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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그러니까, 처음에는 나를 어떻게 안내해야 내가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까 해서 검색하기 시작했다는 거지?”

        

       유하늘과 마주 보는 자리에 앉은 나는 침착하게 그렇게 물었다.

        

       이렇게 보여도, 나는 전생에 꽤 조심성 많은 사람이었다. 나 자신은 나의 외모를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지만, 주변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았으니까. 사람에게는 각자의 눈높이가 있고, 그 평균을 ‘잘생긴 사람’에 두는 눈 높은 사람도 있는 법이었다.

        

       나 혼자 내 얼굴을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하든 말든, 나는 외모 레벨이 천상계에 존재하는 남자들처럼 고백받아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예쁜 여자에게 호감을 품어본 적이 있다. 개중에는 대학교에서 아싸 위치에 있던 나에게 말을 걸어줄 정도로 착한 동기도 있었고, 상대방이 아싸 건 아니 건 별 상관 없이 술자리고 뒤풀이고 죄다 불러 모으는 슈퍼 인싸들도 있었다.

        

       그렇기에 더더욱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인터넷에 얼마나 많은 휴학 고민 글이 있던가. 단순히 무해한 인간에게 보이는 평범한 호의를 자신에 대한 개인적인 호의로 착각해서 오버스러운 고백을 했다가 이 학교에 계속 다녀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사람들의 글을 몇 번이나 보았다.

        

       어쩌다가 손가락 끝이 스친 것으로 손자 이름까지 정하는 것은 할 수도 있는 망상이지만, 그 망상을 진짜로 착각하고 밖으로 꺼내는 것은 엄청나게 위험하단 말이다.

        

       나는 이제야 예사라의 진짜 사연을 알고 미래를 바꿔보려고 계획을 짜는 중이었다. 괜히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뻗었다가 지뢰를 밟아 있던 친구마저 날아가 버리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문제는, 그때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다는 것이다.

        

       전생에서, 물론 나는 내 외모가 평균 이상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렇다고 이성에게 완전히 잘 먹히는 외모라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한 번도 고백받아본 적이 없는 나의 경험이 그 생각을 증명한다. 당연히, 이성이 보이는 호의를 ‘나 개인을 향한 호의’로 생각할 이유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떤가.

        

       얼굴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 너머로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볼을 빨갛게 붉히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이 발랄한 소녀는, 누가 보더라도 미소녀라고 할만한 소녀다. 그럴 만했다. 원래 여성향 미연시 속 여주인공은 묘사만 평범하다고 될 뿐이지 CG로는 웬만한 하렘물 히로인 귀싸대기를 날릴 만큼 예쁜 경우가 많았으니까.

        

       ……물론 ‘if you wish’의 CG는 개발자가 그림판으로 대충 그린 것 같은 CG였지만. 아무튼 클리셰가 그렇다는 말이다. 실제로 봤을 때 충분히 예쁘기도 하고.

        

       그렇다면 그 소녀와 마주 앉은 나, 그러니까 내가 들어와 있는 예사라의 외모는 또 어떠한가.

        

       예사라의 외모는, 예쁘다. 이건 확실하다. 왜냐하면 게임에서조차 몇 번이나 예쁘다고 묘사가 되었으니까. 거울로 확인했을 때도 예뻤다. 가슴은 작다고 할 수 있겠지만, 이렇게 말랐는데도 몸의 라인이 살아있어서 무슨 옷을 입어도 소화해낼 수 있는 외모였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은 또 어떠한가.

        

       여자가 여자에게, 남자가 남자에게 반하더라도 전혀 이상한 것이 없는, 미연시 속의 세상이다. 게다가 유하늘은 미연시 여주인공이기까지 하다. 고작 며칠 내로 누군가에게 호감을 표현하기에 충분한 개연성을 가지고 있다는 소리다.

        

       ……막말로, 첫눈에 반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다. 원래 첫사랑 이야기는 대부분 그런 식으로 시작하니까. 외모가 개연성이 되기도 하는 것이 이쪽 업계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엄청나게 헷갈리는 것이다.

        

       지금 유하늘이 나에게 보이는 호의가 친구로서의 호의인가, 아니면 연애 대상으로서의 호의인가.

        

       바로 조금 전까지라면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대놓고 데이트 명소를 검색 중이던 유하늘을 봐버린 뒤였다. 심지어 어쩌다가 들어간 것도 아니고, 아예 그 단어로 검색하고 있었다.

        

       여자와 여자가 사귀는 것이 전혀 이상한 것이 없는 세상에서, 다른 동성 친구를 만나면서 데이트 코스로 안내한다.

        

       둘 중 하나의 성별이 남자였다면, 분명 엄청나게 의미심장하게 보일 것이 분명하다. 물론 지금 우리는 둘 다 여성이긴 했지만.

        

       “그, 그게 그러니까…….”

        

       나의 질문을 들은 유하늘은 한동안 고민하다가, 겨우 입을 열었다.

        

       “으, 응! 그래! 둘이서 함께 돌아다니기 좋은 곳을 찾다 보니 이렇게 데이트 코스를 따라 걷는 게 좋겠더라고! 설명도 잘 되어있었고! 그래서 고른 것뿐이야!”

        

       확실히, 정말 커플들이 걷는 길 같은 분위기가 물씬 풍겼었다. 여자 여럿이 모여서 걷는 모습도 종종 보였으니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그런데—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커플용 초대형 파르페’는?”

        

       그렇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간 사이에 유하늘이 주문한 것은 커피가 아니라 초대형 파르페였다. 그것도 2인용. 숟가락과 포크, 빨대는 각자 사용이긴 하다만, 메뉴에 대놓고 ‘커플’이라고 쓰여있었다.

        

       “그, 그건—”

        

       유하늘의 눈동자가 격하게 흔들렸다. 내가 눈썹을 슥 올려 보이자 더더욱 격하게 흔들린다.

        

       “그건, 경제적이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유하늘은, 그렇게 외쳤다.

        

       *

        

       경제적이니까, 라는 말을 듣고 나서도, 사라의 표정에선 여전히 의심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아니, 뭐, 그래, 솔직히 좀 데이트 기분을 내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딱히 사라가 고른 옷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조금 보이시한 분위기의 옷을 입고 있는 사라는 조금 멋져 보이긴 했다. 그래서, 기왕 옷을 고르는 김에 원피스를 골라 입었다. 사라도 잘 어울린다고 해줬고.

        

       팔짱을 끼고 옆에 붙어 설 때마다 사라가 당황해서 얼굴을 붉히는 것을 조금 즐기긴 했다. 솔직히 귀여웠으니까.

        

       평소에 이것저것 먹여주면 잘 받아먹는 사라가, 받아먹으면서 부끄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며 일부러 사람 많은 곳에서 입에 간식을 넣어주기도 했다.

        

       그렇게 약 한 시간 동안 같이 돌아다니다가, 그래, 뭐, 어쩌다 보니 그 분위기에 휩쓸려서 대놓고 커플용 메뉴를 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설령 그렇다고 하더라도, 사라와의 관계는 아직 ‘우정’ 단계였다. 학교에서 매일 같이 붙어 다니는 친한 친구.

        

       그러니까, 그런 쪽으로의 사심은 요만큼도—

        

       …….

       ……….

       ………….

        

       —그래, ‘요만큼도’ 없지는 않았다.

        

       이건 유하늘 본인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지금까지 유하늘이 여자에게 연애 감정을 느껴본 적은 없고, 사실 주변 친구들과 사귀는 망상을 해본 적도 없긴 하지만, 최근 들어서 아주 가끔, 사라 정도 되는 여자애가 고백하면 받아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는 했다.

        

       물론 그럴 가능성이 없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사라와 유하늘의 관계는 ‘아직’ 우정 단계였으니까.

        

       “솔직하게 물어볼게.”

        

       유하늘의 대답을 듣고 잠시 고민하던 사라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는 지금까지 쭉 집에만 있어서, 솔직히 친구 간의 거리감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잘 몰라.”

        

       “아.”

        

       그랬다.

        

       사라는 지금까지, 그 저택에 쭉 갇혀서 지냈다. 함께 다니면서 연락처를 주고받은 수아에게 듣기로는, 초등학교, 중학교 시절을 통틀어 옆에 친구라고 할만한 아이도 없었다고 한다.

        

       그런 말을 꺼내는 사라의 표정은 담담했다. 익숙하지 않으면 지을 수 없는 표정이었다.

        

       나라면 말을 꺼내는 순간부터 무척 괴로울 텐데, 하고 유하늘은 생각했다.

        

       “그럼, 우선 첫 번째 질문.”

        

       그렇게 말해놓고, 사라는 아주 잠깐 망설이듯 침묵한 뒤 말을 이었다.

        

       “그…… 입 안에, 간식 넣어주는 건, 친구들 사이에선 일반적인 거야?”

        

       “……어…….”

        

       ‘일반적인가’하고 물어본다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런 경험이 전혀 없는 것도 아니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선 장난스럽게 입 안에 과자를 넣어주거나 하는 일이 종종 있긴 하니까.

        

       하지만, 보통 그런 경우는 기다란 막대형 과자나, 입에 손이 닿을 일이 없는 조금 큰 조각을 줄 때나 해당한다. 손으로 받아 가라고 줬는데 상대방이 아무 생각 없이 입으로 받아먹는다거나, 뭔가하고 있어서 입으로 받아먹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거나 할 때에도 크게 의식하지 않고 상대의 입 안에 먹을 것을 넣어주기도 한다.

        

       하지만, 입 안에 간식을 넣어주면서 슬쩍 상대의 입술을 만지는 일은 없다.

        

       ……그렇다. 솔직히 말하자면, 유하늘은 사라의 입술을 몇 번 정도는 일부러 만졌다.

        

       아니, 사실 몇 번으로 넘어갈 수 없을 정도일지도 모른다. 일일이 세지는 않았으니까.

        

       그 부드러운 입술의 촉감은, 솔직히 중독성이 있었으니까.

        

       “그, 그, 그렇지!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는 종종 그렇게 하니까, 응.”

        

       완전한 거짓말은 아니다. 굳이 따지면 거짓말의 비율이 70퍼센트 정도 되긴 했지만. 아무튼 사실이 섞여 있긴 하니까.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그런 거짓말을 하고 말았다는 사실이, 가슴 안에 묵직하게 내려앉는다. 양심이 무거워졌다.

        

       사라의 눈이 가늘어지고, 미간이 살짝 모였다. 누가 봐도 명백하게 의심하는 표정이었다.

        

       “……좋아.”

        

       하지만, 사라는 유하늘을 믿어주기로 한 모양이다.

        

       “그럼 다음 질문. 우리 아까 돌아다닐 때 팔짱 끼고 다녔잖아. 그럼 그것도 보통이야? 친한 친구들끼리는 그러고 다니는 게 맞아?”

        

       “아, 그건—”

        

       맞다, 라고 하려다가, 유하늘은 입을 딱 다물었다.

        

       확실히 팔짱 정도는 끼고 다닐 수 있다. 하루 종일 그러고 다니는 건 아니지만, 기분이 좋거나 엄청 친한 친구를 만나면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르긴 했다.

        

       유하늘은 사라의 팔짱을 그냥 낀 것이 아니라, 반쯤 끌어안듯이 매달려서 다녔으니까. 사라의 체온이 옷 너머로 거의 그대로 느껴질 정도로.

        

       ……당연히 그런 것은 일반적이지 않았다.

        

       “그, 그렇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응. 엄청나게 친한 사이라면 그럴 수도 있어…….”

        

       죄악의 무게에 짓눌린 양심이 비명을 질렀지만, 유하늘은 애써 무시하면서 그렇게 대답했다.

        

       “흠.”

        

       사라가 의심하는 콧소리를 냈다. 하지만, 이번에도 추가적인 질문은 없었다.

        

       “좋아.”

        

       사라의 대답에, 유하늘은 작게 숨을 내쉬었다. 이번에도 통과인 모양이었다.

        

       “그럼 마지막으로.”

        

       사라의 시선이 유하늘과 사라 사이의 테이블에 올려진 커플용 점보 파르페에 떨어졌다.

        

       “친한 친구들 사이에서 경제적이라는 이유로 커플 메뉴를 사 먹는 게 보통이야?”

        

       “…….”

        

       이건 쉽게 대답할 수가 없었다.

        

       사실 사라가 의심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냥 분위기에 휩쓸려서 주문해버린 거니까.

        

       쉽게 대답하지 못하는 유하늘을, 사라가 빤히 바라본다. 진지하게 대답을 기다리는 모습이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몰라서, 악의 없이 물어보는 태도.

        

       그런 아이에게, 그냥 나 좋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아니, 당연히 그렇지 않다. 조금만 생각해봐도 완전히 이기적인 행동이다. 성 지식이 거의 없는 상대를 속여서 일방적인 데이트를 즐기고 있는 거나 다름없었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인제 와서 진실을 말하기도 두렵다.

        

       반에서 유일하게 자기 말을 받아주는 사라마저 자신을 무서워할까 봐 두려웠으니까.

        

       그래도 안 돼. 마음속의 양심이 작게 속삭였다.

        

       친구잖아. 친구 사이에선 그렇게 심한 거짓말을 하면 안 되잖아.

        

       그래, 그게 맞는 말이었다.

        

       하지만—

        

       “호, 혹시, 싫었어……?”

        

       유하늘의 입에서 나온 것은, 그런 질문이었다.

        

       “…….”

        

       사라의 눈이 커졌다. 마치 그런 질문을 받을 거라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다는 듯.

        

       한동안 사라는 그 큰 눈으로 유하늘을 바라보다가, 이내 눈을 가늘게 떴다. 눈이 가늘어지는 것이 마치 슬로우모션처럼 느리게 느껴졌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는 유하늘은 심장이 덜컥 떨어질 뻔했다.

        

       역시 싫었던 걸까, 내가 거짓말을 하는걸 간파한 걸까, 하고 유하늘이 고민하는 사이에, 그 가늘어진 눈은 살짝 휘었다.

        

       학교에서 사라가 유하늘에게 하는 눈인사였다.

        

       여우도 홀릴 것 같은 눈.

        

       “아니, 당연히 재밌었지.”

        

       사라는 웃으면서 그렇게 말했다.

        

       떨어질 뻔한 심장이, 팔딱팔딱,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유하늘은 자신의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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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I Don’t Want to Become a Villainess

Q악역 영애가 되긴 싫어
Status: Completed Author:
I fell into the single-player game 'If You Wish' and decided to struggle to avoid becoming a villainess with a terrible en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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