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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이즈리가 휴가에서 복귀하고 며칠 뒤. S급 승급 시험의 날이 다가왔다.

1년에 한 번, 튜토리얼 훈련장처럼 죽어도 부활하는 녹색지대에서. 상위 모험가들의 진심 무력 충돌을 구경 가능한, 대륙의 손에 꼽는 빅 이벤트.

이 시즌이 다가오면 남녀노소, 신분 가릴 것 없이. 모두 하나 되어 여기에 주목한다. 분명 그랬을 텐데.

“뭔가, 많이 썰렁하네···?”

예선전을 시작하기도 전에 참가자 수가 눈대중으로 세어지는 건 기본에, 구경꾼이나 이를 노리고 온 장사치들도 마을 장터만 못하였다.

내가 참가할 당시보다야 물론 화력이 줄었을 거라 예상은 했다. 따지고 보면 올림픽에 외계인들이 낀 격이었으니까.

그래도 이건, 이건 좀 많이 심각하잖아. 최근에 모험가 관련 행사도 벌인 마당에. 설마 여기도 저출산으로 골머리를 썩이고 있나?

“다 기사단 쪽으로 몰려가서, 모험가에 인재가 부족해.”

“···어쩐지. 뭔가 계기라도 있었어?”

“응. 용사 후보 신탁을 받은 이즈리 언니가 황로가 되면서 기사단 지원율이 엄청 늘었대.”

“아하···.”

용사 후보라는 말에 절로 납득이 갔다.

가뜩이나 모험가의 장점이 자유와 낭만인데, 용사 후보라는 거대한 낭만 덩어리마저 기사단으로 흘러간 셈이니.

거기다 현 기사단은 황로가 넷이나 되는 역대 최고 황금기. 그쪽으로 인원이 몰리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모험가님들, 슬슬 예선전 시작할게요. 준비해 주세요.”

마리아의 설명에 더해, 예비군 통솔하는 상병보다 맥아리가 없는 진행요원을 보며. 마침 잘 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모험가라는 직업의 전망까지 신경 쓸 건 또 아니라지만. 이번 시험은 100여 년 만에, 아주 화려하게 이목을 집중시킬 것이다.

“종목은 어떤 걸로 하시겠나요.”

“8번이요.”

* * *

호출당한 지 어언 1시간째. 샐리는 주인 없는 방에서, 내내 시계 초침 소리만을 듣고 있었다.

‘이렇게 늦게 올 거면 뭐 하러 이리 일찍 부른 거람···.’

속으론 당사자에게 전하지도 못할 불만을 곱씹는다.

서비스직을 오래 종사해 온 그녀로선 이제 실수로 입 밖에 내뱉을 걱정조차 안 드는. 삶의 일부나 다름없는 행위였다.

끼이익-

그리고 마침내. 정적을 깨고 한 사내가 당도했다.

뒤를 돌아본 샐리는 그대로 입을 쩍 하고 벌리게 되었다.

‘왜 문을 저리 크게 만들었나 싶더라니···’

시선에 닿은 건 샐리가 족히 5명은 들어갈 것 같은 거구의 남성.

이에 실없는 감상을 속삭이다가도, 엄습해 오는 압박감에 순간 의식이 멈추었다.

“늦어서 미안하군.”

‘이 사람이···현시대 모험가들의 정점.’

제도의 모험가 길드 마스터, 총지부장 소버린.

자신을 부른 이가 어떤 인물인지를 비로소 실감하며. 샐리는 맞은편 소파에 앉는 그를 따라 시선을 움직였다.

“샐리, 라고 했나. 여펨아을 지부의 선임 접수원인.”

“네, 네···샐리라고 해요···합니다.”

“마음 편히 먹게. 그저 할 얘기가 있어서 부른 것뿐이니.”

당신이랑은 대화가 아니라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부담돼 죽겠는데요. 샐리는 이 말 또한 목구멍 선에서 사수하였다.

이게 뭐란 말인가. 본인이 모시는 그 꼰대도 같은 길드 마스터일진대. 위압감으로나 분위기로나, 이토록 차이가 난다니.

어쩌면 혹시 그도 이런 발톱을 숨긴 걸까. 잡념으로 정신이나마 탈출을 시도하는 샐리였다.

“샐리, 자네가 이번 예선전 종목으로 8번을 선택했다지.”

“네···.”

그러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는 법.

소버린의 엄중한 한마디가 샐리의 정신을 재차 이곳으로 불러냈다.

“8번이 정확히 어떤 종목인지는 알고 있나.”

“···주어진 단검으로, 마룡의 가슴을 찌르는 걸로 압니다.”

알다마다. 이맘때면 되면 선후배 가릴 것 없이, 적어도 한 번은 해당 주제로 이야기가 오간다.

올해는 이게 선택될지 말지부터 해서, 불붙은 해에는 내기까지 성행한다.

이런 식으로 입에서 입을 통해, 장장 수십 년 넘게 악명을 떨쳐온 종목이다. 환경상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딱 표면만 알고 있군.”

이를 두고 소버린은 단언했다. 아니, 너는 사실 잘 모르고 있다고.

그런데도 일을 벌인 것이라 꾸짖는 말이었다.

“자네는 그러면 드래곤의 강함이 어느 정도인지는 알고 있나.”

“···S급 모험가들은 대부분 상대 가능한 수준이라는 건요.”

샐리라도 할 말이라면 있었다. 당장 내 앞의 댁만 하더라도 드래곤을 잡아보지 않았냐며.

엄연히 S급, 모험가들의 정점을 뽑는 과정이다.

헌데 ‘저희는 여러분을 떨어뜨리려고 있는 사람들이 아니에요.’ 이런 마인드로 나설 수는 없잖는가.

“샐리. S급 모험가라고 해서 무조건 드래곤을 잡을 수 있어야만이 능사가 아닐세. 점차 모험가의 수가 줄어드는 추세인 지금, 솔직히 가능성만 엿보여도 S급에 올려다 놔야 할 실정이지.”

“8번이···유일한 종목으로 채택된 것도 아니잖아요.”

무리다 싶으면 다른 종목에 도전하면 되지 않느냐. 샐리는 차마 이 말은 꾹 삼키고서, 소버린을 바라봤다.

“자네는 모험가가 무얼 좇는다고 생각하나.”

“···자유와 낭만, 아닌가요?”

“대부분의 인식이, 하물며 모험가 본인들도 그리 생각하지. 그러나 실상은 그들도 기사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명예를 중시해.”

샐리는 일순 ‘그런가?’ 싶다가도. 틈만 나면 시끄럽게 본인들 활약상을 떠들어대는 여러 인간군상이 떠올라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드래곤은 모험가에 따라 인생 목표가 되기에도 충분한 대상이네. 샐리 자네가 S급의 기준으로 삼은 것처럼. 그리고 8번은 그런 드래곤을, 그것도 마룡을. 평범한 칼 한 자루로 단번에 보내버릴 몇 안 되는 기회지.”

비록 가상으로 구현된 마나 덩어리에 불과하다지만. 그래도 드래곤은 드래곤.

그 강함이 어딜 가진 않으니, 모험가 인생의 업적으로 쳐도 부족함이 없으리. 애초에 드래곤은 무작정 협곡에 들이박는 게 아닌 한 평생 보기도 힘들다.

“하지만 아무리 예선전이란들 괜히 한 방에 잡을 수단을 주는 게 아니네. 악명도 괜히 자자한 게 아니고.”

역사는 피로 쓰인다는 말이 존재한다.

소버린의 과거, 8번이 아직 악명을 채 떨치기 이전의 기록을 떠올리곤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럼에도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이 도전하고 실패했지. 물론 통과한 이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나. 이것이 오히려 화근이 되어 더 많은 조기 탈락자들을 유발했네.”

쟤가 했는데 나도 못할까 하는 호승심, 딱 한 번만 어떻게 찌르면 된다는 현혹, 드래곤 슬레이어라는 달콤한 꾀임.

이것들이 모여 탄생한 악마가 8번이라고. 소버린은 자신 있게 선언했다.

“몇 년 전만 같았어도 자네를 짓궂다 여길지언정 이리 불러낼 일까진 없었겠지. 허나 매년 한 명 한 명이 아쉬운 현 상황에, 8번은 명백한 악수(惡手)일세.”

“···.”

“그러면 왜 진작에 폐지하지 않고 그대로 뒀냐는 듯한 표정이군. 상징성 때문이지. 8번 종목은 용살자 루이비통을 기념하는 일종의 충정. 고작 지나치게 어렵다는 명분으로 종목에서 빼버리는 건 어불성설이네.”

참 복잡하고 머리 아프게들 사는구나. 샐리는 이해 못 하겠다는 감정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러든지 말든지.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은 소버린은 자세를 앞으로 기울였다.

테이블에 팔꿈치를 올리고, 양손으로는 깍지를 껴. 노려보듯 샐리를 정면으로 응시했다. 앞선 설명들은 사실 이후 나올 본론을 위함이었다는 양.

“듣기로는 만류나 재선택의 기회가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8번을 완강하게 고집했다고 하던데. 따로 이유라도 있나?”

이유, 이유라. 샐리는 방금 막 추궁을 받은 참인데도 입꼬리가 작게 호선을 그렸다.

예선전을 치르는 당사자가, 남을 떨어뜨릴 목적도 아닌 직접 도전할 작정으로 의뢰했다고 하면. 과연 믿기는 할까?

“아마 이번에도, 다른 걸 택했더라면 더 나은 결과를 낳았을 피해자가 나올 테지.”

샐리의 웃음은 이내 쓴웃음으로 번졌다.

분명 자기 역량 파악도 S급 모험가의 중요한 덕목 중 하나일 텐데. 요새 정말 엄청 힘들긴 힘든가 보구나.

“잘 듣게, 샐리. 만일 이번 예선전에서 8번 종목에 탈락자뿐이라면···”

♩︎♪︎♬︎♪︎

“···잠시 실례하지. 나다. 무슨 일이지.”

책임을 물으려 드는 말에도, 샐리는 어느샌가 되찾은 여유로 일관하였다.

소버린에게 급히 연락이 왔을 시점에선 그와 마찬가지로 몸을 앞으로 기울여 각 손가락을 맞댔다.

“8번의···통과자가 나왔다고···?”

여태 압박감만을 주던 사내가, 놀란 표정으로 붉은 머리의 여인을 내려다봤다.

여인에게도 통화 내용은 들렸을 터. 그럼에도 여인은 놀라는 기색 없이 그저 미소 짓고 있었기에.

“8번 종목이 탈락자뿐이면···그 다음에 뭐라고요?”

샐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는 사회인이었다.

기왕 이렇게 된 거, 막 나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거 같았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어째서인지 몇몇 독자님들이 저를 세피로트, 그러니까 안경 쓴 음침 거유 미소녀로 취급하기 시작하셨는데요. 제가 다른 건 다 맞는데 미소녀는 아니란 말이죠. 물론 제가 세피로트로 ts 빙의 당하게 된다면 얼굴값 할 자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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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came a Tutorial Scarecrow

Became a Tutorial Scarecrow

튜토리얼 허수아비가 되었다
Status: Ongoing Author:
Due to lack of content, I died to a tutorial scarecrow. [Your character has died.] [Hidden Achievement Unlocked! ‘Lost to the Weakest Monster~♡︎’] And then, I possessed that th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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