

     “크라켄도 하늘을 나는 걸 잡지는 못하니.”

     황금룡도 배가 하늘을 날아서 노스트럼의 뒤통수를 치러 올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경. 제국군의 배, 60척. 전부 어떤 모델이던가?”

     “모, 모델이요? 배의 크기를 말씀하시는 거라면, 중형함 정도는 되어보였습니다! 배 한 척은 총독 각하의 황금선만큼이나 커다란 철갑선이었고요!”

     “한 대당 300명 정도라고 치고, 대형함에 대충 나머지 다 타고 있다고 가정한다면.”

     얼추, 숫자가 잡힌다.

     “2만이군.”

     “…….”

     “우리는 3천인데.”

     제국군 약 2만 가량, 왕도 톨레도 후방 상륙.

     “총독 각하.”

     “왜?”

     “긴장되지…않으십니까?”

     “확인만 된다면 그만이고, 아니어도 올게 온 거니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옆에 걸어둔 지팡이를 움켜쥐었다.

     “황제가 있으면 좋고, 없으면 그걸로 끝이다.”

     황제만 있다면 황제를 죽인다.

     “배웅하러 나가도록 하지. 다행히, 여기서 그다지 멀지 않으니.”

     황제가 없다면.

     “정해진 건 하나. 적은 전부 죽인다.”

     전부, 죽인다.

     “나리아 여왕 전하께 달려가서 전해. 수성전을 준비하라고.”

     “수성…전이요?”

     “배가 하늘도 날고 바퀴도 달고 그러는데, 뭐하러 해안에서 상륙해서 걸어오겠나.”

     아마도.

     “나라면 그대로 바퀴를 굴린 다음, 오로솔 아카데미 성벽에 때려박을ㅡ”

     콰ㅡㅡㅡㅡㅡ앙!!

     “……가지.”

     나는 칼을 뽑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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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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