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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8

    그날 저녁, 루크의 집은 드디어 제대로 된 정령절을 맞이하고 있었다.

     

     

    테이블 위에 잔뜩 올려 놓은 맛있는 음식들, 식사 후에 먹을 케이크, 그 뿐 아니라 식사 후에 열어볼 선물까지.

    하나같이 모든 것이 기대되는 것뿐이다.

     

    “즐거운 정령절!”

    “응!”

     

    디아나가 흥얼거리며 손을 들어올리자, 파이리스도 맞장구치며 만면에 미소를 피워올렸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루크는 지친 한숨을 내쉬며 디아나에게 줄 선물이 놓여진 나무장식 쪽을 바라보았다.

     

    저런 인형 하나를 구하려고 대체 얼마나 뛰어다닌 건지.

    하지만 이것으로 디아나는 오늘만큼은 즐거워하며 조용할 것이다.

    뭐, 그래도 만약 나중에 선물을 주는 정령은 없었다는 걸 알게 되어도 최소한 지금 원하는 선물을 받았으니 울고불고 난리를 치지는 않겠지.

     

    루크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다이튼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다이튼은 ‘오늘 하루 힘들었지?’라며 위로하는 듯 한 표정을 지어보였다.

    그에 무언가 유대감이 느껴진 루크는 결국 피식 웃으며 마지막 음식을 테이블에 옮긴 후, 앞치마를 벗었다.

     

    보기좋게 익은 육류와 각양각색의 채소로 테이블을 가득 메운 만찬은 보기만 해도 아주 만족스러운 광경이 아닐 수 없다.

     

    “준비 다 되었으니, 이제 모두들 앉아서 먹죠.”

     

    루크가 주방의 예르나를 향해 외치자, 손의 물기를 수건에 닦아내던 예르나가 웃는 표정으로 돌아보며 대답했다.

     

    “그래, 루. 수고했어! 금방 갈테니까, 자리에 앉아서 기다려줘?”

    “알겠어요.”

     

    그렇게 루크가 자리에 앉아 예르나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으니, 먼저 다가온 다이튼이 루크의 어깨를 토닥여왔다.

     

    “고생했다. 고마워.”

     

    그 말은 고작 식사준비를 돕고 테이블에 음식을 옮겨준 수고에 대한 보답만은 아니었다.

    그건 오늘 하루, 디아나의 선물을 직접 발로 뛰어 대신 찾아주고, 그동안 자신을 도와준 모든 일에 대한 감사였으니.

     

    때문에 그 말에 담긴 감정은 꽤나 뭉클해지는 느낌이 있었다.

    게다가 아이들이 저렇게 행복하게 웃는 모습을 보면, 고생스럽기는 했어도 확실히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고 느껴진달까.

     

    루크는 그런 뭉클한 감정을 목소리에 그대로 담아,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응.”

     

    그러자 예르나도 슬쩍 다가와 루크의 반대쪽 어깨를 감싸며 웃었다.

     

    “어때, 즐거운 정령절이 될 것 같니?”

     

    확실히, 오늘은 즐거운 날이었다.

     

    온가족이 함께 앉아 이렇게 웃음꽃을 피울 수 있다는 게, 이 얼마나 즐거운가.

     

    “저에겐, 이미 즐거운 정령절이에요.”

    “어머, 정말?”

     

    -끄덕.

     

    루크의 대답에 예르나의 미소가 더욱 짙어진다.

    예르나는 루크를 보면 벌써부터 다 큰 아이를 보는 것 같은 뿌듯함이 느껴지는 것이다.

     

    루크는 이제 처음 만났을 때의 그 꾀죄죄하고 주눅이 들어있던 아이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는, 멋진 모습이었으니까.

     

    그러니 오늘은 정말로 모두에게 보람찬 날이 아닐 수가 없다.

     

    “그럼, 이제 먹을까?”

    “네!!”

     

    파이리스의 힘찬 대답과 함께, 루크는 식기를 집어들었다.

    이제는 기다리던 만찬을 즐길 시간이다.

     

    ——

     

    특별한 날이었기 때문일까?

    평소보다도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어간 식사는 여느 때보다도 훨씬 훌륭했다.

    테이블을 가득 메웠던 각종 진미들도 이제는 모두의 뱃속으로 자취를 감췄다.

     

    “진짜 배부르다. 그치?”

     

    디아나가 통통해진 배를 문지르며 묻자, 파이리스는 만족스럽다는 듯 아직도 입가에 묻은 식사의 흔적을 지울 생각도 하지 않은 채, 나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늘어지듯 말했다.

     

    “엄청 맛있었어…….”

     

    놀라운 일이었다.

    그렇게 많은 음식이 정말로 2명의 어른과, 3명의 아이에 의해서 완전히 사라지고 말다니.

    사실 그 지분의 대부분은 파이리스의 공이었다.

     

    파이리스는 절대 잔반이 남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성격이었으므로.

     

    뭐, 적어도 음식물 쓰레기는 나오지 않으니 좋지 아니한가.

    실제로 루크의 집은 파이리스가 현신화를 할 수 있게 된 시점에서 음식물 쓰레기 봉투의 사용률이 급감한 것이 사실이었다.

    그 반대급부로, 식사비용은 두배 이상 늘어나고 말았지만…….

     

    -사각, 사각.

     

    그러나 그렇게 식사를 마치고 디저트로 자연스럽게 과일을 깎는 예르나의 모습은 영락없이 아이를 살찌우려는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이제 예르나의 칼솜씨도, 눈에 띄게 정상적인 형태로 변해 있었다.

    그동안 다이튼은 예르나의 칼질을 더욱 안전하게 교정하려고 노력했다.

    그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이 다치는 걸 보고 싶어 하지는 않을 테니까.

     

    그 방식이 위험하다는 자각이 전혀 없기는 했지만, 예르나 역시 그런 다이튼의 노력을 알고 함께 노력해 주었기 때문에 빠르게 변화할 수 있었던 것이리라.

     

    루크는 그 광경을 흐뭇하게 바라보며 차를 한 입 들이키며 생각했다.

     

    ‘사랑은 사람을 바꿔 놓는 모양이야.’

     

    사실, 엘프는 사랑에 취약한 종족이었다.

    태생적으로 정령 감응력이 높게 태어나는 종족이라는 것은, 그만한 감수성 역시 타고난다는 이야기였으니까.

    실제로 현대에 나오는 유명 로맨스소설의 작가 중에도 엘프를 어렵지않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였으니.

    거기서 필명으론 종족이나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작가도 꽤 많은 수라는 것까지 고려하면, 실제 엘프 작가의 수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예르나의 책장에 가득 꽂혀있던 로맨스 소설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실제로 그러한 작품을 소비하는 쪽으로도 엘프의 비중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었다.

     

    솔직히, 사랑이라는 것이 무섭기는 하다.

     

    그 루크 자신도, 바로 레니에를 향한 사랑 때문에 바뀐 것이 아니던가.

    그 때는 그걸 사랑이라고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던 모양이지만 말이다.

     

    그렇지않은가?

    ‘자유’라니, 하하.

     

    본래 마법사는 ‘자유’를 그닥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아니, 애초에 자유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는다고 해야하나.

     

    왜냐하면, 마법은 처음부터 통제를 바탕으로 하는 학문이었기 때문이다.

     

    마나를 통제하고, 상황을 통제하고, 법칙을 통제한다.

    모든 것을 손에 넣고, 쥐어 흔들며 다룬다.

    그것이 바로 마법이 아닌가?

     

    적어도, 루크가 이해한 마법이라는 것은 그랬다.

    그렇기에 루크는 그러한 ‘통제’하는 방식이 올바르다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루크는 레니에를 위해 기꺼이 자유라는 것을 추구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자신은 평생을 그 생각을 품고 살아가던 레니에와는 달리, ‘자유’에 대해서는 쥐뿔도 모르는 문외한이었다.

     

    자유라는 건, 대체 뭘까?

    레니에는 생물이 진정으로 자유롭기 위해서는, 마법처럼 단순히 ‘자유로우라’고 명령하는 것만으로는 자유로울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관점을, 루크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때문에 루크는 레니에가 자유를 추구하는 길에 걸림돌이 되는 것들을 치우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런 자유에는 전혀 공감이 가지 않았으니까.

     

    자신은 그저, 레니에의 이상이 이뤄지는 것을 보고싶었을 뿐.

    그리고 행복해진 레니에의 얼굴을 볼 수만 있었다면, 그것으로 족했다.

     

    ‘결과적으로, 나는 보게 되었군. 루크.’

     

    그런 생각을 하며, 다시 테이블을 둘러보니, 파이리스는 제 앞에 놓인 과일접시에서 과일을 하나씩 집어 행복하게 입에 넣기 시작했고, 디아나는 먹고는 싶으나 배가 부른지 배를 문지르며 과일을 찍은 포크를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그리고 다이튼은 예르나의 어깨를 감싸 가볍게 안은 자세로, 과일을 받아먹고 있다.

     

    아주 좋아 죽으려고 하는 오빠의 모습에 살짝 환멸감이 든 디아나는 그 광경에서 눈을 스윽 돌려버리고, 선물상자가 놓인 방향을 바라보며 중얼거렸다.

     

    “난 얼른 선물 뜯으러 가고 싶은데.”

     

    루크는 그런 디아나에게 웃으며 말했다.

     

    “이따가 다 같이 뜯기로 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네 선물이 뭔지는 이미 알텐데?”

     

    그러자, 디아나는 걱정스런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치만, 걱정된단 말야. 검색해보니까, 다들 이번 한정판 구하기 엄청 힘들었대. 내가 너무 어려운 거 원해서 혹시 정령이 못 구했으면 어떡해?”

    “…….”

     

    그건 맞다.

    아주 힘들었지.

    그래도 디아나가 정령이 인형을 구하기 어려울 가능성까지 생각할 수 있을 정도로 배려심이 있는 아이라서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그 배려심이 조금 더 구하기 편한 선물을 선택하는 방향으로 발현되었다면 참 좋았을 텐데 말이다.

     

    그래도 아이가 자신의 노고를 알아주니 고맙다는 생각이 든다.

    뭐, 디아나는 그 선물을 산 존재가 정령이 아닌 바로 루크 자신이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겠지만.

     

    루크는 그런 디아나에게 눈을 떼고 한창 과일을 맛보는 데에 정신이 팔린 파이리스에게 물었다.

     

    “그런데, 파이리스. 그대는 결국 받고 싶은 선물이 없었던 모양이군?”

    “응.”

     

    그러자 파이리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미묘한 표정을 짓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파이리스는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이 뭔 지, 자신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애초에 물욕이라는 것이 희박한 정령인 탓에, 현재 자신이 받고 싶은 선물을 구체적으로 떠올릴 수가 없었던 것.

     

    디아나가 말한 메루루 한정판 인형은 어차피 놀 때 같이 가지고 놀게 될 테니 상관이 없고, 그렇다고 파이리스가 인형을 좋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인형들에는 관심도 없다.

    먹을 것에는 관심이 좀 있었지만, 그건 정체모를 정령이 주는 것 보다는 언니나 다이튼이 만들어주는 식사가 훨씬 믿음직스럽고 좋았으니 논외다.

    그럼 자신이 받고 싶은 게 과연 뭘까, 파이리스는 계속 고민만 하다가,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래서, 파이리스는 나중에 원하는 게 생기면 언제든지 말하라고 한 것이다.

     

    “그래서, 혹시 지금이라도 원하는 건 생각해 봤어?”

     

    예르나가 차를 들어올리며 묻자, 파이리스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응. 그런 거 같아.”

     

    “그래? 뭔데?”

    “정말인가? 어떤 걸 원하지?”

     

    그러자 루크와 다이튼 역시 일제히 차를 들어 입가로 가져가며 물었다.

    정령이 정령절 선물로 원하는 것이라, 아주 흥미로운 주제가 아닌가.

     

    파이리스가 원하는 것, 그건 사실 너무나 단순했다.

     

    그것은, 함께 놀 수 있는 귀여운 가족이 더욱 늘어나는 거였다.

    이제는 마침 가족에 엄마도 있고, 아빠도 있지 않은가?

    그것은 아기가 생길 수 있는 환경이라는 뜻이다.

     

    “나, 귀여운 아기가 갖고싶어!”

     

    “““푸흡!!”””

     

    세명이 동시에 일제히 차를 뿜어내자, 깜짝 놀란 디아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다들 갑자기 왜 저러지? 혹시 나도 저거 해야 되나?’

     

    결국, 디아나도 제 앞에 놓인 컵을 들고 다른 사람들이 하는 것을 한차례 늦게 따라했다.

     

    “풉!”

     

    그렇게, 파이리스를 제외한 모두의 얼굴이 축축해졌다.

    추가로, 바닥도.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파이리스는 아직까지 제 생각을 정확히 전달하는 법을 잘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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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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