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witch Mode

EP.33

   에벨아스크와 함께 경기장을 빠져나온 크라슈는 팔을 매만졌다.

   부운 느낌이 들긴 하다만 결딴이 난 건 아니다.

     

   ‘포션 바르고 며칠 있으면 낫겠군.’

     

   가기 전에 연금술 상점이나 들러야겠다고 생각한 크라슈는 옆을 보았다.

   거기에는 똥 마려운 강아지처럼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에벨아스크가 있었다.

     

   그러고 보니 깜빡했다.

     

   크라슈는 주머니를 뒤져 그녀의 심장을 꺼냈다.

     

   “받아라.”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에벨아스크에게 그 심장을 던져 주었다.

     

   “어?”

     

   심장을 받은 에벨아스크의 얼굴에 당혹감이 서렸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줄 줄은 몰랐다는 반응이었다.

     

   “……괜찮겠어?”

     

   그녀는 세계 침식자다.

   황궁에서 직접 이용해 먹을 만큼 가치가 무궁무진한 네크로맨서.

     

   그런 자신을 이렇게 쉽게 놔줘도 괜찮겠냐고 질문하자 크라슈는 어깨를 으쓱였다.

     

   “거래했잖냐.”

     

   크라슈는 에벨아스크의 성격을 안다.

   저 여자는 남에게 피해 끼치는 것보다 그냥 어디 숨어 사는 걸 더 좋아하는 여자였다.

     

   그런 그녀를 심장을 이용해 다뤄봤자 또 다른 귀찮은 문제가 생길 뿐이었다.

     

   “그것보다 내가 챙기란 건 챙겼냐.”

   “아, 으응, 금룡초 말이지.”

     

   에벨아스크는 주머니를 뒤적거려 금룡초를 꺼내 들었다.

   크라슈는 냉큼 그 금룡초를 받았다.

     

   이거 하나 구하려고 얼마나 고생했는지.

     

   ‘이제 남은 건 돌아가는 일뿐이군.’

     

   지긋지긋한 제국에는 더 있고 싶은 마음 없었기에 크라슈는 몸을 돌렸다.

     

   “그럼 난 간다.”

   “어, 아, 어어?”

     

   그러자 에벨아스크는 당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이내 크라슈의 뒤를 따라오기 시작했다.

     

   “왜 따라오냐?”

     

   몇 분 뒤 크라슈는 못마땅한 얼굴로 에벨아스크를 돌아보았다.

   처음에는 가는 길이 같은가 했더니 그녀는 제국 수도 바깥 지점까지 따라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그치만, 난 이제 제국에서 쫓기는 몸인걸. 일단 어디든 나가야 하지 않겠어?”

     

   그야, 그렇긴 하다.

   황궁이 에벨아스크를 가만둘 리가 없을 테니까.

     

   ‘게다가 시그린이라면 메리를 잃을 바에야 차라리 방향을 에벨아스크가 모든 걸 작당했다고 돌리겠지. 메리는 거기에 이용당했다는 걸로.’

     

   여론이 그렇게 쉽게 흘러가지는 않겠지만, 어떻게든 사형은 면할 거다.

   메리는 멍청하지만, 그 몸뚱이와 실력만큼은 진짜다.

     

   지금은 저런 꼴이라도 세계 침식에서는 메리만큼 강한 녀석은 없었다.

     

   ‘돌대가리라 몸도 돌이니까.’

     

   충성심 높은 고기 방패를 잃고 싶지는 않겠지.

     

   그것까지는 크라슈도 막을 수 없었다.

     

   ‘대신.’

     

   크라슈의 눈이 선명하게 빛났다.

   그 과정에서 메리의 자존감은 그야말로 개박살이 날 거다.

     

   그 뒤는 말할 것도 없다.

   크라슈의 손에 쥐어질 결과가 말해줄 테니까.

     

   “그래, 그거야 이해는 하겠는데. 그래서 제국 밖으로 나갈 때까지 따라오겠다. 이거냐?”

   “넌 어디로 갈 건데.”

     

   크라슈가 제국 사람이 아닌 것을 이미 알고 있는 그녀가 질문했다.

   그런 그녀의 질문에 크라슈는 딱히 숨길 것도 없었다.

     

   “스타론.”

   “스타론? 거기, 발하임이 있잖아. 엄청 위험한데.”

   “너한테나 위험하겠지.”

   “왜? 너도 세계 침식자잖아.”

     

   하지만 이어진 말을 들은 순간 크라슈가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발하임은 무시하면 안 돼. 걔들은 무시무시하다고. 산 채로 우리 머리를 집어삼켜서 뱃속에 넣을지도 몰라.”

     

   그녀의 머릿속에 발하임의 이미지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모르겠다만 크라슈는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잠깐만, 내가 세계 침식자라고?”

   “으응? 맞잖아. 세계 침식의 힘의 본질을 사용하고, 일부러 약하게 줄인 거 같긴 한데. 12호로 볼 때는 몰랐지만 직접 보면 나도 다 알아. 세계 침식자나 세계 침식 힘을 직접 다뤄본 종이 아니면 눈치 못 챌 거 같긴 하지만 말이야.”

     

   크라슈의 얼굴이 굳었다.

   극혈침독으로 흡수한 세계 침식의 힘은 설마하니 세계 침식자들에게 동류로 보이게 하는 거였나?

     

   이 부분은 상상도 못 했던 크라슈가 크림슨가든을 돌아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날개를 부리로 고르다가 이내 말했다.

     

   “몰랐느냐? 당연히 알 줄 알았건만.”

   “히익, 까, 까마귀가 말해?!”

     

   그러고 보니 크림슨가든이 에벨아스크 앞에서 말한 적 없었나.

     

   ‘이거, 썩 좋은 이야기는 아닌데.’

     

   크라슈는 팔짱을 낀 채 아주 잠시 생각에 잠겼다.

   세계 침식자와 동류로 느껴지는 것은 그들에게 숨어들 수 있다는 장점이 될 수도 있겠지만 단점도 명확하다.

     

   크라슈가 사람 사이에 숨어든다 한들 그들의 눈에 자신이 선명하게 느껴진다는 소리일 테니까.

   잘못하면 노려질 수도 있는 것이다.

     

   세계 침식자는 서로서로 동료가 아니라 개인이니까.

     

   ‘에벨아스크가 왜 내 말을 쉽게 믿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되네.’

     

   같은 세계 침식자니까.

   특수한 능력으로 자기 심장을 되찾아 줄 거라 바로 납득한 거겠지.

     

   세계 침식자 중에서는 특이한 능력을 지닌 녀석들이 무척이나 많았으니 말이다.

   크라슈는 잠시 고민하다 이내 털어 내었다.

     

   ‘세계 침식은 어떤 식으로든 흡수해야 해. 위험 리스크는 애초에 원래도 있었어.’

     

   그나마 다행이라는 건 일반 사람들 눈에는 세계 침식의 힘이 느껴지지 않을 거란 거다.

     

   “크림슨가든, 흑염은 다른 사람들 눈에 어떻게 보일까.”

   “불길한 새까만 불길로 보이겠지. 네 흑염은 이그니스 탓에 바깥으로 나가는 세계 침식의 힘을 정화해버리고 있으니 말이다.”

     

   그거참, 반가운 이야기였다.

   흑염을 쓴다 해서 불길하게 보일지언정 세계 침식자로 오해받지는 않는다는 소리였으니까.

     

   “애초에 말이다. 세계 침식자나 세계 침식의 종이 아니고서야 세계 침식의 힘 자체를 구분할 수 있는 녀석들은 이 세상에 몇 없다. 네가 내 종에 새겨지는 별점을 보는 것마냥 말이다.”

     

   그건 크라슈도 긍정했다.

     

   과거 크림슨가든의 종을 알아내는 건 아서나 혹은 몇몇 특이한 눈과 감을 지닌 녀석들이 할 수 있었을 뿐.

   대부분은 그녀의 종의 존재조차 눈치채지 못했었다.

     

   “게다가 크라슈, 너는 근본이 우리와는 다르다. 우리는 세계 침식 자체고, 넌 오러에 세계 침식을 섞은 거니까. 세계 침식의 힘 자체가 희석되어 있으니, 거의 다 저주에 걸렸다고 생각하겠지.”

     

   하긴, 저주도 세계 침식과 같은 분류긴 했다.

   남들 눈에 크라슈의 흑염이나 세계 침식의 힘을 써도 그 기운을 저주처럼 느끼리라.

     

   ‘그럼 남들 눈에 나는 저주를 짊어진 채 싸우는 것처럼 보이려나.’

     

   예전이랑 별로 다를 바 없구만?

     

   그런 거라면야 크라슈도 조금 안심했다.

   세계 침식자로 몰려서 쫓기는 건 사양이니 말이다.

     

   그 순간 크림슨가든은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말은 세계 침식자로서도 너는 반푼이라는 소리지.”

     

   크라슈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크림슨가든을 보았다.

   정상적인 세계 침식자는 이쪽이 사양이다.

     

   어쨌든 자신은 지금 세계 침식자와 인간 사이에 발을 걸치고 있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세계 침식을 더 흡수해도 티 날 건 없다. 이 말이지?”

   “저주가 더 강하게, 혹은 많이 걸렸구나 생각하겠지.”

     

   크라슈는 납득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메리와 한 번 부딪치고 그걸 더 절실히 깨달았다.

   아무리 자신이 수련한다 한들 그녀와 자신은 동일선상에 설 수 없다.

     

   모든 것을 제 손에 쥐어야만 크라슈는 그녀를 넘을 수 있었다.

     

   위험 부담이야 애저녁에 지지 않았던가.

   인제 와서 두려운 것도 없었다.

     

   “세계 침식자가 아니라고? 어어? 왜?”

     

   그러는 사이 크라슈와 크림슨가든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고 있던 에벨아스크가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그에 따라 그녀의 거대한 상체가 덩달아 흔들리자 크림슨가든이 한심한 눈초리로 그녀를 보았다.

     

   “가슴이 커지면 머리로 갈 영양분이 다 거기로 가느냐? 쯧쯧, 세계 침식자라고 살아남은 것이 이리 멍청해서야.”

   “크, 크라드, 얘 너무해. 왜 이렇게 막말해. 나 화나려고 하는데?”

     

   어느새 투닥거리고 있는 한 마리와 한 명을 보고 크라슈는 한가지 에벨아스크에게 말하지 않았던 게 떠올랐다.

     

   “에벨아스크, 내 이름은 크라드가 아니다.”

     

   크라슈는 자신의 이름을 정정하고, 말했다.

     

   “난 크라슈 발하임.”

     

   그리고 그녀의 얼굴이 멍청하게 변했다.

     

   “네가 말한 그 발하임의 직계 중 막내다.”

     

   그리고 제국의 도시 구석에서 여성의 찢어지는 비명이 울려 퍼졌다.

     

     

   * * *

     

     

   제국의 지하 감옥.

   사형 급 죄수들만 가둬 둔다는 무쇠옥의 감옥 안쪽.

     

   “이, 멍청한, 그 성질머리를 내가 고치라고 몇 번이나 말했었죠!”

     

   푸른 머리카락의 흰색 제복을 입은 여성이 소리를 내치고 있었다.

     

   “두 마리 토끼를 죄다 놓친 것도 모자라 뭐요? 황족 시해?! 제정신, 제정신이에요? 내가 몇 번이나 말했죠! 당신은 생각하지 말라고! 그저 내 명령과 아서 님의 명령만 들으면 된다고!”

     

   그녀의 정체는 다름 아닌 3황녀 시그린 에파니아였다.

   제국의 꽃이라는 별명답게 아름다운 얼굴을 지닌 그녀였지만 그런 그녀의 얼굴은 새빨갛게 물들어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왜, 왜, 왜, 하필, 하필 이때 생각이란 걸 가져서 상황을 이 꼴로 만들어요? 생각하지 말라는 건 변수가 생기면 아무것도 하지 말란 소리였다고요!”

   “…….”

     

   그런 그녀의 앞에서 무릎 꿇은 채 묵묵히 듣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메리 다이아나였다.

   앞으로 내민 손에는 거대하고 새까만 수갑이 채워져 있었고, 그녀의 옷과 몸도 엉망이었다.

     

   중간에 황족 시해에 관한 심문을 당해 이리저리 휘둘린 결과였다.

     

   아무리 제국에서 손가락 안에 드는 다이아나 가문의 여식이라 할지라도 황족 시해는 중죄.

   그녀라 해서 고된 심문을 피해 나갈 수는 없었다.

     

   그 탓에 흰색의 피부에는 여기저기 상처 자국과 흉터가 남아 있었고, 옷들은 거의 찢어지다시피 해 그녀의 나신을 거의 다 드러내고 있었다.

     

   사실 발가벗겨지지 않은 것만으로 다행이었다.

   무쇠옥은 옷가지들을 죄다 벌거벗기는 게 절차지만 그녀의 나이와 신분을 참작해 겨우 눈 감아 준 것이다.

     

   “기껏 아서 님을 찾기 전에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나아가실 수 있게 길을 만들려고 했는데. 그걸 죄다 망쳐버리고.”

     

   시그린은 화를 참을 수가 없다는 듯 바닥을 콱콱 짓밟았다.

   거기에 관해서도 메리는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당신을 들이는 걸 허락한 것도 다 아서 님의 부탁이었어요! 당신은 다른 건 몰라도 그 창만큼은 우수하니까! 창공의 세대 속에서 최전방에 섰음에도 마지막까지 죽지 않고, 버틴 정신력만큼은 나도 인정했으니까!”

     

   메리 다이아나의 별칭은 신창, 그리고 그녀의 또 다른 이명은 불굴이었다.

     

   절대 꺾이지 않는 불굴.

     

   크라슈의 눈에 보이기에는 마다해야 할 위험에 기어코 머리를 들이박는 들소 같은 여자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때로는 그것이 곧 창공의 세대가 무너지지 않고 사기를 끌어 올리게 하는 불굴이기 되기도 했다.

     

   절망적인 상황에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세계 침식을 향해 달려드는 모습만큼은 모두가 인정한 용맹함이었으니까.

     

   그러니 메리 다이아나는 늘 선두에 서 있었다.

   최전방에서 항상 창을 휘둘렀고, 피투성이가 된 꼴로도 기어코 일어나 주인의 목에 창을 박아 넣었다.

     

   실제로 그녀가 단신으로 막아낸 세계 침식만 해도 수를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그 업적은 확실히 시그린도 인정하는 바였다.

     

   신이 빚었다고 해도 좋아질 정도인 천무지체(天武肢體)를 타고난 저 육체만큼은 인간의 영역을 아득히 넘어 완성된 육체였으니까.

     

   오죽하면 얼마 전에 심문으로 당한 상처가 어느새 자연적으로 나아가고 있겠는가.

     

   타고난 육체만큼은 그녀는 세계 제일이었다.

   그러니 그녀는 신창으로 불렸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세계 침식에서 한한 이야기.

   지금은 세계 침식에서 필요한 무력보다도 정치가 더 중요한 시기였다.

     

   그녀의 짧은 사고는 정치와는 조금도 어울리지 않았다.

     

   “신은 왜 주되, 한 가지만 주셔서…….”

     

   시그린은 통탄하듯 깊게 숨을 내쉬었다.

     

   당장 그녀를 사형당하든 말든 내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메리는 여기서 잃을 인재가 아니다.

   저 무식하게 괴물 같은 몸뚱아리는 세계 침식을 상대로 가장 든든한 고기 방패가 되어 줘야 한다.

     

   아서도 그리 말하지 않았는가.

   그런 메리를 다룰 수 있는 자신이야말로 가장 아름답다고.

     

   시그린은 메리를 돌아보았다.

   그녀를 보는 것만으로 질끈 하는 통증과 함께 짜증이 몰려왔지만, 그녀는 애써 참았다.

     

   메리는 몰라도 자신은 그렇게 멍청하지 않다.

   시즐리 그년만큼은 아니어도 시그린도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쯤은 볼 수 있다.

     

   ‘이번 계획은 분명 변수가 거의 없었어.’

     

   기껏해야 시즐리가 어쩌다 자신이 보지 못한 곳을 발견하고, 무언가 눈치채는 거까지가 변수일 뿐.

   시즐리는 어떻게 해서든 죽을 운명이었다.

     

   그녀라고 해서 세라가 시체가 되어 자기를 죽일 거라고는 생각 못 했을 테니까.

     

   그러니 메리에게도 맡길 수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시킨 것만큼은 충실하게 이행하니까.

     

   “메리, 당신은 세라를 분명 죽였다고 했죠.”

   “……예, 확실히 제 손으로 죽였습니다.”

     

   메리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아니, 정확하게는 거짓말을 할 줄 모른다.

   특히 시그린 앞에서라면 그녀는 절대로 거짓을 담지 않는다.

     

   그녀가 죽였다면 정말로 죽인 게 맞을 거다.

   메리의 창은 세라가 막을 수준이 아니니까.

     

   ‘그렇다면 정말 죽였다는 건데.’

     

   그녀가 왜 살아 있는 걸까.

   메리의 말로는 에벨아스크가 배신했다고 했다.

     

   ‘그 등신이 배신이라고?’

     

   시그린은 콧방귀를 내쉬었다.

   에벨아스크는 그런 간담 있는 녀석이 아니다.

     

   자기 눈만 마주쳐도 벌벌 떨며 담요에 숨던 여자는 눈앞에서 심장을 쥐면 죽는다고 우는 녀석이다.

     

   그런 여자가 배신해?

   웃기는 소리 마라.

     

   ‘뭔가 있어.’

     

   시그린의 눈이 게슴츠레 떠졌다.

     

   이번 일.

   자신이 모르는 변수가 발생했다.

     

   “주머니에 있던 심장이 갑자기 사라졌다고 했죠.”

   “분명히 이전까지 확실히 쥐고 있었습니다. 명령도 내렸었고요.”

     

   시그린은 갸름한 턱을 매만지다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곤 알겠다는 듯 몸을 돌렸다.

     

   “알았어요. 당신은 거기 계세요.”

   “네? 시, 시그린 님, 감옥에 계속 있으라고요?”

   “당연한 거 아니에요? 황족 시해하려 했는데. 당장 사형 집행 안 되는 게 이상한 수준이에요! 제가 뒤에서 뭘해서 가까스로 사형 집행 되는 걸 막은 줄 알기나 해요?”

     

   메리의 얼굴이 창백하게 변했다.

     

   “당신은 눈 앞에서 황실 권위에 직접 도전한 거라고요. 제가 이래저래 움직이고, 에벨아스크가 독단적으로 사건을 벌인 일로 악착같이 밀어붙여 망정이지. 나원. 당신도 에벨아스크와 흑룡 기사단 부단장에게 계략과 협박에 넘어가 한 걸로 안 바꿨으면 부단장이랑 같이 즉시 사형이었어요.”

   

   그녀는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시폰 오라버니도 같이 엮어서 세계 침식자에게 속아 넘어가 버린 비운의 어린 여식과 2황자라는 게 통해서 다행이지. 원래는 황족 시해에 황실 권한 도전으로 즉결 처형 당할 판이었다고요.”

   

   2황자도 시즐리 살해 혐의가 없지는 않다.

   그는 밤 까마귀를 손에 쥐고 있었다고, 대놓고 소문을 내고 다녔으니까.

     

   덕분에 그도 적극적으로 자신은 에벨아스크에게 이용 당했을 뿐이고, 전부 에벨아스크가 나쁜 것이라 주장하고 있었다.

   시그린은 그런 그의 주장에 힘을 실어 주며 메리도 같이 끼워 팔고 있었던 것이다.

   

   간신히 그 부분이 조금은 먹혀 들어가 즉결 처형까지는 막아진 거지.

   만약 조금만 삐끗했다면 메리는 지금 이 자리에 없었을 것이다.

   

   제국의 뛰어난 두뇌들은 그 주장의 모순과 지금 상황의 허점을 눈치채겠지만, 늘 중립을 취하는 그들도 결국에는 눈 감을 거다.

   그들도 이것은 황실 권한의 도전 같은 게 아니라 본질적으로는 황위 계승을 두고, 다툼이라는 것을 알 테니까 말이다.

   

   황제의 명령이 직접 있지 않은 이상 상황이 흘러가는 대로 두고 보리라.

     

   물론 시그린도 이번 일로 출혈을 감수해야 했다.

   1황자는 메리가 시그린의 편이란 걸 진작 알고 있었으니 어떻게든 물어뜯을 것이다.

     

   ‘하아, 이걸로 과연 몇 개나 뜯어 먹힐지. 처형은 간신히 피하겠지만, 그 뒤가 더 문제야.’

     

   1황자는 자신을 직접 노린 것이 아니니 대놓고 물어뜯지는 않을 거다.

     

   하지만 그 대신에 2황자의 세력을 아주 열심히 삼키고 있을 거다.

   1황자에게 있어서 지금 상황은 사실상 이번 일로 계승권이 의미 없어진 2황자의 세력을 싸움 없이 흡수할 수 있는 기회였으니까.

     

   그걸 가만히 두고 봐야 하는 시그린 입장에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게다가 메리의 처우도 문제였다.

     

   최강의 창이라는 칭호는 당연히 물 건너갔고, 제국에서 받을 혜택도 죄다 끊길 것이다.

   오죽하면 다이아나 가문에서 그녀를 의절까지 생각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다.

   

   다이아나 가문 입장에서 황족 권한에 도전한 멍청이를 품고 있다간 자신들 삼대가 멸하게 생겼으니까.

   

   그러니 시그린은 지금 꺼낼 수 있는 수단은 다 꺼내 그걸 막고 있는 것이었다.

   메리가 한 일이 황국 권위에 도전한 것만큼은 아닌 것으로 애써 포장해서 말이다.

   

   덕분에 메리는 이제 제국은 물론 가문에서까지 버려진 여식 취급이었다.

   동정 여론을 살살 굴린다면 어떻게 제국에 남겨둘 수는 있겠다만, 앞으로의 생활이 힘들어질 거란 건 당연지사였다.

     

   ‘하긴, 사형을 안 당하는 게 어디냐만은.’

     

   시즐리가 황위 계승과 황족의 권한이 약한, 버려진 라인이라 망정이지.

   만약, 1황자나 하다못해 2황자를 직접 노렸다면 말할 것도 없이 진짜 즉시 사형이었다.

     

   그녀는 한심하다는 듯이 메리를 노려보았다.

   그러자 메리는 기죽은 표정으로 어깨를 움츠러트렸다.

   

   “평생 갇힐 거 어떻게든 상황 바꿔 빼내 줄 테니까. 거기서 기다리세요.”

   “시그린 님, 그럼 아……카데미는…….”

     

   메리는 어느새 울먹이는 표정으로 시그린에게 물었다.

   아카데미에 간다면 아서를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것 하나로 지금까지 버텨왔던 그녀였다.

   그러니 무슨 일이 있어도 라헬른 아카데미만큼은 꼭 들어가고 싶었다.

     

   어서 아서를 보고, 그가 상냥하게 자신에게 웃어주며 쓰다듬어 주는 손길을 느끼고 싶었다.

     

   “하하…….”

     

   그러나 그런 메리를 보며 시그린은 어이가 없어 실소를 내뱉었다.

   설마 지금 저 입에서 아카데미가 나올 거라고는 조금도 생각 못했다.

    

   “이번 년은 무리겠죠. 내년도, 솔직히 모르겠네요. 감옥 기간이 얼마나 길어질지 모르니까요. 저나 아서 님이 황위에 오를 때까지 못 나올지도 모르죠.”

   “무, 무리라니. 아카데미, 아카데미만큼은 가고 싶습니다! 시그린 님, 죄송합니다! 제가, 제가 전부 잘못했으니 제발 아카데미만큼은!”

   “메리.”

     

   시그린이 메리의 이름을 다시 부르자 그녀는 땅에 엎드린 채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런 메리를 보며 시그린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당장에 저 머리를 걷어차서 짓밟아 버리고 싶었지만, 아서가 선택한 여자다.

   다른 이라면 몰라도 그의 여자에게 그런 상스러운 짓을 할 수는 없었다.

     

   아서에게만큼은 교양 있는 여자로 남고 싶었으니까.

     

   “……아카데미에 유배를 보내는 쪽으로 바꿔보도록 할게요. 고작해야 이제 16살이고, 그저 세계 침식자에게 휘둘린 어린 여식에게 가혹하니 차라리 그 재능만큼은 높이 사 제국에 이롭게 유배를 보내자. 이렇게 여론을 만들면 어떻게든 되긴 하겠죠.”

     

   솔직히 장담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그래도 메리가 그냥 무너지게 두는 것보다야 대충 희망 하나 정도는 쥐게 해두는 게 좋을지도 몰랐다.

     

   “아, 아아, 감사합니다. 시그린 님, 정말 감사합니다.”

     

   메리가 철장에 달라붙어 눈물을 흩뿌리며 말했다.

   무쇠옥이라는 강철보다 무겁고 단단한 철장이었건만 살짝 휘어지는 걸 보니 그 경악스러운 힘이 다시금 체감됐다.

     

   그래, 저 육체 하나 때문에 참는다.

     

   “올해는 불가능해요. 그 시간 안에 감옥을 나올 수 있을 리 없으니까. 내년은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 그때까지 절대 아무 짓도 하지 말고 얌전히 계세요.”

     

   시그린은 눈물을 쏟으며 알겠다고 대답하는 그녀를 두고 몸을 돌렸다.

   머릿속에 대체 이번에 발생한 변수가 무엇인가에 관해 계속해서 머리를 굴리며 말이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육체 원툴

삽화 및 일러스트를 총정리해서 인스타에 업로드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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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I Became A Thief Who Steals Overpowered Skills

Became a Munchkin skill thief meonchikin seukil dodug-i doeeossda 먼치킨 스킬 도둑이 되었다
Score 4.0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I used to think that my stealing skill only worked on what was worthless to a person.

But just before I died, I realized that I could also steal the skills.

So I stole the regres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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