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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9

       그는 눈을 감고 한 차례 심호흡했다. 침착하게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게 걱정할 일은 아니었다.

         

       현재 자신은 황태자가 아니었다. 여기서 남자라는 것을 들킨다고 한들 당장에 비웃음은 살지 몰라도 본래 신분에 타격이 갈 일은 없었다.

         

       그러나 원더스타인이 옆에 있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옷을 벗은 뒤에 차마 그를 똑바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그렇게 쭈뼛거리며 서 있는 그를 향해 근위 기사는 호통을 쳤다.

         

       “뭐 하는 거냐. 어서 수영복을 받으러 가지 않고.”

       “네? 수영복? 아……!”

         

       니카는 황급히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봤다.

         

       원더스타인과 아나이스는 온천 입구 옆에 있는 데스크 앞에 줄을 서 있었다. 데스크 옆에는 큰 글씨로 ‘수영복 대여’라고 적혀 있었다. 그러고 보니 창밖에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수영복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는 그제야 천상 욕탕은 사실 욕탕이라기보다 온천수를 채워 만든 거대한 수영장에 가깝다는 사실을 기억해냈다.

         

       “너무 다그치지 말아 주시죠. 어린애를 대상으로.”

         

       원더스타인이 수영복을 받아서 돌아왔다. 그의 변호에 기사는 니카에게 질문했다.

         

       “어리다고? 너 몇 살이냐?”

       “15살……입니다.”

       “별로 어린 것도 아니군. 남자라면……술도 마시고 여자도 안을 나이지.”

         

       기사는 또 한차례 폭소가 터져온 방향을 흘끗거리며 변명조로 말했다. 저기서 놀고 있는 황태자의 나이도 마침 15살이었기 때문이다.

         

       “자, 니카 양 제가 당신 것도 받아 왔습니다.”

         

       원더스타인이 수영복이 든 꾸러미를 그에게 내밀었다. 니카는 자신의 마음을 혼란스럽게 만든 장본인이 태평스럽게 웃는 모습이 왠지 얄미웠다.

         

       “……제 치수는 어떻게 아시고요?”

       “제가 눈이 좋거든요. 니카 양은 어차피 가슴도 평평하니까 키만 맞추면…….”

       “시, 시끄러워요! 하여간 무례하긴…….”

         

       니카는 그의 손에서 수영복을 뺏듯이 낚아채고는 탈의실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뭐 저런 인간이 다 있담. 여자의 몸을 공공연하게 논하다니.

       물론 나는 여자가 아니긴 하지만……그래도 여자라고 알고 있으면 당연히 그에 맞게 대접을…….

       아니, 내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니카는 고개를 붕붕 내저으며 탈의실 안에 들어섰다.

       그곳에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근위대원들이 입구를 통제한 덕분이었다. 저 멀리 구석에서 아나이스만이 혼자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니카는 그녀에게서 최대한 멀리 떨어진 다음, 몸이 보이지 않도록 등을 돌리고 목욕 가운을 벗어 던졌다. 그리고 꾸러미를 풀어서 수영복을 꺼내 들었다.

         

       그러나 막상 그것을 손에 쥐자 선뜻 입기가 쉽지 않았다.

         

       황금정은 남자 손님들에게는 트렁크형 수영복을, 여자 손님들에게는 어깨와 팔, 다리가 훤히 드러나는 하이레그 형태의 일체형 수영복을 지급했다.

         

       목욕 가운의 경우 그냥 옷 입는 방법만 조금 달리하면 그만이었다. 그러나 수영복은 너무 노출이 심했다. 사람들 앞에서 이것을 입고 서 있는 자신을 상상하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밖에서 또 한바탕 웃음소리가 들렸다.

         

       이제부터 만날 사람들은 그가 이전 도시에서 끌어모은 귀족 한량들이었다. 그중 몇 명은 가까운 거리에서 인사를 받고 스쳐 지나간 적도 있었다. 근위대원들보다 자신을 알아볼 확률이 높았다.

         

       ‘코카가 있는 이상 그렇게 되지는 않겠지만…….’

         

       니카는 저기 밖에 있을 자신의 대역에 대해 생각했다. 그도 자신의 본래 모습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그는 평소에 몸을 불리고 수염을 붙인 자신과 쏙 빼닮았다. 그래서 이번 여정에 대역으로 뽑힌 것이다.

         

       그가 떡하니 저기 있는 이상 자신의 정체가 들킬 리는 없었다. 니카는 침을 꿀꺽 삼킨 뒤 조심스럽게 수영복을 입었다.

         

       “흐읏.”

         

       그러나 막상 입고 나니 가랑이 사이의 압박이 심했다. 여성복은 남성복과 달리 그곳에 여유를 두는 봉제선이 없었다. 그래서 그 부위가 눈에 띄게 불룩 튀어나오게 되었다.

         

       ‘아, 제발……좀…….’

         

       그는 어떻게든 그것이 가라앉기를 마음속으로 빌었다. 그러나 뜻대로 되지 않았다.

         

       수영복의 압박 때문에 그 안에 웅크린 것이 자극받아 몸을 일으켰고, 그로 인해 옷이 더 조이면서 자극 역시 강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하윽.”

         

       귀두 아랫부분이 수영복 안감에 자꾸만 쓸렸다. 그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허리가 뒤로 꺾이고 입이 벌어지며 신음이 튀어나왔다.

         

       이대로 나간다면 영락없는 변태 취급당할 것이다. 수영복을 다시 벗어서 물건을 구부려 다리 사이로 넣거나 하는 식으로 조정이 필요했다.

         

       그가 막 어깨끈을 내리고 수영복을 벗으려고 할 때, 누군가 등 뒤에서 그를 불렀다.

         

       “저기, 손님?”

         

       니카는 깜짝 놀라 재빨리 허리를 구부려 그 부위가 도드라지지 않도록 숨겼다.

         

       “왜, 왜 그러세요?”

         

       몸을 잔뜩 웅크린 채 겁을 질린 눈으로 돌아보는 니카의 모습에 아나이스는 안타까운 미소를 지었다.

         

       아무리 똑똑하다고 해도 역시 애는 애다. 하긴 황태자 정도 되는 인간이 부른다면, 보통 사람은 겁먹지 않을 수 없겠지만…….

         

       “밖은 추우니까 탕에 들어가기 전까지 이걸 걸치는 게 좋을 거예요.”

         

       아나이스가 건넨 것은 사람 키만 한 크기의 커다란 수건이었다. 그것은 원래 숙박객마다 제공되는 것으로 객실을 나설 때 챙겨 나와야 하는 것이었다.

         

       “저는 여기 직원이잖아요. 자주 와 봐서 알아요. 구석의 비품실에서 꺼내왔어요.”

       “아, 가, 감사합니다…….”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원수라도 만난 듯 싸웠던 상대에게 이런 호의를 받을 줄은 몰랐다.

       그 카드 실력 하며……단순한 술집 여자는 아닌 걸까?

         

       그는 수건을 받으면서 그녀의 몸매를 살폈다.

         

       군살 하나 찾아보기 힘든 날씬한 몸매였다. 목도 가늘었고 팔도 다리도 길쭉했다. 그러나 절대 말라서 보기 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늘었지만 근육이 딴딴하게 차올라 보기 좋은 선을 그리고 있어서 아름다웠다. 무엇보다 손과 발의 모양이 무척이나 예뻤다.

         

       “그럼 먼저 나가볼게요. 다 정리되면 나와요.”

       “네…….”

         

       그는 아나이스가 떠나는 것을 보고 겨우 허리를 폈다. 웅크리고 있는 동안 다행히 그의 물건은 많이 가라앉아 있었다.

         

       그는 재빨리 그것의 각도를 재조정한 다음에 수건을 몸에 두르고 거울을 봤다. 그곳에 그가 알고 있던 황태자 니콜라이는 없었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수영복을 입고 수건을 두른 채 겁에 질린 눈을 한 단발머리의 여자아이였다.

         

       그는 실소가 터져 나왔다. 누가 이 모습을 보고 황태자를 떠올릴 것인가.

         

       탈의실을 나선 순간, 그는 원더스타인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자신도 모르게 입에서 헉하는 신음이 터져 나왔다.

       대리석을 깎아 만든 것 같은 완벽한 비율의 몸이 그의 눈앞에 있었다. 가슴, 어깨, 배 모두에 보기 좋게 근육이 단단히 박혀서 그의 눈앞에서 꿈틀댔다.

         

       “이제 정말 여자애 같군요, 니카 양.”

         

       그가 웃으며 자신에게 다가왔다. 니카는 남자로서 자신을 지키고 싶은 욕구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났다.

         

       “그, 그러면 그동안 남자인 줄 아셨나요?”

       “네.”

         

       그의 대답에 니카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뭐라고요?”

       “후후, 농담입니다. 그럴 리 없죠.”

         

       니카는 입을 딱 다물었다. 그의 말은 진담이어도 농담이어도 왠지 불쾌했다.

         

       “자, 들어간다.”

         

       그들은 근위대원들의 안내에 따라 두꺼운 이중문을 통과해 밖으로 나섰다. 차가운 돌풍을 각오한 니카였지만, 그의 예상과 달리 바람은 거의 불지 않았다.

         

       천상 욕탕은 건축가들이 무풍지대를 위해 공학적인 계산을 거쳐 설계한 것이었다. 바람은 절벽을 타고 외부 방향으로 빠져나갈 뿐, 욕탕 위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닿지 않았다.

         

       물론 겨울이라서 싸늘한 것은 변함없었지만 말이다.

         

       수백 명의 숙박객이 여기저기 켜져 있는 얕은 조명 아래에 삼삼오오 모여 계곡 아래 펼쳐진 도시의 야경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은 갑옷을 입고 지나가는 근위대원들을 보며 쑥덕거렸다.

         

       “뭐야, 저 사람들은?”

       “못 들었어. 황태자 전하께서…….”

       “그래? 그러면 호위받고 있는 사람들은 누구지?”

       “몰라. 초대받은 귀족들 아닐까?”

         

       천상 욕탕 안은 수십 개의 지역으로 구분되었다. 하얀 대리석으로 반듯하게 닦인 곳도 있었고, 자연의 바위와 식물들을 가져다 놓은 곳도 있었으며, 편백 나무를 깎아 만든 곳도 있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천상 욕탕의 정중앙에 있는 바위 위였다. 그곳은 이곳에서도 가장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는 곳이었다. 서른 명 정도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색색의 빛들이 번쩍이는 탕 속에 몸을 담그고 둥그렇게 둘러앉아 있었다.

         

       “전하, 말씀하신 자와 그 일행들을 데려왔습니다.”

       “오, 왔나! 잠시 기다리지. 막 이번 게임이 끝난 참이거든.”

         

       그렇게 말한 코카는 벌떡 일어나서 소리쳤다.

         

       “좋아! 이번 게임도 승자는 나군! 그러면 상품으로 누굴 고른다?”

         

       코카는 욕탕에 둘러앉은 귀족 청년들과 그들이 끼고 있는 기녀들을 한 번 쓱 둘러보고는 한 명을 가리켰다.

         

       “네가 좋겠다! 잠깐! 혹시 자네…… 불만 있는 것은 아니지?”

         

       코카에게 지목당한 기녀를 끼고 있던 청년이 손사래를 쳤다.

         

       “그럴 리가요! 전하께서 저와 여자 보는 눈이 비슷하다니! 영광입니다!”

       “하핫, 그래야지! 그래!”

         

       황태자는 그렇게 외치고는 기녀를 향해 입을 벌렸다.

         

       “뭐 하는 거냐? 어서 내게 천상의 미주를 대령하지 못할까!”

       “알겠사옵니다, 전하.”

         

       기녀는 특유의 꾸민 듯한 부끄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고는 입에 술을 한 모금 머금었다. 그리고 코카에게 엉덩이를 살랑거리며 기어가 그와 입을 맞추고는 술을 밀어 넣어주었다.

         

       질척한 소리가 오가는 와중에 그의 손은 그녀의 수영복을 비집고 들어가 그녀의 가슴을 주물렀다. 기녀는 역시 꾸민 듯한 신음을 흘렸다. 그렇게 긴 키스가 끝나고 입을 뗐을 때, 사방에서 환호와 갈채가 쏟아졌다.

         

       “키야! 역시 전하는 영웅호걸이십니다!”

       “저는 보고 감동했습니다!”

         

       코카는 입가를 슥 닦고는 그들을 둘러봤다.

         

       “뭐야, 너희들 그렇게 좋냐?”

         

       그의 질문에 앞다투어 아부를 쏟아냈다.

         

       “네! 좋습니다! 전하와 이런 호탕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너무 좋습니다!”

       “전하야말로 남자 중의 남자이십니다! 그동안 뵐 기회가 없었던 게 원통합니다!”

       “맞습니다! 전하를 영접하고 온다는 명분이 없었으면 저는 지금쯤 영지에 처박혀서 꼰대에게……아, 실수…….”

         

       한 청년이 입을 막는 시늉을 했지만, 코카는 대수롭지 않게 웃어넘겼다.

         

       “괜찮다! 너희 아버지……그래! 바덴우르트 자작은 꼰대가 맞다!”

         

       그의 선언에 청년은 황송하다는 자세를 취했다.

         

       “영광입니다!”

       “좋아, 좋아. 자, 다들 우리 꼰덴우르트 자작에게 건배!”

       “건배!”

         

       사람들이 잔을 높이 들고 술을 들이켰다. 그들이 마시는 것은 보드카와 소다, 과일을 섞은 칵테일이었다. 과일의 향과 단맛 덕분에 취기는 덜 오르면서 신나게 마시기 좋았다.

         

       “자, 그러면 그 게임의 달인이라는 기녀! 모셔볼까?”

         

       코카의 말에 기사는 세 사람을 앞으로 데리고 나왔다.

         

       코카는 게슴츠레한 눈으로 셋을 바라봤다.

         

       “음? 어떻게 된 일이야? 왜 셋이지?”

       “제가 갔을 때, 마침 카드 대회 결승전이 벌어지고 있지 뭡니까? 거기 있던 세 사람을 제가 데려왔습니다.”

       “오, 그래? 내가 찾던 여자는?”

       “여기 녹색 머리입니다.”

         

       기사가 아나이스를 가리켰다. 그녀는 돌아가는 상황을 보고 잔뜩 얼어 있었다.

         

       온천으로 불려왔을 때부터 눈치챘어야 했다. 이건 단순히 깍두기가 필요해서 부른 게 아니었다. 심심풀이로 데리고 놀 기녀를 원하는 것이었다.

         

       ‘내가 저기에……?’

         

       그녀는 귀족 청년들과 몸을 부대끼며 웃음을 팔고 있는 기녀들을 바라봤다. 그들은 은밀한 부위에 손이 들어오는 데도 남자를 향해 아양을 떨고 있었다.

         

       내가 저런 짓을 해야 한다고?

       그녀는 지금 자신이 처한 상황이 믿기지 않았다. 아무리 떨어졌다고 한들 진짜 천한 여인처럼 몸을 굴려야 한다니.

         

       “좋아. 이름이 아냐라고 했나? 들어와라.”

         

       코카는 자신의 왼쪽 빈자리를 가리켰다.

         

       아나이스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주변에는 무장한 근위대원들이 수십 명이나 있었다.

       지엄하신 황태자의 명에 따르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때, 그녀의 머릿속에 엉뚱한 질문이 떠올랐다.

         

       ‘내가 진짜 아나이스가 맞는 걸까?’

         

       지난 몇 달 동안 그녀를 괴롭혀왔던 물음이 다시 고개를 쳐들었다.

         

       그건 일종의 방어기제라고 할 수 있었다. 진짜 자신이 창녀처럼 몸을 내줘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그냥 지금 자신이 진짜가 아니라고 가정하는 것이 편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정신적 도피일 뿐, 당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

         

       “어서 오라니까!”

         

       황태자의 언성이 높아졌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이대로 계속 머뭇거리다간 자신뿐만 아니라 원더스타인까지 해를 입을 수 있었다.

         

       그렇게 그녀가 막 탕으로 발을 집어넣으려는 그때, 원더스타인이 그녀를 제지했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구슬하늘 님, 13코인 후원! 재밌게 봐주시고 계시다니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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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I Became the Leader of the Monster Circus Troupe

괴물서커스단의 단장이 되었다
Score 4.4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protagonist, a famous YouTuber known for playing the game trilogy “Tril Trilo Trilogy,” finds himself possessing the final boss of the game world. Before the release of the new instalment in the series, he receives an offer from the game’s developer to play a prequel, “Part 0,” which explores events that occurred before the first instalment. Since he is a fan of “Tril Trilo Trilogy,” he eagerly accepts the offer. However, through some twist of fate, he wake ups in the world of “Tril Trilo” in the dreadful body of the final boss of the trilogy, a character named Frank Wonderste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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