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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9

    <329 – 사람을 죽이는 선의>

     

    꽃밭 위로 나비들이 팔랑거리며 내려앉는다.

    햇볕은 따스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다과는 부드럽고 커피는 씁쓸하다.

     

    “정말 좋은 하루죠?”

     

    품속에서 꼼지락거리며 쿠키를 먹던 오크노디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거짓말쟁이.”

     

    오크노디의 웃는 얼굴이 차가운 무표정으로 돌변했다.

    아니야.

    나는 거짓말쟁이가 아니야!

     

    “허억…!”

     

    땀에 흥건하게 젖은 상반신을 벌떡 일으킨 아카디아.

    악몽이라서 다행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이것은 현실에서 비롯된 꿈.

    그녀에게는 현실도 끝나지 않고 이어지는 악몽이다.

    샤워기의 빗줄기를 내리쬐면서도 끈적한 땀은 씻길지언정 끈적한 마음마저 씻기지는 않았다.

     

    -아카디아는 호감도 100이 아니잖아요.

    -호감도 100이 아니잖아요.

    -거짓말쟁이.

     

    메아리치듯이 울리는 목소리.

    이유는 알고 있다.

    많은 것을 베풀어주었던 오크노디.

    그 마음을 순수하게 받지 못하고 일말의 두려움과 불안을 품었던 자신의 본심을 오크노디가 꿰뚫어보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감정에 민감하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수치스러운 민낯이 드러났다는 사실이 이렇게 부끄럽고 괴로울 수가 없었다.

     

    “정신 차려, 아카디아…”

     

    사과는 이미 오크노디에게 충격적인 발언을 들었던 그 자리에서 했다.

    그래도 오크노디의 불신은 종식되지 않았다.

    한 번의 사과로 사라질 정도로 가벼운 불신이 아니라는 뜻이었다.

     

    “아직 늦지 않았어.”

     

    오크노디는 그녀를 완전히 믿을 수는 없다고 했을 뿐, 완전히 배척한 것은 아니었다.

     

    -100이 아니면 몇 정도라고 생각하나요?

    -80이요!

     

    솔직히 틀린 말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의식하지 않으려 애써도 그녀에게는 아직 꺼림칙한 마음이 남아있다.

    오크노디와 재단의 연관성.

    재단의 이사장, 오크노디의 파파가 지닌 위험성.

    때때로 보이는 오크노디의 어긋난 상식.

    오크노디를 두려워하고 꺼려하는 마음이 20이라면 그녀를 아끼고 좋아하는 마음은 80이다.

     

    “불신은 오랜 시간 노력하면 사라질 거야.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적어도 나만큼은 믿어야해.”

     

    그것이 인간 된 도리이리라.

    설령 오크노디가 어긋난 길을 걷는다 하더라도 자신이 바로잡겠다.

    고된 수련 뒤에 굳은살이 박이듯 아카디아의 마음에도 각오가 굳어졌다.

     

     

    * *

     

     

    “오크노디 양은 이번 1교시 홈룸시간에 이번 2학기에 들을 강의를 고르십시오. 자리가 남는 강의라면 제가 수강신청을 허락하겠습니다. 단, 본인의 부주의로 참관기간을 놓친 만큼 선택을 번복할 수 없다는 사실을 유념하시기 바랍니다.”

     

    월요일 1교시.

    마하바라타 교수님의 홈룸시간.

    최근에는 <주간이벤트 안내시간>으로 통하는 이 시간을 뜻밖의 유익한 용도로 사용하고 있는 오크노디에게 많은 학생들이 정보를 쏟아냈다.

     

    “<냄비뚜껑으로 배우는 방패술>은 듣지 마라.”

    “헉. 왜요?”

    “이 몸이 듣는 강의니깐. 으하핫. 순위 하나씩 밀리기 싫다고.”

    “오크노디. <숲의 추적자가 되는 법> 교양강의를 들어보는 건 어때?”

    “도로시가 듣는 강의니까 같이 듣자고?”

    “아니. 난 이미 기초 다 떼서 안 들어도 되는 강의니까 그거 듣는 뉴비들한테 가서 괴롭히라고!”

    “힝. 못됐어 정말.”

     

    주로 견제의 의미로 자신이 듣는 강의를 듣지 말라고 타박하거나 자신이 안 듣는 강의에 싫어하는 녀석이 있으면 슬쩍 그 강의를 밀어주는 식이었다.

     

    “<피크닉으로 힐링하기> 강의도 듣지 마라.”

    “와… 어떻게 골라도 또 지뢰강의를 골랐어요?”

    “…”

     

    약 한명 진정성이 느껴지는 조언자도 있었다.

    오크노디의 반응을 보아 안데르센 대공자는 2학기에도 고생길이 열렸다.

     

    “다들 비켜요. 먼 길 고생해서 돌아온 애한테 그러고들 싶나요?”

     

    아카디아는 심술쟁이들 사이에서 유일한 양심인이 되기로 작정했다.

     

    “디. 인기 있는 강의부터 유익한 강의까지 제가 전부 도와드릴게요. 어떤 강의를 원하는지 말만 하세요.”

    “일단 다섯 개는 이미 정해졌어요!”

     

    2학기 필수강의 2개는 이해할 수 있다.

     

    ━━━

    [상급반 마나증진 강의]

    -화요일 목요일 1교시 9시~11시

    -교수 : 디오게네스

    -상급반 공통, 필수

    ━━━

     

    ━━━

    [상급반 마하바라타의 가르침]

    -화요일 목요일 3교시 14시~16시

    -교수 : 마하바라타

    -상급반 공통, 필수

    ━━━

     

    1학기에서 플라톤 교수가 체력단련을 시키고 드래곤교장이 가르침을 주었듯이 이번에는 디오게네스라는 새로운 교수와 홈룸만을 맡았던 마하바라타 교수가 교장의 강의를 대신하게 되었다.

    교장의 강의가 괴팍하기는 해도 재미는 있다고 생각했던 학생들은 아쉬움을 느꼈지만 오크노디는 이럴 줄 알았다는 것처럼 별 반응도 없었다.

    하지만 나머지 3개는 어디서 구한 강의일까?

     

    ━━━

    [해체의 모든 것]

    -월요일 수요일 2교시 11시~13시

    -교수 : 브론즈 디 아스트라다

    -모험학부, 전공

    ━━━

     

    ━━━

    [모험가의 지형적응]

    -월요일 수요일 5교시 19시~21시

    -교수 : 사다코

    -모험학부, 전공

    ━━━

     

    ━━━

    [은퇴한 전직용사와 세계의 거악들]

    -화요일 목요일 4교시 16시~18시

    -교수 : 디스트로이어

    -모험학부, 전공

    ━━━

     

    오크노디가 짚은 목록을 보니 알 수 있었다.

    1학기에 들은 교수님들 강의였구나!

     

    “사다코 교수님은 굉장히 무서운 분이라는 평판이 자자하던데 실은 좋은 분인가요?”

    “아니요?”

    “그럼 왜 들었는데요.”

    “즈앙이랑 티토소가가 자기들만 두고 가면 울어버릴 테니까요!”

     

    멀리서 부루퉁한 표정으로 지켜보고 있던 즈앙이 스르륵 단검을 집어넣었다.

    …오크노디가 안 듣겠다고 했으면 단검으로 찌를 생각이었던 걸까?

    즈앙이 다가와서 말했다.

     

    “늦었어.”

    “미안! 헤헤.”

    “지난주에는 티토소가랑 둘이서 사다코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다고.”

    “…진짜 미안!”

    “미안하면 다른 강의도 같이 들어.”

    “무슨 강의?”

     

    즈앙이 강의표를 내밀었다.

     

    ━━━

    [변장술의 기초와 이해]

    -월요일 수요일 6교시 21시~23시

    -교수 : 핑크베리

    -모험학부, 전공

    ━━━

     

    “같이 들어.”

    “음… 테크트리는 맞네! 들어볼게.”

     

    그제야 만족스레 미소 지으며 총총 단발머리를 흔들며 돌아가는 즈앙.

    아카디아는 어느새 거의 다 차버린 오크노디의 강의일정을 보고 머쓱해졌다.

    자기가 소개하지 않아도 오크노디는 알아서 다 잘하는구나.

    역시 이 아이에게 내 도움은…

     

    “아카디아 언니의 추천은 뭐예요?”

    “벌써 여섯 개나 강의를 들었잖아요.”

    “그래도 듣고 싶어요!”

     

    어른보다 더 어른스러운 아이.

    오크노디의 배려에 아카디아는 오크노디의 강의시간표를 보고 열심히 고민했다.

    오크노디의 진로는 모험학부로 이미 기울었다.

    모험학부에서 중시하는 것은 풍부한 경험.

    해체나 지형적응, 변장술, 용사의 모험담을 듣는 강의시간표는 나름 벨런스가 잘 잡혀있다.

    그래도 흠이라고 할 만한 구석이 있다면 전투와 관련된 실전경험을 채워줄 강의가 전무하다는 사실.

     

    “이런 건 어떤가요?”

     

    아카디아는 어디까지나 선의에서 비롯된 마음으로 강의 몇 개를 내밀었다.

     

    ━━━

    [전투기능 테크트리]

    -월요일 14시~17시

    -교수 : 암스트롱

    -기사학부, 교양

    ━━━

     

    ━━━

    [자연의 분노]

    -금요일 9시~13시

    -교수 : 위어드

    -마법학부, 교양

    ━━━

     

    ━━━

    [전장에서 지휘관으로 살아남기]

    -수요일 14시~17시

    -교수 : 레어그릴스

    -기사학부, 교양

    ━━━

     

    ━━━

    [선상전투①]

    -토요일 9시~13시

    -교수 : 엘 드라코

    -모험학부, 교양

    ━━━

     

    “분야는 다르지만 다 들어볼만한 구석이 있어요. 다양한 전투기능을 체계적으로 쌓아올리거나, 1학기에 배웠던 자연마나를 이용한 파괴마법을 배우거나 지휘관의 생존에 필요한 전투기능, 선상전투 따위를 배우는 거죠.”

    “우와. 정말 좋은 강의들이네요!”

    “그렇죠?”

    “좋은 건 다 해봐야지!”

    “…네?”

     

    때로는 사람의 선의가 누군가를 죽일 수도 있다.

    겁도 없이 강의시간표에 추천강의를 모조리 집어넣어버리는 오크노디.

     

    “과제는 어떡하려고요?”

    “괜찮아요. 실습으로 때우면 되니깐!”

    “아니, 저는 이중에 하나만 들을 줄 알고 추천한 건데…”

     

    아카디아가 아동학대를 한다는 의혹이 번져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의 시간표!

    그러나 오크노디의 폭주는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다.

     

    “2학기에는 챕터보스 걱정이 없어졌으니 강의를 더 들어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앞으로 세 개만 더 추천해주세요!”

     

    홈룸을 제외하고도 한 학기에 10개의 강의를 듣는 시간표.

    거기서 세 개를 더 듣겠다는 오크노디의 자신감에 아카디아는 정신이 아찔해졌다.

     

     

    * *

     

     

    강의시간표의 곳곳에 생긴 공백을 바라보니 뭔가 아쉬움이 느껴졌다.

     

    ‘원래 2학기에는 언제 범죄조직이 사건사고를 일으킬지 몰라서 강의를 최대한 적게 들어야했지만 이번에는 운이 좋았어.’

     

    와이히엠하이 재단이 수인부흥회를 쳤다!

    재단과 동급의 거대조직이 아닌 이상, 재단의 눈치를 봐서라도 감히 움직일 수 없는 상황.

    사실상 한 학기 전체가 강의만 성실하게 따라가도 되는 안전한 시간대가 되었다.

    이런 찬스는 고학년까지 올라가도 그리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대부분 아카데미 게임이라고 정말 성실하게 강의만 듣고 있으면 학기마다 등장하는 챕터보스의 암약이나 폭주에 아카데미가 발칵 뒤집어진다.

    적어도 같은 학년 내에서는 확정적으로 엄청난 피해가 속출하게 된다.

     

    ‘이참에 학점이나 잔뜩 따둬야지!’

     

    물론 시간이 남는다고 강의를 많이 듣는 것은 평범한 학생에게는 미친 짓이다.

    모든 교수는 학생이 자신의 강의만을 듣는다고 가정하고 보충강의도 잔뜩 잡고 과제도 시한폭탄마냥 기한을 정해두고 힘껏 집어던지니까.

    하지만 어떤 강의에서 어떤 과제가 나올지를 이미 알고 있다면 한 학기 13강의 38학점 이수라는 미친 짓이 가능해진다.

    오히려 빈칸마저 다른 강의로 채울 정도로 고인물 기준으로는 제법 여력이 남는다.

     

    “음~ 혼자만 다 듣기는 심심한데. 아카디아도 같이 듣자고 해볼까?”

     

    과제는 도와줄 수 있는데.

    학점만 잔뜩 받으면 아카디아도 분명 좋아하겠지?

    이번에 파파의 집까지 뱃놀이를 같이 다녀온 친구들한테도 권유해야겠다.

    분명 다들 기뻐할 거야.

    강의시간표를 한 손에 들고 팔랑팔랑 흔들며 모두에게 달려갔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같이 들으면 죽는 시간표 + 연간이수 최대학점 제한이 없는 아카데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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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I Became the Daughter of the Academy’s Villain

아카데미 흑막의 딸이 되었다
Score 4.2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From the side, she looks pitiful and worn out, but in reality, she’s living her joyful survival story in the world of games.

But how can someone’s name be Okno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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