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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7

       “불안하기라도 해?”

        

       “뭐 걱정하다니? 하.”

        

       뒤의 ‘하.’부분만 뺐으면 꽤 그럴싸한 연기가 되었을 텐데.

        

       겉으로만 보면 샤를로트가 일방적으로 불리한 싸움이었다.

        

       애초에 샤를로트는 외국인이다. 아무리 이 아카데미 내부에서 평가가 좋아도,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선거는 인기 투표가 아니라 영향력 싸움.

        

       샤를로트는 후에 벨부르 왕국의 국왕이 될 것이다. 아니, 사실 국왕이 되기 전 공주 신분일 때라도 샤를로트를 다시 만날 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제국의 귀족이 타국의 공주나 왕을 만날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나마 앨리스라면 무도회나 연회에서 얼굴이라도 비출 가능성이 있지만, 샤를로트는 다르다. 외국의 무도회나 연회에 참여할 수 있는 귀족은 외교관 신분으로 벨부르에 있는 귀족 정도고, 결혼식 같은 곳에 초대되는 귀족은 애초에 높은 신분의 귀족들뿐이다.

        

       그러니 차라리 샤를로트에게 붙는 것보다는 앨리스에게 붙는 쪽이 훨씬 낫다. 이쪽은 같은 나라 사람이고, ‘같은 학교 출신’이라는 명분도 서니까. 후에 연회 자리에 함께 참석해 ‘황녀님, 기억하십니까? 황녀님과 저는 같은 학년이었습니다. 그때 투표할 때 황녀님께 표를 드렸는데.’ 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상당한 장점이다.

        

       물론 투표 자체는 무기명투표다.

        

       하지만, 원래 귀족 간에 대화를 하다 보면 누가 누구를 뽑았는지 정도는 알게 된다. 현대에도 투표 후 친구들과 누구를 뽑았는지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귀족들도 마찬가지다.

        

       거짓말을 하고 있으면 금방 들통난다. 태도에서 차이가 나니까. 끝까지 안 들키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내가 질 거라는 생각 자체를 해본 적이 없거든? 여기는 ‘왕립 루테티아 아카데미’가 아니라 ‘황립 론다리움 아카데미’잖아. 내가 압도적으로 유리하다고.”

        

       “그래?”

        

       내가 되물어보자, 앨리스는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말했다.

        

       “어차피 내가 이길 싸움이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이기는 건 상대한테는 기분 좋지 않은 일이니까. 예의도 아니고. 그러니까 전력을 다해서 싸워주도록 하겠어.”

        

       턱을 치켜들며 그렇게 말하는 앨리스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불안하구나.

        

       아무리 성격이 유해졌다고 하더라도 자기 핏줄에 대한 자부심이나 자신에 대한 자존심은 버리지 않은 앨리스다.

        

       샤를로트 정도 되는 상대가 있다면 당연히 전력을 다해 싸우겠지. 그렇지 않으면 질지도 모르니까.

        

       샤를로트가 어떻게 싸울지는 잘 모르겠지만, 뭐 승산이 있다고 생각했으니 싸우겠다고 하는 거 아니겠어?

        

       솔직히 나는 앨리스가 이기건 샤를로트가 이기건 별 상관없다고 생각하지만, 혹시라도 앨리스가 졌다가는 한동안 내가 엄청나게 피곤해질 테니 일단은 최선을 다해 도와주기로 하자.

        

       각오를 다지는 앨리스를 보며,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

        

       “샤를로트는?”

        

       다음날.

        

       교실에 샤를로트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고, 앨리스는 주변을 둘러보며 물었다.

        

       “샤를로트? 내가 들어왔을 때도 없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교실에 도착해 수업 준비를 하던 클레어가 대답했다.

        

       “…….”

        

       앨리스는 괜스레 몇 사람 없는 교실을 둘러보더니 자기 자리에 앉았다. 앨리스의 앞자리를 쓰는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 쪽으로 돌아앉았다. 등받이를 끌어안고, 앨리스 쪽으로 얼굴을 쓱 내밀면서, 대놓고 놀리는 표정을 지은 클레어는,

        

       “왜, 불안하기라도 해?”

        

       어젯밤 내가 앨리스에게 물었던 질문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고 했다.

        

       “불안하긴.”

        

       앨리스는 당당하게 허리를 펴고 앉아 고개를 치켜들었지만, 클레어는 그런 앨리스를 놀리듯 바라보고 있었다.

        

       기억이 돌아온 뒤의 클레어도 내가 알고 있는 클레어였지만, 그렇다고 달라진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클레어 개인의 성격은 크게 바뀌지 않았지만, 뭐랄까, 앨리스와 조금 더 가까워졌다고 해야 하나.

        

       여신이 만들어낸 환상 속에서 클레어는 나 대신 앨리스와 함께 살았다. 후에 두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로 추정하건대, 클레어가 나만큼 앨리스에게 잘해준 것은 아닌 모양이다.

        

       그렇다고 대놓고 괴롭히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 같지만, 이런 식으로 놀린다던가, 투덜거리거나 다투거나 한 적은 꽤 있는 모양이다.

        

       물론 그때의 앨리스도 내가 겪었던 시절의 그 앨리스가 아닌, 성장한 후의 앨리스였으므로 클레어가 놀렸던 말을 마음에 담아두고 삐뚤어진다거나 하는 일은 없었다.

        

       “으음, 그런가? 하지만 샤를로트도 나름대로 정치를 배운 애잖아? 사실, 내가 알기로 너는 그렇게까지 열심히 정치에 참여하지는 않았고.”

        

       ……아닌가?

        

       오히려 클레어가 앨리스의 과거를 알아버려서 더 잘 놀려먹을 수 있게 된 건가?

        

       그전까지는 나를 사이에 두고 있긴 해도 서로에 대해서는 잘 몰랐고, 그래서 어느 정도 예의라는 벽을 사이에 두고 서로를 대했다면 지금은 그 벽이 아예 사라져버린 것 같다.

        

       분명 좋은 일인데…….

        

       “네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

        

       눈을 가늘게 뜨고 클레어를 노려보며 그렇게 쏘아붙이는 앨리스를 보면 마냥 좋은 일도 아닌 것 같다. 진심으로 싸우는 것 같은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대단히 사이가 좋아 보이지도 않았다.

        

       기왕 같이 지내는 거라면 좀 친해졌다면 좋았을 텐데.

        

       “왜, 자매를 걱정해주는 건데.”

        

       클레어는 앨리스에게 보란 듯이 씩 웃어 보이고, 고개를 옆으로 살짝 빼서 앨리스 뒷자리에 앉아있는 나를 보며 말했다.

        

       “언니는 어때? 앨리스가 이겼으면 좋겠어?”

        

       “…….”

        

       “왜 바로 대답을 못 해?”

        

       내가 잠깐 망설이자 앨리스가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앨리스가 이겼으면 좋겠지만, 앨리스가 이기면 내가 부회장이 될 거 아니야.

        

       뭐, 원래 부회장 자리가 딱히 할 일이 없는 자리이긴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일할 당위성 자체는 생긴단 말이지.

        

       지금 교사로 있는 검성이나 제니퍼가 일을 시키면 뺄 수가 없게 된다.

        

       “……하아, 뭐, 됐어. 어차피 내가 이길 생각이니까. 나도 어제 이런저런 방법을 생각해봤거든.”

        

       “오, 뭔데?”

        

       “일단 학생회 학생들부터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어줄 생각이야.”

        

       “그런 거로 괜찮겠어? 그 정도는 샤를로트도 하지 않을까?”

        

       “타국의 공주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과 이 나라의 황태녀가 들어주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니까.”

        

       앨리스가 ‘들어주겠다’라는 말은, 어느 정도 ‘집안 이야기’를 해도 기억해주겠다는 말이다.

        

       귀족 학생들 처지에서는 나쁜 것이 없는 이야기였다. 가문 간의 알력 다툼이라던가, 다른 가문으로 떨어져나와 독립했는데도 본가라고 할 수 있는 가문이 자꾸 간섭한다던가.

        

       앨리스 입장에서도 들어두어서 나쁘지 않은 이야기들이겠지. 나중에 정책을 펼칠 때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가?”

        

       클레어는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그 정도는 이미 알고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왜? 마음에 안 드는 거라도 있어?”

        

       “아니, 그런 건 아니고.”

        

       클레어는 실실 웃으면서 말했다.

        

       “뭔가 잊은 거 없나 싶어서.”

        

       “잊은 거라니?”

        

       “한번 잘 생각해봐. 표를 얻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겠어? ……뭐, 그걸 생각해내는 것도 차기 학생회장이 되고자 하는 사람의 몫이겠지만.”

        

       클레어는 전혀 말해줄 생각이 없는 모양이었다.

        

       “…….”

        

       “언니는 왜 그래?”

        

       내가 그런 클레어를 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으려니, 클레어가 다시 고개를 옆으로 빼 나를 보면서 물었다.

        

       “아니, 아무것도 아냐.”

        

       그냥 PTSD가 와서 그래.

        

       원작에서 클레어는 앨리스를 거의 일방적으로 싫어하는 상태로 첫 등장을 했었는데, 알고 보면 그때도 이미 앨리스를 꽤 좋아하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싶다.

        

       왜냐하면, 지금 클레어가 앨리스에게 보이는 반응이 그때 클레어가 보이던 반응과 거의 비슷했기 때문이다.

        

       물론 정도로 따지면 그때가 더 심하긴 했지. 지금처럼 살짝 놀리는 수준으로 끝나지 않았으니까.

        

       뒤로 가면서 서서히 나아졌고, 게임상에서 죽기 얼마 전에는 앨리스와 거의 화해 분위기까지 갔다. 아버지의 계획을 알고 나니 오히려 현자 타임이 왔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자기 자매와 좀 친하게 지내보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그때도 친자매라는 것은 모른 채로 죽긴 했겠지만.

        

       “으응?”

        

       내가 고개를 젓자, 클레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뭐, 지금은 그래도 죽을 일은 없으니 안심하기로 하자.

        

       *

        

       샤를로트는 미아와 함께 수업 시작 직전이 되어서야 교실에 들어왔다.

        

       “둘이 어디 다녀와?”

        

       “학생회장이 되기 위해 아주 중요한 곳에 다녀왔죠.”

        

       “……아주 중요한 곳?”

        

       앨리스가 미아 쪽을 바라보았지만, 미아는 그저 시선을 피할 뿐이었다.

        

       “미아를 압박하는 건 곤란하죠. 후보를 협박해서 전략을 알아내는 건 신사답지 못하잖아요?”

        

       샤를로트가 여유롭게 웃으며 정론을 설파하자, 앨리스는 아쉽다는 듯 미아에게서 시선을 거두었다.

        

       결국 그날 아침에 우리가 알아낸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앨리스는 조금 초조한 듯 보였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그런대로 그 감정을 잘 숨기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화는 최대한 빨리 완성해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다음화 보기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Overly Diligent

Status: Completed Author:
I got transported into a steampunk-themed JRPG developed by a Japanese game company. Somehow, I ended up becoming an executive in the villain faction. However, the protagonist and their party are excessively dilig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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