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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기본적으로 아카데미에서 일하는 교원들은 바쁘다.

       수업 준비도 준비지만, 제출해야 할 서류도 상당했으니까.

         

       수업 계획서를 비롯하여 예산 책정과 업무 관련 보고서.

       차후 원활한 수업을 위한 타 과목 교원들에 대한 양해 편지까지.

       누군가는 쓸데없다고 할 테지만, 이런 자잘한 예절을 지켜야 원활한 관계가 형성되는 법.

         

       실상 아카데미 교원들은 하루 온종일 책상 앞에 앉아 업무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허나.

         

       “제기랄! 젠장! 빌어먹을!”

         

       교원이 아닌 남성이 책상에 앉아 열심히 서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데미안 폴렛.

       이한의 3년 한정 조교이자, 현재 이한을 대신해 열심히 서류작업을 하는 남자의 이름이었다.

         

       ‘놀 같은 교관 놈!’

         

       욕설과는 거리가 먼 인생을 살았던 귀족 도련님이었던 데미안이었으나, 일주일 넘게 서류 작업만 하다 보니 욕을 입에 달고 살게 되더라.

       음영이 짙은 그의 눈가만 보아도 그가 얼마나 스트레스와 피로를 받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터.

         

       …실제로 그는 피로하기도 피로했다.

       벌써 일주일 넘게 기숙사를 이용한 기억이 없기에.

         

       ‘기숙사 그게 뭐죠? 아카데미에 그런 게 있었나요?’

       -하는, 헛소리가 절로 나올 정도.

         

       원래 기숙사생이었던 데미안이었지만, 현재 그는 교원 휴게실을 더 자주 이용하는 상태였다.

       아무리 서류가 많다 해도 기숙사에 갈 시간도 없느냐며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만, 이게 어쩔 수가 없다.

         

       낮에는 검술학부 외 교양 강의와 필수 강의도 들어야 할뿐더러, 이후 강의를 들은 후에는 교관의 수발을 들어야 하는데, 하등 수발만이 아니라.

         

       -너도 훈련해야지, 어디서 남 일인 척하고 있어?

         

       교관은 안 그래도 그의 밑에서 공처럼 치이고 또 치이는 그를 훈련이란 명목으로 괴롭혔다.

       그 때문에 데미안은 수발도 들고 훈련도 같이 해야 하는 처지에 빠졌고, 그나마 강의가 끝난다 할지라도.

         

       -이걸 내가 하랴? 조교 네가 해야지.

         

       서류 다발이 그의 앞에 내밀어진다.

       데미안은 이에 반항할까 싶었으나, 교관의 눈동자를 마주하며 깨갱거렸다.

       안 따르면 물리적으로 죽을 것 같아서.

         

       그렇게 그는 어느새 교관의 서류를 대신 처리하기 시작하는 게 일상이 되어갔고, 이밖에 타 강의의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 중에서 기숙사로 돌아가는 시간이 낭비처럼 여겨졌다.

       어느 순간부터 데미안은 교원 휴게실에서 살다시피 했으며, 그는 지박령 비스름한 것이 된 상태였다.

         

       처음 그가 교원 휴게실에 자리 잡은 것에 당황한 이들도 있었으나, 이제 와서 교원 중 그를 신경 쓰는 이들은 없었다.

         

       “호오, 검술학부 교관도 대단하구려, 벌써 ‘조교’를 얻을 줄이야.”

       “허허, 매년 보지만 신기한 광경이지요. 과연 저 조교는 언제 자퇴할까요?”

       “으음, 이번 학기 안에 사라지지 않을까요?”

         

       이미 교원 일동에겐 익숙한 광경이었던 거다.

       조교가 휴게실에서 살림을 차리고 일하는 광경이.

         

       데미안은 오싹함을 느꼈다.

         

       듣자 하니 도망(자퇴)치는 데 성공한 선배님들이 많으신 것 같은데, 그에겐 불가능한 일이었으니까.

         

       3년.

       그는 3년 동안 이 짓을 해야만 하는 종신 노예, 아니 조교였다.

         

       “빌어먹을….”

         

       다시금 욕지기를 내뱉으며 데미안의 눈은 촉촉하게 젖어갔다.

         

         

         

       “-데미안 폴렛이 어째서 저렇게 된 거지?”

         

       탁한 회색머리칼을 가진 생도가 슬쩍 교원실을 관찰하며 눈을 끔뻑였다.

         

       이는 ‘예정된 챕터’가 아니었다.

         

       데미안 폴렛은 원래 저러고 있으면 안 됐다.

         

       “왜 아이린 윈들러의 추종자가 아니라, 조교 일을 하고 있는 거지?”

         

       회색머리 생도는 생각했다.

       뭔가 잘못되었다고.

       이건 예정된 스토리가 아니다.

         

       뭔가 꼬였다.

         

       “왜지? 어디서 꼬인 거지…?”

         

       회색머리 생도는 계속 고민했고, 그는….

         

       “생도, 거기서 뭐 하는 거죠?”

       “네, 네에엡?!”

       “…계속 혼잣말을 하던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아, 아니요.”

       “그래요? 아! 혹시 조교 일에 관심이 있으셔서 온 건가요! 그런 거라면 저희 역사학부 조교를 추천합니다! 공부할 거리가 매년 새롭게 생겨나는 보람찬 학부지요!”

       “아, 아니 저기….”

       “자, 갑시다! 역사학부의 멋진 점에 대해 함께 대화를 나눠보죠!”

       “어어….”

         

       회색머리 생도는 아무래도 의사소통에 대한 장애가 있는 듯했고, 활발하다 못해 어딘지 광기가 느껴지는 역사학부 교수에게 잘못 걸린 것 같았다.

         

         

       그날, 회색머리 생도는 본의 아니게 장장 5시간 동안 붙잡혀 ‘역사학부 조교가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들어야만 했다.

         

       * * *

         

       본격적으로 학기가 시작되고 일주일.

       짧은 기간이지만, 누군가에겐 농후하기 그지없는 시간이 될 수도 있는 법.

       그런 뜻에서 이한은 검술학부에서 보낸 일주일이 그 어떤 학부보다 농후하다 자신하는 바였다.

         

       ‘애들 가르치는 일이 이렇게 힘든 건 줄 몰랐다.’

         

       전생시절 그를 가르치던 학교 선생님들이 존경스러워지는 순간.

       아, 몇몇 교사들은 예외다.

       교사란 이름도 아까운 시부랄 놈들.

         

       “…지금 만났으면 다 죽였는데.”

       “터, 터틀 경.”

       “네에?”

       “…그, 혼잣말이 너무 큰 게 아닌가 싶은데.”

       “……아.”

         

       그제야 이한은 자신이 교원 회의에 왔다는 걸 상기했다.

       몇몇 이들은 그의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떨리는 동공으로 자신을 보는 상황.

         

       ‘…왕따 확정이구먼.’

         

       겸허하게 제 실수를 인정하며 이한은 침음을 흘렸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이한은 변명을 해보기로 했다.

         

       “…죽인다는 게 그런 뜻이 아닙니다. 그냥 조금 사람 같지 않은 것들이 떠올라서.”

       “그, 그러시군요.”

       “진짭니다.”

       “예에….”

       “…….”

         

       전혀 믿지 않는 얼굴이었다.

         

         

         

         

       제법 큰 회의실이었고, 거기엔 강사와 교수, 교관 등이 빽빽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도합 112명.

         

       저기 열정적이게 일장연설을 내뱉으시는 학장님까지 합치면 113명이리라.

         

       “-존경하는 교원 여러분. 여러분이 있기에 저는 감사합니다. 여러분 같은 훌륭한 재원이 있기에 훌륭한 생도가 배출되는 것이겠지요, 훌륭한 생도란 무릇 나라의 보탬이 되는 큰 보배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아, 보배라고 하니까 생각나는 것인데, 제가 재상부에 있던 시절만 해도….”

         

       저분은 어째 딴 세상에 있으신 것 같다.

       인사말만 한다 했으면서 벌써 한 시간 동안 저러고 있다.

         

       ‘저 멘트, 어째 방금 전에도 했던 것 같은데?’

         

       반복 재생을 듣는 오묘한 기분을 느꼈으나, 애써 그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며 이한은 자신에게 말을 걸었던 교원에게 시선을 줬다.

         

       “저기, 원래 회의가 이런 겁니까?”

       “…음, 사실상 학장님 말씀을 듣는 게 다긴 합니다. 건의사항이나 그런 건 부학장님한테 건의 드리는 편이죠.”

         

       여전히 두려운 기색이 역력한 이름 모를 교원이었으나, 다행스럽게도 상대는 그를 상대로도 성실히 답변해주는 좋은 인격자였다.

         

       “그럼 그냥 가도 되는 겁니까?”

       “으음, 교수급 정도 되는 분들이면 안 오셔도 됩니다. 워낙 연구거리가 많으시니 학장님도 이해하시는 편이죠. 다만, 그런 분이 아니라면 웬만하면 다 와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째서요?”

       “학장님이 전직 재상이지 않습니까. 아직 정정하신 현역 후각 각하이시기도 하고.”

       “…아아.”

         

       납득했다.

       어떤 미친놈이 전직일지언정, 왕국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들던 권력자의 심기를 거스를까.

         

       …근데 입학식 때 심기를 건드린 놈이 있다.

         

       ‘나네?’

         

       으음….

         

       “하하,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학장님은 사소한 일에는 그다지 신경 안 쓰십니다.”

       “교탁 날렸는데요?”

       “…이런 말하기 뭐한데, 3년에 한 번 꼴로 사고가 날 때가 있답니다. 즉, 가끔 소소하게 발생하는 사태란 거지요.”

       “…….”

         

       …선배님들이 계셨구나.

         

       왠지 모를 동질감과 함께 푸근한 미소가 절로 지어진다.

       역시, 화병 나면 뭘 던져야 하는 건 어느 동네를 가나 비슷한 것이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어.

         

       “…그래도 다음에는 조심해 주십시오. 그 교탁 제가 다시 만들었습니다.”

       “아, 그러셨습니까? 고맙군요. 그, …혹시 성함이?”

       “한스 슈미트입니다. 야금학부 교관 겸 야금길드 부장이기도 합니다.”

       “대단한 분이었군.”

       “하하, 별것도 아닌데요, 뭘.”

         

       별것도 아니긴.

       한스란 흔한 이름이라고 해서 절대 무시해선 안 된다.

       야금길드 부장이면 못해도 최상위 장인이란 뜻이니까.

       날붙이 쓰는 놈들 입장에선 어떻게든 인맥을 터놔야 하는 인간 영물이다.

       하여튼 이놈의 아카데미 참 재밌다.

         

       ‘옆자리 사람이 최상위 블랙스미스라니, 끝내주네.’

         

       직장 동료가 장영실인 수준이다.

       이한은 이러한 상황에 설핏 웃으며.

         

       “혹시 아는 사람 중 유리 장인도 있습니까? 최근 집에 식기가 남아나지 않아서 튼튼한 놈이 필요한데.”

       “…특이하신 분이군요. 기사 분들은 저를 만나면 검부터 만들어 달라 하시는데.”

       “검이 검이죠, 뭐. 잘 베이고, 튼튼하면 그만입니다. 괜히 비싼 거 쓰다가 잃어버리거나 부러트리면 아까워서 어째요.”

       “……정말 특이하신 분이군요, 허허.”

         

       항상 맡겨 놓은 듯 검을 달라 시끄러운 인간들과 다른 군상이다.

       그리고 이는 한스에게 좋은 인상으로 다가왔고, 그는 이한이 생각만큼 난폭한 인간이 아니란 생각과 함께.

         

       “그래서, 유리 장인 소개해줍니까, 맙니까?”

       “…나중에 밥이나 한 끼 사주시죠. 그러면 소개시켜드리겠습니다.”

       “얼마든지.”

         

       이한과 한스는 가볍게 주먹을 맞대었다.

         

       나름 인맥 만들기에 성공한 이한이었다.

       그러면서.

         

       “근데 말입니다, 한스 교관님. 제가 지금 당장 궁금한 게 있는데, 하나만 물어봐도 됩니까?”

       “얼마든지 물어보시죠.”

       “아까부터 저를 노려보는 분이 있는데, 저분은 누굽니까?”

         

       이한은 여전히 미소를 잃지 않은 채 정중히 물음을 던졌다.

       이에 한스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가 가리킨 얼굴을 확인한 것이리라.

         

       “…으음. 혹시 저분한테 무슨 실수라도 하신 건 아니지요?”

       “전혀, 오늘 난생 처음 만나는 겁니다.”

       “……그렇다면 피하는 편이 좋을 겁니다.”

       “어째서 말입니까?”

       “저분은 말입니다….”

         

       이후 이어지는 한스의 설명에.

         

       “…그래요.”

         

       이한의 입가에 차가운 조소가 머금어졌고, 한 손으로 코를 막는 시늉을 했다.

         

       ‘어쩐지, 근처에서 구역질나는 악취가 계속 난다 했더니….’

         

       ─하.

         

         

       주문쟁이가 있었구나.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It Was a Romance Fantasy?

환생 30년, 알고 보니 장르가 로판이었다?
Status: Ongoing Author:
30 years after reincarnation, turns out the genre was romance fantasy? ...Really, how? I lived as a magician's slave, experimented on, then as an assassin, mercenary, soldier, and even a knight. This is a story where I'm in a genre all by mysel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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