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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의식이 점멸했다. 다시 눈을 뜬 순간, 꽤 낯익은 정경이 펼쳐졌다.

       

       고풍스러운 건물들.

       단정한 교복을 입고 돌아다니는 학생들.

       

       [남은 시간 : 42시간 00분 00초]

       

       이곳은 황립 아카데미였다.

       

       

       *****

       

       

       “……단순 견학이라고 하셨습니까?”

       

       황립 아카데미 총장, 마누엘이 맞은편에 앉은 이들을 보며 떨떠름한 얼굴을 했다.

       

       검성 키엘.

       제국 최강의 기사가 의자에 앉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검성뿐만이 아니다. 그 옆에는 제국의 세 번째 대마법사, 올리비아가 앉아 있었다.

       

       학생 시절에도 마법 응용력 하나만큼은 교수들을 뛰어넘었던 그녀는, 이제 단순히 졸업생이라고 부를 수 없는 위치까지 올라가 있었다.

       

       ‘9년?’

       

       10년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동안, 밑바닥에서 정점까지 올라간 압도적인 재능.

       그녀는 이제 아카데미의 전설이 되었다.

       

       “네. 단순 견학이에요. 마누엘 총장님.”

       

       올리비아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럴 분들이 아니시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원칙이라는 것이 있기 때문에 잠시 양해를 구하겠습니다.”

       

       마누엘이 서류 두 장을 꺼냈다.

       재학생들과 영리적 목적으로 접촉하지 않겠다는 내용의 서약서였다.

       

       “인재들이 그렇게 많이 빠져나가나?”

       “하하하…….”

       

       키엘의 질문에 마누엘이 멋쩍은 듯 웃었다. 

       

       “세상의 추세가 그렇지요. 명예보다 돈이 중요한 시대가 왔습니다.”

       

       차라리 제국의 다른 귀족들에게 스카우트되면 다행이다.

       

       국경을 넘어가는게 문제지.

       

       동부 연합은 다른건 몰라도 자본력 하나만큼은 탁월했다. 중계 무역에서 나오는 엄청난 수익은 아무리 제국이라도 무시할 수 없을 정도였다.

       

       “자, 서명 확인했습니다. 혹시 따로 원하시는게 있으십니까? 안내라던지 말입니다.”

       “괜찮아요. 지리는 다 아니까요.”

       “알겠습니다. 그럼…….”

       

       마누엘 총장이 고개를 숙인 다음 응접실 문을 닫고 나갔다. 문이 닫히기 무섭게 올리비아가 키엘을 쳐다봤다.

       

       “아카데미?”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이번만큼은 절대 양보해주지 않더군.”

       “아, 그래?”

       

       올리비아는 대충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악마 퇴치 같은 이벤트를 놓칠리가 없지.’

       

       지난 4년간, 몰살회차의 올리비아는 미친듯이 성장했다.

       

       [올리비아]

       레벨 : 97

       직업 : 혹한과 뇌전의 대마법사.

       칭호 : 모두에게 신뢰받는 자, 아카데미 수석 졸업자, 차기 금탑주.

       

       대마법사의 위(位)에 올랐고, 무수한 사람들의 호감을 얻어냈다. 

       

       물론 그것들이 몰살의 포석이라는건 당사자 외에는 누구도 알 수 없을 것이다.

       

       ‘앞으로 1년 반인가…….’

       

       신경 쓸 일은 아니다.

       어차피 막을 수도 없다.

       몰살은 이미 기정 사실이니까.

       

       올리비아는 창 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파릇파릇한 학생들이 담소를 나누며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제국력 996년부터는 본격적으로 마(魔)와 관련된 스토리가 시작된다.

       

       마족, 마계, 악마.

       

       그 시작점이 바로 황립 아카데미다.

       

       “올리비아.”

       

       올리비아가 고개를 돌렸다.

       

       “왜.”

       

       키엘이 기침으로 막힌 목을 풀어댔다.

       그리고는 답지않게 어색한 목소리로 말했다.

       

       “크흠, 흠. 반갑다. 이번에는 2년 만에 만나는구나.”

       “나는 하루 밖에 안 됐다니까 그러네.”

       “그래도.”

       

       키엘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2년은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친구를 잊기에는 짧은 시간이었다.

       

       “아무튼, 그러면 이번에는 이틀 동안 머무는건가?”

       “이틀 살짝 안 되게.”

       “그러면 할 수 있는 일이 많겠군.”

       

       키엘이 말했다.

       

       “근데 그거 아나? 오늘부터 내 1년이 네 하루와 같아진다.”

       “그건 또 뭔소리야.”

       “말 그대로다. 오늘은 너와 이틀 동안 만날 수 있고, 4년 뒤에는 나흘 동안 만날 수 있다. 그리고 8년이 지나면 여드레 동안 만날 수 있지.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렇게 딱딱 떨어지더군. 그래서 외우기도 쉬웠다.”

       

       키엘이 손가락을 접어가며 숫자를 셌다.

       

       “16년, 32년……. 내가 백 살까지 살 것 같지는 않으니……. 그러면 앞으로 네 번, 60일 남았다.”

       “…….”

       “표정이 왜 그러지? 혹시 계산이 틀렸나?”

       

       머리를 망치로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키엘의 표정이 해맑아서 더 그랬다.

       그 때문에 칼같이 대답하지 못했다.

       

       “……아니. 맞게 했어.”

       

       거짓말이다.

       기억속에 들어오는 건 오늘로 마지막이다.

       2년 뒤, 키엘은 죽는다.

       그리고 4년 뒤, 세계는 멸망한다.

       

       “……그러게. 네 말대로 60일이나 남았네.”

       

       속이 쓰렸다. 

       이 감정은 도대체 뭘까. 죄책감? 양심의 가책?

       

       올리비아는 후, 하고 숨을 내쉰 다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가만히 앉아 있으면 도무지 이 답답함을 해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좀 걷자.”

       

       걸으면 좀 괜찮아지겠지.

       

       

       

       *****

       

       

       

       ‘걸으니까 좀 낫네.’

       

       올리비아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키엘은 몇 발짝 뒤에 떨어져서 따라 걸었다. 점심 시간인데도 산책로에는 학생들이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명도.

       

       그러고 보니 총장이 ‘학생들에게 두 분이 찾아오셨다고 가볍게 언질 정도는 해도 되겠지요?’ 라고 하기에 허락했는데.

       

       무슨 방송을 한 것도 아니고, 상식적으로 한 명도 없는게 말이 되나?

       

       그 순간 산책로 한 가운데에 있던 확성구에서 엄근진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아아. 친애하는 학생 여러분. 총장입니다. 오늘 검성 키엘님과 대마법사 올리비아님이 아카데미에 방문해주셨습니다. 여러분은 ‘평소처럼’ 올바른 행실을 유지해주시기 바랍니다.

       – 걸을 때도 ‘평소처럼’ 제식을 맞춰 이동하시고, ‘항상 하던 것처럼’ 예의를 갖춰 주시기 바랍니다. 본 총장은 여러분들을 믿습니다.

       

       “…….”

       

       응?

       

       – 초, 총장님? 정말 이대로 읽습니까? 벌점 20점이면 퇴학…….

       – 확성구 켜졌다. 이것아!

       

       삐이이이익.

       

       – 아, 안녕하십니까. 총학생회장 이안입니다. 현재 시각 12시 29분. 모든 학우 여러분들은 ‘평소 하시던 대로’ 수업시작 30분 전까지 강의실에 입실해주시기 바랍니다. 이상입니다.

       – 바, 반드시 30분 전까지 입실해주시기 바랍니다! 강의실 외부에 돌아다니는 학생을 식별 시 벌점 20점을 부여하겠습니다!

       – 늦으면 퇴학입니다. 퇴하아아악!

       

       아아아.

       

       가슴이……. 가슴이…….

       

       다시 존나게 답답해진다.

       

       “히이이익! 퇴학 당하기 싫으면 빨리 달려! 수업 30분 전까지 1분 남았다 1분!”

       “젠장할! 빌어먹을 총장 새끼! 노망난 늙은이 새끼이이이!”

       “왜 높으신 분들은 항상 빌어처먹을 점심 시간에 오는건데에에엑!”

       

       창문 너머에서 학생들의 무수한 비명 소리가 들린다. 개중에는 점심에 입도 대지 못한 학생들도 있었다.

       

       그 끔찍한 광경을 목격한 올리비아가 턱, 하고 얼굴을 감쌌다.

       

       ‘……그냥 악마한테 따먹히게 내버려둘까?’

       

       무고한 학생들 말고.

       

       총장 새끼 한 명만.

       

       어차피 곧 자연사할 사람인데 괜찮지 않을까?

       

       올리비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퀘스트창을 확인했다.

       

       [황실 아카데미 – 악마 소환 의식을 막아라]

       – 내용 : 아카데미 내부에 잠입한 악마 숭배자들을 처치하고, 악마 소환 의식을 막자.

       – 보상 : 황제의 선물, 빛의 교단 제국 중앙 교구의 성물.

       

       내일 이곳에서는 악마가 소환된다.

       

       소환되는 악마의 이름은 벨페고르.

       

       그리고 놈은 강령술에 특화되어 있다.

       

       당연히 아카데미에는 길 잃은 영혼 따위 없기 때문에 놈의 능력은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한다.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악마 숭배자들은 벨페고르를 소환했다. 능력에 제약이 생겼기에, 역설적으로 그만큼 강한 악마를 소환할 수 있었던 것이다.

       

       만약 아카데미에서도 제대로 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악마를 소환했다면, 벨페고르보다 등급이 두 단계는 낮아졌을 것이다.

       

       아무튼, 이 ‘악마 소환’ 이벤트에서는 두 가지 선택지가 주어진다.

       

       첫 번째는 퀘스트에 적혀있는 대로 악마 숭배자들을 처치하는 것. 그렇게 하면 벨페고르든, 거시기 뭐시기든 소환되지 않는다.

       

       그리고 두 번째는.

       

       [악마를 퇴치하라 – HIDDEN]

       – 내용 : 악마 숭배자들이 결국 악마 소환에 성공했다. 악마를 처치하자.

       – 보상 : 악마 퇴치 시 동행한 파티원 1인의 호감도 20만큼 증가.

       

       악마가 소환될 때까지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다.

       

       각각 장단점이 있다. 첫 번째 방법대로 하면 황제와 대주교에게 칭찬도 받고, 보상도 받고, 이것저것 다 뜯어낼 수 있다. 

       

       기본적으로 제국과 신성왕국은 마(魔)를 주적으로 삼는 국가이기 때문에, 보상을 짜게 줄 수가 없다. 그건 자기 체면을 깎아먹는 짓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번째 방법대로 하면 그 모든 보상 대신, 함께 싸운 NPC 1인의 호감도가 20만큼 올라간다.

       

       그러니까…….

       

       “왜 그런 눈으로 쳐다보지?”

       “난 쳐다도 못 보냐?”

       “그건 아니다만…….”

       

       사실, 몰살 루트라면 이건 고민할 필요 없이 2번이다. 황제나 대주교가 주는 보상이 좋기는 하지만, 그것들은 검성의 검에 망설임을 부여할 만큼 좋지는 않다.

       

       – 어쩔 수 없었다. ‘네’가 이번만큼은 절대 양보해주지 않더군.

       

       몰살회차의 올리비아 또한 그렇기 때문에 키엘과 함께 아카데미에 왔을것이다.

       

       [키엘 로트실드]

       – 레벨 : 93

       – 직업 : 검성

       – 호감도 : 63(+68)

       

       왜냐하면 키엘의 호감도는 아직도 60 언저리에 불과했으니까.

       

       ……잠깐.

       

       ‘근데 이거 내가 먹으면 어떻게 되지?’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오늘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Ilham Senjaya님!

    경계의 공허님 500코인 후원 감사합니다!
    이걸로 글레이시아 사료 사주겠읍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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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I Became the Witch Who Destroyed the World

세계를 멸망시킨 마녀가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destroyed the world to see its Annhiliation Ending.

And I possessed my Character Olivia in the game.

However… … .

[The world is rebuilt.] – NPCs killed by you return.

– Princess Aria hates you.

– Sword Saint Kiel wants to slit your throat.

… … Isn’t that a bit of a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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