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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허허, 정말 맛있게 잘 먹는구나. 허허헛.”

       

       마이어 씨는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그는 옆에 놓아 둔 가방에서 각종 과일, 쿠키나 사탕 같은 걸 봉투째로 꺼내 놓고 아르의 시선이 오래 머문 것들을 포착해 하나씩 주며 미소를 지었다.

       

       ‘…저거 근데 아무리 봐도 원래 본인이 먹으려고 쟁여 둔 간식들인 거 같은데.’

       

       물론 양이 넉넉하니까 주는 거겠지만, 본인이 먹는 것보다 아르가 먹는 걸 보는 게 더 좋은지 아까부터 아예 자신은 간식을 입에 대지도 않았다. 

       

       ‘우리 아르가 진짜 복스럽게 먹긴 하지.’

       

       그냥 먹는 걸 바라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말이 옛날에는 말도 안 되는 헛소리라고 생각했었다.

       

       ‘아르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저 작은 손으로 먹을 걸 소중하게 붙들고 야무지게 입에 넣어 행복한 표정으로 오물오물 씹어 먹는 모습을 본다면, 그 누구라도 이 말을 단박에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엔 내 눈에만 그렇게 보이는 건가 생각도 했고, 계약 후엔 혹시 영혼의 결속이 이루어진 상태라서 진짜로 아르가 먹으면 나도 배가 조금 불러지는 효과가 있는 건 아닐까 생각할 정도였지만.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보다 보니 비단 내 눈에만 씐 콩깍지가 아니라는 걸 확신할 수 있었다. 

       

       “쀼우.”

       “맛있게 먹었니? 이따가 또 출출하면 언제든지 부르려무나. 간식은 충분히 있단다.”

       

       아르가 배 부른 듯 자신의 말랑한 배 위에 손을 얹으며 마차의 등받이에 기대 앉자, 마이어 씨는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러고는 그제야 아르의 계약자인 내가 시야에 들어왔는지 황급히 나에게도 쿠키를 내밀었다. 

       

       “…레온 님도 드시겠습니까?”

       “아, 네.”

       

       딱 봐도 아르에게 주고 남은 쿠키를 내민 거였지만, 나는 별말 없이 받아 들었다. 

       

       그래도 주는 게 어디야. 공짠데.

       

       “크흠. 아르가 워낙 잘 먹어서 정신이 팔리는 바람에…. 신경을 못 써 드렸네요.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 마음 저도 이해합니다. 잘 먹을게요.”

       

       오독.

       

       손바닥보다 조금 작은 크기의 쿠키를 한 입 베어 물자, 습기 먹지 않은 바삭한 과자 부분과 함께 꽤 큼지막한 다크 초콜릿 칩이 씹혔다. 

       

       ‘오. 이거 맛있는데?’

       

       겉부분은 밀도 있는 바삭함이, 안쪽은 마치 스펀지처럼 빈 공간이 조금씩 가미되어 입에서 녹는 부드러움이 있었다. 

       

       거기에 꽤나 질이 좋은 것 같은 다크 초콜릿에서는 씹을 때마다 깊은 카카오 향이 나 입 안을 가득 채웠다.

       

       ‘꽤 고급 쿠키네.’

       

       지금까지 먹어 본 쿠키, 심지어 빙의 전에 한국에서 먹어 봤던 쿠키를 전부 포함해도 이것보다 맛있는 쿠키는 없었던 것 같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

       

       물론 내가 한국에서 그렇게까지 고급 쿠키를 사 먹어 본 적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 혀가 다 비슷하다고 딱 먹어 보면 대충 감이 오지 않는가.

       

       이건 기존에 먹던 쿠키와는 다른 진짜 고급 수제 쿠키가 분명했다. 

       

       ‘아르가 유독 맛있게 먹던 이유가 있었어.’

       

       평소에도 웬만한 간식은 다 맛있게 잘 먹긴 하지만, 이 쿠키를 먹을 때의 눈빛은 좀 다르다고 생각했었다. 

       

       첫 입을 먹을 때 눈망울이 커지면서 잠깐 동안 감동 받은 표정을 지은 것도 그렇고, 챱챱 씹어 먹는 속도가 미묘하게 빨라진 것도 그렇고. 

       

       “쀼우우.”

       

       게다가 그렇게 맛있게 해치우고 나서도 마지막까지 앞발에 묻은 부스러기를 슥 핥아 먹은 걸 보면, 아르도 이 쿠키가 보통 쿠키가 아니라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게 분명했다. 

       

       ‘이 아저씨, 간식에 좀 진심이네.’

       

       나는 슬쩍 시선을 돌려 마이어 씨가 간식을 꺼낸 가방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딱 봐도 아르에게 준 것 말고도 다양한 간식들이 종류별로 들어 있는 것 같았다. 

       

       내 시선을 의식했는지, 마이어 씨가 입을 열었다. 

       

       “허허, 간식이 좀 많지요? 사실 제가 납품하는 물건의 절반 정도가 식자재와 간식입니다. 원래 그중 아주 일부만 제 몫으로 남기는데, 간식 쪽은 이번에 특히 남는 물량이 좀 있어 많이 챙기게 되었습니다.”

       “아하, 식자재랑 간식…. 그래서 납품 기한을 지키려고 더 바쁘게 움직이고 계신 거군요.”

       

       식자재는 일반 소모품이나 건축 자재, 제작 재료 등의 물품에 비해 상품의 신선도가 거래에 미치는 영향이 매우 큰 항목이다. 

       

       그러니 납품 일정이 많으면 동선을 타이트하게 잡을 수밖에 없고, 한 군데에서 잘못 일정이 밀리기 시작하면 모든 식자재 상태에 비상이 걸릴 수 있기 때문에 용병을 가릴 처지도 되지 않는 것. 

       

       ‘그걸 눈치채고 일부러 농땡이를 부리거나 진상을 피우는 용병들도 있었겠지.’

       

       짬 좀 있다 싶은 용병은 의뢰 내용과 기한, 들어온 날짜만 봐도 대충 각이 보일 거고, 자기가 갑이라는 걸 확신하자마자 태도가 바뀌었을 것이다. 

       

       ‘고생 좀 하셨겠구만.’

       

       그런 일을 겪고 아르를 보며 마음을 달래느라 저렇게 자기 먹을 것까지 퍼 주시고…. 좀 짠하네.

       

       “허허, 맞습니다. 그래도 로워든에서 신선도가 중요한 물품들은 전부 납품을 끝내 한숨 덜었습니다. 지금 가는 히파르는 신선도 문제보다는 현지 재고가 다 떨어져 가는 물품을 공급하러 가는 것이라 조금 서두르는 것이고요. 아시다시피 히파르는 관광이나 휴양 쪽이 주된 수요이지 않습니까.”

       “그렇죠. 쉬면서 돈 쓰러 갔는데 살 게 없으면 관광객도 기분 상하고, 판매자 쪽도 당장 돈 못 버는 건 물론이고 이미지 타격까지도 올 수있는 문제고…. 여튼 이러나 저러나 납품 쪽은 항상 바쁘겠네요.”

       

       마이어 씨는 고충을 알아 줘서 고맙다는 듯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습니다. 특히 제가 맡은 물품 중에 이런 고급 간식들도 있어서…. 재고가 다 떨어지면 판매자들 측에서는 굉장히 곤란해하는 경우가 많지요.”

       

       마이어 씨는 방금 내가 먹은 쿠키의 빈 봉지를 가리켰다. 

       

       “이 쿠키도 지금 제가 따로 챙긴 건 못생기게 나온, 즉 상품으로 팔 수 없는 것들을 모아 놓은 겁니다. 원래는 이런 느낌이지요.”

       

       그리고 다른 가방을 열더니, 작은 박스에 예쁘게 싸여 있는 쿠키 세트 하나를 열어 보여 주었다. 

       

       “오…. 확실히 포장부터 다르니까 달라 보이긴 하네요. 쿠키 모양도 그렇고….”

       

       형형색색의 포장지 안에 들어 있는 쿠키는 별 모양, 하트 모양 등 관광객이 좋아할 만한 디자인으로 만들어져 있었다. 

       

       반면 아르와 내가 방금 먹었던 쿠키는 내용물은 같지만 모양이 불규칙하고 울퉁불퉁했었고. 

       

       “이렇게 제과하는 곳에서 자투리 반죽으로 대충 구운 것들, 그리고 굽다가 실패한 것들을 제가 좀 싸게 묶어서 구입하곤 하는데, 이번엔 그렇게 남는 양이 많아서 이렇게 바리바리 싸 들고 오게 된 겁니다.”

       “오호…. 맛이 똑같은데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면 굉장히 좋긴 하겠네요.”

       “그렇습니다. 그래서 제가 살이 이렇게…. 크흠. 여튼 이 쿠키도 원래는 요런 세트 하나에 3실버입니다.”

       

       그 말을 들은 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 작은 쿠키 세트 하나가 3실버라고요?”

       “쀼우?!”

       

       반쯤 눈을 감은 채 기분 좋게 꼬리로 푹신한 바닥을 두드리고 있던 아르도 3실버라는 말에 눈을 번쩍 떴다. 

       

       “아니, 그럼 열 개 들었으니 낱개로 판다고 쳤을 때도 하나에 30쿠퍼는 한다는 소린데….”

       

       무슨 손바닥만 한 쿠키가 하나에 30쿠퍼야?

       

       ‘30쿠퍼면 야시장에서 찹쌀볼 5개를 사고도 10쿠퍼가 남고, 케첩 바른 대왕 소시지는 두 개를 살 수 있고, 옐로베리 빙수는 중간 크기 하나를 살 수 있는 돈인데….’

       

       옆을 내려다보니 아르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쪼그만 손을 쥐었다 폈다 하며 금방 셈을 해 보더니 입을 떡 벌렸다.

       

       ‘하긴 아르도 야시장에서 직접 간식들을 계산했었으니….’

       

       대충 이게 얼마나 비싼 건지 알 법도 하다.

       

       “어쩐지 보통 쿠키 맛이 아니라고 생각하긴 했어요. 제가 먹어 본 쿠키 중에서 제일 맛있더라고요.”

       “쀼웃! 쀼!”

       

       아르도 야시장에서 사 먹었던 과자보다 훨씬 맛있었다는 듯 고개를 열심히 끄덕였다.

       

       “그런 걸 이렇게 저희한테 아무렇지 않게 주시다니….”

       “쀼우!”

       

       아르는 ‘이렇게 비싼 걸 아무렇지 않게 받아 먹어 버렸다’고 생각하는 듯 조금 시무룩한 표정으로 자기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허허, 괜찮습니다. 정확한 가격을 말씀드릴 순 없지만 전 그것보다 훨씬 싼 가격에 받아 왔으니까요. 그런데 아르는 왜 시무룩해 있니?”

       “쀼우.”

       “아무래도 비싼 걸 너무 공짜로 받아 먹어서 미안해하는 것 같아요.”

       “허헛! 아이고, 요 귀여운 녀석이 마음씨도 착하군요. 아르야, 괜찮단다. 아저씨가 주고 싶어서 주는 거니까 전혀 신경쓰지 말고 마음껏 먹어도 돼.”

       “쀼우?”

       

       아르가 마이어 씨를 조심스레 올려다 보자, 마이어 씨의 입가에 절로 미소가 피어났다. 

       마이어 씨는 아르의 머리를 가볍게 토닥이며 말했다. 

       

       “너만 할 때는 어른이 맛있는 걸 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먹으면 되는 거란다.”

       “쀼우…!”

       

       그 말에 아르의 표정에 드리웠던 그늘이 점점 사라졌다. 

       

       “허이고, 귀여워라. 자, 여기 쿠키 하나 더 먹으련?”

       “쀼웃!”

       

       마이어 씨는 견본으로 꺼냈던 진짜 3실버짜리 쿠키 상자에 들어 있는 별 모양 쿠키를 까서 내밀었다. 

       

       아르는 혹여나 쿠키가 부서질까 조심스럽게 받아 들더니, 마이어 씨를 향해 고개를 꾸벅 숙였다. 

       

       “쀼웃!”

       “허허헛. 그래, 그래. 맛있게 먹으려무나.”

       

       마이어 씨는 거의 입이 귀에 걸린 채 고개를 끄덕였다. 

       

       “뀨우.”

       

       아르가 별 모양 쿠키를 행복한 표정으로 한 귀퉁이씩 베어 먹는 모습을 바라보던 마이어 씨가 입을 열었다. 

       

       “아직 어린 녀석이 돈의 가치도 알고, 참 기특하네요.”

       “하하, 어제 야시장에서 같이 다니면서 먹을 걸 많이 샀었거든요. 그때 제가 손이 부족해서 돈 계산을 맡겼더니…. 얘가 똘똘해서 금방 깨우친 모양이에요.”

       “허어, 그것 참 대단하군요. 야시장이라…. 그렘 마을의 야시장엔 싸고 맛있는 게 참 많지요. 저도 어렸을 땐 그렘 마을 야시장이 열릴 때마다 용돈을 받아 가서 신나게 돌아다니며 간식을 사 먹곤 했었습니다.”

       

       그 말에 내가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 그렘 마을 출신이셨군요?”

       “예. 참 추억이 많고, 받은 것도 많은 마을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인 일을 오래 하면서도 근처에 오면 꼭 들르게 되더군요.”

       

       마이어 씨가 추억에 잠긴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 

       

        “제 입으로 말하기는 뭣하지만, 이번에도 야시장이 열렸기에 이벤트 상품으로 보태라고 온천 티켓 두 개를 기부하기도 했습니다. 예전에 받아 놨던 건데 저는 쓸 시간도 없고 해서…. 레온 님? 아르야? 왜 그런 눈으로….”

       “쀼우…!”

       

       나도, 쿠키를 먹던 아르도 그 말에 입을 떡 벌렸다. 

       

       “마이어 씨였어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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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Picked Up a Hatchl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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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츨링을 주웠다
Status: Ongoing Author:
But this guy is just too cu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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