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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안드레아는 반쯤 감긴 눈으로 고개를 올려다봤다. 마담의 얼굴을 확인하곤 순간적으로 움찔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회, 회장님…!”

         

       그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안드레아가 평소에 어떤 취급을 받고 있는지는 알고 있다. 의상 제작에 있어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거나, 시간을 넉넉히 주지 않고 그 안에 마감하라는 등. 여러 불공정한 요구를 받았다.

         

       의류점, 프리다는 소위 말하는 좆소… 아니, 블랙 기업이었던 거다.

         

       마담이 말했다.

         

       “지금 제작하고 있는 의상은 어떻게 되어가고 있지?”

       “곧 마무리로 들어가서 내일까진 완성될 거 같습니다…….”

       “그럼 그거 잠시 미뤄두고, 공녀님의 의상을 제작해라.”

         

       안드레아가 움츠러들며 조심스레 마담을 올려봤다.

         

       “바로 공녀님 의상 제작이요…?”

         

       마담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공녀님이 황실 파티에 입고 가실 드레스 제작이다. 기한은 한 달. 여기 수치도 적혀 있고 러프와 도면이 있으니 이걸 토대로 제작해.”

         

       힐끔. 나는 눈동자를 굴려 도면을 살펴봤다. 의상 제작에 있어서 잘 아는 건 없지만, 내가 보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이 세계에는 제작에 큰 도움을 주는 특별한 기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한 달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제작하는 건 불가능할 터.

         

       ‘현대에서 만드는 웨딩드레스도 4주에서 12주가 걸리는데…….’

         

       의상 제작을 끝낸지 얼마 안 지나 바로 저런 화려한 드레스를 만든다? 안드레아가 철인이 아니고서야 불가능하다.

         

       “그… 도면을 보니 4주 안에는 불가능할 것 같아요…….”

       “그럼 공녀님이 입으실 드레스를 미루자는 거야? 황실 파티가 열리는 건 한 달 뒤인데?”

         

       안드레아는 “아, 으.”거리면서 옅은 신음을 냈다.

         

       “불가능해도 되게 만들어.”

       “네에…….”

         

       추욱 늘어진 상태로 도면을 확인하는 안드레아. 그나저나 불가능해도 되게 만들라니. 진짜 블랙 기업이 따로 없다.

         

       부채로 얼굴 대부분이 가려진 프란체도 불쾌한 기분을 숨길 수 없었다. 눈빛과 눈살에서 대놓고 느껴졌으니.

         

       카자르가 속삭였다.

         

       “여기 대체 뭐예요?”

       “착취의 현장.”

       “세이렐 백작령에서도 이러진 않았는데.”

         

       오만상을 구기며 질색하는 카자르. 세이렐 백작령도 만만치 않았지만, 프리다의 현장은 더했다.

         

       프란체가 말했다.

         

       “시작은 언제 하니?”

       “고, 곧 시작할 거예요…….”

       “내가 그때까지 기다려야 하니?”

       “죄, 죄송해요. 조금만 시간을…….”

         

       눈을 얕게 뜨고 마담과 안드레아를 돌려 보는 프란체. 아니, 아무리 마담 앞이라도 그렇지. 그렇게까지 악역을 연기할 필요는 없다고.

         

       마담은 손바닥을 비비며 프란체에게 사죄를 구했다.

         

       “죄송합니다, 공녀님. 어떻게든 기한 내에 완성 시킬 수 있으니 염려 마시길…….”

         

       촤락! 프란체의 부채가 접혔다가 길게 퍼졌다.

         

       “문제없어. 제작 과정을 조금만 지켜보고 돌아가지.”

         

       그렇게 안드레아가 드레스에 들어갈 재료를 가져오고, 곧장 제작을 시작했다. 방금까지만 해도 탁한 빛을 유지하던 눈빛이 반짝였다. 의상 제작에 있어서는 항상 진심인 안드레아.

         

       그런 그의 일자리가 이런 블랙 기업 형태의 프리다라니…….

         

       ‘빨리 프란체 코퍼레이션으로 불러들여야겠군.’

         

       안드레아의 의상 제작 과정은 놀라웠다. 빠르고 화려한 바느질. 안드레아가 움직이는 바느질은 화가의 붓과 같았고, 오케스트라의 지휘봉과도 같았다. 그가 사용하지 않는 기술은 없었다.

         

       ‘기술, 가정 시간 때 배웠던 재봉은 진짜 그냥 애들 놀이 수준이었구나.’

         

       문외한인 내가 봐도 대단한데 현직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떨까. 괜히 천금의 재능이라 불리는 게 아니다.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저 사람이 저희 의복 사업을 성공시켜줄 사람이에요.”

       “그래 보이네. 겉보기에도 대단한 게 느껴져.”

         

       황홀한 프란체의 눈빛. 마치 이런 광경은 처음 본다는 듯 안드레아에게서 눈을 떼지 못했다.

         

       마담이 말했다.

         

       “아직 제작 초입이라 보여드릴 게 그다지 없네요…….”

       “상관없네. 단순히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궁금했을 뿐이니까.”

       “하하, 하. 그거 다행입니다…….”

         

       살살 눈치를 보는 마담. 혹시라도 이 착취의 현장이 공녀의 마음에 들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모습이었다.

         

       이번엔 카자르가 속삭였다.

         

       “저 사람 대단하네요. 제 드레스도 저 사람이 만들어줬으면 좋겠는데.”

       “나중에 만들어 줄 테니 걱정하지 마.”

       “정말요? 저 그럼 진짜 기대하고 있을게요?”

       “그래.”

         

       얼굴에 번진 미소를 숨길 생각도 없는 카자르를 뒤로하고, 나는 안드레아의 의상 제작 과정을 지켜봤다.

         

       그렇게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홀린 듯이 안드레아의 제작 과정을 지켜보던 나는 고개를 흔들며 정신을 차렸다. 나는 카자르에게 조용히 물었다.

         

       “여기 위치를 기억하는 마법도 있나?”

       “네. 이미 기록해뒀어요. 나중에 찾아올 때는 마력의 흐름을 따라서 오면 될 거예요.”

         

       뭐야, 그 네비게이션 같은 마법은. 그냥 혹시나 해서 물어본 건데 진짜 있을 줄은 몰랐네. 뭐, 이런 일을 시키려고 카자르를 영입한 거지만…….

         

       “그거 다행이네. 사실 여기 위치가 가물가물했거든.”

       “그럴 거 같았어요. 길이 좀 복잡했으니까. 그래서 미리 마법을 사용해뒀죠.”

         

       크, 너 진짜 유능하구나. 프란체 코퍼레이션의 회장은 프란체가 하고, 나는 대표 이사할 테니 너는 본부장해라.

         

       목적도 이뤘겠다, 나는 프란체에게 속삭였다.

         

       “공녀님. 목적은 이뤄졌으니 이제 돌아가도 될 듯합니다.”

       “그래. 돌아가면 자세한 계획은 설명해주렴.”

       “예.”

         

       프란체가 마담에게 말했다.

         

       “인제 그만 봐도 좋을 것 같군. 내 의상을 이런 장인이 만들어줘서 다행이야.”

       “그렇지요? 저희 프리다가 자랑하는 장인입니다. 모든 주문 제작 드레스는 이 녀석에게서 만들어지죠.”

         

       그걸 왜 네 자랑인 것처럼 얘기해. 그냥 독점 시장에서 노동자들한테 횡포를 부리고 있는 거면서.

         

       “그럼 돌아가지.”

       “네!”

         

       돌아가자는 말에 얼굴에 화색이 돈 마담. 어지간히도 이 광경을 보여주기 싫었나 보다.

         

       그렇게 나무로 이루어진 착취의 현장을 나왔다. 우리는 황도로 돌아가는 마차에 탑승했다.

         

       마차에서 마담이 조심스레 물었다.

         

       “드레스 제작 과정을 지켜보신 소감은 어떠셨나요…?”

       “괜찮네. 저런 기술을 가진 의류점이니 제국 최대의 의류점이 될 수 있었겠지.”

       “그, 그렇죠…? 하, 하하.”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마담. 현장에 대해서 트집이라도 잡힐까 걱정했나 보다. 문득 프란체가 물었다.

         

       “그런데, 저자들에게 제대로 된 돈은 주고 있는 건가? 일 강도가 심상치 않던데.”

       “네, 네?”

       “제대로 된 보수를 지급하고 있냐는 소리야.”

         

       마담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성과 보수까지 착실하게 지급한답니다!”

         

       당연히 거짓말이다. 내 기억상으론 저 노동자들은 기본 보수도 못 받으면서 일하고 있다.

         

       차라리 다른 일이 낫지 않나, 라는 생각도 해봤지만 애초에 저들을 고용해줄 일자리가 없어서 저곳에 간 것이다.

         

       안드레아 같은 경우는 그냥 옷을 만드는 걸 좋아했던 거고.

         

       프란체가 말했다.

         

       “아무튼. 좋은 구경시켜줘서 고맙네. 이번 의상은 기대하고 있지.”

       “아유, 물론이지요! 공녀님만을 위한 특별한 드레스를 준비하겠습니다!”

       “그래.”

         

       프란체는 무심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카자르 또한 마찬가지였다.

         

       ‘진행을 앞당기는 편이 좋겠군.’

         

       괜히 씁쓸한 마음에 창밖을 바라봤다. 어둡고 칙칙한 현장의 분위기와는 달리, 하늘은 푸르렀고 날씨는 화창했다.

         

         

       * * *

         

         

       마담과 헤어지고, 공작가의 마차를 타고 황도를 떠나 카자르의 집으로 들어왔다.

         

       “…근데 왜 제 집에서 회의를 해요?”

       “너를 공작저로 들여보낼 순 없잖아.”

       “…….”

         

       왠지 모를 불만이 있는 카자르가 차를 준비했다. 나와 프란체는 그녀가 항상 마법 연구를 하던 테이블에 앉아 여유롭게 그녀를 기다렸다.

         

       “여기요…….”

       “고맙군.”

       “향이 좋네.”

         

       호로록, 프란체가 새끼손가락을 들고 차를 마셨다. 오, 저건 역사와 게임에서만 보던 레이디의 예절이군.

         

       카자르가 손을 테이블에 올리며 몸을 지탱했다.

         

       “그래서, 계획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저 사람들을 우리 의류점의 직원들로 채용할 거야.”

       “감당 가능할까요? 인원이 꽤 많아 보이던데.”

       “문제없어. 이미 그쪽에 관해선 얘기해둔 게 있으니까.”

         

       프란체가 씩 웃었다.

         

       “그때 셀다스에게 말했던 건이지?”

       “맞아요. 지금쯤이면 일을 전부 처리하고도 남았을 겁니다.”

       “그럼 남은 건 우리가 움직이는 것뿐이네.”

         

       일단 셀다스와 연락해 그가 처리한 정보를 받아야 한다. 그들을 무작정 탈출시킨다 해도 받아줄 곳이 없으니까.

         

       건물이 세워지는 시간도 걸리고…….

         

       ‘확실히 창업은 생각할 게 많군.’

         

       내가 생각에 잠긴 채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고 있자 카자르가 물었다.

         

       “그래서, 일은 어떻게 진행하실 거예요?”

       “일단 그들을 수용할 땅을 매입하는 게 먼저야.”

         

       프란체가 손으로 턱을 짚었다.

         

       “공작가에서 배정된 자본을 쓸 때가 되었구나.”

       “얼마나 있습니까?”

       “돈은 충분히 모여있어. 사업을 하는 데 문제는 없을 거야.”

         

       나를 구매하는 데 5억을 쓰고도 아직 남아있다는 건가. 데카르트 공작가가 운영하는 사업은 대체 얼마나 큰 거야?

         

       “그럼 일단 셀다스에게 연락해서 땅을 매입한 다음에 그들을 탈출시키는 게 먼저겠군요.”

         

       프란체가 말했다.

         

       “매입과 건축은 셀다스에게 맡겨두고 먼저 거기 노동자들을 탈출시키는 건 어때?”

         

       오, 괜찮은 계획이군. 프란체는 씁쓸하게 말을 이었다.

         

       “거기 현장이 말이 아니더라고. 최대한 그 사람들을 빨리 구해주고 싶구나.”

       “그렇군요. 그럼 오늘 밤에 당장 그들을 탈출시키겠습니다.”

         

       카자르가 “자, 잠깐만요!” 하면서 만류했다.

         

       “거기 사람들 숫자 봤어요? 일단 준비시켜야 할 마차도 준비해야 하고, 그 사람들이 머물 숙소도 찾아야 한다고요?”

         

       확실히. 거기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숫자는 100명은 가까이 된다. 마차는 상단의 마차를 이용하면 될 거고, 거주지는…….

         

       “거주지는 걱정하지 말렴. 이미 저들이 모두 들어갈 건물은 마련된 상태일 테니까.”

       “아니, 돈이 그렇게 많으세요…?”

       “공작님께서 하사해주신 돈이 많은 것도 있지만, 지금까지 쌓아온 보석과 장신구들이 좀 있거든. 가출을 위해 만들어뒀던 비자금 같은 거란다.”

         

       그런 계획도 세웠었어? 전에 공작가를 나가고 싶다더니, 진짜 간절했었나 보군.

         

       “그럼 셀다스에게 필요한 것들을 전해두겠습니다. 암흑 길드를 운영 중이니 웬만한 건 다 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마차를 운행하는 마부들도 입이 무거울 거고요.”

         

       그녀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걸로 작전은 다 세웠다. 나는 프란체를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그리고, 이번 작전은 그들에게 공녀님을 각인시켜야 합니다.”

       “그게 무슨 소리니?”

       “저와 카자르가 공장을 습격할 때, 공녀님도 같이 가셔서 노동자들에게 얼굴을 비추셔야 합니다.”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는데?”

         

       나는 입꼬리를 올리며 대답했다.

         

       “새로운 회장의 얼굴을 각인시키는 거죠. ‘내가 당신들을 구했다. 우리 쪽에 오면 훨씬 좋은 보수를 줄 거고, 이보다 더 좋은 환경에서 일하게 될 거다.’ 이런 식으로요.”

         

       프란체가 “과연.” 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잘 알겠어. 그래서, 습격은 언제 진행하니?”

       “내일 새벽입니다.”

       “내일 새벽? 내가 최대한 빨리 구해주자고 하긴 했지만,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

         

       카자르도 의문을 표했다.

         

       “저희가 다녀간 직후에 습격을 당하면 의심하지 않을까요? 안 그래도 그 사람들을 채용하고 결과물이 나오면 의심할 텐데…….”

         

       그건 이미 답을 생각해둔 문제다.

         

       “걱정 마. 프리다가 우리에게 트집을 잡기도 전에 완벽하게 무너질 테니까.”

         

       내 말에 프란체와 카자르가 갸웃거렸다. 나는 그걸 보며 피식 웃었다.

         

       이미 독점을 유지하고 있는 프랜차이즈가 있는 이상 굳이 경쟁할 필요는 없지.

         

       “프란체 코퍼레이션이 프리다라는 상단을 완전히 흡수할 거야.”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감사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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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I Raised the Villainess and Fled

악역 영애를 키우고 도망쳤다
Score 8.6
Status: Ongoing Author:
I made a villainess destined for death into the most powerful person in the empire and then fl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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