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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29

       카우렐리아 각료들이 한창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을 때였다.

       

       “큰일 났습니다!”

       

       공무원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오며 급보를 전했다.

       

       “뭐가 그리 소란인가?”

       “구제국 마도사들이 배반했습니다!”

       

       각처 장관들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나같이 놀란 표정이었다.

       

       “자세히 보고해 보시오!”

       “그, 그게……!”

       

       물을 받아마신 공무원이 헐떡거리던 숨을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래, 그렇게 되었단 말이지?”

       

       모든 이야기를 들은 대통령이 쓰게 웃었다. 다른 장관들은 돌처럼 굳은 얼굴이 되었다. 분위기가 무겁게 내리깔렸다.

       

       “이거, 난감하게 됐군요. 설마 제국인이 마왕군 잔당과 동맹을 맺을 줄은…….”

       

       제국인들은 전쟁이 끝나자마자 배신했다. 마왕군 간부들을 두둔하고, 그들과 평화 협정을 체결하여 엘프국을 빠져나간 것이다.

       

       덕분에 전범재판에 넘겨야 할 마수들이 전부 북쪽으로 탈출했다.

       

       “그들이 어디로 갔는지 아나?”

       “예. 티림스 강 이북으로 이동 중이라고 합니다.”

       “티림스 강이라.”

       

       티림스 강은 제국과 엘프국의 국경 역할을 하는 강이다.

       

       그곳을 이미 넘었다면 의모는 뻔하다.

       

       “각하, 놈들이 제국을 부활시킬 생각인가 봅니다.”

       

       쾅!

       

       “이런 괘씸한 놈들! 주제도 모르고 뒤통수를 쳐?”

       

       국방부장관이 책상을 치며 역정을 부렸다. 그의 반응에 다른 몇몇 장관들도 다급하게 진언했다.

       

       “대통령 각하. 절대로 그들이 티림스 이북을 점령하게 두어선 안 됩니다. 분명히 또 다른 전쟁의 씨앗이 될 겁니다.”

       “맞습니다. 세가 약할 때 빠르게 제압해야 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 엘프족이 대륙을 통일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이런 기회, 흔치 않습니다. 성공하면 각하께선 역사에 이름을 올리게 될 것입니다.”

       

       하나같이 맞는 말이다. 대통령은 충분히 생각한 다음 입을 열었다.

       

       “모두 좋은 의견입니다. 하지만 걸리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들을 먼저 압박하면 도리어 큰 화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행정부장관이 질린다는 표정으로 반론했다.

       

       “각하, 국제사회는 냉혹합니다. 조국을 제외한 그 어떤 나라와도 영원한 동맹은 있을 수 없습니다. 이번만 해도 그렇습니다. 전쟁이 끝나자마자 인간들은 마왕군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이는 우리와의 신의를 저버린 꼴이지요!”

       

       행정부장관은 침까지 튀겨가며 언성을 높였다. 지금이라도 인간을 잡아야 한다. 세를 불리지 못하게 해야 한다.

       

       일부 발언에는 과격한 표현까지 있었다. 그러나 몇몇 장관은 자중을 요청하기는커녕 고개를 끄덕였다.

       

       “배신은 저들이 먼저 했습니다. 명분이 있습니다! 국가 상황이 어려울지라도 지금 군대를 동원하여 치셔야 합니다!”

       

       열성을 부리는 행정부장관을 향해,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

       

       자신도 발언하겠다. 그런 제스쳐였다.

       

       행정장관의 입을 다물린 대통령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원래 티림스 이북 땅의 적법한 주인은 제국인입니다. 비록 우리가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는 하나, 구제국의 토지를 취할 명분은 없습니다. 그런데 전쟁에서 이겼으니 제국더러 우리에게 땅을 내어 달라?”

       

       대통령의 입에서 침음이 흘러나온다.

       

       “저는 어렵다고 봅니다.”

       “할 수 있습니다. 적의 세력이 약하니까요.”

       “인간이 마왕군과 손을 잡았다고 했잖습니까. 아직 사천이 하나 남아있다는 걸 모르십니까?”

       “우리에겐 정령왕과 상천이 남긴 결전병기가 있소!”

       “저들은 없는 줄 아시오?”

       

       회의장의 언성이 점점 높아진다. 보다 못한 대통령이 30분 휴식을 선언했다.

       

       쉬는 시간을 빌린 아이젠 대통령은 행정부를 제외한 다른 장관들에게 한 마디씩 물었다.

       

       “외교부장관 생각은 어떠신가요?”

       “명분은 있고, 없어도 만들면 됩니다. 실리가 있으니 쳐야 합니다.”

       

       외교부장관은 인간을 치는 것에 찬성.

        

       “보건부장관은?”

       “반대예요. 역병과 기근부터 잡아야 해요.”

       

       보건부장관은 반대.

       

       “국교부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글쎄요. 제 전공이 아닌지라…….”

       

       몇몇 부서는 대답을 회피했다.

       

       찬성, 반대, 혹은 기권. 민주정인 만큼 의견은 각양각색이다. 여기에 국회까지 합치면 더더욱 개판이 날 것이다.

       

       이러다간 결론이 안 날 것 같았다. 대통령은 하는 수 없이 가장 신임하는 사람에게 질문하자고 생각했다.

       

       “경제부의 의견도 들어보고 싶습니다.”

       

       경제부장관, 마샬 로스차일드.

       

       어린 나이에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패스하고, 전란이 터지기 전후로 무너져가는 나라 안팎의 경제를 단속한데다가, 도산할 뻔한 수많은 기업을 어떻게든 회생시킨 천재.

       

       “당신의 결정이라면 충분히 신뢰할 만합니다.”

       “제 생각만으로 큰일을 따져 보는 것은 위험합니다, 각하.”

       “전후에는 경제 재건이 우선입니다. 국민께 뭐라도 보여드려야 하니까요.”

       

       보아하니 대통령은 이미 결정을 내린 듯했다.

       

       마샬은 적당히 눈치를 보다가 입을 열었다. 

       

       “그러면… 실익을 따져 말씀드리겠습니다.”

       

       

       **

       

       

       “돌아왔군.”

       “그러게요.”

       

       레너윌 하스펠트와 그의 두 딸은 폐허가 된 제국 수도를 바라보며 한 마디씩 나누었다.

       

       “이제 저흰 어떻게 하면 좋죠?”

       “그러게나 말이다.”

       

       수도를 좀먹고 있던 잔류 방사능은 어느 정도 사라졌다. 방사룡 요르문간드가 도움을 준 덕분이었다.

       

       그래도 껄끄러운 건 여전했다.

       

       게다가 경제적인 문제도 있었다.

       

       자본이 부족해도 너무 부족했다. 수도를 재건하려면 얼마가 들지 감도 안 잡힌다. 당장 먹고 살기도 바쁜데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노동력을 낭비할 수는 없었다.

       

       “나라를 다시 세우려고 하니 너무 막막해요. 애초에 필리우트 황실의 핏줄이 남아있긴 한 걸까요?”

       “전부 죽었을 거다.”

       “……정말로, 조국이 사라졌군요.”

       

       클라이스가 주저앉았다.

       

       천 년 가까이 받들어 모셨던 나라가 사라졌다. 이루 말할 수 없는 허탈감이었다. 아무리 국운이 기울고 있었다고는 하지만, 하필이면 자신의 대에서 망할 줄이야….

       

       이런저런 한탄을 하고 있자 곁으로 한 여인이 다가왔다.

       

       큰 키에 귀족적인 풍채를 풍기는 여성이다.

       

       “……토츠펠 공작이로군.”

       “이런 곳에 계실 줄 알았습니다. 하스펠트 대공.”

       “당신도 제국을 생각하고 있었소?”

       “예, 일단은요.”

       

       하스펠트 공작과 토츠펠 공작이 동시에 한숨을 쉬었다.

       

       “여기서 무얼 하든 우리는 천하의 간신배로 기록될 것이오. 황제 폐하를 지키지 못한 간신배 말이오.”

       “글쎄요. 폐하와 같이 죽는 것보다는 백배 낫지 않았을까요?”

       “그런 불경한….”

       “나라가 망했는데 불경하다니요?”

       

       토츠펠 공작이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는 이제 토츠펠 ‘공작’이 아니에요. 당신도 아니구요. 더는 상하관계를 따질 필요도, 필요 이상의 예와 식을 차릴 필요도 없어요.”

       

       레너윌이 토츠펠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토츠펠은 입꼬리를 씰룩거리며 눈웃음을 지었다. 왼쪽 눈가에 맺힌 매력점이 독보적이었다. 아이 컨택도 은근하다.

       

       “토츠펠… 당신은 앞으로 어떻게 할 거요?”

       “그러게요. 카우렐리아에서 사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전쟁이 끝났으니 그들의 다음 목표는 우리가 될 것이오. 엘프 나라에 돌아갈 수는 없소.”

       “그래도 저희 같은 노블 계층은 기득권으로 받아주지 않을까요? 민주화 시기 하이엘프들이 그랬던 것처럼요.”

       “엘프들은 철저히 실력만을 따진다고 들었소.”

       “그런가요?”

       

       토츠펠이 레너윌 곁으로 사뿐 다가온다. 남남치고는 제법 거리를 좁혔다. 하스펠트 자매의 눈가가 좁아졌다.

       

       토츠펠은 부채로 입가를 가리며 후후, 하고 웃었다.

       

       “너무 딱딱한 남자는 인기 없답니다.”

       

       레너윌은 어이가 없어서 고개를 돌렸다.

       

       이 미망인이 갑자기 미쳤구나 싶었다.

       

       그때였다.

       

       “어이, 거기 인간들.” 

       

       산등성이 너머로 블루베리 꼭지가 보이기 시작하더니, 이내 금안족과 수인족으로 구성된 일행이 나타났다.

       

       선두에 있는 건 전 마왕군 간부, 로즈마리였다.

       

       일행과 함께 주변을 둘러보고 온 로즈마리가 혀를 쯧쯧 차댔다.

       

       “니들이 발정 난 원숭이들이야? 나라를 세우네 마네 하는 중대사를 두고 눈 맞아서 짝자꿍 하지 말라고.”

       

       레너윌은 로즈마리가 나타난 것이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토츠펠은 콧김을 뿜으며 뒤로 물러났다.

       

       로즈마리 뒤에는 아카샤와 레니냐, 프레이 등이 있었다. 로즈마리가 그들을 가리키며 말했다.

       

       “우리는 얘네들 데리고 서쪽으로 갈 거야. 살리에르 백작가가 있는 곳을 새 나라의 수도로 삼을 거거든.”

       “왜 하필이면 그곳이지?”

       “엘프국에서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이제 엘프라면 진절머리가 나.”

       

       그녀가 만나 본 엘프 중에 믿을 놈 하나 없었다. 아마 큰 언니가 살아있었더라면 카우렐리아는 뒤통수를 쳤겠지.

       

       그래서 그전에 이곳으로 탈출했다. 로즈마리는 전범재판 따위 받기 싫었다. 재판을 받는 것이 패배를 인정하는 것과 똑같다고 생각하는 멍청이는 마왕군 전체를 통틀어서 요르문간드 한 명밖에 없을 것이다.

       

       “너희도 솔직히 여긴 별로잖아? 원자폭탄 맞은 덴 수도로 삼는 거 아니야.”

       

       로즈마리의 말에 프레이도 고개를 끄덕이며 거들었다.

       

       “아, 맞아! 풍수지리가 안 좋다고, 신령님이 그랬어!”

       “풍수지리 때문이 아니거든? 꼬맹이는 조용히 하고 있어!”

       “야! 꼬맹이 아니라고 했지!”

       

       로즈마리와 프레이는 또 투닥거리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틸레트 아카데미에 있었을 때부터 이런 식이었다.

       

       “그래서, 따라올 거야 말 거야?”

       “가야겠군.”

       

       레너윌은 지체하지 않고 수도에서 등을 돌렸다.

       

       레너윌과 로즈마리. 두 사람의 뒤로 수십 수백만에 달하는 피난민이 있다. 이들을 전부 먹여 살리려면 한시라도 빨리 경제기반이 안정된 땅에 도착해야 한다.

       

       뱀처럼 구불거리는 행렬이 석양을 따라 흘렀다.

       

       “작은 언니, 이거면 된 거야?”

       

       서쪽으로 향하는 길. 로즈마리는 아카샤와 한담을 주고받던 중 그런 말을 꺼냈다.

       

       “응.”

       

       아카샤가 고개를 끄덕였다.

       

       대정령 앨리스가 말했다. 아카샤 자신은 에테르의 복제품이라고. 

       

       마왕을 잡기 위해 심어 두었던 스파이. 이용당한 뒤 폐기처분 당할 존재. 그것이 싫었다. 두려웠다. 죽고 싶지 않았다.

       

       “나는, 아직 죽지 않았어. 마왕이 죽었는데도 여신 손에 삭제당하지 않았어.”

        

       그런데 마왕 사후에도 멀쩡히 살아있다.

       

       “테르가 대신 죽어서 그런 거야.”

       

       이제야 알게 되었다. 구치소 면회장에서 언니가 했던 말의 의미를.

       

       아카샤는 그 점이 사무치도록 아팠다.

       

       자신이 언니를 죽였다.

       

       그런 생각에, 피난길에 오른 날부터 지금까지 거의 자지 못했다. 인간으로 돌아온 이후로는 눈물로 밤을 새웠다.

       

       “내가 대신 죽었더라면…….”

       “아 작은 언니!”

       

       로즈마리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것 때문에 살리에르 영지로 가려는 거 아니야? 그 빨강 머리 여자애를 대신 돌봐주려고!”

       “……맞아.”

       

       살리에르 영지를 새 나라의 새 수도로 삼으려는 이유.

       

       그것에는 로테 살리에르가 또 다른 자신과 나눈 약속이 있었기에. 그것을 복제품인 자신이라도 대신 이행하기 위해.

       

       “그러면 말이지, 뒤로 가서 그 애랑 대화라도 해 보라고.”

       “아, 하지만….”

       

       아카샤는 로테에게 위협만 가했던 존재. 서먹했으면 서먹했지, 친한 사이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카샤는 에테르와 성격도 판박이다. 일단 친해지면 수더분하게 변하나, 그전까진 잔재미가 없다. 로테가 먼저 다가오지 않는 이상 대화에 엮일 일은 없으리라.

       

       아카샤가 우물쭈물해하며 머리를 긁었다. 로즈마리가 푹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나한테는 작은 언니가 있고, 작은 언니한테도 내가 있어. 하지만 저 빨강 머리는 어때? 아무것도 모르는 온실 속 화초로 자랐다고. 그러다가 지금 처음으로 친애하는 사람을 잃어버린 거 아니야? 충격이 이만저만 아닐걸?”

       

       예전 같았으면 하지도 않았을 말을 속사포처럼 내뱉는다. 철화의 저주가 사라짐과 동시에 인간적인 감정을 갖게 된 로즈마리였다.

       

       그리고 그건 아카샤도 마찬가지였다. 아카샤는 못내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에테르도 아닌데, 로테 살리에르라는 소녀가 힘들어하는 것을 보면 보듬어 주고 싶다는 생각부터 들었다.

       

       그것이 죄책감으로부터 파생된 감정이라는 걸, 아카샤는 오늘에 이르러서야 알았다. 자신이 에테르를 죽였으니, 로테 살리에르에게 빚을 남긴 셈이다. 그러니 죽은 언니를 대신하여 그녀를 달래주어야 한다.

        

       “…얘기는 이쯤 하자. 벌써 해 지고 있잖아.”

       

       로즈마리와 아카샤, 그리고 그들을 따라온 이들이 야영 준비를 시작했다.

       

       어느덧 땅거미가 뉘엿뉘엿 지고 있었다. 저무는 석양을 보니 아카샤는 쌍둥이 언니가 생각났다.

       

       “에테르.”

       

       부디, 저세상에선 행복하기를.

       

       

       **

       

       

       비슷한 시각, 상위 차원계.

       

       정령왕들이 소위 ‘백엔드’ 내지 ‘디버그 룸’이라 불리는 장소에서, 둔탁한 소리가 수십 번이고 울려 퍼졌다.

       

       “야, 이, 새끼야. 세상, 관리, 똑바로 못해?”

       “꺅! 꺄악! 여긴 어떻게 들어온 거야! 살려줘, 살려줘요! 아, 아프다고! 나도 사람이야, 사람…! 꺄아악─!!”

       

       아렌스 대륙의 최고 관리자.

       

       여신 르퀴네스가 복날 개 처맞듯 얻어터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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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Magic Academy’s Physicist

The Magic Academy’s Physicist

마도 아카데미의 물리학자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n an era when the power of Fire Magic was considered to have reached its limit, one girl began researching nuclear fu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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