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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저 괴수의 크기는 그리 큰 편은 아니었다.

         

        늑대보단 크지만 호랑이보단 작았다.

         

        하지만 그들이 본 어떠한 짐승보다 크게 느껴졌다.

         

        내면에 있는 심후한 내공.

         

        삼류에 불과한 그들조차 느낄 수 있는 저 강대한 내공.

         

        내공이란 건 무릇 작은 쌀알 같은 것까지 정제해야 하는 법이다.

         

        그러나 이 짐승에게는 소화되지 못한 날것의 기운이 느껴졌다.

         

        끝도 없는 내공이 몸에 있다는 증거였다.

         

        혈사자와 장봉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뚝뚝 떨어지는 저 침.

         

        자신들을 한낱 먹잇감으로 보고 있다는 신호였다.

         

        놈의 혀가 날름거린다.

         

        마치 일전에 보았던 마교 교주의 시선과도 같았다.

         

        상대방의 힘을 파악하는 듯한 야생의 움직임.

         

        파악이 끝난다면 저 괴수의 심판이 시작될 게 분명했다.

         

        혈사자의 심장이 쿵쾅거렸다.

         

        부귀와 영화를 쫓기 위해 온 십만대산이었다.

         

        이대로, 허망하게 죽을 순 없었다.

         

        어떻게든 살아 남아야 한다.

         

        그러나 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적인 방법으로는 이 사지에서 탈출할 수 없었다.

         

        본능에 따라 움직였다.

         

        그의 발이 천천히 뻗어졌다.

         

        그것은 그의 의지대로 행한 게 아니었다.

         

        이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단 하나의 방법을 본능적으로 찾아낸 거다.

         

        퍼억!

         

        “꺄아아악!”

         

        혈사자의 발이 당소영을 강하게 밀쳐냈다.

         

        가녀린 그녀는 그대로 넘어지게 되었다.

         

        청록색 괴수는 고개를 숙여 넘어진 당소영과 눈을 맞췄다.

         

        “혀, 혈사자 공. 어떻게 협객인 당신이….”

         

        장봉이 그에게 질타할 때였다.

         

        “개소리 집어치우고, 빨리 도망가아아아!”

         

        혈사자의 일갈에 모두가 정신을 차렸다.

         

        사람 좋은 척을 하던 장봉도, 움직이지 못하던 다른 무인들도.

         

        가장 중요한 건 이 마경에서 살아남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이 활로가 열린 유일한 순간이었다.

         

        당소영은 이미 넘어졌다.

         

        저걸 살리는 건 불가능하다.

         

        혈사자가 밀치지 않았더라도, 가장 가까이 있었기에 죽고 말았을 거다.

         

        그녀의 죽음은 이미 확정된 것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수는 바로 도망치는 것이다.

         

        양심이라는 게 존재하는 사람은 그녀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원시천존, 원시천존.”

        “지랄. 도사도 아니면서!”

         

        장봉을 비롯한 무인들은 정신을 차리고 곧바로 뒤를 돌아 도망쳤다.

         

        파바바밧!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쳤다.

         

        저 괴수가 당소영을 잡아먹을 때까진 아직 여유가 있을 것이다.

         

        그사이에 최대한 거리를 벌려야 한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얼마나 뛰었을까, 충분히 거리가 멀어졌다고 판단한 그들은 잠시 숨을 돌릴 겸 뒤를 돌아봤다.

         

        “이런 미친….”

         

        온다.

         

        큰 것이.

         

        청록색의 용이 빠른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그래, 달려온다.

         

        그것도 두 발로.

         

        심지어 빠르다.

         

        혈사자는 난생처음 보는 광경에 악을 썼다.

         

        “대체 이게 무슨 해괴한 꼴이란 말인가아아아!”

         

        쉴 틈이 없었다.

         

        저 미친 괴물에게 잡히지 않으려면 곧바로 뛰어야 했다.

         

        삼류라지만 도망치는 거 하나는 자신 있는 이들이었다.

         

        평생을 도망쳤기 때문에.

         

        “두, 두발로 저리 뛰어다니는 걸 보면 평범한 용은 아닐 걸세!”

        “나도 아네에에! 저게 어찌 평범한 용이란 말인가!”

        “허억…. 헉…. 그러니까 내 말은 물로 도망치면 살 수도 있다는 소리네!”

         

        어차피 땅으로 달리면 곧 따라잡힌다.

         

        늪지대로 달린다면 저 괴물에게서 벗어날 수도 있을 거다.

         

        날카로운 발톱과 체형으로 저 용이 나무에서 서식하는 종임을 추측할 수 있었다.

         

        즉, 헤엄을 잘 치지 못할 거라는 게 장봉의 생각이었다.

         

        칠 수 있다고 하더라도 물이 얕은 곳에서는 따라오기 힘들 거다.

         

        “자네만 믿겠네!”

         

        무인들은 전부 물기가 있는 늪으로 향했다.

         

        사람의 다리라면 쉽게 넘을 수 있는 곳이지만 저 짧은 다리로는 힘들 거다.

         

        저 괴수는 발이 빠지고, 나무에 걸려 오지 못할 거다.

         

        그들은 그렇게 생각했다.

         

        “허억….”

        “저 보게! 물 앞에서 주저하는 꼴을!”

        “하아…. 하아…. 해치운 건가?”

        “혈사자 고오오옹! 그 입 다물게나아아!”

         

        장봉이 혈사자에게 일갈을 한 순간이었다.

         

        무언가 고민하듯 물 위에 서 있던 짐승은 그대로 수면을 밟았다.

         

        문자 그대로 물 위를 밟았다.

       

       “게게게겍!”

         

        그 짐승은 발은 당연하다는 듯이 수면을 밟고 있었다

         

        그들을 똑바로 바라본 청록색 용이 천천히 걸어왔다.

         

        “자, 장봉! 저, 저것 좀 보시게나!”

        “나도 눈이 있네! 드, 등평도수라니…. 이런 괴력난신 같은 일이….”

        “등평도수가 아니라 무력답수가 맞는 거 같소.”

        “자네는 또 뭔가! 원시천존이나 찾게나!”

         

        진법을 사용하는 영물로도 모자라, 경신술이라고 불러야 할 경지에 다다른 영물을 만나다니. 장봉의 말마따나, 정말로 괴력난신이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다.

         

        장봉과 무인들은 급하게 방향을 바꿨다.

         

        물가에서 저 괴수의 추적을 피할 방법은 없었다.

         

        “내, 내가 봤던 게 발톱이 아니라 물갈퀴였던 게 분명하네.”

        “무슨 소리오! 그 서슬 퍼런 칼날을 보지 못했단 말이오?”

        “들어보시게! 저런 움직임을 보이는 걸 보면 물에서 생활하는 존재가 분명하네. 그런 자가 어찌 나무 위로 오를 수 있겠나!”

         

        혈사자는 장봉의 말이 의심스러웠다.

         

        겁에 질려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닐까.

         

        하지만 마땅한 수가 없었다.

         

        평지에서도, 물가에서도 놈보다 느렸다.

         

        다른 방법을 찾긴 해야 했다.

         

        하여 그들은 나무 위로 올라갔다.

         

        삼류라고 해도 무인은 무인.

         

        나무를 타는 것 정도는 간단했다.

         

        그들은 거기서 멈추지 않고 가지를 타고 가 다른 나무로 빠르게 이동했다.

         

        “됐소. 이 정도면 될 거 같소. 냄새로 우리를 찾는다 하더라도 금방 놓치고 말 거요.”

        “장봉. 자네 말이 맞구려. 나무 위를 오르니 저 멍청한 미물이 우릴 찾지 못하고 있소.”

        “운이 좋았소. 이제 조용히 있다가 놈이 물러가는 걸 기다리기만 하면 될 거요.”

        “후우…. 무림에 출두한 지 어언 삼 년. 이 정도 고비를 느낀 건 오늘이 처음이오. 이 일이 끝난다면 안휘로 돌아가 그녀에게 청혼을 해야겠….”

         

        혈사자는 말을 멈췄다.

         

        장봉이 자신을 귀신이라도 본 듯이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이…!”

         

        파바바박!

         

        청록색 영물은 자연스럽게 나무를 타고 올라오고 있었다.

         

        아니, 탄다는 말이 어울리지 않았다.

         

        땅을 걷듯, 아주 편안하게 올라오고 있었다.

         

        벽호유장공이었다.

         

        “흐아아악! 혈사자 공! 정말 이러기요?”

        “내,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목소리나 낮추시오! 그러다가 들키오!”

        “이미 들켰소오오오!”

         

        장봉과 무인들은 동시에 나무에서 뛰어 내렸다.

         

        대체 저 짐승의 정체는 무엇이란 말인가.

         

        등평도수에 벽호유장공이라니.

         

        그런 걸 할 수 있는 존재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정말로 용이란 말인가.

         

        아니, 용이 두 발로 뛰어다닐 리가 없었다.

         

        날아다니면 날아다녔겠지.

         

        그러면 저 녀석의 정체는 대체 무엇인가.

         

        장봉은 도망치면서도 그런 생각을 했다.

         

        그래도, 이걸로 끝일 거다.

         

        이쪽이 수가 더 많으니, 한 명이 잡힌다면 나머지는 살 수 있을 거다.

         

        “자, 장봉!”

        “에잇! 왜 또 그러는 게요! 말하는 힘도 아깝소!”

        “저, 저놈을 좀 보게!”

        “낭자처럼 날 밀칠 생각이라면 꿈 깨오. 그러다간 혈사자 공도 같이 죽는 거요.”

        “그게 아니오! 저, 저 녀석 입에!”

         

        입?

         

        그게 무슨 소리란 말이던가.

         

        장봉은 고개를 돌려 쫓아오는 짐승을 살짝 쳐다봤다.

         

        놈의 커다란 아가리에는 아까 흘린 장봉의 검이 물려 있었다.

         

        “해도 해도 너무하는군!”

         

        세상에, 이젠 아주 검술까지 쓴다는 건가.

         

        저 검으로 자신들을 도륙 낼 생각이라는 건가.

         

        장봉은 한 명을 미끼로 쓰는 작전을 폐기했다.

         

        칼을 들고 악귀처럼 쫓아오는 걸 봐라.

         

        한 명을 잡았다고 해도 결코 멈추지 않을 존재였다.

         

        “크아아아아악!”

         

        그렇게 그들은 한참이나 도망쳤다.

         

        청록색 괴수가 쫓아오지 않을 때까지.

         

         

        *

         

         

        이 인간아.

         

        칼은 가져가!

         

        이거 딱 봐도 비싸 보이는데….

         

        아이고.

         

        벌써 저기까지 갔네.

         

        위험할 텐데.

         

        걱정됐지만 어쩔 수 없다.

         

        도망치는 능력은 탁월하니까 알아서 빠져나오겠지.

         

        내가 더 쫓아가다간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갈 테고.

         

       그런데, 왜 계속 도망가는 거지?

         

        똑똑한 머리를 굴려봐도 답이 나오지 않았다.

         

        무해한 표정으로 반갑게 맞이했을 뿐인데, 겁에 질린 듯이 도망갔다.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서운 거라도 봤나?

         

        ……혹시 내가 그렇게 무섭게 생겼나?

         

        아냐. 그럴 리가 없지.

         

        나름 백연영이 인정한 도마뱀 아니던가.

         

        백연영의 얼굴은 천하제일미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천하제일미가 인정한 도마뱀 역시 그와 버금… 아니, 그래도 못난 수준은 아니겠지.

         

        물가에 비친 내 모습을 쓱 봤다.

         

        진화를 하느라 덩치가 조금 커지고, 갑옷 같은 비늘이 생기고, 이빨이 좀 날카로워지고, 발톱이 길게 자라고, 꼬리가 길어지고, 입에서 독이 나오긴 하지만 예전 모습과 거의 똑같았다.

         

        백연영이 지금의 나를 봐도 예전처럼 콕콕 찌르고 놀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다.

         

        아니, 그 여자라면 내가 드래곤이 돼도 눈 하나 깜빡 안 하려나.

         

        덩치가 예전보다 좀 많이 커지긴 했는데, 애초에 인간들이 나보다 더 컸다.

         

        물론 두 발로 서면 내가 더 커보이긴 하겠지만.

         

        그런데 왜 갑자기 나타난 거지?

         

        원래 사람들이 살았던 곳이라기엔, 너무 호들갑을 떨던데.

         

        나 같은 도마뱀 처음 보나?

         

        모르겠다.

         

        길을 잘못 들었겠지.

         

        어차피 다시 만나지도 않을 텐데, 신경 써서 뭐 하나.

         

        늪지대 상부로 가지 않는 이상 죽을 위험도 없을 거고.

         

        밤도 늦었으니 보금자리로 돌아가야겠다.

         

        …참.

         

        아까 넘어진 그 여자.

         

        아직 그 자리에 있으려나?

         

        다리를 다친 거 같던데.

         

        확인이나 한 번 해보자.

         

        …….

         

        혹시 모르니까 표정 연습 좀 하고.

         

        웃어보자.

         

        물가에는 멋진 미소를 짓고 있는 잘생긴 도마뱀 하나만이 있을 뿐이었다.

         

        이 정도면 충분하지.

         

        에휴. 요즘 무인들은 이게 뭐가 무섭다고 도망치는 건지.

         

        근성이 없어, 근성이.

         

        나 때는 은룡굴에 들어가서 벌레만 잡아 먹고 수련을 했는데 말이야.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I Became an Evolving Lizard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지 속 진화하는 도마뱀이 되었다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reincarnated as a lizard in a martial arts world. “Roar!” “He’s using the lion’s roar!” “To deflect the Ten-Star Power Plum Blossom Sword Technique! Truly indestructible as they say!” “This is… the Heavenly Demon Overlord Technique! It’s a Heavenly Demon, the Heavenly Demon has appeared!” It seems they’re mistaking me for something el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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