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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7

       카우렐리아의 주민들은 피난길에 올랐다.

       

       총 열다섯 갈래로 이루어진 행렬. 이중 어떤 행렬이 마왕군의 공격을 받고, 어떤 행렬이 공격을 받지 않게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운이 나쁘면 모든 행렬이 공격을 받을 수도 있을 것이다.

       

       혹시라도 공격받을까 봐, 사람들은 불안에 떨었다. 전쟁 앞에서 일반 시민들은 피해자에 불과했다. 여기저기서 아이 울음소리가 들리고, 매캐한 화약 냄새가 나기도 했다.

       

       로테는 이 광경이 사무치도록 싫었다.

       

       대체, 평화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전쟁이 끝나면 에테르와 함께 영지에서 살기로 약속한 자신이었다. 그런데 그 친구는 마음의 준비도 하기 전에 떠났다. 작별 인사를 남기고는, 전장으로.

       

       슬프다. 외롭다. 애처롭다.

       

       부정적인 여러 감정이 탁하게 섞여 눈물로 올라왔다.

       

       “살리에르 양, 빨리 걸어야 해요.”

       

       그럴 때마다 클라이스나 다른 사람이 로테를 떠밀었다.

       

       뒤를 돌아볼 때마다 등을 떠미는 클라이스가 이렇게나 야속하게 느껴진다. 로테는 눈시울을 적시며 클라이스를 바라봤다.

       

       클라이스의 눈도 벌겋게 충혈되어 있었다.

       

       “…살리에르 양. 알아요. 당신 기분이 어떤지는.”

       “선생님…….”

       “하지만 에테르 양이 말했잖아요. 작별할 시간이라고. 당신이라도 살아서, 새로운 세상을 맞이하라고.”

       

       에테르는 마왕을 쓰러뜨리기 위해 버멜과 함께 정령계로 향했다. 그 두 사람을 보조하는 전력이라고는 전계의 대정령 앨리스와 바람의 정령왕 에어리얼. 그리고, 정령계로 먼저 가 있다는 땅의 정령왕 노움이 전부였다.

       

       “저는, 믿을 거예요.”

       

       로테가 입술을 파리하게 떨며 말했다.

       

       “에테르는 살아 돌아올 거예요. 반드시. 응, 그러리라고 약속했어. 약속했으니까.”

       

       피난길로 인해 초췌해진 몸.

       

       오랜 전쟁으로 인해 마모된 정신.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도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무력감.

       

       전체적으로 피폐해진 로테가 할 수 있는 것은 믿는 것뿐이었다. 부디, 여신께서 에테르를 살려 보내주시길.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창천 파스모.”

       

       앞서 걸어가던 소녀의 입에서 그런 소리가 튀어나왔다.

       

       “뭐?”

       “창천이 죽었다고.”

       

       로즈마리가 뒤를 돌아보며 그리 말했다.

       

       로즈마리는 지금까지 스코프를 켜고 있었다. 마력 손실을 최소화하기 위해서 화면의 크기는 아주 작게 해 놓았다. 때문에 로테가 그녀의 화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 창천이 죽었다니?

       

       사천이나 되는 거물이, 지금 죽었다고?

       

       “에테르는. 에테르는 어떻게 됐는데?”

       “언니라면 잘 살아있어. 창천이 죽은 건 다른 이유야.”

       

       로즈마리의 간략한 설명을 들은 로테가 기겁했다.

       

       “동료를 먹다니…….”

       

       마왕도 금안족인 것으로 알고 있다. 금안족이 금안족을 먹다니. 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야만적인 행위는 생에 들어본 적도 없었기에, 로테는 경악했다.

       

       “아무튼, 그거 있잖아?”

       “뭐, 뭐가?”

       “내 얘길 들었으면 종이를 태워야지.”

       

       아.

       

       그제야 로테는 에테르가 했던 말을 떠올렸다.

       

       가방을 뒤적여 종이 몇 장을 꺼냈다. 파스모, 캐슬 브라보, 빌헬름 폰 슈델가이거, 마왕 파르켈수스.

       

       그리고 에테르까지. 마왕군의 이름이 적힌 카드였다.

       

       로테는 그중 파스모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웠다. 불꽃이 붙은 종이가 공간 사이를 일렁이다가 곧 자취를 감추었다.

       

       피난길에 올랐는데 이런 낭비를 하는 이유는 하나였다.

       

       에테르가 그렇게 하라고 시켰으니까.

       

       언제, 누가, 어떻게 죽었는지 확인하라고 했으니까.

       

       역사의 산 증인이 되어서, 다음 세대에 전하라는 부탁을 받았으니까.

       

       “미, 미친.”

       

       스코프를 살피던 로즈마리가 제대로 경악했다.

       

       “또 왜 그래?”

       “땅의 정령왕이, 죽었어.”

       

       생명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었다.

       

       로테는 이를 악물며 걸음을 재촉했다.

       

       한 걸음. 한 걸음. 발을 내디딜 때마다 식은땀이 났다.

       

       “아…….”

       

       투욱.

       

       앞서가던 로즈마리의 발걸음이 멈추었다. 바로 뒤에서 따라붙고 있었던 로테는 그녀와 부딪혀 엉덩방아를 찧고 말았다.

       

       로즈마리가 다시 뒤를 돌았다.

       

       안색이 새파랗다.

       

       “크, 큰언니.”

       

       로즈마리는 털썩 주저앉았다. 같이 걷던 아카샤의 표정도 덩달아 어두워졌다.

       

       이 시점에서, 로테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알았다.

       

       “작은언니. 큰언니… 큰언니가아……!”

       

       갑자기 울기 시작한 로즈마리. 얼마나 서러워하는지, 주변 사람들이 걷다 말고 멈추어 설 정도였다.

       

       로테는 넘어진 그 상태 그대로 일어나질 못했다.

       

       “야… 대체 무슨 일인데? 무슨 일이길래 그래…?”

       

       프레이가 재빨리 다가와 로테를 일으켰다. 로테는 프레이와 클라이스의 부축을 받으며 몇 걸음을 더 걸었다. 그런데, 걷다 말고 다시 넘어졌다.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언니가, 죽었어.”

       

       로즈마리의 생기 잃은 눈동자가 로테를 투시한다.

       

       “마, 마왕은…?”

       “아직 살아있어.”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듯했다.

       

       “이제, 우린 끝이야.”

       

       그것은 사형 선고와도 같았다.

       

       로테는 꽉 쥐고 있었던 손을 조심스레 펼쳤다.

       

       맨 뒷장. 그녀가 좋아해 마지않는 친우의 이름이 적혀있다.

       

       [에테르]

       

       이건 절대로 못 태운다.

       

       “작별인사를 했잖아. 보내야 해.”

       

       에테르가 떠나기 전 말했다. 만약 자신이 죽으면, 곧바로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워 버리라고. 그렇게 해서, 자신과의 추억을 모두 훌훌 털어 버리라고.

       

       “야, 너.”

       

       로즈마리가 로테를 가리켰다.

       

       “태워, 버려…….”

       

       로즈마리는 강한 소녀였다.

       

       비록 에테르를 잃고 싶지 않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그녀가 마왕에게 잡아 먹히는 것을 스코프로 곧장 보았다. 이 사실을 다른 사람에게 알릴 필요가 있었다. 그것이 모두가 에테르와 나눈 약속이었다.

       

       로테는 그러지 못했다.

       

       “안 돼. 못 태워.”

       “태워야 해. 그게 약속이잖아.”

       “에테르가 죽었는지 어떻게 알아…? 어…?”

       

       로즈마리가 발끈하며 외쳤다.

       

       “그야……! 내가 직접 봤으니까…!”

       

       마왕에게 잡아먹혔다고! 그놈 위장에 들어간 순간 빠져나올 수 없다고! 단 한 번의 예외도 없다고!

       

       “이젠, 이제는…!”

       

       보내줘야 할 때라고.

       

       “너, 어떻게 이리도 박할 수가 있어. 네 언니잖아. 언니처럼 믿고 따르던 사람이잖아….”

       

       로즈마리의 눈동자에 기름이 방울져 떨어졌다. 곁에서 막내를 토닥여 주고 있던 아카샤도 마찬가지였다. 아주 조금, 찔끔하는 수준으로 눈물을 흘리고 있다.

       

       “미개한 인간처럼… 사사로운 감정에 매달리지 않아.”

       

       로테도 안다. 저것은 마왕의 저주였다. 웃고 싶어도 잘 웃지 못하고, 울고 싶어도 잘 울지 못하게 되는, 그런 저주. 기계가 되는 저주는 금안족의 감정조차 통제한다.

       

       그 증거로, 그 누구보다도 에테르와 가장 친했을 두 자매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로테는 그들 몫까지 서럽게 울었다.

       

       “흐아아앙…! 어떡해! 흐아앙!”

       

       프레이도 펑펑 울었다.

       

       “…갔구나.”

       

       클라이스 하스펠트와 메리가 헤를라인은 옷소매로 눈을 찍었다.

       

       그녀와 연관된 사람 대부분이 한숨을 쉬었다. 감정의 정도는 사람마다 달랐지만, 분위기는 한결같았다.

       

       추모.

       

       떠나보낼 사람을 떠나 보내야만 한다. 죽은 자를 추모하는 일은 이토록 고된 일이었다.

       

       그러나 나머지 모두에겐 여지가 있었다.

       

       로즈마리는 인간일 적 친족이 제국인에게 죽임당하는 일을 겪었다. 프레이는 수해로 인해 사랑하는 친척의 상을 치른 적이 있었다. 클라이스는 잃어버린 오빠 언니만 열댓 명에 달했으며, 헤를라인 또한 마수와의 전쟁에서 무수히 많은 아카데미 동기를 잃었다.

       

       “살리에르 양, 이제 보내줘요.”

       “지금은 우리가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 응…. 에테르도 분명히 그걸 바란다고 했잖아. 슬퍼도 나아가야 해.”

       

       모두 죽음에 대해선 성숙했다. 슬퍼하되, 받아들일 수 있었다. 조금 시간이 걸리겠지만 결국 털어내고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로테는.

       

       로테만큼은 아니었다.

       

       “나는, 보낼 수 없어.”

       

       그만 놓아 달라는 주변의 부탁에도 불구하고, 로테는 끝까지 에테르의 이름이 적힌 종이를 태우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

       

       “나는 너를 보낼 수 없어….”

       

       누군가를 잃는다는 건, 온실 속 화초로 자란 로테에게 있어 처음 겪어보는 경험이었다.

       

       아버지가 토닥여도. 친오빠가 와서 위로를 전해도. 벗어날 수가 없는 것이었고, 지금 같은 전란에서는 쉽게 잊을 수 없는 악몽이었다.

       

       “보낼 수 없어. 안 돼…. 분명히 살아있을 거야…….”

       

       로테는 부정했다. 부정하고 또 부정했다.

       

       그 정도가 심각한 것 같아서, 로테를 불쌍하게 여기는 주변인들은 그녀의 곁에 있어주기만 했다. 당연히 종이를 태워 버리라는 말은 더는 꺼내지도 않았다.

       

       [……!]

       “여러분!”

       

       앨리스와 에어리얼. 두 대정령이 도착한 건 그 무렵이었다.

       

       로테가 서럽게 울고 있는 모습을 본 앨리스는 곧 입을 다물었다. 

       

       앨리스는 아무것도 물어보지 않았다. 아니, 물어볼 엄두가 안 났다.

       

       [……?]

       “이제, 어떻게 하냐고요?”

       [끄덕끄덕.]

       

       에어리얼과 대화를 나누던 앨리스가 한숨을 쉬었다.

       

       마왕이 에테르를 쓰러뜨렸다. 이렇게 되면 세상은 마왕군의 손아귀에 떨어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에어리얼이나 앨리스가 발버둥을 친다고 해서 할 수 일이 없었다.

       

       그나마 희망을 보려면 여신의 신탁을 받아야 하는데, 여신 르퀴네스는 지금까지 아무런 대답을 내놓지 않고 있었다. 더불어 신탁을 받으려면 정령계 심부로 가야 하는데 이미 그곳은 마왕이 점거하고 있을 게 뻔했다.

       

       – 저희와 계약을 해지해 주세요. 그리고, 저희가 마왕과 공멸하면 남은 사람들을 두 분께서 잘 돌봐 주세요.

       

       에어리얼과 앨리스가 피난민 행렬에 합류한 이유는 그 때문이었다. 애달픈 이별이었지만, 앨리스는 자신의 동생이 마왕을 상대로 승리할 수 있을 것이리라 믿었다.

       

       그래, 믿었는데….

       

       믿었는데?

       

       “어라……?”

       

       무언가, 내면에서 뜨거운 열감이 느껴졌다.

       

       [……!]

       “공군도 그런가요?”

       [끄덕끄덕!]

       

       직감으로 알 수 있었다. 정령계에 이변이 생겼다는 것을.

       

       “뭐, 뭐야…!”

       

       때마침 로즈마리도 소리를 내지르며 발라당 넘어졌다.

       

       “왜 그래?”

       “내, 내 손이…!”

       

       티타늄 합금으로 되어 있던 로즈마리의 손이, 혈색을 띤 인간의 것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무언가.

       

       무언가 이변이 벌어지고 있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익명의 후원자님, 1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오늘자로 최종장이 마무리 되었습니다. 다음 에피소드인 ‘에필로그’가 끝나고 나면 본편은 완전히 완결입니다.

    그 이후로는 후일담이나 if 형식으로 못 다한 이야기를 풀게 될 예정입니다. 저번에 말씀드렸던 대로 분량은 30화 내외가 될 것인데, 사정에 따라 줄어들거나 늘어날 수도 있습니다. 조만간 이 소설과 작별해야 한다니, 뭔가 아쉬운 기분이 듭니다.

    적다 보니 완결 후기처럼 되어버렸네요. 코인 후원은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최대한 좋은 끝맺음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적어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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