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29

    서드는 자신의 오른손 약지에 끼워진 철제 반지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었다.

     

    갑자기 서드에게 왠 반지냐 하면, 그것은 루크가 집으로 돌아가기 전, 자신을 위해 인형점을 열심히 찾아준 대가를, 정령절 선물이라는 명목으로 건네 준 것이었다.

     

    물론 그 반지는 대단한 것이 아니라 단순히 근처 장난감 상점에서 구매한, 별 무늬 없는 두꺼운 철제 반지다.

     

    하지만, 그 반지는 단순한 장난감은 아니다.

    무려 언제든지 추가적인 마력을 축적해둘 수 있는 간이 마력탱크인 동시에, 위급시 반지를 벗는 것으로 루크에게 즉시 연락을 취할 수 있는 기능까지 붙은 아티팩트다.

    그것은 서드의 서클을 더욱 안정적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 수단이었다.

     

    서클을 올릴 때 필요한 마나를 미리 모아둘 수 있도록, 그리고 만약 서클을 올리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기면 언제든지 연락할 수 있도록.

    만에 하나 있을 서클 폭주 상황에서 침착하게 휴대폰을 찾아 자신의 연락처로 전화를 걸고, 말로 침착하게 자신의 위치와 상황을 설명할 수 있을 리가 없기 때문에, 이런 긴급 연락수단은 참으로 큰 도움이 된다.

    게다가 추가로 언제든지 마음만 먹으면 쉽게 빼낼 수 있지만, 절대 실수로 손가락에서 빠져 잃어버리지 않도록 하는 분실방지 인챈트와, 반지를 굳이 빼지 않더라도 손가락의 피부등에 이상이 가지 않도록 하는 기초적인 보호마법도 잊지 않았다.

     

    서드가 어린아이들처럼 장난감을 좋아하는 것 같아 보이지도 않고, 그렇다고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선물이 될 수 없다는 판단에 루크가 즉석에서 적당한 인챈트를 바른 것에 불과하다만, 서드에겐 그것이 원래 루크에게 가지고 있던 존경심을 더욱 부추기는 것에 불과했다.

     

    도대체 어떻게하면 그런 경악할 수준의 경지에 이를 수 있는 것일까.

    계속해서 그녀의 아래에서 마법을 배워나가면, 언젠가는 자신도 그녀와 어깨를 나란히 할 날이 올 수 있기는 한 것일까?

     

    서드는 반지를 낀 손을 꽉 쥐며 생각했다.

     

    아니, 반드시 오게 할 것이다.

    자신이 아니라, 그녀의 계획을 위해서라도.

     

     

     

    서드에게 굳이 말은 안 했지만, 사실 공교롭게도 루크가 그 인챈트의 영감을 얻은 것은, 예전에 예르나에게 받은 ‘어린이용 방범부저’라는 아티팩트였다.

     

    —–

     

    차분히 대화를 이어본 결과, 파이리스의 말은 당연히 자신이 아이를 갖고 싶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귀여운 동생을 갖고 싶다’는 의미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그저 인간의 언어에 익숙하지 않아, 자신이 말한 것이 지니는 다른 의미를 알아차리지 못했을 뿐이었다는 거다.

    물론, 굳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문장선정이 아니더라도 동생을 갖고 싶다는 발언도 당혹스럽기는 마찬가지였던지라, 비슷한 결과가 나왔을지도 모를 일이기는 하다.

     

    결국 이러니저러니해도 루크 일동은 뿜어버린 음료에 의해 젖어버린 옷을 벗고, 다른 옷으로 갈아입어야만 했다.

    그렇게 논란의 발언을 일으킨 주인공인 파이리스를 제외한 4명분의 빨랫감이 늘어나고 만다.

    그런데 그 와중에 디아나는 대체 왜 그걸 따라해서 빨랫감을 늘린 것인지 잘 모르겠지만, 원래 아이들의 사소한 장난 같은 행동들에까지 일일이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무가치한 행동이므로 그러려니 하기로 했다.

     

    루크는 평소에 즐겨 입는 부드러운 잠옷을 집어들며 중얼거렸다.

     

     “아이들의 머릿속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니까.”

     

    예나 지금이나, 아이들의 생각을 읽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

    이유가 없는 행동은 예측이 불가능하고, 예측이 불가능한 상황은 언제나 통제하기에 어려움이 따른다.

    루크에게 아이들은 그런 의미에서, 그 어떤 음흉한 계략가보다도 무서운 존재들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며, 루크는 꼼꼼히 끝까지 단추를 채우고, 손을 뒤로 휘저어 옷 안에서 머리카락을 빼낸 뒤, 꼬리도 구멍에 잘 맞춰 빼낸 후 몇 번 흔들어 보았다.

    예전보다야 조금 작아지기야 했다만, 원체 넉넉한 크기로 구매한 덕에 연분홍색 원피스형 잠옷은 여전히 루크의 몸에 잘 맞았다.

     

    작은 프릴이 장식된 잠옷단을 내려다보며 루크는 크게 숨을 들이쉬었다.

    세제의 향긋한 꽃 향기가 밴 깨끗한 잠옷을 입은 뒤엔, 그러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아지기 때문에 들어버린 버릇 같은 것이었다.

    마치 온전히 하루를 마무리 한 것 같은 느낌이랄까.

     

    옛날보다 후각을 비롯한 오감의 성능이 좋아진 탓일까?

    아마도 그러하리라.

     

    -벌컥.

     

    그렇게 루크가 옷을 다 갈아입고 나오자, 다이튼과 예르나역시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은 상태로 루크에게 시선과 고개로 인사를 보내왔다.

    그에 루크 역시 작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화답하며 거실을 둘러보았다.

     

    그러니 거실에는 이미 뜯겨져 흩뿌려진 선물 포장지만이 남아있을 뿐, 아이들의 모습은 벌써 보이지 않았다.

     

    “디아나랑 파이리스는?”

    “둘이 인형놀이 한다고 방으로 인형 갖고 올라갔어.”

    “아, 그런가요.”

    그리 놀라울 것 없는 사실에 루크는 그저 납득했다.

    아이들이 없으면 오히려 좋지 않은가.

     

    루크는 그렇게 조금 한적해진 테이블로 다가왔다.

    아직 다 끝내지 못한 티타임을 마저 즐기기 위함이었다.

     

    “휴우, 이제야 정령절이 완전히 끝났네요.”

     

    자리에 앉아 컵을 다시 들어올린 루크는 눈을 감고 남은 찻잎의 향을 만끽하며 작게 중얼거렸다.

    그에, 예르나는 가볍게 웃으며 맞장구쳤다.

     

    “후후, 그러네.”

     

    그런데 예르나의 웃음이 어딘가 심상치 않아 보인다.

    마치, 무언가를 뒤에 숨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

     

    이제 다른 것은 몰라도, 표정에서 그런 꿍꿍이를 읽어내는 능력 만큼은 확실히 성장한 루크다.

    루크는 즉시 의심스러운 표정을 예르나에게 향하며 목소리에 의문을 담아 물었다.

     

    “왜 그러지요? 언니, 혹시 제게 뭔가 숨기고 있는 게 있나요?”

     

    예르나는 루크의 그 의심스러운 듯 살짝 뒤로 넘어가는 귀 끝을 바라보다가 어쩔 수 없다는 듯 다이튼을 바라본다.

     

    “가져와줄래?”

    “잠깐만.”

     

    그러자 다이튼이 테이블에서 일어나 어딘가로 향한다.

    그 우람한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으니, 다이튼이 정령절 장식나무 뒷편에 숨겨두듯 놓아둔 선물상자 하나를 꺼낸다.

    대체 저 선물은 왜 저렇게 숨겨둔 것일까?

    루크의 귀가 의미를 모르겠다는 듯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건 또 왜 숨겨둔 거지?”

     

    그러자, 다이튼이 루크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어 머리를 헝클어트리며 말했다.

     

    “물론, 다른 애들이 못 보게 하려고 한거지.”

    “아앗! 내 머리를 그렇게 쓰다듬지 마라!”

     

    안 그래도 겨울철 털갈이의 영향으로 전보다 더욱 복슬거리는 상태인지라 엉키기 쉬운데, 저렇게 마구잡이로 쓰다듬으면 엉킨 머리를 풀기가 결코 쉽지 않다.

    다이튼의 난폭한 손길에 루크가 짐짓 화낸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빠르게 치워낸다.

    그리고 손으로 엉킨 머리카락을 풀며 이 머리카락을 이 정도로 관리하는게 얼마나 많은 노력이 들어가는 지 전혀 모르는, 몰지각하고 무신경한 다이튼을 쏘아보았다.

    그러나, 다이튼은 자신이 별로 잘못했다는 자각도 없이 해맑게 웃으며 선물을 건넸다.

     

    “받아, 네 선물이다.”

    “내 선물? 내 선물도 있었나?”

    “그야 당연하지, 너도 선물 받을 나이잖아.”

    “하지만…….. 나는 이미 다이튼에게 돈을 받았는데. 이 선물을 또 받아도 되나?”

     

    물론 그 돈은 자신의 선물이 아니라 서드의 반지를 사는데 쓰여버리긴 했지만, 그럼에도 돈을 받은 것 만큼은 거짓이 아니다.

    얼떨결에 선물을 손에 받게 된 루크는 예르나를 슬쩍 올려다보았다.

    그러자 예르나는 루크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으며 웃는 얼굴로 말했다.

     

    “당연하지, 그거하고 이거는 별개. 그건 다이튼이 준 거지, 정령이 준 건 아니잖아?”

    “정령절에 선물을 주는 정령은 없…….”

     

    루크가 ‘그런 정령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말하려던 찰나, 예르나가 루크의 입에 손가락을 가져다 대며 말을 끊었다.

     

    “그리고, 충분히 정령의 선물을 받을 만큼 착하기도 하고.”

    “…….”

     

    ‘착하다’라…….

     

    자신은 정말로 선한가?

     

    루크는 그 명제에 대해서는 그닥 긍정적이지 못했다.

    자신에겐 살아온 세월 만큼이나 수많은 과오가 마치 꼬리처럼 뒤따르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진정 선한 자’는,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존재라고 하였다.

    자신이 절대적으로 선하다 믿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도 커다란 죄악이기에.

     

    즉,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믿는 사람이 악한 자일 수 있으나, 자신이 선하다 믿는 사람은 반드시 악하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선할 가능성이 더 높지 않겠어요?’

     

    자신을 악인이라 자책하는 죄인의 고해를 들은 후, 레니에가 꺼낸 말이었다.

     

    ‘그러니, 당신은 선할 수도 있다는 거죠.’

     

    마치 그 때의 목소리가, 선물로부터 들려온 것 같았다.

     

    그런가, 자신은 적어도 이들에게는 착한 아이였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사고도 많이 쳤고, 민폐 될 행동도, 부끄러운 짓도 많이 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루크는 가만히 그 선물을 바라보다가, 조심스럽게 포장을 뜯었다.

     

    그리고 그 선물은…….

     

     

    “컴퓨터……?”

     

    루크가 이미 가지고 있는 컴퓨터와 비슷한 휴대용 컴퓨터였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용물에 당황해 예르나를 바라보자, 예르나는 밝게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컴퓨터 하나는 부족할 것 같다고 계속 생각하고 있었거든. 어때? 깜짝 놀랐지?”

    “…….”

     

    루크는 잠시 입을 닫았다.

    깜짝 놀래켜주고 싶었다는 마음은 이해하지만, 나중에 상금이 들어오면 더 좋은 컴퓨터를 맞추려고 견적도 열심히 짜 놓았는데, 갑자기 컴퓨터를 선물해 주다니.

     

    마음 같아서는 그냥 환불하고 돈으로 받으면 안되겠냐고 말할까 싶었지만, 예르나의 저 행복한 얼굴이 실망으로 바뀌어버린다 생각하면 그 말을 꺼내기도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루크는 어쩔 수 없이 입꼬리를 들어올려 웃는 표정을 지어보이며 말했다.

     

    “고, 고맙습니다…….”

     

    선물이 고마운 것만은 사실이니까.

    그럼 이제 이 컴퓨터를 어떻게 한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래 기다리셨습니다!

    설 오기 전에 쓰려고 했는데 공교롭게도 딱 그때 친척들이 왔습니다!
    이럴수가!

    다들 제가 소설 쓰는 건 알게 되었지만, 무슨 소설 쓰는지는 철저한 비밀이기 때문에 글을 쓸 수가 없었습니다.
    죄송합니다.

    윽…. 명절… 싫어…

    다음화 보기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The Archmage dreams of being an Archmage again

다시 대마법사를 꿈꾼다 대마법사였던것은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5000 Years in the future, the Archmage Luke Irushi opened her eyes again. The world has changes so much.

Horseless carriages, an entertainment box with audio and video, food and spices she has never seen before…

And, a changed magical system!

It wasn’t just the world that changed.

Comment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