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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

        “허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인가.”

        ​

        몇 번째인지 모를 백장로의 탄식이 내 귀를 파고들었다. 

        ​

        하지만 어느 누구도 그의 탄식을 거슬려 하지는 못하겠지.

        ​

        한때 잘나가던 친구가 다 쓰러져가는 폐가에서 살고 있을 줄이야.

        ​

        도대체 어떤 이유로 그가 이런 폐가에 몸을 뉘고 있는 것일까. 얼마 안 가 죽을 것처럼 숨을 헐떡이기까지 하고?

        ​

        “아버지! 제가 왔습니다!”

        ​

        “자네…어쩌다 이런…”

        ​

        백장로는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닫은 채로 오랜 친구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친구의 이야기를 꺼냈을 때 기대감이 서렸던 얼굴과 지독하게 대조 되는 표정.

        ​

        오랜 친구가 이런 꼴이 되었다는 게 현실감이 영 없는 모양이었다.

        ​

        나라도 그렇겠지.

        ​

        한때 잘나가던 객잔 주인이었던 친구가 하루아침에 다 무너져가는 폐가에서 살고, 침상에서 죽어가는 신세가 되었다고 하면 어떻게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을까. 

        ​

        새옹지마라는 게 이런 거구나.

        ​

        나는 불쾌한 깨달음을 얻으며 조용히 다 쓰러져가는 벽에 기대어 두 친구의 해후를 지켜보았다.

        ​

        “콜록…콜록…자네 왔는가…”

        ​

        “어쩌다가 이런 꼴이 된 건가? 철협도라 불리던 자네가 어찌 이런 꼴이 되었냔 말일세!”

        ​

        절규 섞인 외침이 폐가를 뒤흔들었다.

        ​

        고작 목소리로 그렇게 될 리가 없지만,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목소리에 내공을 실었기 때문일까.

        ​

        나는 피부를 간지럽히고 지나가는 내공의 울림을 흘려내고 손잡이를 만지작거렸다.

        ​

        다른 건 몰라도 꽤 귀찮은 사정에 휘말린 것은 확실해 보였다. 그래도 일단 휘말린 이상 명 소인과의 상행 때처럼 어떻게든 풀어내면 될 일.

        ​

        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

        “그저 내가 쌓았던 업보 때문일세…”

        ​

        “업보라니? 그게 무슨 소린가? 자네가 협행으로 구한 사람만 수십일세! 은퇴하기 전 까지만 해도 협객으로 칭송받던 자네 아닌가?”

        ​

        백장로의 탄식이 분노와 슬픔으로 뒤섞여 짐승의 울부짖음 같은 거친 목소리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

        일단 진정시켜야 할까?

        ​

        저대로 놔두면 화병이 생길지도 모르는데.

        ​

        나는 약간의 갈등을 품은 채로 둘의 대화를 계속 지켜보았다.

        ​

        “산속에…사는…콜록…도인도…업보가…쌓이는…법이라네. 다 내…실수일세.”

        ​

        “아버지! 형님이 타락한 게 아버지의 책임은 아니지 않습니까?!”

        ​

        “아니야…내가…확실하게…이야기를…해두었어야…했다.”

        ​

        …가족간의 사정인가. 

        ​

        “자네 첫째라면…문경이 아닌가? 그 애가 망나니기질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자기 아버지를 해치는 패륜을 저질렀다니? 도대체 그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던 게야?”

        ​

        “다…내 탓일세…”

        ​

        “제가 이야기해드리겠습니다.”

        ​

        마량의 이야기는 꽤 길었다. 울분에 가득 찬 목에서 튀어나온 말이니 당연하다면 당연한 일. 나는 그들의 이야기를 귀담아들으며 한숨을 쉬었다.

        ​

        개판이군.

        ​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은 것 때문에 그놈이 집을 나갔고, 어디서 무공을 배워와 자네 아버지에게 비무를 신청했단 말인가? 그 와중에 그 놈이 살수를 썼고?”

        ​

        “그렇습니다…”

        ​

        마량은 스스로도 분노를 주체하지 못하겠는지 이를 악물었다. 당장이라도 형이 눈앞에 있다면 형제고 뭐고 죽이려 들 것만 같은 얼굴. 

        ​

        “다 내 불찰이야…불찰…솔직하게 말했어야…했는데…자존심이 뭐라고…”

        ​

        반쯤 실성한 노인은 계속해서 자책만을 거듭했다. 

        ​

        그런데 무공을 가르쳐주지 않은 이유는 뭘까. 현대라면 모를까, 이런 세상에 자기 아들이 구음절맥같은 체질이 아닌 이상 무공을 전수하지 않을 이유가 없을 텐데.

        ​

        당장 객잔이라는 게 무림인들이 사고를 자주 치니 무공 배운다고 나쁠 것도 없고, 오히려 고명한 고수라도 될 수 있다면 자랑거리가 될 테니.

        ​

        그리고 자신의 무공을 이어받을 제자가 생긴다면 이왕 아들인 쪽이 더 좋지 않을까.

        ​

        “아버지, 그냥 형님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지 그랬습니까…”

        ​

        “…안돼…칠절도는…안돼…!”

        ​

        “아버지!”

        ​

        “일단 침상에 눕히게나! 아니지, 당장 의원에게 데려가야겠네! 빨리 업거라!”

        ​

        “아저씨, 너무 끔찍한 이야기에요…”

        ​

        “세상 살다 보면 이런 이야기는 수도 없이 들려오지. 익숙해져라. 잔인한 말이지만 비극은 뜬금없이 찾아오는 거야.”

        ​

        비극에 예고 따위는 없다.

        ​

        누군가는 업보를 산더미처럼 쌓아도 평화롭게 살다 가지만, 누군가는 작은 업보가 커다란 눈덩이가 되어 불시에 덮쳐오는 것이 현실이니까.

        ​

        안타깝게도 아들의 등에 업힌 노인은 예고 없는 비극의 희생자가 된 모양이었다.

        ​

        “하진아, 너희들은 객잔을 잡아서 쉬고 있거라. 오늘은 나도 친구의 곁을 지키고 싶구나.”

        ​

        “…예. 장로님.”

        ​

        하진은 씁쓸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고는, 우리를 향해 몸을 돌리며 말했다.

        ​

        “빨리 자리를 잡자꾸나.”

        ​

        그의 말에 반발하는 사람은 없었다.

        ​

        ——————-

        ​

        “아저씨…잘 잤어요오?”

        ​

        “글쎼…”

        ​

        솔직히 말하면 어제 그런 일이 있었는데 편하게 자는 건 못 하지. 당장 나한테 눈을 깜빡거리며 묻는 혜령이도 피곤해 보이고. 

        ​

        마음 같아선 더 자라고 하고 싶지만, 지금도 충분히 늦은 시간.

        ​

        평소보다 반각은 더 늦은 시간에 일어났으니 지금은 백장로님을 기다릴 때였다.

        ​

        그나저나 몸져누운 홍가객잔 주인이 왜 무공을 가르치지 않은 걸까. 아들인 마량도 그 이유를 몰라서 답답해하는 것 같고.

        ​

        무공을 가르치지 않은 이유가 핵심일 것 같고.

        ​

        어떤 이유라도 그게 아들에게 말하지 않을 이유가 되는 걸까. 제자도 아니고 아들인데.

        ​

        그런 의문을 품고 혜령과 함께 객잔 1층으로 내려간다. 나머지는 운기조식을 하느라 시간이 좀 걸리니 나와 혜령만이 먼저 식사하기로 했으니까.

        ​

        우리는 한산한 객잔 구석에 앉아 입구 쪽을 바라보았다.

        ​

        “일단 백장로님한테 객잔 위치를 알려뒀으니까 금방 오시겠죠?”

        ​

        “잘 모르겠는데. 당장 벗의 몸 상태가 오늘내일하는 상태이니 말이야. 아무래도…우리가 찾아가는 게 빠를 거다.”

        ​

        어젯밤에 무광이가 의원에 다녀왔으니 위치를 알 터. 다 찾아가기엔 상태가 심각하니 일부는 객잔에 남고 두셋 정도만 찾아가는 게 나을 듯했다.

        ​

        애초에 우리가 이 일에 끼어드는 게 맞는지조차 모르겠고.

        ​

        이런 민감한 가족 사정에 끼어드는 것 자체가 정말 껄끄러운 일이었으니까. 내가 빙의 전 한국인이어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

        “아저씨, 우리 어두운 소리 말고 아침 먹어요 아침!”

        ​

        “그래. 그래야지…”

        ​

        우리가 궁상 떨어봐야 뭐하나.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알지 못하는데. 아들이 전해준 반쪽짜리 사정으로 무언가를 판단할 순 없는 법이다.

        ​

        “점소이! 여기 소면과 만두 2인분만 주게!”

        ​

        “예이! 소면 두 그릇에 만두 2인분!”

        ​

        살짝 목이 잠긴 점소이의 목소리와 주방에서 들려오는 걸걸한 목소리. 나는 그들이 요리를 만들기 위해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배경 삼아 찻잔을 손끝으로 돌려가며 시간을 죽였다.

        ​

        평소라면 열심히 재잘댔을 혜령이도 말이 없는 걸 보니 어제 일이 충격이었던 걸까.

        ​

        “주문하신 소면 두 그릇에 만두 2인분 나왔습니다!”

        ​

        “고맙다.”

        ​

        “아, 아닙니다!”

        ​

        점소이는 내가 색목인이라서 그런지 대답을 살짝 절더니, 부리나케 주방 쪽으로 달려갔다. 외국인이랑 대화하는 건 어렵다 이건가.

        ​

        나 중원어로 말하고 있는데.

        ​

        “잘 먹겠습니다.”

        ​

        우리는 너나 할 것 없이 아침을 먹어치우는 데에만 집중했다. 그것 말곤 할 것도 없었으니까. 

        ​

        얼마 안 가 우리들이 앉은 식탁에 해남검문의 무인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그렇게 길고 조용한 식사가 끝나고, 침묵 속에서 하진이 입을 열었다.

        ​

        “저와 위 대협 둘이서 다녀오는 게 어떻겠습니까?”

        ​

        “그래. 그렇게 하자.”

        ​

        “대사형, 저도…”

        ​

        “하경아, 우리가 없는 동안 네가 사제들을 잘 봐주고 있거라.”

        ​

        “예.”

        ​

        하경이 알겠다는 듯 그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

        “위 대협. 갑시다.”

        ​

        별일 없었으면 좋을 텐데.

        ​

        나는 그의 말에 수긍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럼 다녀오겠다.”

        ​

        “잘 다녀오세요. 저는 방안에서 쉬고 있을게요.”

        ​

        혜령이 평소보다 낮은 톤으로 일정을 알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이쪽은 그만 신경 써도 되겠지?

        ​

        일이 연속으로 터질라고. 나는 약간의 걱정을 담은 채로 하진과 함께 의원으로 향헀다.

        ​

        ——————

        ​

        “하진아. 왔느냐.”

        ​

        “예, 장로님.”

        ​

        잠도 제대로 자지 못했는지, 백장로님의 얼굴은 눈에 띄게 수척해 보였다. 하룻밤 사이에 마음고생을 얼마나 한 걸까.

       

       “어르신은 어떻게 되셨습니까?”

        ​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구나.”

        ​

        최악의 소식이네. 나는 그의 옆에서 넋이 나간 채로 앉아있는 마량을 쳐다보았다. 그도 상태가 영 좋지 않은 게, 잘못하면 아버지의 뒤를 따라갈 것 같았다.

        ​

        “혹시 뭔가 더 들은 이야기는 없습니까?”

        ​

        “모든 게 다 자기 잘못이라는 말을 반복하기만 했단다.”

        ​

        답답해 미칠 것 같은 표정으로 대답을 해준 백장로는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

        ​

        “친구의 장례는 치뤄주고 가고 싶구나. 너희들은 먼저 가거라.”

        ​

        “아닙니다. 어차피 여유롭게 왔으니 장사를 지내는 정도는 저희도 가능할 겁니다. 한때 협객으로 유명하셨던 철협도 대협을 후배로서 보내드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

        나는 그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위아래로 흔들어 힘을 보탰다. 

        ​

        어차피 원작이 제대로 시작하려면 최소 몇 달은 걸린다. 시기는 정확하지는 않지만, 조금 늦는다고 해서 크게 달라질 것은 없으리라.

        ​

        “너희는 돌아가서 쉬고 있거라. 나는 좀 더 친구의 곁을 지키고 싶으니…”

        ​

        “예. 장로님도 조금이라도 몸을 챙기십시오.”

        ​

        “나는 괜찮으니 가보게.”

        ​

        우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의원을 걸어 나왔다.

        ​

        후, 답답해.

        ​

        그러니까…이럴 땐 치고 나가야지.

        ​

        “하진 소협.”

        ​

        “예, 위 대협.”

        ​

        “혹시 이곳에도 거지들이 있나?”

        ​

        “세상천지에 거지가 없는 곳이 있겠습니까.”

        ​

        그렇지. 세상에 넘치는 게 거지들이니까.

        ​

        “여기 거지들은 어떻게 사는지 한번 구경이나 해보러 가자.”

        ​

        하진은 내 말에 굳게 결심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늦어서 죄송합니다.

    저도 갑자기 이런 일이 터질 줄은…

    그럼 다음편에서 만나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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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Medieval Knight in a Martial Arts Novel

무협소설 속 중세기사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After two years of being reincarnated as a medieval knight, he finally realizes that he's been reincarnated into a martial arts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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