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

       궁정백의 저택이 털렸다.

        ​

        제아무리 궁정백 본인이 버티고 선다 해도, 결국 사용인과 사병들이 버텨주지 않으면 힘으로 밀고 들어가는 막을 수 없었다.

        ​

        그리고 그 사실 자체가 수도의 귀족계에 파란을 일으켰다.

        ​

        “비텔스바흐 가문이 당할 정도면 우리라고 안전하지 않은 거 아냐?”

        ​

        “마리아 전하의 약혼자가 개입했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

        심지어 후작가가 도왔다는 이야기가 있기에 더욱 불안이 확산되고 있었다.

        ​

        그럴 수밖에 없었다. 서로 탄핵 러시가 이어지긴 했다지만, 그거야 정쟁이 거세지면 언제나 일어나는 일종의 전통이었다. 귀족이란 자원은 한 번 쓰고 사라지는 소비재가 아니라 죽을 정도의 죄를 지은 게 아니라면 어차피 한동안 자숙하다 돌아오기 마련이었다.

        ​

        결국 정쟁이란 일종의 턴제 싸움이라, 내가 잘 나갈 때 조정을 장악해 해 먹는 게 목적이지 상대를 아예 죽여버리는 건 고귀한 귀족들이 할 일은 아니었다.

        ​

        그런데, 그건 기본적으로 상대가 칼을 뽑아 들어도 우리 쪽의 방패, 그러니까 누구도 함부로 할 수 없는 대귀족과 고위 귀족들이 막아낼 수 있다는 것이 전제가 되어야만 했다.

        ​

        그리고 이번에 그 대귀족 중 하나인 궁정백이 이번에 목이 달아났다.

        ​

        물리적으로 목이 달아났다는 건 아니었다. 사실 비유적으로도 아직 목이 달아나지는 않았다. 지금은 그냥 저택이 털려 주요 자료들이 감찰단으로 넘어간 것뿐, 아직 사건의 결론이 나진 않았다.

        ​

        하지만 다들 알고 있었다.

        ​

        귀족이라면 누구나 탄핵당할 건수 하나쯤은 갖고 있기 마련이었다. 그걸 털린 이상 시간의 문제지 실각은 결정된 것과 다름없었다.

        ​

        “이러면, 균형을 위해서라도 황하 폐하를 지지해야 할 것 같은데….”

        ​

        “황실이 너무 강해져서야 곤란하지. 귀족의 신성한 권리는 언제나 존중받아야만 한다.”

        ​

        욤이 걱정하던 것이 바로 이런 상황이었다. 빌헬름이 마리아와 한배를 탔다는 건 마리아 본인이 열심히 소문을 퍼뜨렸기에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빌헬름이 직접 나섰다는 건, 결국 황녀가 개입했다는 뜻이었다.

        ​

        “하지만, 황녀님이 나선 거라면 결국 후계자 싸움 아니오?”

        ​

        그리고 마리아가 자신했던 것도 여기 있었다.

        ​

        “궁정백이 몰락하는 건 좀 아쉽긴 한데, 결국 궁정백도 황후 폐하를 뒤에 업고 있던 건 똑같지 않나.”

        ​

        “아직은 중립을 지켜야 할 것 같네만.”

        ​

        황녀가 직접 이번 일에 개입하긴 했지만, 그게 뭐 어쨌단 말인가. 황실이 직접 개입했다는 게 좀 그렇긴 하지만, 결국 본인들도 황후를 빽으로 업은 덕에 팔츠 정계를 틀어쥘 수 있었던 것 아닌가.

        ​

        물론 욤도 그렇고, 태자의 파벌도 그렇고 여러 세력이 합심해 황후파를 공격하긴 했지만, 애초에 그러고도 황제의 총신들이 움직이지 않아 세력만 따지고 보면 반황후 연합이 황후파보다 세력이 적었다.

        ​

        무엇보다, 애초에 황후파가 세력을 믿고 여기저기서 깽판을 친 것이 있기에 그들을 향한 사교계의 민심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

        “내가 도와주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

        “이 정도면 충분하지. 고마웠다.”

        ​

        그리고 이미 목적은 이뤘다는 듯 뷔르템부르크 후작가가 손을 털고 나가자 그런 분위기가 더 강해졌다.

        ​

        그리고 그런 분위기 속에서, 감찰단이 본격적으로 팔츠 전역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

        ――

        ​

        감찰단이 표적이 된 귀족가를 들쑤시기 시작하며 수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흉흉해졌다.

        ​

        오늘은 이 집에서 심각한 비리가 드러나고, 어제는 저 집에서 음침한 범죄가 발각되고, 내일은 내 집이 털릴지도 모른다.

        ​

        황후파의 귀족들은 다들 부디 자신이 감찰단의 생사부에 이름이 오르지 않았기를 바라며 숨죽인 채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다.

        ​

        하지만 그렇다고 수도가 완전히 침묵에 잠긴 건 아니었다. 황후파가 수도 정계의 절반을 잠식했다고는 하지만, 그건 나머지 절반은 황후파와는 상관이 없는 이들이라는 의미였다.

        ​

        “하하하! 요새 아주 날씨가 좋은 것 같습니다.”

        ​

        “어제오늘은 낮 동안 내내 비가 오지 않았습니까?”

        ​

        “내 기분이 좋으면 그게 좋은 날씨 아니겠습니까?”

        ​

        “하긴 그것도 그렇습니다.”

        ​

        황궁에서 벌어지는 연회야말로 아직 황후가 수도를 전부 장악하지 못했다는 걸 방증했다.

        ​

        이번 연회는 마리아 황녀가 열지는 않았지만, 이 자리에 참석한 이들 모두 이 연회의 주인공이 마리아라는 데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

        이런 특별한 명분도 없는 시기에 갑자기 황실 명의로 연회가 열린다면, 그건 보통 그즈음에 기쁜 일이 있었던 황실 인원이 돈을 지원해 우회적으로 연회를 열었다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

        그렇기에 딱히 연회의 주최자라 할 만한 사람이 없음에도 마리아는 당연하다는 듯 상석에 자리했고, 귀족들은 그게 당연하다는 듯 그녀에게 인사를 올렸다.

        ​

        그래, 이 연회는, 사실상 마리아의 승전 연회나 다름없었다.

        ​

        “드디어 오셨군요.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

        그리고, 승전 연회에는 보통 따라오는 것이 있었다.

        ​

        “어머니.”

        ​

        전리품이었다.

        ​

        “…잘도 저질러 주었구나.”

        ​

        “어머니만 할까요.”

        ​

        황후는 표독한 눈초리로 마리아를 노려보았다. 마리아는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태연하게 황후를 맞이했다.

        ​

        어차피 한바탕 칼부림은 끝난 뒤였고, 이 연회가 벌어지는 곳은 황궁이었다. 황후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뜻이었다.

        ​

        “설령 궁정백이 잘려 나갔다 해도, 나를 따르는 이들은 여전히 차고 넘친다. 네가 선제후 가문을 이용해 아무리 칼부림을 벌인다 하더라도 결국 너를 뒷받침하는 세력은 한미하기 그지없을진대, 네가 날 이길 수 있으리라 생각하더냐?”

        ​

        그래서 그럴까. 황후는 오히려 더욱 역정을 냈다. 품위 유지라거나, 혹은 얕잡아보여지는 등의 문제가 있기에 이런 자리에서 소리를 치진 않았지만, 적어도 마리아에게는 불리한 상황에 놓인 황후의 발작으로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

        “어머니.”

        ​

        어마마마라고 부르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미 자존심을 박박 긁는 것과 마찬가지였기에 황후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

        “추해요.”

        ​

        그리고, 그 한마디가 그녀의 심장에 대못을 꽂았다.

        ​

        “뭐, 뭐라고!”

        ​

        황후가 고함쳤다. 연회장에 모인 이들의 시선이 그녀에게로 쏠렸다.

        ​

        자신의 실수를 눈치챈 황후가 황급히 태도를 고쳤지만, 이미 사람들은 그녀가 한 말을 모두 들은 뒤였다.

        ​

        황후는 분노로 이글거리는 눈동자로 마리아를 노려봤다.

        ​

        “마리아, 내가 이대로 물러설 줄 아느냐? 이 경쟁이 이걸로 끝난 것 같더냐?”

        ​

        “하지만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으시죠. 이미 감찰단에 어머니의 손발이 다 묶이지 않으셨나요?”

        ​

        “…주님께 맹세컨데,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오늘의 일을 땅을 치고 후회하게 해주마.”

        ​

        “어머, 그런 말씀을 해도 괜찮으시겠어요?”

        ​

        마리아는 눈웃음을 치며 황후의 경고에 응답해주었다.

        ​

        “어머니의 말씀을 주님께 전해드릴 대주교께서 어머니를 그리 좋게 생각하지 않으시는 것 같은데.”

        ​

        조롱이었다. 그제야 황후는 마리아가 뒷일이고 뭐고 이 자리에서 자신이 분해하는 장면을 다른 이들에게 과시할 생각 말고는 없음을 깨달았다.

        ​

        그리고, 자신이 훌륭하게 그 역할에 임해주고 있다는 것도.

        ​

        빠드득.

        ​

        이를 가는 소리가 내게까지 들려왔다. 어차피 여기서 무슨 말을 해도 정상적인 대답을 들을 수 없다는 걸 깨달은 황후는 눈에서 빔이라도 나올 듯 마리아를 노려보다 뒤돌았다.

        ​

        “…이만 가봐야겠구나.”

        ​

        “안녕히 가시지요.”

        ​

        황후를 배웅하는 마리아의 표정에는, 통쾌함이 가득했다.

        ​

        반대로 내 얼굴은, 근심으로 가득했다.

        ​

        “…이거 이래도 괜찮은 거야?”

        ​

        “뭐가요?”

        ​

        마리아는 후련한 표정으로 날 돌아봤다.

        ​

        지난 몇 년간 쌓인 악감정을 모두 털어놨는지 피부에 약간 윤기도 도는 것 같았다. 이건 그냥 화장을 해서 그런 건가?

        ​

        아무튼, 내가 염려하는 건 다른 게 아니었다.

        ​

        “황후의 말도 일리는 있어. 분명 이번에 궁정백을 탄핵하고 그를 따르는 이들이 대거 물갈이되며 한동안 황후가 무언가를 할 동력 자체를 상실한 건 맞지만, 그것도 일시적이야. 팔츠에서 그녀의 세력 자체를 축출해내지 못한 이상, 결국 몇 달 안에 그녀의 파벌은 부활할 수밖에 없어.”

        ​

        내가, 이 나라의 귀족임에도 불구하고 황후를 손봐야겠다고 생각했던 건 단순히 내가 선제후의 아들이기 때문이라는 자신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애초에 수도를 떠나는 그 순간부터 나는 굳이 황후를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에 나는 뒤탈 걱정 없이 황후의 콧대를 꺾겠다는 계획을 수립할 수 있었다.

        ​

        하지만 마리아는 아니었다.

        ​

        그녀는 내가 떠나더라도 여전히 수도에서 살아야 했다. 이유야 많지만, 사실 제일 큰 이유는 수도에 있는 것이 수도 바깥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하기 때문도 있었다.

        ​

        이전에는 수도가 위험하다고 지방에 머물던 마리아였기에 그게 무슨 소리냐고 물은 적이 있었다. 그에 대한 대답은, 적당히 자기 몸을 지킬 방법만 있다면 오히려 수도에서 버티는 게 정치적 공세를 버티기 쉽다는 뜻이었다.

        ​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었다. 결국 그녀가 자신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는 건 황족이기에 누리는 특권 덕이었다. 그런데 황후가 그 특권을 폐기하려 든다면, 수도에 머무르지 않는 한 거기에 적극적으로 대응하기 어려웠다.

        ​

        그리고 황족이 기반도 없이 황족으로서의 지위를 잃으면 목숨을 잃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지금부터 파벌을 만든다고 해도 황후가 자신의 영향력을 복구하는 것보다 빠르지는 못할 것 같은데.”

        ​

        그리고 이렇게 되면 곤란했다.

        ​

        아무리 나라도, 정말로 위기에 놓인 마리아를 두고 떠날 순 없었다. 적어도 사람 된 도리로서 그래서는 안 됐다.

        ​

        어쩌면 이걸 노린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

        “괜찮아요.”

        ​

        그리고 그녀의 말에 순간 모든 긴장이 풀렸다.

        ​

        “그래? 다행히-”

        ​

        미리 방책을 마련해 뒀다면, 나도 안심하고 튈 수 있었다.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리려던 찰나, 마리아의 말이 이어졌다.

        ​

        “한동안, 팔츠를 떠나 있을 생각이에요.”

        ​

        “…뭐?”

        ​

        얘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걸까.

        ​

        순간 머리가 상황을 따라가지 못했다.

        ​

        “다들 제가 당신을 내세워 정계를 헤집는 걸 걱정하고 있잖아요. 걱정을 잠재우는 가장 쉬운 방법은, 제가 이곳을 떠나있는 것 아니겠어요?”

        ​

        “아니, 말이야 맞는 말이긴 한데.”

        ​

        그런데 그 방법이란 게 이게 맞아?

        ​

        “뭔가 다른 방법이 있는 게 아니었어?”

        ​

        워낙 당당하게 말해서 뭔가 다른 수라도 있는 줄 알았다. 애초에 이 문제에 대해 처음 이야기를 꺼냈던 것도 마리아였고, 그러면서 문제없다고 했던 것도 그녀 아니었던가.

        ​

        황실이 귀족간의 다툼에 직접 끼어드는 건 언제나 상황을 불문하고 저항이 있는 것 정도야 나도 알고 있었다. 귀족간의 분쟁을 조정하는 정도라면 몰라도, 어느 한쪽을 편들어 끝내는 건 당장 우리 가문도 기겁하며 반항할 게 분명했으니 뻔한 일이었다.

        ​

        그렇기에 성과로 이걸 뒤집거나, 아니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확실한 명분이라도 갖고 있는 줄 알았다.

        ​

        “수도에서 제가 움직이는데 제약이 걸리는 게 문제라면, 애초에 제가 수도에 없으면 걱정할 필요 없는 문제 아닌가요?”

        ​

        “그으…, 렇지…?”

        ​

        어라.

        ​

        이상하다.

        ​

        이거 어디서 들어본 적이 있는 논리인데.

        ​

        “결국 주변 사람들에게 인망을 얻어야 하고 두루두루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하는 건, 평생 그곳에 눌러앉아 살아야 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죠. 하지만 어차피 더는 거기 머물면서 그 사람들과 얼굴 볼 일 없다면, 그런 문제는 신경 쓸 필요 없어요.”

        ​

        너무 익숙해서 마치 내가 말하는 게 아닐까 싶은 말이었다.

        ​

        그야 그럴 수밖에 없지.

        ​

        “당신이 해준 말이잖아요?”

        ​

        이건 내가 그녀에게 해준 말이었으니까.

        ​

        그녀는 나조차 처음 보는, 해맑게 웃는 표정으로 내 눈을 바라보며 물었다.

        ​

        “어차피 당신 또 여행길에 오를 텐데, 돈 관리해줄 사람 한 명 정도는 필요하지 않겠어요?”

        ​

        나는 차마 입을 열지 못했다.

        ​

        “안 그래요? 그 많은 돈을 한순간에 다 날려 먹으신 기사님?”

        ​

        업보 청산의 시간은, 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닌 모양이었다.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I Wished for Romance, but it Turned Out to be a Romance Fantasy

낭만 판타지를 꿈꿨는데 로맨스 판타지였다
Score 7.6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dreamed of a life filled with romance¹ and romanticism, but I didn’t dream of a romance fantasy… —- ¹ The “Romance” here means a feeling or atmosphere of something new, special and exciting, e.g., a hero’s adventure.

Options

not work with dark mode
Res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