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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9

     상대가 클레이돌 후작이라는 걸 인지한 순간부터, 나는 이상을 인지했다.

     왜 클레이돌 후작이 이곳에 있는가?

     협곡에서 아버지와 대치해야 할 인간이 왜 비행선을 이용해 후방으로 들어와 침투를 했을까.

     그 배경을 생각해보자면, 아마도 그건 클레이돌 후작이 흡혈귀가 되었기 때문일 터.

     어째서 흡혈귀가 되었는가.

     그 이유를 알 수는 없다.

     클레이돌 후작 정도 되는 인간이 황제가 흡혈귀를 싫어한다는 걸 모를 리도 없는데, 어째서 흡혈귀가 되어버린 걸까.

     흡혈귀가 되면 평범한 인간보다 오래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장수에 대한 기대감 때문에?

     

     아니면 부하들이나 병사들이 강제로 흡혈귀가 되는 것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이유는 모른다.

     알고 싶지도 않지만, 알고자 해도 알 방법은 이제 없다.

     [크, 흐흐흐.]

     클레이돌 후작이 웃음을 흘린다.

     눈 아래 부분만 남은 채, 끈적한 피만 흘리며 웃는 게 황금의 영령보다도 더 끔찍한 괴물과도 같았다.

     

     [크흣.]

     그러나 그 웃음은 죽기 직전에 남아있던 마지막 의지의 흔적.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부분은 저 멀리 할버드의 날과 함께 날아갔고, 남은 건 듀라한도 될 수 없는 흡혈귀의 시체 뿐이다.

     쿵.

     무릎을 꿇는다.

     갑옷의 무게 때문에 앞으로 고꾸라지지도 않고, 무릎을 꿇은 채로 그대로 멈춘다.

     “…….”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나마 짐작이 가는 부분이 있다면, 클레이돌 후작은 학살을 즐기는 인간이라는 것.

     노스트럼을 그 누구보다도 더 확실하고 잔인하게 죽일 수 있는 존재를 후방 침투조로 삼아 죽이려고 한다면, 분명 클레이돌 후작이 적임이었겠지.

     최대한 많은 이들을 죽이고, 가장 확실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황제는 클레이돌 후작을 죽이기 위해 보냈다.

     노스트럼 백성들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클레이돌 후작’을’ 죽이기 위해.

     내 손에 죽게 만들기 위해.

     “후.”

     알싸한 혈향이 정신을 어지럽힌다.

     전장 한복판이라는 건 알고 있지만, 마스터 한 명을 죽이고 난 뒤라서 그런지 더욱더 머리가 어지럽다.

     머릿속으로 스쳐지나가는 판단이 맞는지 틀렸는지, 그걸 쉽게 결론내리기가 어렵다.

     하지만.

     “…적어도 이쪽은 끝났군.”

     주변에서 투쟁의 소리가 잦아드는 게 느껴질 정도로 전장이 고요해진다.

     이 근방을 중심으로 하나둘 소리가 잦아들기 시작하고, 이쪽을 향한 시선이 하나둘 늘어나는 기척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클레이돌 후작님이….]

     [죽었어…?]

     어떤 병사들이든 사령관이 죽으면 패닉에 빠지기 마련.

     특히 그 사령관이 마스터 중 한 명이며, 제국에서는 팔신장이라고 하는 여덟 장군 중 한 명이라면 더더욱 혼란스럽기 짝이 없다.

     [으, 으아아!!]

     심지어 클레이돌 후작을 대체할 수 있는 또다른 마스터급 장군이 있다면 모를까, 그게 아니라면 제국군 병사들은 두려움과 공포에 빠질 수밖에 없다.

     마스터가 죽었다.

     자신들을 지켜줄 수 있는, 적군의 마스터를 억눌러줄 수 있는 존재가 죽었다.

     그러니 이제, 저들은 상대해야 한다.

     [지, 지브롤터가 온다ㅡㅡㅡ!!]

     지브롤터를.

     나를.

     ‘생각도 없지만.’

     푸ㅡㅡ욱.

     칼이 바닥에 박힌다.

     클레이돌 후작의 투구를 가르기 위해 하늘로 내던진 칼이 땅에 처박힌다.

     오로솔 아카데미 개발 당시 말끔하게 깔아놓은 대리석 바닥에 끈적한 피가 흘러내리고, 나는 칼을 뽑아 옆으로 크게 휘둘러 칼에 튄 피를 털어냈다.

     “전황은….”

     안 봐도 뻔하다.

     

     유리.

     하늘에는 용기병들이 돌아다니고, 지상에는 왕실기사단과 아카데미 학생들이 전장을 달리며 제국군을 유린하고 있다.

     “쯧.”

     더 많이 죽이면서 동시에 죽으라고 보낸 병사들이다.

     클레이돌 후작이 최소한 수천 정도는 죽일 거라고 예상은 했겠지만, 그는 나를 피하는 게 아니라 내게 달려들어 나부터 죽이려고 했다.

     그러니 그가 죽은 이상, 제국군은 오합지졸이라고 할 수는 없어도-

     [후, 후퇴! 왕도에서 벗어나, 그들과 합류한다!!]

     오로솔이라는 장소를 점령하기 위해 호기롭게 마도자동선부터 들이박았지만, 이곳에서 승기를 장담할 수 없다는 생각에 전의를 잃고 도망친다는 결론을 내리기에는 충분한 자들이다.

     “아, 아아.”

     나는 품에서 마석을 하나 꺼냈다.

     “여기는 그레이 지브롤터.”

     […기는 그레이 지브롤터.]

     오로솔 아카데미의 경룡장 영상 송출기와 연결된 마석에 대고 말하자, 곧 메아리가 울려퍼지듯 내 목소리가 전장 전역에 퍼지기 시작했다.

     “적장 클레이돌 후작을 죽였다.”

     제국군 전체가 당황하지 않을까.

     내가 서 있는 공간 근처에 있던 제국군은 클레이돌 후작이 죽는 걸 봤으니 바로 도망쳤지만, 아카데미 성벽 외곽 쪽을 공략하면서 기어이 성벽을 넘어선 이들은 갑작스러운 승리 선언에 당황할 것이다.

     “모든 수호자들에게 전한다.”

     그러나 곧 본대에서 빠져나온 병사들이 부리나케 달리고 있는 걸 보면,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곧장 도망치려고 하겠지.

     “태양이 뜨기 전, 도망치는 모든 제국의 흡혈귀들을 추격하라.”

     쫓아야 한다.

     “저들은 민가를 습격해 창고에 숨어, 밤마다 움직이며 약탈하고 죽이며 제국으로 도망칠 것이다.”

     성벽 위, 도망치는 적들에 안도하던 병사들이 흠칫 놀라며 다시 무기를 꼬나쥔다.

     “왕도가 아닌 다른 영지를 습격한 제국군과 합류하여, 지방의 수많은 영지에 있는 이들을 학살하려고 할 것이다.”

     오로솔을 지켜냈다는 것에 안심하던 이들이, 잠시 풀어둔 투구끈을 다시 조이며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다.

     “추격하라. 저들은 무고한 이들의 목에 송곳니를 박아넣고 고혈을 짜내어 죽이는 무자비한 살인자들이다.”

     하늘을 나는 비룡들이 일제히 흩어지고, 기사들 또한 다급하게 흡혈귀 병사들의 발자국을 쫓는다.

     “제국 병사를 죽이기를 망설이지 말라.”

     흡혈귀가 된 시점부터 저들은 황제의 버림패였다.

     “저들은 군인 뿐만 아니라, 민간인도 죽이려드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런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더라도, 새로운 길을 걷는 지브롤터에게 있어서는 용서할 수 없는 존재들이다.

     “그대들의 가족을 지켜라, 노스트럼이여.”

     평화의 길을 걷고자 하는 지브롤터에게 있어, 전쟁과 살육을 조장하는 이들을 살려둘 수는 없는 일.

     “이는 적을 죽여, 사사로운 이득을 추구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흡혈귀 뼛가루를 모아 백은과 캐롤라인을 만들어 경제적 이득을 탐하기 위함이 아니며.

     “이는 적을 죽여, 우리의 땅을 지키기 위함만이 아니다.”

     이는 제국군으로부터 오로솔 아카데미를 지켜 아카데미에 투자한 자산이 빼앗기는 걸 방지하기 위함이 아니다.

     “이는, 우리의 가족을 지키기 위함이다.”

     적어도 이것만큼은, 진심을 다해 말할 수 있다.

     “나의 부모, 형제자매, 그리고 자식을 지키기 위하여.”

     가족을 지키기 위하여 적을 죽인다.

     “검을 들어라, 노스트럼이여.”

     공성전은, 그렇게 섬멸전이 되었다.

     * * *

     잠시 뒤.

     “다친 곳은 없으십니까, 아스타시아?”

     “네, 뭐. 덕분에.”

     나는 오로솔 아카데미 입구에서 바로 제국 유학생 기숙사로 돌아와 아스타시아를 찾았다.

     “침입자는 없었습니까?”

     “있었는데요, 없어졌죠.”

     “다행이군요. 누군지는 아십니까?”

     “유학생 중에 결국 참지 못하고 반란을 일으키려고 했던 사람? 뭐, 이제는 없어요. 스칼렛이 처리했거든요.”

     “305호의 그녀로군요.”

     복도에는 알싸한 피냄새가 남아있다.

     하지만 적어도 실내에는 적이 드나든 흔적이 없기에, 나는 안도하며 소파에 주저앉았다.

     “안기시겠습니까?”

     “…….”

     아스타시아는 조용히 내 옆으로 다가와 바싹 붙어앉았다.

     “안기셔도 되는데.”

     “조금, 마음이 그래서.”

     

     아스타시아는 신경 쓰고 있다.

     나는 이곳으로 돌아왔지만, 아직 전투가 완전히 끝난 건 아니기에.

     “아침이 되기 전에 제국군을 모조리 잡아야 할 거예요. 그게 아니라면 분명 제국군 병사들은 자기가 살기 위해서 어둠 속으로 도망칠 테니까.”

     “예. 그래서 더더욱 노스트럼의 병사들이 열심히 돌아다닐 겁니다.”

     “…이렇게 보면 꼭 거짓된 황금이 보여주는 수호자나 마찬가지인데.”

     아스타시아가 내 볼을 두 손으로 붙잡아 자신의 쪽으로 돌린다.

     “하는 말이나 행동과 별개로, 본심을 천천히 뜯어보면 노스트럼 최후의 수호자는 커녕 오히려 죽든 말든 상관없다는 냉혈한이라는 말이죠?”

     “있는 그대로 말했을 뿐입니다.”

     “뭐라고요?”

     “네 가족을 지켜라. 그렇게 말을 했죠.”

     “…알아서, 스스로?”

     나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였다.

     “으음….”

     “왜 그러십니까?”

     “아뇨, 그냥. 어쩔 때 보면 이렇게 황제 폐하와 판박이 같으면서도, 왜 당신에게서는 황제 폐하와는 다른 느낌이 드는 걸까요?”

     “사소한 부분에서 다른 점이 있지만, 그 하나 때문에 인간이 달라지는 거니까요.”

     황제와 나는 결이 비슷하다.

     하지만 같다고는 할 수 없다.

     “같은 나무의 종이라고 해도 자라난 토양과 환경에 따라 그 형태가 달라지는 법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적어도 황궁보다는 자식을 키우기에는 지브롤터가 더 낫다고 할 수 있겠죠.”

     “으음….”

     “왜 그러십니까?”

     “저는, 그냥 당신과 단 둘이서 있고 싶은데요.”

     아스타시아가 내 손을 두손으로 꼭 붙잡는다.

     “집안일은 제가 할게요.”

     “지브롤터에서 시집살이를 하기 꺼려지십니까?”

     “꺼려진다기보다는, 둘이 따로 있고 싶은거죠. 여러모로.”

     “그건, 이런 걸 할 때를 위해서?”

     내가 아스타시아의 머리칼을 귀 뒤로 넘기자, 아스타시아가 움찔거리며 몸이 굳었다.

     “이런 걸 할 때, 부끄러워서 그러는 겁니까?”

     “…몰라요.”

     아스타시아는 볼을 부풀리며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지금은 안 돼요.”

     “이미 성인이 되었잖습니까.”

     “성인이 되었지만, 어른이 된 만큼 때와 장소를 가릴 줄 알아야죠.”

     아스타시아는 밖을 가리켰다.

     “아직 전쟁 중이에요. 심지어 노스트럼은 지금 제국군 병사들을 추격하고 있고.”

     “전쟁 중에도 사랑이 피어나는 법입니다.”

     “갑자기 사람이 달라진 것 같지 않아요?”

     “어른이 되었으니까요.”

     아스타시아가 고개를 든다.

     잔뜩 붉어진 얼굴로, 입술을 오물거리며 내 눈치를 본다.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전쟁 중에도 역사가 만들어지는 법입니다.”

     나는 그대로 아스타시아를 안아들었다.

     “이곳을 만들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지어뒀었죠.”

     “…이래도 되는 거 맞아요? 아직 전쟁 중이고, 싸움은 계속되고 있고, 사람들은….”

     “쉿.”

     나는 아스타시아에게 입을 맞추며, 그녀가 더 이상 군말을 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딱히, 황제를 죽이면 하기로 약속한 것도 아니잖습니까?”

     “아니, 그렇긴 한데.”

     “괜찮습니다. 어지간히 심각한 상황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제가 지금 먹은 마음을 돌릴 일은-”

     쾅쾅쾅.

     “…없을 겁니다.”

     나는 그대로 아스타시아를 안고 방으로 향했다.

     만.

     “…역시, 신경 쓰이시죠?”

     “하.”

     나는 아스타시아를 내려놓은 뒤, 그대로 몸을 돌렸다.

     “무슨 일이지.”

     “보…흐읍, 보, 보고를 드립니다.”

     제복을 입은 305호의 스칼렛이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협곡 제 1관문이 뚫렸습니다.”

     “……뭐?”

     “그.”

     스칼렛의 말에 나는 전신의 피가 멈추는 기분이었다.

     “합스베르크 폰 테르시안 황제가 제 1관문을 점령했습니다. 소드 마스터…일곱 명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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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The Genius Villain of a Traitorous Family

매국명가 간신천재
Score 7
Status: Ongoing Type: Author: , , Released: 2023 Native Language: Korean
The eldest son of a lord notorious for treason returns to the past. ‘A person adept at selling a country once can do it well again.’ However, in this life, ‘I will rise as the king of traitors.’ Beyond a directionless kingdom or a betraying empire, ‘Join me in this revolution.’ All for the sake of my quee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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