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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선명한 권기가 아른거린다.

   

    성 씨가 제아무리 자그마한 마을에서 나고 자랐어도, 저게 평범하지 않은 무언가라는 것은 알았다. 아니, 오히려 그랬기에 저것이 특별하다는 것을 알았다. 

   

    그야 사람 손에서 푸른 기운이 넘실거리는 게 평범한 일일 리가 없지 않은가.

   

    “저, 저한테 왜 이러십니까….”

    “너는 나한테 왜 이러세요. 보고만 있어도 사람 기분 잡치게 만드는 데 재능이 있으신 것 같은데?”

    “이건…, 저희 집안의 일입니다.”

    “느그 집안일이고 자시고 새끼야. 어? 내가 기분이 좆같다잖아! 아앙!?”

   

    누가 들어도 훌륭한 사파 무인의 그것이었다.

   

    하지만 이 자리의 그 누구도 서준을 말리려 들지 않았다.

   

    춘봉은 물론이요, 정파의 무인인 왕대산 역시 혀를 차며 눈을 돌렸다.

   

    “어찌 딸을 가진 아비라는 작자가.”

   

    품에 안긴 딸아이를 토닥이는 그의 손등에 핏줄이 불거졌다.

   

    은인과 함께 다니는 여아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은인이 굉장히 아끼는 아이다. 생김새가 닮지 않은 것을 보니 피가 이어진 것 같지는 않은데, 마치 친동생처럼 아끼는 모습이 참으로 신기했다.

   

    표정으로 보아 저 아이에게도 무언가 사정이 있으리라 짐작한 왕대산은 그녀의 머리에 손을 올렸다.

   

    “기운 차리….”

   

    찰싹-

   

    “손 대지 마시지요.”

    “그…, 미안하구나.”

   

    차가운 반응에 머쓱해진 왕대산은 조용히 은인의 행보에 집중했다.

   

   

    *

   

   

    서준은 몸을 벌벌 떠는 성 씨를 보며 고민했다.

   

    ‘이걸 어떻게 해야 될까.’

   

    당장 쳐죽여?

   

    그건 좀 그렇다. 내가 뭐 살인마도 아니고.

   

    좆같다고 다 죽이면 농담이 아니라 진짜 무림공적 되는 것도 한 순간이다.

   

    물론 몰래 죽이면 되는 일이긴 하지만.

   

    “흐음….”

   

    춘 노파와 성이향의 표정을 살피던 서준이 음기가 넘실거리는 손으로 성 씨의 머리를 움켜잡았다.

   

    “끄, 끄아아아악……!!”

   

    엄살은. 그냥 머릿속이 좀 시원해지는 느낌일 텐데.

   

    발작하듯 몸을 떠는 성 씨에게서 손을 뗀 서준이 그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일단 넌 나중에 다시 보자. 그때까지 헛짓거리 하지 말고. 내가 손짓만 하면 네 머리가 펑 터질 테니까. 무슨 말 하는지 알아들어?”

    “예, 예!”

    “그럼 우리 이제 꺼질까요?”

    “예!”

   

    성 씨가 우렁차게 답했다. 하지만 뭔가 영 시원하지가 못 하다.

   

    “에잇!”

   

    콩-

   

    권기에 감싸인 주먹이 성 씨의 머리를 살짝 두드렸다.

   

    “끄아아아악…!!”

   

    성 씨가 머리를 부여잡고 바닥에 쓰러졌다.

   

    이 새끼 엄살 진짜 좆되네. 이러니까 더 때릴 생각도 안 든다.

   

    “가보쇼.”

    “끄윽…. 예, 예….”

   

    서준을 노려보던 성 씨가 시선이 마주치자마자 눈을 푹 깔고 후다닥 도망쳤다.

   

    쯧, 혀를 찬 서준이 굽혔던 허리를 펴며 성이향을 바라보았다.

   

    “저기-.”

    “예, 예….”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혹시 막 아무리 그래도 가족이니까 사랑하고 그런 거 있어요?”

    “은인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셔요….”

    “아니 그냥 물어보는 거예요.”

   

    성이향이 멍한 눈으로 하늘을 올려다보더니, 이내 픽-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글쎄요…. 모르겠네요. 저도 제 마음이 어떤지.”

    “성격 참 좋으시네.”

    “설마요.”

   

    자꾸 피식피식 웃음을 흘리던 성이향은 조용히 인사를 하고 물러났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이 상당히 위태로워 보였다.

   

    “찝찝하네….”

   

    턱을 긁적이는 서준에게 춘봉이 다가왔다.

   

    “뭘 그렇게 신경 써.”

    “아니, 자기는 아닌 척 하네? 지금 네 표정 어떤지 모르지?”

   

    미세하게 말랑함이 덜해진 춘봉이의 볼을 손바닥으로 움켜잡고 마구 흔들자 춘봉이가 아르릉 소리를 낸다.

   

    “하지 맛!”

    “오구 그래써?”

    “갸아악…!”

   

    귀엽기는.

   

    서준이 한숨을 내쉬며 춘 노파에게 물었다.

   

    “생각보다 늦어서 그런데 그냥 여기서 묵어도 돼요?”

    “그러슈. 어차피 남는 게 방인데. 그냥 빈 데 들어가서 주무슈.”

    “감삼다.”

   

    서준이 휘적휘적 걸음을 옮겼다.

   

    “거 아재도 내일 봅시다.”

    “좋은 밤 되시오, 은인.”

    “예, 뭐.”

   

   

    *

   

   

    자연스럽게 같은 방에 들어와 자리를 차지한 춘봉이 바닥에 대 자로 늘어졌다.

   

    처음 봤을 때에 비해 머리카락도 꽤 길어서, 머리를 풀고 저러니 넓게 펼쳐진 머리칼이 무슨 카펫 같다. 

   

    흑백 투톤이라 더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빤히 춘봉이를 쳐다보고 있으니 그녀가 눈을 감았다. 

   

    “나 잔다.”

    “엉. 자라.”

    “나 잔다니까?”

    “자라니까?”

   

    멍청하니 눈을 뜨자 춘봉이가 혀를 차며 눈을 떴다 다시 감았다. 이 자식, 뭐가 하고 싶은 거지?

   

    혹시나 싶어 가까이 다가가 배를 토닥이며 자장가를 불러줬다.

   

    “자장- 자장- 우리- 춘봉이-.”

    “…이 새끼 노래 존나 못 부르네.”

    “아니! 기껏 불러줬더니!”

    “더 해봐. 이 기회에 연습이나 좀 해라.”

   

    무림에서 노래 연습해서 어디다 쓰라고 이러는 걸까. 뭐 음공이라도 익히라는 건가?

   

    아무튼 하라니 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춘봉이가 곤히 잠들었다.

   

    3분도 안 된 것 같은데. 나 사실 자장가에 재능 있나?

   

    혼자 낄낄대다 춘봉이 입가에 붙은 머리칼을 떼어주고 방을 나왔다.

   

    “흠냐….”

   

    방 안을 들여다보니 꿈에서 뭘 먹는지 춘봉이의 입이 꼼실거린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서준이 조용히 문을 닫았다.

   

    “달이 어둡구만.”

   

    구름에 가렸을까?

   

    마당을 어슬렁거리다 지붕 위로 훌쩍 뛰어올랐다.

   

    때마침 구름이 지나갔는지 옅은 달빛이 떨어져내린다. 

   

    서준은 지붕 위에 그대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눈을 감고 내공을 운용하자 혼원신공의 탁한 내공이 전신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직 부족한 점이 많아.’

   

    심법이라는 건 대충 내공을 운용한다고 척척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체내에는 무수한 기혈이 존재하고, 그 경로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진다.

   

    혼원신공의 경우 그 경로 대부분을 황운신공에서 가져왔다.

   

    하지만 심법이 달라지다 보니 그 효율이 꽤 떨어졌고, 가끔씩 무언가 걸리는 듯한 느낌이 들 때도 있었다.

   

    “흐음.”

   

    잠시 고민하던 서준은 일단 매일 하던 대로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스으…. 후우….”

   

    들숨에 자연의 기를 받아들이고, 날숨에 불순물을 뱉어낸다.

   

    질주하는 내공과 뒤섞인 기는 전신의 혈도를 누비며 심상에 물들고, 이내 자연스럽게 혼원신공의 내공이 된다.

   

    눈을 감은 채 그 탁한 내공을 들여다보던 서준이 과감하게 경로 하나를 뒤바꾸었다.

   

    “쿨럭…!”

   

    내상과 함께 입에서 피가 쏟아진다. 

   

    일단 이 길이 아닌 건 알겠다.

   

    자연스럽게 아무것도 안 한 척 경로를 원래대로 되돌리니 서서히 속이 편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혹시나 했는데.’

   

    이제 확신이 든다. 내 몸은 비정상적으로 회복이 빠르다. 

   

    전에도 빠르다는 느낌은 있었지만 지금은 더 빨라졌다.

   

    이유? 모른다. 알 리가 있나.

   

    다만 한 가지 추측할 수 있는 것은 아마 기氣의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지금의 몸과 이전 세계에서의 몸 사이에 차이라고는 그것밖에 없으니까.

   

    애초에 뭔가 잘 모르겠을 때는 기氣 이 새끼를 찍으면 대충 맞는다. 

   

    나 같은 경우 특히 더 그렇다. 고금제일의 재능에는 스스로도 파악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 의외의 효능을 낼 때가 있는 것이다.

   

    ‘아무튼 좋은 일이니까.’

   

    애초에 회복이 빠르지 않았다면 첫날 죽지 않았을까? 내장이 튀어나왔는데 살아있는 게 더 신기하다.

   

    물론 사람의 몸에 대해 어느 정도 지식이 있는 춘봉이 덕도 있기야 하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지금 중요한 건 이게 아니다.

   

    스스로의 몸이 회복력이 뛰어나다는 사실을 깨달았으면 뭘 해야 할까?

   

    대부분은 같은 결론을 내릴 거다.

   

    ‘무한 리트라이.’

   

    뒤지지 않을 것 같은 선에서 될 때까지 반복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뭐라도 이룬다. 당연한 일이잖은가. 

   

    피? 좀 토해도 안 죽는다.

   

    통증? 좆같긴 한데 나름 참을 만하다.

   

    주화입마? 안 오게 잘 하면 된다.

   

    여기서 선만 안 넘고 알아서 센스 있게 잘 하면 경지가 오른다니까? 이걸 참아?

   

    “뒤졌다 오늘 그냥.”

   

    그렇게 날이 새도록 혼원신공을 운용했다.

   

   

    *

   

   

    “워메…. 뒤질 뻔했네.”

   

    새삼 깨달음을 얻었다. 자기 몸으로 하는 생체 실험은 그냥 미친짓이다.

   

    다음부터 이런 미친짓은 조금 자제할 필요가 있을 것 같았다.

   

    근데 보통 하면 안 되는 짓일수록 리턴이 큰 경향이 있다.

   

    이 경우가 그렇다.

   

    ‘개쩌는데.’

   

    도도한 내공의 흐름이 선명하게 느껴진다.

   

    하룻밤 사이 천지개벽 수준으로 뒤바뀐 혼원신공은 체내를 흐르는 느낌부터가 달랐다.

   

    다른 건 다 제쳐두더라도 일단 최적화부터가 차원이 달라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당연히 움직이면서 운기를 하는 것도 조금 더 편해졌다.

   

    그러면 결론이 뭐다? 어지간하면 내공이 부족할 일은 없다.

   

    ‘나 혼자 내공 무한. 야무지구만.’

   

    사실 무한까지는 아니지만 아무렴 어떠랴. 기분만 좋으면 장땡이지.

   

    이러면 무공에 대한 방향성을 다시 생각해볼 필요가 있었다.

   

    내공이 많으면 그걸 써먹을 생각을 해야지.

   

    한 번에 내공 소모가 큰 초식 같은 것들이라도 만들어야 되나?

   

    “하암…. 너 지붕 위에서 뭐…. 하아…, 씨발 진짜. 야! 너 또 무슨 짓 했어 이 미친 새끼야!”

   

    고민하던 서준은 춘봉이의 아침 인사에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여, 일어났구만 금춘봉. 오늘 이 오빠는 새로이 태어났단다.”

    “아니 지랄 좀 하지 말고 제발! 너 옷에 피 뭔데 그거!”

    “엉?”

   

    슬쩍 고개를 내렸다.

   

    “오….”

   

    분명 검은색 무복인데, 그 검은색 옷감 위로도 피가 흥건한 게 티가 난다.

   

    그래도 사람이 이 만큼 피를 쏟아도 안 죽는구나? 이건 또 새로운 깨달음이다.

   

    “수련 좀 했지.”

    “아니…! 아니이…! 뭔 수련을 하면…! 아 씨발 진짜!”

    

    무섭게 왜 그러니.

   

    슬쩍 지붕 위에서 내려와 방으로 들어가려는 찰나 춘봉이에게 뒷덜미가 잡혔다.

   

    “켁…!”

    “너 이리 와. 몸 멀쩡한 건 맞아?”

    “멀쩡한데요…?”

    “맨날 개소리만 해대니까 말을 믿을 수가 있어야지.”

   

    춘봉이가 이를 갈며 작은 손으로 몸 이곳저곳을 만져댔다.

   

    “으하핳…! 야! 간지러워!”

    “가만히 좀 있어!”

    “아앗, 거기는!”

    “…안 닥쳐!? 이상한 데 아니잖아!”

   

    아무튼 춘봉 선생의 세밀한 검사에도 이상은 발견되지 않았다.

   

    “…아침부터 식겁했네 진짜.”

   

    그리고 춘봉이가 귀여웠다.

   

   

    *

   

   

    춘봉이와 잠시 노닥거리고 있으니 성이향이 단정한 차림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그녀를 발견한 서준이 손을 흔들자 그녀가 조신하게 허리를 숙였다.

   

    “안녕히 주무셨어요?”

    “아, 네. 근데 어디 가요?”

    “아….”

   

    성이향이 살풋 웃었다. 기계적으로 올라간 입꼬리와 달리 눈가가 무표정해 묘하게 기괴했다.

   

    “집으로 돌아가야지요. 달리 돌아갈 곳도 없는 걸요.”

    “아하.”

   

    집으로 돌아간다라. 역시 마음에 걸린다.

   

    기왕 끼어든 거 어느 정도 해결을 하고 빠져야 속이 시원할 것 같았다.

   

    “흠.”

   

    마침 좋은 생각도 났다. 집 말고 돌아갈 곳이 없다면 돌아갈 곳을 만들면 되는 거 아닌가?

   

    서준의 입꼬리가 삐죽 올라갔다.

   

    “거 잠깐 기다려봐요.”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소제목 짓는 게 제일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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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Martial Arts Ain’t That Big of a Deal

무공 뭐 별거 없더라
Score 7.8
Status: Ongoing Type: Author: Released: 2024 Native Language: Korean
I fell into a phony martial world. But they say martial arts are so hard? Hmm… is that all there is to 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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