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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7

     오로솔 아카데미는 딱히 전쟁 발발시 외적을 막기 위해서 지어진 곳이 아니다.

     아무리 봐도 십수 미터 높이의 성벽이 존재하는 이유는 적을 막기 위한 것처럼 보이지만, 호화스럽고 웅장해보이는 성벽은 엄밀히 따지면 울타리에 가깝다.

     -고귀한 교육을 받는 고귀한 자들의 장소를 감히 평민들이 바라보는 것이 가능할 것 같으냐!

     라는, 노스트럼 귀족 평균 수준의 시선에 입각하여 지어진 울타리다.

     평민들이 감히 귀족들이 배우고 익히는 배움의 전당을 바라보지 못하도록 세워놓은 드높은 담벼락이었다.

     그것이 이렇게 제국군의 침입을 막아내는 성벽이 될 거라고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쏴라ㅡㅡㅡ! 올라오지 못하게 막아!!”

     저렇게, 아카데미라는 곳의 성벽 위에 올라간 노스트럼 병사들이 아래를 향해 화살을 쏘아대는 일도 없었겠지.

     ‘아마 지금쯤 바퀴가 고장난 마도자동선이 달려오는 것처럼 아카데미 내부를 헤집어놓지 않았을까.’

     전차가 시가지를 달리는 것처럼, 마도자동선은 성벽 에 박히는 게 아니라 아카데미 곳곳을 돌아다니며 사람들을 치고 다녔을 것이다.

     쿵, 쿵, 쿠ㅡㅡ웅!

     마도자동선이 연달아 성벽을 들이받는다.

      

     이전에 내가 세이레네 백작령을 점거할 때 사용했던 것처럼, 마도자동선들이 그 육중한 몸을 이끌고 전력으로 달려와 성벽을 향해 옆으로 부딪친다.

     [진격하라!! 모두 죽여버려!!]

     제국어가 들린다.

     노스트럼에서는 유학생들도 사용하지 않은, 순수 제국어가 들린다.

     [노스트럼의 야만인들을 전부 모가지를 찢어버려!]

     야만스럽기 짝이 없는 괴성을 내지르며, 성벽에 처박은 마도자동선의 갑판에 올라온 제국군 병사들이 하나둘 성벽 위로 기어오르려고 한다.

     마도자동선은 발판이 되었다.

     성벽을 오르기 위해서는 공성용 사다리가 필요하지만, 마도자동선을 붙이는 걸로 이미 성벽 절반이 의미가 없어진 상황.

     “이, 죽어버려!!”

     병사들이 계속 화살을 던진다.

     해가 떨어진 밤이 되어 어둠 속에서 빛나는 붉은 빛을 향해 화살을 쏴대지만, 본능적으로 활이 아닌 허리에 찬 검에 손을 뻗는다.

     화살로는 제어할 수 없다는 것을 안 이상.

     저기 저, 날카로운 손톱을 직접 성벽에 박아넣으며 기어올라오는 저들이 보통의 인간이 아니라는 걸 직감한 이상.

     “노스트럼의 영웅들이여! 검을 들어라! 제국의 병사들에게 황금룡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저기 병사들의 대장과 같이, 마나를 끌어올리며 마나를 담은 검으로 베어내는 것만이 답이라고 생각하기 마련.

     실제로 그러하다.

     흡혈귀 병사들을 상대로 가장 확실하게 쓰러뜨리는 방법은 마나가 담긴 검으로 토막을 내는 것.

     “노스트럼을 위하여!!”

     대장으로 보이는 기사가 검을 움켜쥔다.

     표정으로 보면 계속 화살을 쏘라고 지시를 내리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랬다가는 이제 성벽 위로 기어이 올라온 흡혈귀 병사들에게 그대로 덮쳐지겠지.

     좋은 판단이다.

     하지만 기사는 가장 중요한 걸 모른다.

     철컥.

     

     올라온 순간.

     성벽 위까지 올라와 한쪽 팔을 난간에 걸친 흡혈귀는 그대로 뒤로 손을 뻗고는.

     타ㅡㅡ앙!

     즉시, 등 뒤에 걸어둔 머스킷을 꺼내 마탄을 쐈다.

     “흡…!”

     기사가 당황한다.

     매직 미사일이었다면 갑옷과 몸으로 어떻게 막아내겠지만, 머스킷에서 뿜어져나온 마탄은 그 끝이 박쥐의 송곳니마냥 날카로웠다.

     “집중하게.”

     서걱.

     날아오는 마탄을 칼로 베어낸다.

     “그, 그레이 지브롤터…?!”

     “그래, 나지.”

     나는 단숨에 기사의 옆으로 뛰어 마탄을 베었다.

     “평소라면 느긋하게 이야기를 해주겠지만.”

     서걱.

     “말 한 마디 한 마디 할 때마다.”

     푸ㅡ욱.

     “제국군 병사를 죽이고 다녀야 해서 말이야.”

     푹찍.

     베어내고, 가르고, 찌른다.

     가장 먼저 올라온 흡혈귀 병사 셋은 목이 날아가고 몸통이 갈라지고 심장이 찔린 채, 그대로 뒤로 넘어가며 마도자동선을 향해 추락했다.

     “으, 으으….”

     “장비가 제때 도착했다면 다행이겠지만, 아쉽게도 지금은 가지고 있는 걸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어서 말이야.”

     [죽어라, 그레이 지브롤터!!]

     흡혈귀 사이.

     [너만 죽으면, 황태자의 자리는 내가!!]

     어딘가 다른 제국군 병사보다 이질적인, 머리가 하늘색에 가까운 흡혈귀가 내게 머스킷을 겨누고 있었다.

     “잘도.”

     타ㅡ앙.

     “흡혈귀가 되어버린 걸 인간으로 취급도 하지 않는 황제가 잘도 그러겠어.”

     

     날아오는 마탄을 튕겨낸 뒤, 즉시 아래로 뛰어내리며 검을 내리그었다.

     [어, 째서…?]

     “뭘 어째서긴. 소드 마스터를 뭘로 보는 거냐.”

     50m 협곡 관문에서도 뛰어내리는 게 소드 마스터다.

     이 정도 높이에서 뛰어내리면서 검을 휘둘러 적을 죽이지 못한다면, 그 때는 소드 마스터 자격을 반납해야 할 것이다.

     “아.”

     엄밀히 따지자면, 소드 마스터는 아니다.

     [저, 저거…!]

     내가 들고 있는 검은 노스트럼의 기사들이 누구나 쓰는 각진 형태의 검이 아닌, 참(斬)하는데 특화된 블레이드니까.

     “아, 그래. 제국식 검이지.”

     나에게 있어 가장 손에 잘 맞는 무기이자, 내가 가장 많이 다뤄본 무기.

     [아, 이렇게 이야기를 해줘야 하나?]

     벤다.

     대답을 원한 건 아니었기에, 그대로 목을 베어넘긴다.

     피는 튀지 않는다.

     흡혈귀라는 것들은 그 피가 너무나도 끈적하여, 응집성이라도 있는 것처럼 주변에 튀지 않고 꿈틀거리기 마련이니까.

     [뭘 그렇게 심각하게 보고 있어.]

     성벽 위로 올라가기 위해 마도자동선 갑판 위로 올라온 병사들이 하나둘 뒷걸음질을 친다.

     

     [나는 알아. 너희들이 왜 여기에 흡혈귀가 되어서까지 이 자리에 왔는지.]

     제국군 흡혈귀 병사 2만.

     흡혈귀라고는 하지만, 노스트럼이라는 땅에 바다를 가로지르고 하늘을 날아서 도착하는 위험부담을 기꺼이 감수한 자들.

     [목숨을 걸 가치가 있는 일이 있었을 거야.]

     그들은 이곳에 죽으러 온 게 아니다.

     자기들 딴에는 다들 살 궁리를, 그리고 전쟁으로부터 살아남아서 금의환향을 할 각오를 하고 온 것이다.

     [땅을 선물로 준다더냐. 노스트럼의 노예를 노리개로 마음껏 다룰 수 있게 해준다더냐. 아. 가족을 인질로 잡고 있다거나, 자기 형량을 줄여주는 대가로 사법거래를 하거나 그랬던 건 아니지? 마지막은 노스트럼 사람들에게 말하지 마라. 여기에는 사법거래라는 개념이 없어요.]

     [으, 으아아아!!]

     흡혈귀들이 일제히 나를 향해 머스킷을 겨눈다.

     접근전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직감한 듯, 거리를 좁히지 않겠다는듯 바로 머스킷을 든다.

     [원거리 공격이 가능한, 겁 먹은 인간의 전형적인 행동이지.]

     타다다다다당!

     머스킷이 불을 뿜는다.

     하지만 마탄은 내게 조금도 스치지 않았다.

     [미, 미친…!]

     [왜. 가장 유용한 방패였는데.]

     나는 걸레짝이 된 방패를 강하게 움켜쥐었다.

     [시, 시신을 방패로?!]

     [성능 좋잖아.]

     나는 내가 쓰러뜨린 흡혈귀 병사의 명치를 붙잡고 앞으로 달렸다.

     연발로 날아온 머스킷을 전부 막아낼 정도로 단단했지만 그만큼 무거웠기에, 들고 장거리를 이동할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이걸 강력한 힘으로 날려버리면 그게 곧 무기가 된다.

     [잘 받아보라고.]

     콰ㅡㅡ앙!

     폭발이 일어난 게 아니다.

     죽은 흡혈귀 병사를 내던졌더니, 그와 부딪쳐 갑판 너머로 넘어간 흡혈귀 병사들이 내는 소리였다.

     [아, 아으, 으아아….]

     흡혈귀 중 하나가 갑판에 주저앉는다.

     머스킷을 꽉 움켜쥔 채, 벌벌 떨기만 하면서 뒤로 슬금슬금 물러난다.

     [이상하군. 흡혈귀면서 뭘 인간처럼 굴고 있어.]

     [괴, 괴물…!]

     제법 나이가 어려보이는 걸로 봐서는 지금의 나와 나이가 비슷해보이는 것 같지만, 하얗게 새어버린 머리카락이나 어둠 속에서도 붉게 물든 눈동자는 흡혈귀의 상징과도 같았다.

     [누가 누구를 보고 괴물이라고 하는-]

     

     흡혈귀를 향해 칼을 휘두르려고 한 순간.

     새애액.

     멀리서 날아온 무언가에 나는 바로 고개를 뒤로 젖혔다.

     내 앞머리 몇 가닥을 자르며 스쳐지나가는 무언가.

     그것은 분명 오러가 깃든 투척용 도끼였다.

     […하.]

     “어이.”

     쿠ㅡ웅.

     

     “마스터가 일반병 상대로 그렇게 압박하고 그래도 되는 거냐?”

     거대한 곰을 연상케하는 육중한 몸.

     전신을 칠흑의 갑옷으로 두른 그는 칼이라고는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을 것처럼 단단해보였다.

     “그레이 지브롤터. 네놈을 오래 전부터 죽이고 싶었다. 이제서야 비로소 복수를 하게 되는구나.”

     남자가 자기 몸보다 더 큰 할버드를 두 손으로 움켜쥐며 자세를 잡는다.

     “나는 황금여명의-”

     [당신 왕국어 발음 진짜 구립니다, 클레이돌 후작.]

     [아이, 썅.]

     거구의 마스터, 클레이돌 후작이 발로 바닥을 구르며 신경질을 냈다.

     [어째 속지를 않아. 야, 네 제국어는 뭐 되는 줄 아냐?]

     [적어도 당신보다는 더 낫다고 자부할 수 있죠.]

     [미쳤나, 이게. 제국 사람인 나보다 더 제국어를 잘한다고?]

     [적어도 당신보다는 더 많은 제국어를 알고 있으니까요.]

     합스베르크 제국에서 퍼진 신조어라거나.

     [그리고 제국’인’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습니까? 인간을 포기한 자가.]

     [흐흐흐.]

     [흡혈귀가 되면서까지 그렇게 강해지고 싶었습니까? 아니면 그렇게 노스트럼을 멸망시키고 싶었습니까? 아니면…아버지가 계신 협곡을 뚫는 게 무서워서 후방을 치러 온 겁니까?]

     [도발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황제 폐하의 임무 분장이 철저하신 게지. 가장 믿을 수 있는 자에게 후방 기습을 시킨 거니까.]

     […글쎄요.]

     죽으라고 보낸 거지만, 클레이돌 후작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어이, 그레이 지브롤터. 너는 왜 그렇게 여유롭지?]

     클레이돌 후작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듯 나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지금 흡혈귀 병사, 노스트럼으로 치면 하급기사 2만명이 톨레도에 상륙했다는 게 무슨 소리인지 모르냐?]

     [압니다.]

     위기 상황이다.

     [그리고 당신은 저를 묶어두기 위해 이 자리에 직접 모습을 드러냈죠.]

     […….]

     [저를 제압하지 않으면, 최소한 1만 명 정도는 제가 다 썰어버릴 것 같으니까.]

     클레이돌 후작이 나타난 이유는 하나.

     [영광이군요. 저를 그렇게 높게 평가해주시다니.]

     나를 억제하기 위해서.

     [나도 팔신장이거든. 아, 혹시 팔신장에 대해서 알고 있나?]

     [관심 없습니다. 당신 중 한 명이 나를 억제하려고 왔든, 당신 말고 다른 이들이 2만 흡혈귀들과 함께 왕도의 시민들을 습격하든말든.]

     [뭐?]

     [한 가지 착각을 하고 있으니, 정정하도록 하죠.]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당신과 이야기를 나누는 건 어리석거나 그런 게 아니라, 실제로 여유가 있기 때문에 그런 겁니다.]

     […….]

     [지금은 노스트럼의 대위기. 이전이라면 너무나도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이들이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상황에서는 가장 믿음직스러운 이들이 있거든요.]

     히히힝!!

     […말?]

     오로솔 아카데미의 정문이 열리며, 안쪽에서 황금의 기마갑옷을 두른 기병들이 일제히 튀어나왔다.

     [소개하죠.]

     

     나는 선두에서 노스트럼의 깃발을 들고 달리는 아카데미 학생 제복 위에 갑옷을 입은 이를 가리켰다.

     [노스트럼의 특산물, 충성병자들입니다.]

     나라가 멸망해도 기꺼이 혁명을 위해 망국의 공주를 따르던 이들.

     [제가 여유가 있는 건, 저 혼자 싸우는 게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로솔에는 싸울 수 있는 이들이 있다.

     [왕이 백성을 버리지만 않는다면, 백성 중 무조건 영웅이 튀어나오는 게 노스트럼이라서요.]

     [하….]

     클레이돌 후작이 할버드를 움켜쥔다.

     [이 거지같은 노스트럼.]

     [너무 화내지 마십시오. 머리에 열이 오르면 머리가 벗겨지기 쉽습니다.]

     순간, 클레이돌 후작이 움찔거린다.

     전신을 가린 갑옷은 투구도 마찬가지라, 피부를 조금도 볼 수 없을 정도로 꽁꽁 가렸다.

     [아.]

     나는 클레이돌 후작을 향해 한 손으로 검을 겨누며, 다른 손으로는 내 머리를 두드렸다.

     [흡혈귀가 되면 죽은 머리카락도 부활하는 겁니까? 그건 진짜 궁금한데.]

     

     부ㅡ웅!

     [뒤졌어, 이 개자식. 너는 머리 안 빠질 것 같냐? 응?]

     아무래도 클레이돌 후작이 단단히 화가 난 모양이지만.

     [지브롤터에.]

     나는 날아오는 도끼를 향해 칼을 휘두르며 앞으로 거리를 좁혔다.

     [대머리는 없습니다만?]

     카ㅡ앙!

     [이 자식!! 애비나 자식이나!!]

     [좋은 피를 물려받았죠. 당신 자식들처럼 평생 머리 빠질 걱정만 하며 살아갈-]

     콰ㅡㅡㅡ앙!

     아래로 찍힌 할버드의 날에 배가 반으로 쪼개진다.

     “너, 죽었어.”

     [일부러 왕국어로 할 필요는 없습니다만….]

     갈라지는 마도자동선에서 뛰어내리며, 칼을 다시 앞으로 겨눈다.

     [당신 죽이면 얌전히 화장한 다음, 뼛가루는 붉은 평야에 뿌리도록 하죠. 백은으로 만들지도 않겠습니다. 괜히 마셨다가 부작용으로 머리 빠지면-]

     부ㅡ웅.

     [거, 사람 말 좀.]

     [죽어, 이 개새끼야!!!]

     클레이돌 후작이 고성과 함께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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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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