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8

       아나이스와 니카, 두 사람의 숨 가쁜 공방이 오가기를 1시간.

         

       공연 카드의 80%가 소모되었고, 게임은 이제 끝내기 단계에 들어섰다. 두 사람은 남은 차례를 활용하여 서로의 점수 차를 조정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대등한 상대끼리는 조건에 의한 KO 승리가 잘 나오지 않는다. 대부분 점수 계산까지 가서 승패가 갈렸다. 두 사람의 점수는 서로 차례를 넘길 때마다 순위가 계속 역전되고 있었다. 승패는 끝날 때까지 알 수 없었다. 그야말로 박빙의 대결이었다.

         

       마침내 남은 공연 카드는 단 6장.

         

       남은 카드들은 피라미드의 형식으로 1장, 2장, 3장, 이렇게 3개의 층으로 배치되어 있었다. 여기서 1층과 3층의 카드들은 이미 앞면으로 공개되어 있었다. 그것들은 두 사람의 머릿속에서 몇 차례 전에 계산이 이미 다 끝났다.

         

       중요한 것은 뒷면으로 되어 있는 2층의 2장이었다. 그것들은 1층에 있는 1장을 카드를 떼간 뒤에 공개될 것이다.

         

       원래라면 소거법으로 그것이 무엇인지 유추할 수 있었지만, 앞선 몇 장의 카드를 뒷면으로 비공개 처리했기 때문에, 그 2장이 무엇인지는 이제 확률의 영역에 맡겨야 했다.

         

       ‘현재 모든 경우의 수를 고려했을 때, 내 승률은 58%. 하지만 뒷면 처리한 카드 중에 상대가 앞면을 확인한 카드가 2장 있어. 만약 그 2장 다 내 현재의 전략을 저격한 거라면 승률은 42%. 1장만 저격 성공이라면 50%. 무승부일 확률도 고려하면 딱 동률인가.’

         

       아나이스의 손이 움직였다. 그녀는 피라미드의 제일 위에 있는 1장의 카드를 가져가기 위해 손을 뻗었다. 그리고 카드를 집으려는 순간, 갑자기 주루의 입구가 소란스러워졌다.

         

       “길을 비키시오!”

         

       우렁찬 고함과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주루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모두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무장 괴한들의 출연에 사람들은 비명을 내질렀다. 그러나 그들의 공포는 금방 수그러들었다. 그들의 갑옷에 박힌 문장 때문이었다.

         

       솔방울 모양의 금관을 쓰고 화려한 예식용 망토를 두른 곰.

       며칠 내내 이 도시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물의 상징이었기 때문에 그것을 못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오오, 저, 저건……?”

       “황태자 전하의 문장이다!”

       “전하께서 직접 오신 건가?”

         

       사람들은 서둘러 뒤로 물러나면서도 혹시나 황태자가 있는지 목을 빼고 살폈다. 그러나 황태자로 추정되는 인물은 보이지 않았다.

         

       “저기 있습니다.”

         

       그들을 안내해온 호텔의 지배인이 주루의 중앙에 배치된 테이블을 가리켰다. 그곳에 앉은 두 사람은 게임에 집중하느라 주변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그들이 이변을 감지한 것은 기사들이 테이블을 둘러싸고 난 이후였다.

         

       “이 여자인가?”

         

       근위대원들을 이끄는 기사가 아나이스를 턱으로 가리켰고, 지배인은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네. 지금까지 계속 무패 행진을 기록하고 있는 종업원입니다. 똑똑하고 귀족들 예법에도 밝은 아이이니 전하를 모시는 데 문제없을 겁니다.”

       “이게……대체 무슨 일이죠?”

         

       아나이스는 긴장한 표정으로 근위대원들을 둘러봤다. 그녀는 현재 도망자 신세. 도플갱어가 어떤 권력을 써서 자신에게 현상 수배를 걸었을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아니이스를 체포하러 온 게 아니었다.

         

       “긴장하지 마라. 별일 아니다. 전하의 여흥에 좀 어울려 줘야겠다. 네가 카드 게임에 능하다지?”

       “여, 여흥이라고요? 자, 잠깐. 전하라면……황태자이신 니콜라이 전하?”

       “그렇다. 전하의 부름이다. 일어나 받들어라!”

         

       기사의 태도는 사뭇 강압적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상대는 귀족 영애가 아니라 한낱 술집 종업원에 불고했다. 그가 예의를 차려야 할 이유가 없었다.

         

       “저, 저기 이 친구는 내가 바둑선생으로 고용했는데……아, 실력 있고 예의 바른 친구이니 전하의 마음에 꼭 들 걸세.”

         

       슈타니 공작이 앞으로 나섰다가 근위 기사와 눈을 마주치자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황태자는 얼마 전까지 제국의 중심에서 국정을 좌지우지했던 권력자였다. 잠시 자리에서 밀려났다고는 해도 감히 일개 명예 공작인 그가 따질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서둘러라! 전하께서 기다리신다!”

         

       기사가 주는 위압감에 아나이스는 이를 악물었다.

         

       원래 자신의 신분이었다면, 이렇게 막 나가지 못했을 건데…….

       황태자의 나이가 몇 살이었더라? 게임은 핑계고 설마 내 몸을 요구한다면…….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분했지만 마땅히 다른 방법이 없었다. 공작도 저렇게 꼬리를 말 정도라면 지금의 자신이 저항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한심해.

       돈도, 작위도, 신분도 없는 자신은 너무나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그녀는 방금 막 손으로 가져왔던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순간, 넓은 등이 그녀의 시야를 가리며 기사들 앞을 막아섰다.

       어깨를 덮는 긴 금발. 원더스타인이었다.

         

       그는 무장한 기사들을 보고도 전혀 긴장되지 않는지 빙글빙글 웃는 낯으로 그들을 쳐다봤다.

         

       “잠깐 기다려 주시죠. 이렇게 멋대로 데려가면 곤란하죠. 오늘 그녀의 시간은 저와 니카 양이 샀는데 말입니다.”

         

       상황을 지켜보던 구경꾼들이 웅성댔다. 설마 그가 나설 줄은 몰랐다.

       물론 사리를 따지면 그에게 우선권이 있지만, 세상일이 어찌 규칙대로 돌아가던가?

         

       가장 민권이 발달한 공화국에서조차도 권력자에게 밉보였다가 목숨을 위협받는 일이 흔했다. 하물며 제국에서 황태자의 권위에 맞서다니.

         

       근위 기사는 그의 말투와 행색을 살피고는 외국인 귀족이라 생각했는지 윽박지르는 대신 호텔의 지배인을 돌아봤다.

         

       “저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지?”

       “아, 저, 그게 이 직원과 겨룰 사람을 뽑기 위해 일종의 대회를 열었는데, 이 두 분이 우승했습니다.”

         

       그는 아까부터 기사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저자세로 나갔다.

         

       이곳 보르조미는 원래 황실 사유지였다가 특별 조례 덕분에 장사가 허용된 곳이었다. 황실에 밉보이면 황금정이든 뭐든 그날로 장사를 접어야 했다. 근위 기사들이 다소 막 나갈 수 있는 것도 그 덕분이었다.

         

       “그런가? 그럼 게임 실력도 뛰어나겠군. 이름과 신분이 어떻게 되지?”

       “프랑크 원더스타인. 떠돌이 마술사입니다.”

       “마술사? 훗, 예인이었나? 좋다. 너희들 모두 같이 가자. 황태자 전하께서 여신 파티에 특별히 초대해주는 것이니 영광으로 알도록.”

       “알겠습니다. 그렇게 하죠.”

         

       원더스타인은 순순히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게임에서 직접 마주하지 못했던 그 황태자였다. 며칠 전 기차역에서 보지 못했고, 이곳에 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근위 기사들 때문에 근처에 다가가지 못했다. 아나이스의 신변을 보호할 겸 그가 어떤 인물인지 구경할 수 있는 건 그에게 반가운 기회였다.

         

       ‘기사들의 태도가 좀 고압적인 것 같지만……그래도 그렇게 성군이 될 사람이라고 명성이 자자한 황태자인데 설마 별일 있겠어?’

         

       이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결국 황태자가 원하는 것은 ‘깍두기’였다. 게임 할 사람이 모자라니 부르는 것이다.

         

       게임상 등장했던 설정으로 그는 9살 때 제국 최정상 바둑 기사를 꺾었을 정도로 전략 전술에 뛰어나다고 했다. 그런 천재와 붙을 생각을 하니 가슴이 두근거렸다. 물론 웃는 남자 때문에 그럴 수 없으니, 마음만 그렇다는 거지만.

         

       “단장님, 괜찮으시겠어요?”

       “별일 없을 겁니다. 저를 믿으세요.”

         

       원더스타인은 그녀를 향해 안심하라는 듯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나이스는 그것을 보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을 느꼈다.

         

       ‘대단하구나, 이 사람은.’

         

       자작과 회장이라는 이름표를 떼자 불합리한 일에 대꾸도 못 하는 자신과 달리 그는 늘 당당했다. 무적자라는 초라한 신분임에도 옳다고 생각하는 일에서는 물러서지 않았다.

         

       타인을 위해서 자신을 아끼지 않고 달려드는 남자. 이미 자신은 그에게 후원자로서 가치가 없는데도 그는 자신을 돕겠다고 나섰다. 그녀의 적인 부두교는 일개 서커스단 단장인 그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닌데도 말이다.

         

       ‘아, 그래 나는 어쩌면…….’

         

       그와 재회할 때, 자신이 구태여 아무 일 없는 척 허세를 부리려고 했던 진짜 이유.

         

       그녀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다른 모습을 보일까 두려웠었다. 그가 난처한 표정으로 자신을 돕는 것을 거절하거나 손익을 따져 도플갱어 측에 밀고라도 한다면, 자신은 또다시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당해야 했으니까.

         

       ‘고마워요.’

         

       아나이스는 원더스타인의 단단한 등을 손가락을 긁으며 그에게 마음속으로 감사함을 표했다.

         

       “어이, 너도 이 테이블의 참가자 아닌가? 일어서라!”

         

       기사가 니카를 향해 소리쳤다. 여태껏 아무 말 없이 고개만 푹 숙이고 있던 그는 심장이 바싹 오그라드는 느낌을 받았다.

         

       “저, 저요……?”

         

       그는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변의 눈치를 살폈다. 이곳에 있는 근위대원들은 지난 수개월 동안 드미트리 카제노프가 걸러낸 ‘불량품들’이었다.

         

       즉, 황실근위대 안에서도 평판이 안 좋거나 황태자의 정적들에게 정보를 넘겨주고 있는 자들이었다. 그들을 이번 여행길에 모아서 데려온 이유는 황태자의 일탈에서 터질 문제들을 구실삼아 황태자를 제대로 보필 못 한 죄로 근위대에서 쫓아내기 위함이었다.

         

       지금까지 그들은 황태자 본인과 항상 동떨어진 임무를 맡아왔다. 다행스럽게도 그들 중에 니카의 얼굴을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니카의 현재 모습은 그를 가까이서 보필했던 기사들이라도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평소와 달랐으며, 무엇보다 여기 있는 병사들은 방금 막 그의 대역인 코카를 호위하다가 오는 길이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이 진짜 황태자일 거라고는 그들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쩌지? 이거 어떻게 해야…….’

         

       니카는 혹시나 하는 마음에 군중들을 살폈다. 혹시나 자신의 호위 중 한 사람이 일찍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지 않았을까 기대했다. 그러나 그중에 니카를 위해 나서는 사람은 없었다.

         

       ‘정체를 밝힐 수는 없어.’

         

       여기서 자신이 황태자라는 것을 들켰다간 끝장이었다. 키나 덩치를 속였다는 건 문제가 아니다. 다른 귀족들도 자신만큼 극단적으로 키우지는 않았지만, 많이들 하는 일이었다.

         

       문제는 그가 지금 여장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목욕 가운 입는 법을 잘못 알았다는 식의 변명은 통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이곳에서 완벽하게 여자애처럼 행동하면서 3일을 보냈다. 증인은 이곳에 있는 사람 모두였다.

         

       아니, 그전에 이 근위대원들이 자신을 황태자라고 해도 믿어줄지가 의문이었다. 아니, 이들에게 들켜도 문제였다. 이들은 적 진영의 사람들. 아니, 그것보다 지금 당장 여기서 어떻게 빠져나가야, 아니, 일이 왜 이렇게…….

         

       “실랑이할 시간은 이제 없다. 자, 이분들은 황태자 전하의 손님이시다. 정중히 모시도록.”

         

       기사는 주춤거리며 몸을 빼는 니카의 등을 막무가내로 떠밀며 걷도록 했다. 근위대원들이 빈틈없이 세 사람을 둘러쌌다.

         

       여기 있는 근위대원들은 대부분 평소에 평판이 좋지 않은 자들이었다. 한직을 떠돌다가 겨우 황태자의 눈에 들 기회를 잡았던 터라 다들 그의 눈에 들려고 안달이었다.

         

       기사는 윗사람이 하나를 요구할 때, 셋을 대령하는 자신의 처세술에 감탄했다.

         

       그렇게 세 사람은 근위대원들의 호위를 받으며 황태자 일행들이 놀고 있는 장소로 이동했다.

         

       멀리서부터 떠들썩한 남녀의 웃음소리는 향긋한 술 내음을 담고 있었다.

         

       보르조미 시내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절벽 위의 노천온천.

         

       어두운 밤하늘 아래. 등불의 희미한 일렁임에 따라 부글거리는 거품과 새하얀 수증기가 별들을 띄운 채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에 맞춰 춤추는 곳.

         

       그들이 도착한 곳은 황금정의 2대 명물 중 하나인 천상 욕탕이었다.

       근위 기사는 온천으로 들어가기 전에 그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옷을 벗어라.”

         

       니카는 까마득한 절벽 아래로 추락하는 기분을 느꼈다.

       

       

    다음화 보기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