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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7

   “저주 받이!”

     

   저 녀석은 여전히 저렇게 부르는 법밖에 모르는 걸까.

     

   소리친 시그린을 보고, 크라슈의 눈빛이 차갑게 식었다.

   동시에 크라슈는 시그린에게서 흘러나오는 힘을 눈치챘다.

     

   ‘미래를 끌어다 썼군.’

     

   시그린은 회귀 전, 분명한 강자였다.

   그런 그녀이니 그녀 또한 극단적인 방법으로 강하게 만드는 법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본래라면 위기 상황에만 꺼내야 할 마지막 수단이겠지만.

   정신이 나가 버린 시그린에게 있어 이미 하루하루가 위기 상황이었다.

     

   “장막을 어떻게 넘어왔지?”

     

   시그린이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크라슈를 노려본 채 물었다.

     

   황궁 밖에 쳐져 있는 장막.

   그건 외부인은 들어올 수 없고, 내부인은 나갈 수 없는 구조의 장막이다.

     

   그걸 어떻게 뚫고 온 거냐고 시그린이 묻자 크라슈가 헛웃음을 흘렸다.

   뭘, 당연한 걸 묻냐는 표정이었다.

     

   “저 장막의 기초 토대는 어떤 일이 생겨도 황가의 핏줄만은 들어 올 수 있는 형태잖냐.”

     

   지금은 황족도 바깥으로 나갈 수 없게 만드는 감옥이 되어버렸지만.

   그래도 결국 기초 토대까지 완전히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덕분에 황가의 핏줄은 출입 자체는 가능해진 형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런 황가의 핏줄을 증명하는 것이 무엇인가.

     

   답은 간단했다.

   백룡의 힘이다.

     

   그렇기에 백룡의 힘을 지니고 있던 크라슈 또한 장막을 뚫고, 내부로 들어올 수 있었던 것이다.

     

   ‘금역 쪽은 릴리쉬 누님과 수호검, 그리고 기사단들이 해결해줄 거다.’

     

   세계 침식에는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그들이다.

   그러니 크라슈는 그들에게 금역을 맡기고, 바로 황궁으로 향했다.

     

   황궁의 앞에는 여러 인물이 장막을 뚫어내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거기 마력, 출력을 올려라!」

   「방어 마법을 뚫는 마도구는 죄다 쓸어와!」

     

   특히, 마법사들이 그야말로 난리통이었다.

   황궁에 걸린 장막은 분명 마법적 개입을 통해 강화되었다.

     

   그런데 황궁 마법사라 불리는 자신들이 뚫지 못하고 있으니 미칠 노릇이었다.

   그 앞, 가장 눈을 부릅뜨고 있는 사내가 있었다.

     

   에파니아 황궁 최고의 마법사.

   천하십강.

   마왕.

   다이크람 아리오스.

     

   그가 핏발이 선 눈으로 장막을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한 이야기다.

   장막의 정기 수복과 강화를 하던 것은 다이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이 쳐놓은 장막을 적에게 이용당했을 뿐만 아니라 뚫지를 못하고 있으니.

   당연히 머리끝까지 열을 받은 것이었다.

     

   「지나갑니다.」

     

   그런 그의 앞을 크라슈가 지나갔다.

   뒤늦게 크라슈를 본 다이크람의 눈이 크게 떠졌다.

     

   「넌.」

     

   그걸 끝으로 크라슈는 장막을 넘어 황궁 안으로 들어왔다.

   장막 밖에서 크라슈가 들어선 모습을 보고, 난리가 났지만 설명해줄 틈은 없었다.

     

   장막이 걷히기 전까지 지금 당장 황궁을 지원할 수 있는 건 백룡의 힘을 지닌 크라슈밖에 없으니까.

     

   황궁에 들어서자마자 보인 광경은 무척이나 참혹했다.

   복도를 걷는 내내 시종이나 기사단들의 시체가 즐비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크라슈는 거기에 새겨진 검상이 누구의 흔적인지 잘 알고 있었다.

     

   시그린 에파니아.

   그녀의 검이 확실했다.

     

   그것을 확인하자마자 전력 질주로 뛰어 들어오니.

   아니나 다를까, 시그린은 이제 자기 친오빠마저 죽이려 들었다.

     

   “하, 네가 황가의 핏줄이라도 된다, 이 소리야! 고작 저주 받이 따위가!”

     

   시그린이 헛소리 말라는 듯 두 눈을 와락 일그러트린 채 외쳤다.

   시그린의 두 눈동자는 이미 초저녁에 총기를 잃고, 망가뜨려졌다.

     

   그녀는 세상을 향해 깊은 증오를 토해냈다.

   마치, 세상이 자신을 버린 것, 마냥 말이다.

     

   “……아직도 자기가 이야기에 나오는 비련의 여주인공이라도 된 줄 알고 있는 거냐.”

   

   

   

   

     

   크라슈는 그런 시그린을 무척이나 한심하게 내려보았다.

     

   저 여자는 어떻게 저토록 한결같을 수 있을까.

   정작, 세상을 버린 게 누구인지 시그린은 조금도 알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저런 꼴이 되어버린 지금조차 시그린은 본인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아서의 말이 다시금 떠올랐다.

   세계를 멸망시킨 세 사람.

     

   그중 한 명이 시그린이었다는 말이 말이다.

     

   정말 저 꼴을 보니 아서의 마음도 이해가 간다.

   시그린은 절대 고쳐 쓸 수 없는 인물이다.

     

   신분이 높으니 죽였다가 올 후폭풍이 껄끄러우니 함부로 죽일 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살려 놓으면 이 상황을 만들어 놓으니.

     

   연인이라는 족쇄라도 채워 놓는 수밖에 없었겠지.

     

   “너희는 참 한결같이 징글맞아.”

     

   크라슈의 검에서 서서히 백염이 피어올랐다.

   그것을 본 시그린이 이를 바드득 갈았다.

     

   “……나를 내려다보지 마.”

     

   동시에 시그린의 몸에서도 새하얀 백색의 기류가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너 따위가 나를 내려다보지 말라고!”

     

   그리고 시그린의 인영이 흐트러졌다.

   크라슈가 검을 옆으로 휘두른 순간 거기에는 시그린의 검이 도착했다.

     

   채엥!

     

   부딪친 소리와 함께 크라슈의 인영도 흐트러졌다.

     

   채엥! 챙! 챙!

     

   두 사람의 검이 부딪치는 소리가 맹렬히 울려왔다.

     

   그 광경을 황제의 방패, 테르만 프리드웬이 눈을 부릅뜬 채 보았다.

   마스터의 경지에 있는 테르만이다.

     

   그런 그가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공방은 터무니없는 속도였다.

   게다가 둘이 부딪칠 때마다 황궁 여기저기가 부서져 나갔다.

     

   둘의 공방 때문에 휘몰아쳐 오는 바람은 거구인 테르만도 뒤로 물러설 지경이다.

     

   ‘대체 이게 무슨.’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가는 두 사람의 전투를 본 테르만은 황급히 1황자를 감쌌다.

     

   “1황자님! 이 틈에 빠져나가야 할 거 같습니다.”

     

   1황자 시란 에파니아는 테르만의 말에도 침묵하며 두 사람의 전투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결국 그는 몸을 돌렸다.

     

   테르만의 말대로 여기에 자신들이 낄 자리는 없었다.

     

   “내가 쌓아온 무가 얼마나 보잘것없는지 깨닫게 되는군.”

     

   시란은 새삼 깨달았다.

   자신은 무력에서도 그리고 지력에서도 최고는 되지 못함을 말이다.

     

   그는 형제들 사이에서도 늘 중간이었다.

     

   그건 무척이나 균형 있어 보이기도 했지만.

   어느 누군가에게는 뛰어난 것 없는 황자로 평가되기도 했다.

     

   1황자라는 위치에도 선두를 아슬하게 유지했던 이유는 이런 점 때문이겠지.

     

   시그린의 무를 보고 깨닫는다.

   시즐리의 지능을 보고 깨닫는다.

     

   자신이 황제가 된다면 역사에서도 별다른 이름을 남기지 않고, 후대로 넘겨줄 것이라고.

     

   황제께서 1황자란 위치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황제위를 물려주지 않은 것 또한 그런 이유겠지.

     

   ‘하지만 상관없다.’

     

   시란은 황제라는 위치를 놓칠 생각이 없다.

   그러니 마지막까지 그는 황제를 목표로 달려 나갈 생각이다.

     

   “테르만, 폐하의 방을 수호해라. 나는 남은 백룡 기사단을 모아오겠다.”

     

   시란은 그리 고하며 크라슈 쪽을 힐끗 보았다.

     

   발하임의 상징인 검푸른 머리색.

   저자가 바로 황제가 직접 황궁의 은인이라 칭한 크라슈 발하임이었다.

     

   이렇게 만나게 될 줄은 몰랐지만, 시란은 확실히 느꼈다.

   저자는 머지않아 스타론과 제국을 넘어 세계 전역에 이름을 떨치게 될 자라고.

     

   ‘만약 그가 시그린을 꺾고, 황궁을 지켜 낸다면.’

     

   세상은 무섭도록 그에게 집중될 것이다.

     

   ‘시대가 흐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시대의 흐름의 편승할 수 있을지 없을지에 따라 도태되거나 앞으로 나아가겠지.

     

   부디, 그가 시그린을 꺾어 주기를 바란 채.

   시란은 그렇게 그곳을 떠났다.

     

     

   * * *

     

     

   시란과 테르만이 자리를 비운 뒤에도 크라슈와 시그린의 공방은 계속됐다.

     

   둘 다 백룡의 기세를 두르고 있는 만큼.

   두 사람의 공방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황궁은 초토화가 됐다.

     

   어느새 본래 모습은 상상도 못 할 정도로 망가진 황궁 앞.

     

   크라슈와 시그린의 검이 또 한 번 교차했다.

     

   채엥!

     

   시그린의 위에서 검을 내려친 크라슈가 시그린의 검 위에 스며드는 기운을 보았다.

     

   크라슈는 그 기운의 정체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검광(劍撗)

     

   상대의 힘을 받아낼 때마다 사용자의 출력에 힘을 더하는 전 천상사강 검황의 비기였다.

     

   검광은 까다로운 비기다.

   본디 전투란 전투를 지속할수록 출력과 체력을 소비한다.

     

   하지만 검광은 그와 반대로 전투가 길어질수록 그 힘이 더 거세진다.

     

   그러니 검광의 사용자를 상대로 합이 길어지는 건 무조건 피해야 했다.

     

   시그린과 검을 부딪친 크라슈가 발을 내질렀다.

   뻗어진 크라슈의 발이 시그린의 발목을 걷어찼다.

     

   시그린의 몸이 발목의 통증과 함께 한순간 앞으로 쏠렸다.

   크라슈가 그 틈을 타 시그린의 검을 뿌리치며 얼굴에 주먹을 내질렀다.

     

   빠각!

     

   벌어진 틈을 노린 일격이었다.

   그러나 크라슈의 주먹은 시그린의 손등에 막혀 버리고 말았다.

     

   빠악!

     

   하지만 크라슈의 공격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촌경(寸勁)

     

   뒤따른 충격이 시그린의 손을 강타하며 그녀의 손목을 튕겨냈다.

     

   크라슈의 검이 휘어지며 시그린에게 뻗어 나온 순간.

   그 앞을 막은 건 또 시그린의 검이었다.

     

   챙!

     

   하지만 이번에는 안정적인 자세로 받아내지 못해서인지 시그린이 뒤로 크게 물러섰다.

     

   그것을 본 크라슈는 숨을 가다듬으며 혀를 찼다.

     

   시그린은 강자다.

   그건 오랜 사실이다.

     

   시그린은 검에서만큼은 일류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그녀의 동체 시력과 감은 크라슈의 제 육감을 뛰어넘었다.

     

   오직 재능만으로 시그린은 크라슈의 모든 공격을 막아내고 있다.

   시그린의 눈은 크라슈의 사소한 버릇부터 시작해 그가 사용하는 검술까지 단시간에 깨달았다.

     

   검을 쓰는 이들이 시그린과 맞섰을 때.

   그들은 흔히 말하고는 한다.

     

   시그린과의 전투는 다시 하기 싫을 정도로 끔찍했다고 말이다.

     

   시그린은 상대의 모든 검술을 파훼하고, 끝내 상대가 넘어설 수 없는 벽이 되어 짓누른다.

     

   단기간에 승부를 볼 수 있음에도 시그린이 이런 전투 방식을 취한 건.

   상대를 괴롭히는 악취미가 섞였기 때문이지만.

   이는 시그린이 곧 장기간 전투에 최적화 되어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실제로 시그린의 이런 전투 방식이 통하지 않은 상대는 샬롯 말고는 없다.

     

   샬롯은 그녀의 모든 검술을 파훼시켜 놓아도 그때 맞춰 새로운 검술로 개량해버리니.

   시그린과의 상성이 최악인 탓이었다.

     

   그런 지금.

   시그린과 맞서고 있는 크라슈는 깨달았다.

     

   시그린과 맞선 상대들이 왜 다 그런 말을 했는지 말이다.

     

   ‘검광과 장기전에 특화된 시그린의 조합은 최적이다.’

     

   크라슈는 시그린이 왜 정치 쪽에도 손을 놓고, 검광을 우선 적으로 배웠는지 깨달았다.

   시그린 본인도 검광이 자신과 얼마나 잘 맞는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그린의 검광이 그녀의 검에서 번들거렸다.

   검광을 지닌 시그린은 무서울 정도로 강해지고 있었다.

     

   앞으로 몇 합일까.

   크라슈도 짐작할 수 없을 만큼 시그린의 검광은 거세게 힘을 토해내었다.

     

   ‘그렇다면.’

     

   크라슈는 시그린과 검을 맞대는 건 그만뒀다.

   장기전에 특화된 시그린을 뚫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우쳤기 때문이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검에서만큼은 시그린이 자신보다 경지가 높았다.

     

   그러니 크라슈는 자신이 가장 잘하는 걸 하기로 했다.

     

   크라슈가 감았던 눈을 천천히 떠올렸다.

   그러자 그의 눈동자가 새빨갛게 물듦과 함께 천살성의 기운이 휘몰아쳤다.

     

   속전속결.

     

   장기전이 특화라면.

     

   ‘단기전으로 끝내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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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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