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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8

   “후후. 영애에게 이런 귀여운 부분이 있을 줄은.”

   “신경을 써주신 것이 사실이니 그냥 감사를 받아주셔도 될 텐데.”

   “루시. 부끄럼쟁이?”

   “그래. 이 녀석은 부끄럼쟁이다.”

   

   몸가짐을 끝마치자마자 아카데미의 개인실로 끌려 온 나는 네 사람에게 둘러 싸여서 이런저런 소리를 들어야만 했다.

   

   평소 같았으면 반 강제로 입을 다물게 만들었을 테지만 안타깝게도 지금의 나는 완벽한 을의 위치.

   

   이들이 마음을 바꿔 괴악한 벌칙을 수행하라 그러면 난 이 이상의 치욕을 당하게 되는 것이다.

   

   상황이 악화되는 걸 원치 않았던 나는 주먹에 힘을 준 채 침묵을 지켰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내게 나쁜 것만도 아니다.

   

   저들의 오해가 낯간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그 오해 덕분에 아서 일행이 내게 은혜를 느끼는 것도 사실이지 않은가.

   

   이 근질근질한 기분을 잠시만 참으면 내가 받을 벌칙의 수위가 낮아질 수도 있을 터.

   

   괜찮아. 이런 것쯤 별 거 아냐.

   

   지금까지 내가 목숨의 위기를 몇 번이나 넘어섰는데 이 정도쯤이야.

   

   아픈 것도 아니고. 무서운 것도 아니고. 죽을 위험도 없고. 그저 머리에 열이 살짝 오를 뿐인데 이걸 못 버티겠어?

   

   “봐라. 우리 눈치를 보느라 아무 말도 못 하는 것을. 우리가 뭘 시킬지 몰라 두려운 걸 테지.”

   “부끄럼쟁이에 겁쟁이구나.”

   “이러고 계시니 정말 귀엽네요. 나중에 영애를 꾸밀 때가 기대돼요.”

   “조이. 저도 거기에 동행해도 괜찮을까요?”

   “물론이죠. 제 꿈에는…”

   

   응. 못 버티겠다.

   

   이성의 끈이 뚝하고 끊어져버린 나는 웃음과 함께 고개를 치켜들었다.

   

   “뭐냐. 루시 알른. 갑자기.”

   “풋풋한 동정 왕자님이 기세등등한 게 좀 짜증나서요♡ 아침에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분이 부끄럼쟁이니 뭐니♡ 푸핳♡ 이걸 어떻게 참아요?♡”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게냐! 그 때의 나는 그저!”

   “아니라고요?♡ 진짜?♡”

   “…”

   “변~태♡ 역겨워♡ 토 나올 것 같아♡”

   

   얼굴이 붉어진 아서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술을 우물거릴 뿐 아무런 반박도 하지 못했다.

   

   이걸로 한 사람 처리했고.

   

   그 다음은 순식간에 태세를 바꾸고 아서를 놀리는 프레이를 침몰시킬까.

   

   “왕자님은 변태였구나?”

   “푸하핳♡ 바보검사♡ 누가 들으면 너는 변태가 아닌 줄 알겠다?♡”

   “…응?”

   “나한테 매도당하고 싶어서 시비를 걸어대는 주제에♡”

   “아냐. 난 그런 게.”

   “아니라고?♡ 그럼 지난번에는 왜 수줍은 소녀마냥 도망을 쳤을까?♡ 너~무 궁금한데 대답 좀 해줄래?♡”

   

   프레이는 눈을 둘 곳을 찾지 못해 헤매다가 결국 고개를 푹 숙여버리고 말았다.

   

   이걸로 두 명 째.

   

   내가 고개를 홱하고 돌리자 조이와 페이비가 다급히 시선을 피한다.

   

   왜. 이제야 자기들이 선을 넘었다는 자각이 생겼어?

   

   근데 그래봐야 늦었거든? 지금 입을 다물어봐야 여태까지 한 게 사라지진 않는다고!

   

   너희들의 업보를 순순히 받도록!

   

   “얼빵 영애♡ 친구가 생겨서 기쁜 건 알겠지만 적당히 해야지♡ 자꾸 그러면 이젠 그냥 얼빵이라고 불러줄 거야?♡”

   “저. 저는 딱히 신나지 않았거든요?”

   “흐응♡ 그래?♡”

   “그럼요! 수많은 영애들의 중심인 제가 겨우 이런 걸로 들뜰 리가.”

   “그럼 나 친구 안 해도 돼?♡”

   “…”

   “정말 나 필요 없어?♡ 얼빵이랑 안 놀아줘도 되는 거네?♡”

   “…훌쩍. 아뇨. 죄송합니다. 들떠서 실수했어요.”

   “푸하핳♡ 알면 됐어♡ 얼빵이는 얼빵해서 귀여운 거니까♡”

   

   이제 남은 건 한 사람뿐.

   

   슬며시 옆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얼굴이 시뻘개진 페이비가 보였다.

   

   “허접 성녀?♡”

   “네에헷!”

   “풉♡ 이런 게 성녀라니♡ 널 믿어주는 신도들한테 미안하지도 않아?♡”

   “지금 당장 회개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각자의 이유로 얼굴을 들지 못하는 네 사람을 둘러보니 속이 시원했다.

   

   나중 일? 그거야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해결해주겠지.

   

   지금의 나는 이 행동을 조금도 후회하지 않아!

   

   …아니. 사실은 거짓말.

   

   좀 많이 후회하고 있어.

   

   나 진짜 점점 메스가키 스킬에 잡아먹히고 있나 봐. 왜 점점 끓는 점이 낮아지는 것 같지?!

   

   예전에 직장 생활 할 때 들었던 말이랑 비교해 보면 지금 얘네들이 하는 건 진짜 귀여운 수준인데!

   

   난 방금 전의 내가 저지른 행동을 속으로 한탄하면서도 겉으로는 당당한 체를 했다.

   

   이미 저질러 버린 건 저질러 버린 일!

   

   주사위는 던져졌으니 끝까지 밀고 나가야 해!

   

   내가 갑인 체 하는 걸로 벌칙을 약화시키는 거야!

   

   ‘왕자님?…’

   “불쌍왕자님? 아직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았는데 언제까지 입을 다물고 계실 건가요? 말하는 법을 잊어버릴 만큼 퇴화되어 버리신 건가요?”

   

   “…그래. 할 이야기가 많이 남아 있지.”

   

   느릿하게 고개를 든 아서의 눈빛은 복수를 다짐한 사람처럼 뜨거웠다.

   

   응. 갑인 체고 나발이고 좆 됐네.

   

   “루시 알른.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가 공략에 성공했을 때 뭘 해주기로 했는지.”

   

   ‘…넵! 기억하고 있습니다!’

   “제가 불쌍왕자님 같은 바보로 보이시나요? 당연히 기억하고 있죠.”

   

   “그렇담 이야기가 빠르겠군. 우리는 그대에게 무엇을 요구할 지에 대해 많은 논의를 거쳤다. 그 중에는 그냥 밥이나 사라 하고 말자는 의견도 존재했지.”

   

   엑?! 진짜?! 그런 의견이 있었단 말야?!

   

   그럼 그것부터 미리 말을 했어야지!

   

   그랬으면 감사합니다.라고 생각하면서 너희들이 무슨 소리를 하건 참았을 거 아냐!

   

   “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런 자비를 베풀 이유가 없어진 듯 하군.”

   

   아서가 무거운 목소리를 냄에 따라 프레이와 조이가 고개를 주억거린다.

   

   페이비는 약간 망설이는 듯 했지만 세 사람의 날 선 시선 앞에서 저항할 수 있을 정도는 아닌 듯 입을 다물 뿐이었다.

   

   “루시 알른. 우리의 요구를 이야기하겠다. 우리는 저마다 그대의 하루를 빌릴 것이다. 쉬이 말해. 하룻 동안은 그 하루를 빌린 사람의 요구를 따라야 한다는 게지.”

   “전 이미 언제로 할지 정해뒀답니다. 영애.”

   “나도.”

   “저…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영애님.”

   “나도 그렇다. 그대에게 일정을 알려줄 터이니 미리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도록. 알겠지?”

   

   이번 일을 반드시 후회하게 해주겠다는 아서의 말에 식은땀을 흘리고 있으려니 귓가에 알림음이 스쳤다.

   

   뭔데! 이번엔 또 뭔데!

   

   [패널티가 정해졌습니다.]

   [당신은 하루 동안 저들이 부탁하는 것을 따라야 합니다.]

   [부디 힘내서 벌칙을 수행하길 바랍니다.]

   

   …

   

   야 이 쓰레기 새꺄.

   

   뭐?

   

   힘내라고?

   

   힘내서 벌칙을 수행하라고?

   

   이게 다 너 때문이잖아!

   

   너 때문에 생긴 일이잖아!

   

   어디서 남일이라는 것마냥 헛소리를 지껄이는 거야!

   

   두고 보자! 허접 주신!

   

   난 결코 이 원한을 잊어버리지 않을 테니까!

   

   나중에 반드시 참교육을 해줄 테다아아아아!

   

   *

   

   패널티의 내용이 정해지고 나서 다음 날.

   

   여느 때처럼 훈련장에 나온 날 반겨준 것은 프레이였다.

   

   평소에도 내 옆에 붙어 다니던 녀석이긴 했지만 오늘은 다른 날보다도 그녀의 발걸음이 가벼웠다.

   

   이유야 뻔하지. 오늘 내 하루를 가져간 게 이 녀석이거든.

   

   신이 나서 어찌할 줄을 모르는 강아지마냥 내 주변을 돌아다니면서도 무표정한 얼굴은 바꾸지 않는 프레이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샜다.

   

   하아아. 얘는 나한테 뭘 부탁하려나.

   

   지난번에 엿들었을 때는 칭찬해달라고 부탁할 생각이라 그랬던 걸 보면 하루종일 나데나데해달라고 하려나.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 귀여운 애를 보고 귀엽다 그러는 게 뭐가 힘들겠어.

   

   “루시. 루시.”

   

   ‘왜 그러시나요?’

   “왜. 바보 검사.”

   

   “그게 아냐. 오늘은 달라.”

   

   달라? 바보 검사가 아니라 이름을 불러달라는 이야기인가?

   

   “자. 따라해 봐. 프레이 언니.”

   

   ‘…뭐라고요?’

   “뭐?”

   

   “프레이 언니. 빨리.”

   

   언니라고 불러달라는 이야기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프레이를 높여 불러야 한단 사실 자체에 거부감이 있는 건 아니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자기보다 한참 어린 사람한테 고개를 숙여야 할 일이 비일비재하니까.

   

   나이가 비슷한 사람한테 높임말을 쓰는 것 정도야 뭐 별 거 아니지.

   

   문제는 언니라는 호칭 그 자체야.

   

   언니라니!

   

   난 그런 말을 입에 담아 본 적이 없다고!

   

   누나라던가 누님이라던가 하는 말은 얼마든 해줄 수 있지만 언니라는 호칭은 내게 그 자체로 거부감을 준단 말야!

   

   “오늘 루시 내 말 들어주기로 약속 했어. 빨리 해 줘.”

   

   – 띠링.

   

   [당신은 부탁을 따라야합니다.]

   [이를 거부할 시. 패널티의 대상이 당신의 주변인물 중 랜덤으로 추가될 수 있습니다.]

   

   패널티의 대상이 추가된다는 건 무슨 소리야?

   

   네 사람말고 다른 사람의 부탁도 들어줘야 한다고?

   

   주변인물 중 랜덤으로 추가라는 건.

   

   설마.

   

   얼빠여우의 부탁을 들어줘야 할 가능성도 있단 소리야?!

   

   갸아아악! 그건 안 돼!

   

   알겠어! 알겠다고!

   

   일단 시도는 해볼게!

   

   근데 메스가키 스킬 때문에 실패해도 어쩔 수 없는 거다?

   

   이건 내 의지와는 관계없는 문제잖아!

   

   이걸로 억까를 한다면 그 때는 나 진짜 전향해버릴 거야!

   

   ‘프…프레이 언니!’

   “프레이 언니.”

   

   봐! 이게 제대로 될 리가!…

   

   어라?

   

   어라라?

   

   ‘프레이 언니.’

   “프레이 언니.”

   

   …나 지금 프레이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 거지? 그치?

   

   허접이니 바보니 같은 말 하지 않고 프레이를 제대로 부른 거잖아!

   

   혹시 꿈인가 싶어 뺨을 꼬집어 본 나는 선명한 통증을 느끼고는 웃음을 지었다.

   

   진짜구나.

   

   내가 진짜로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른 거야.

   

   이상하게 뒤틀린 이름을 말한 게 아니라 제대로 된 이름을 불러본 거라고!

   

   이게 가능한 이유가 뭔지는 모르겠다.

   

   메스가키 스킬의 강제보다 페널티의 강제가 더 우위인 건지.

   

   아님 허접 주신이 무슨 수를 쓴 건지 뭔지 추측이 되는 부분조차 없다.

   

   그렇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지금 중요한 것은 그저 내가 다른 사람의 이름을 제대로 부를 수 있다는 것 뿐.

   

   “프레이 언니.”

   

   생각한 것을 그대로 입 밖으로 낼 수 있단 사실이 너무도 기뻐 재차 프레이의 이름을 부른 나는 그제서야 양 볼이 벌겋게 물든 프레이의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뭐야. 얘. 분명 으스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왜 아무 말도 안 하고 멍하니 있는 거야?

   

   투툭.

   

   무언가가 떨어지는 소리를 따라서 고갤 돌리니 눈을 크게 뜬 채 굳어버린 조이와 페이비의 모습이 보였다.

   

   쟤네들이 훈련장에 나오기엔 이른 시간 아닌가?

   

   왜 저렇게 부지런.

   

   “영애!”

   

   갑자기 앞으로 튀어나온 조이가 두 손으로 내 어깨를 붙잡았다.

   

   흥분한 기색이 역력한 눈빛에 당혹스러워 하고 있으려니 조이가 다급히 말을 잇는다.

   

   “저도! 저도 조이 언니라고 불러주세요! 아니! 언니는 됐어요! 조이라고만 불러줘도 괜찮으니까!”

   

   응? 조이라고 불러달라고?

   

   …어.

   

   이거 되려나?

   

   방금 전에 프레이를 제대로 불렀으니까 이것도 가능하려나?

   

   ‘조이?’

   “뭐래는 거야. 얼빵 영애.”

   

   역시 벌칙이 끼어든 게 아니면 안 되는 건가.

   

   “흐아앙! 왜 전 안 되는 건가요! 켄트 영애는 되는데 왜 전 안 되는 거죠?!”

   

   귀족 영애의 기품은 어디다 팔아먹은 건지 울먹거리는 조이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샜다.

   

   아니 저기요.

   

   누구보다 이름을 제대로 부르고 싶은 건 나거든?

   

   나중에 조이 네가 부탁할 날이 찾아오면 친절하게 불러줄 테니까 지금은 좀 참지?

   

   그리고 페이비. 너는 왜 노골적으로 아쉬워하고 있는 거니?

   

   너도 네 이름을 불러주길 바라던 거야?

   

   두 사람의 표정을 보고 어이없어 하던 중 중 뒤늦게 정신을 차린 프레이가 나와 조이 사이에 끼어들었다.

   

   “오늘은 루시는 내 꺼야. 저리 가.”

   “…으으으. 두고 봐요. 켄트 영애! 나중에 제 날이 찾아오면 당신은 알른 영애의 모습을 구경할 수도 없을 테니까!”

   

   조이?

   

   너 대체 나한테 뭘 시키려고 그러는 거니?

   

   나 지금 굉장히 불안하거든?

   

   제대로 설명을 해주지 않으렴.

   

   “맘대로 해. 난 오늘 루시를 집에 데려갈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해.”

   

   …프레이?

   

   집으로 데려간다니?!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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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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