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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9

   켄트 가문은 긴 역사를 지닌 곳이다.

   

   악신이 이 땅을 멸망시키려 하던 혼란의 시기에 등장한 무명의 남자가 자신의 검으로 공을 쌓아서 세운 가문이 켄트이니.

   

   영웅의 후손으로써 긴 세월 검을 수련해 온 켄트 가문은 검술명가라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오랜 세월 검 하나를 붙잡고 있던 곳 답게 켄트 가문의 영지는 검과 관련된 것으로 물들어 있다.

   

   검술을 가르쳐 주는 여러 도장들.

   

   검을 만들어주는 대장간들.

   

   거기에 더해 수련을 거듭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차려진 여러 가게들까지.

   

   검과 관련된 캐릭이라면 한 번쯤 들려야하던 이 곳의 풍경은 내가 기억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아마 이 곳에 존재하는 여러 설정들 또한 게임과 똑같다는 이야기겠지.

   

   “…나 순간이동 싫어.”

   

   그를 감상하고 있으려니 프레이가 비적거리며 문 바깥으로 나왔다.

   

   대개의 일에 무심한 프레이라도 자신의 속이 뒤집히는 것은 견디기 버거웠나보다.

   

   ‘잠시 쉬다…’

   “이 정도도 견디기 힘든 거야? 프레이 언니. 완전 허접하네. 어떡할래? 굳이 부탁하면 쉬다 갈 수도 있는데?”

   

   “…아니. 괜찮아. 바로 가자.”

   

   프레이는 비틀거리면서도 나를 이끌고 거리를 가로 질렀다.

   

   ‘저기. 프레이 언니…’

   “프레이 언니. 나 아직 뭐 할 거란 이야기 못 들었는데. 설마 바보라서 뭘 부탁할 건지 까먹은 건 아니지?”

   

   대체 날 켄트 가문의 저택으로 데려가서 뭘 시키려는 거야?

   

   진짜 예상이 안 가서 그래.

   

   만약 내 앞에 있는 게 프레이가 아니었더라면 게임 속 설정을 기반으로 예측을 해봤을 텐데 이 사차원 꼬맹이는 그런 예상이 통하는 사람이 아니란 말야.

   

   소울 아카데미의 썩은물인 나도 얘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조금도 모르겠어.

   

   “대련.”

   

   ‘…네?’

   “뭐?”

   

   “대련할 거야.”

   

   대련? 날 자기 집까지 끌고 가서 하려는 게 대련이라고?

   

   그런 거라면 아카데미의 훈련장에서 해도 상관없는 거 아냐?

   

   프레이가 한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이 안 가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자니 어느새 켄트 가문의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가씨. 옆에 계신 분은?”

   

   문을 지키던 병사는 프레이 옆에 서 있는 날 보고 눈을 떨었다.

   

   이 사람도 루시의 악명에 대해서 알고 있는 거려나.

   

   다른 사람의 두려움을 사는 데 익숙해진 나는 어깨를 으쓱일 뿐 따로 입을 열진 않았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상황만 악화시킬 게 뻔했으니까.

   

   “이 쪽은 루시. 내 친구.”

   “친구. 라고요?”

   “응. 친구. 그치?”

   

   ‘네. 맞아요. 프레이 언니.’

   “프레이 언니 쪽에서 일방적으로 매달리는 게 친구라면. 뭐어. 맞다고 해줄 수도 있지.”

   

   “이럴 수가! 아가씨께서 피해자가 아니라 친구를 저택에 데리고 오시다니!”

   

   울먹거리면서 고함을 치는 병사의 모습에 당황한 것은 내 쪽이었다.

   

   얘 내가 무서워서 눈을 떤 게 아니었어?

   

   그냥 프레이가 또 사고를 친 걸까 싶어 당황하던 것뿐이야?

   

   …이상하다? 루시라는 이름에 달린 악명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리가 없는데?

   

   “크흡!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가주님께 이 감동적인 사실을 보고 드리고 오겠습니다!”

   

   눈물을 훔친 후 저 멀리로 떠나가는 병사의 등을 멍하니 바라보던 나는 프레이가 어깨를 툭툭 두드리는 것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들어가자.”

   

   ‘방금 저 분은…’

   “방금 저 멍청이가 기다리라고 그랬잖아. 바보인 프레이 언니는 그 말도 이해 못 한 거야?”

   

   “괜찮아. 아무 문제없어.”

   

   아무리 생각해도 문제투성이 일 것 같았지만 프레이의 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나는 그녀에게 이끌려 저택에 발을 디뎠다.

   

   “어머. 아가씨. 여긴 어쩐 일이신가요? 옆에 분은. 네? 친구요? 친구요?!”

   “가주님의 노력이 드디어 보상을 받았군요! 아가씨께서 친구를 데리고 오시다니!”

   “저희 아가씨를 잘 부탁드립니다! 알른 영애!”

   “흑. 이 감사함을 어찌 전해드려야 할지!”

   

   켄트 가문의 사용인들은 하나 같이 구김살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이들 뿐이었다.

   

   다들 루시 알른이라는 이름을 듣고서도 두려움을 표하긴커녕 영애 덕분에 아가씨가 바뀔 수 있었습니다! 라며 땅에 머리를 박으려 했으니.

   

   예전에 파트란 축제에서 만났던 프레이의 동생이 왜 그리 시끄러웠는지를 자연스레 이해할 수 있었다.

   

   이 가문에서 자라나면 그렇게 되는 게 정상이야.

   

   “프레이 언니! 언제 오신 거에요?! 오면 온다고 말씀을 해주시지! 그리고 옆에 분은…”

   

   아. 젠장. 자기 생각을 하는 걸 어떻게 눈치 챈 건지 이 저택에서 제일 시끄러운 사람이 등장해버렸다.

   

   파르나 켄트.

   

   프레이의 여동생.

   

   묵묵한 마이페이스인 프레이와는 달리 활기찬 천연 마이페이스인 그녀는 게임에 등장할 때 남들보다 대사가 더 커 보일 정도로 소란스러운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건 현실이 되고 나서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더 소란스러워졌지. 대사로만 보던 게 목소리로 바뀌었으니까.

   

   “…알른 영애 맞으시죠?!”

   

   ‘네. 그렇습니다.’

   “보면 알잖아? 너희 허접들과는 차원이 다른 사람이라는 걸.”

   

   “와아아! 예전에도 어어어엄청 예뻤는데 지금은 어어어어어어어…”

   

   얘 폐활량 진짜 좋네. 자기도 무가의 사람이라 그건가.

   

   “…어어어엄청 더 예뻐지셨네요!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 같아요! 미의 여신이 질투할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당연한 걸 시끄럽게 떠들어야겠어? 귀족 영애가 이렇게 조신하지 못하다니. 정말 한심하네.”

   

   “하핳! 그런 말 자주 듣는데 안 고쳐지더라고요!”

   

   독설을 들었는데 표정 하나 안 바꾸다니 대단하네.

   

   자기가 들은 말이 독설이라는 걸 이해 못한 것처럼 보일 지경이야.

   

   …어라? 혹시 진짜 이해를 못 한 건가? 그런 건가?

   

   “비켜. 나 바빠.”

   

   얘라면 진짜 그럴 것 같단 생각을 하고 있으려니 프레이가 나와 파르나 사이에 끼어들었다.

   

   “왜요?”

   “친구랑 할 일 있어.”

   “친구! 언니의 입에서 친구라는 말이 나오다니! 저 완전 감동했어요!”

   “이 엄마도 그렇답니다! 파르나!”

   

   파르나의 소란스러운 목소리 위에 또 다른 소란스러움이 더해졌다.

   

   켄트 백작 부인이 파르나의 뒤편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여장부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풍채의 백작 부인은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등장해서는 자신의 굵은 두 팔로 프레이를 끌어안았다.

   

   “우리 프레이가 친구를 데리고 집에 오다니! 흑!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아요!”

   “저기. 엄마? 나.”

   “흐아앙! 언니가 이렇게 바뀌다니! 너무 대견스러워요!”

   “아니. 나 숨. 숨이 막…”

   

   프레이의 얼굴이 시퍼렇게 물들어가는 걸 보던 나는 그냥 생각하는 것을 포기했다.

   

   무슨 말을 하더라도 저 소란스러움에 잡아먹힐 게 뻔해 보였으니까.

   

   <이걸 보니 파룬 그 녀석이 생각나는구나. 참 호들갑이 심한 놈이었는데.>

   ‘…아마 그 분이 켄트 가문의 시초일 걸요.’

   <호. 그래? 피의 힘은 참으로 대단하구나. 수백년이 지나도 그 모습이 그대로 남아있을 줄이야.>

   ‘근데 전 왜 키가 안 클까요. 아버님의 덩치를 생각해보면 지금보다 훨씬 더 커야 할 텐데.’

   <…글쎄다. 그건 주신만이 아는 사실이지 않을까.>

   

   할배의 이야기를 들은 순간 허접 주신이 페도로리콘성범죄자새끼라 그렇단 소린가요?! 라는 말이 튀어나올 뻔 했지만 간신히 참아낼 수 있었다.

   

   경건한 성직자인 할배한테 주신의 악담을 늘어놓을 순 없으니까.

   

   *

   

   파르나 켄트와 켄트 백작 부인이 만들어내는 소란은 시간이 갈수록 그 크기를 더했다.

   

   뒤늦게서야 기절할 뻔 했던 프레이를 눈치 채고서 미안하다며 호들갑을 떨어대고.

   

   프레이를 바꿔줘서 고맙다며 이번에는 날 질식사시키려고 그러고.

   

   내가 프레이 언니라는 호칭을 내뱉는 걸 듣자마자

   

   ‘프레이 언니라고 부르시는 거면 저도 루시 언니라고 불러도 되는 거죠?! 어어엄~청 예쁜 루시 언니라고 해도 괜찮은 거죠?!’

   ‘그럼 귀엽고 아기자기한 영애가 내 딸이 되는 건가요?! 완전 환영이에요! 마마라고 불러 주시지 않겠어요?!’

   

   라면서 고막을 터트리기라도 할 것처럼 소리를 질러대고.

   

   나도 가만히 있었던 건 아니야.

   

   중간 중간에 메스가키 스킬 특유의 매도로 이야기를 끊어보려고 했어.

   

   그렇지만 남의 말을 제멋대로 곡해해서 듣는 두 사람은 매도를 당하건 말건 조금도 신경을 쓰지 않았고. 결국 나와 프레이는 켄트 백작이 모습을 드러내고 나서야 풀려나게 되었다.

   

   이런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는지 켄트 백작의 대처는 깔끔했다.

   

   그는 오자마자 파르나와 백작 부인을 강하게 다그치고서 저택으로 돌려보냈고 그런 후에 나에게 몇 번이고 고개를 숙였다.

   

   “정말 죄송합니다! 알른 영애! 두 사람이 악의를 가진 건 아닙니다만 그렇다 한들 무례라는 사실이 달라지진 않으니! 다시 한 번 이렇게 사과를 드립니다!”

   

   가족의 무례를 사과하는 백작의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베네딕의 모습이 떠올랐다.

   

   예전에 루시가 온갖 사고를 치고 다닐 때 베네딕도 이러지 않았으려나.

   

   ‘괜찮습니다. 신경 쓰지 마세요.’

   “됐습니다. 이런 엉성한 분이 가주인데 뭐 어쩌겠어요? 신경 쓰지 마세요.”

   

   “이해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대체 자기 가족들이 얼마나 사고를 많이 쳤으면 검술 명가의 가주에게서 사회인의 모습이 비치는 걸까.

   

   …나중에 베네딕이랑 이 사람이 이야기할 자리를 만들어보자. 두 사람 이야기 엄청 잘 통할 것 같아.

   

   “저어. 알른 영애. 어떤 용무로 이 곳에 방문했는지 여쭤 봐도 괜찮겠습니까?”

   

   ‘그게 프레이 언니한테…’

   “막무가내에 바보인 프레이 언니한테 끌려와서 저도 잘 몰라요. 엉성 백작님.”

   

   내 이야기를 들은 켄트 백작은 물을 것이 많은 눈으로 내 얼굴을 살피다 슬쩍 옆으로 고갤 돌렸다.

   

   “…프레이? 이게 정말이니?”

   “응. 맞아. 내가 루시를 데려왔어.”

   “왜?”

   “아빠랑 루시랑 대련하는 걸 보고 싶어서.”

   “…응?”

   

   ‘…네?’

   “…뭐?”

   

   켄트 백작과 내가 당혹어린 목소리를 냈음에도 프레이는 태연했다.

   

   “둘이 대련하는 걸 보면 뭔가 알 수 있을 것 같단 말야. 그러니까 해 줘.”

   “저기. 프레이? 이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거든?”

   

   켄트 백작은 어떻게든 프레이를 만류하기 위해 노력했다.

   

   나와 백작 사이의 수준 차이가 너무 심하다던가.

   

   혹여 대련 과정에서 내가 다치면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거나.

   

   차라리 자기가 대련하는 걸 봐 줄 테니 직접 하는 게 어떻겠느냐 하는 식으로 말이다.

   

   ‘전 괜찮아요.’

   “뭔가요. 엉성 백작님. 저한테 질까봐 겁먹으신 건가요? 전 괜찮은데요?”

   

   허나 나는 프레이가 꺼낸 제안이 그리 껄끄럽지 않았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는 내 입장에서 거절할 이유가 없는 제안이다.

   

   가족들 앞에서는 유약한 모습을 보이는 켄트 백작이지만 검을 뽑아든 그는 전혀 다른 사람이다.

   

   현 검성조차도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장담하지 못하는 남자.

   

   켄트 가문의 검술을 집대성하여 자신만의 검을 만들어낸 천재.

   

   대륙에서 모르는 이가 없는 검사가 바로 켄트 백작이니까.

   

   지난 번 버로우 공작을 상대하며 경험의 부족을 절실하게 느꼈던 나다.

   

   그런 내가 강자와 싸울 기회를 거부할 리가 없지 않은가.

   

   “영애. 영애께서는 괜찮을지 몰라도 제가 안 괜찮습니다. 만약 영애께서 다치신다면 제가 베네딕 경에게 죽는단 말입니다.”

   

   그 분께서 진노하신다면 자기 명줄이 위태롭다 말하는 켄트 백작에게선 베네딕을 향한 공포가 느껴졌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강함에 대해서만큼은 자부심을 드러내는 백작이 백기를 들 정도라니.

   

   대체 과거 전장을 휩쓸던 베네딕은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새삼 베네딕의 강함을 느끼게 된 나였지만 그렇다 한들 대련을 하고 싶단 생각은 바뀌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상황이 잘못 되도 켄트 백작이 좆 되는 거지 내가 좆 되는 건 아니잖아?

   

   내가 뒷수습을 할 필요도 없는데 굳이 다른 사람의 사정을 신경 쓸 필요가 있나?

   

   “흐응♡ 백작님께서는 이런 자그마한 아이조차 압도하지 못하는 허접이신건가요?♡ 힘조절을 못할까봐 두려워하는 삼류검사이신거군요?♡”

   “…영애?”

   “괜찮아요♡ 그럴 수 있죠♡ 자신의 검을 믿지도 못하는 허접 쫄보인 게 백작님의 잘못은 아니잖아요?♡”

   “…아무리 알른 가문의 영애라 할지라도 해도 되는 말이 있고 안 되는 말이 있습니다.”

   “아♡ 자기 딸의 부탁도 못 들어주는 한심한 아빠인 건 백작님 책임이겠네요♡ 푸흡♡ 이런 허접 아빠를 둔 프레이 언니가 불쌍해요♡”

   

   키득거리는 소리를 내며 백작의 표정을 살피던 나는 그가 결코 물러서지 않으리라는 것을 확신했다.

   

   날아갈 듯한 이성을 간신히 부여잡고 있는 그의 얼굴은 유약한 사람이 본다면 울어버릴 정도로 사나웠으니까.

   

   “알겠습니다. 해드리죠. 대련.”

   

   역시나.

   

   백작이 입술을 꾹 깨문 걸 확인한 나는 느긋이 몸 안의 신성을 움직였다.

   

   자.

   

   지금의 내가 어디까지 할 수 있을지 시험을 해볼까.

   

   한 방 먹여보자고.

   

   나보다 아득히 강할 검사에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Ilham Senjaya님 보러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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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u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aki Tank Enters the Academy, Messagg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Mesugaki tanks are not properly educated., 메스가키 탱커는 참교육 당하지 않는다.
Score 9.2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2 Native Language: Korean
“You sloppy orc~ You can’t take down a girl?” He became the Mesugaki character in the Academy game. But the taunt works too we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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