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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33.

       

        

       성녀가 탈의실에서 옷을 들고 -거의 도망치듯이- 나온 후. 가게 주인은 제르피에드의 체형에 맞는 수영복을 보여주었다. 제르피에드는 그것을 보여주자 마자 집어 들고, 레이디의 것까지 함께 계산을 했다.

        

       그리고 가게 주인은 자신이 데일스에서 옷 장사를 한 5년의 역사상 가장 기묘한 조합의 손님들이라고 생각했다.

        

       한 명은 옷을 고르는데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했고, 다른 한 명은 무려 옷을 입지도 않은 채 바로 계산을 해버렸으니까. 하지만 두 손님은 뭔가에 쫓기는 것처럼 빠르게 가게를 빠져나간 것은 동일했다.

        

       해변가 바로 옆에 있는 길을 걷고 있는 데스나이트와 성녀는 굉장히 어색한 상황에 처해있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의 심적 상황은 그대로 표면적으로도 나타났다. 자신의 기다란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성큼성큼 먼저 걷던 제르피에드는, 갑작스레 성녀의 보폭을 인식하고 걸음을 늦췄다. 하지만 성녀는 오히려 그런 제르피에드를 배려해 빨리 걷고 있던 중이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성녀가 빠르게 앞서서 걷고, 제르피에드가 뒤따라 걷는 꽤나 기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그들은 두어 번 정도 그런 상황을 반복한 후에야 간신히 서로의 보폭에 맞춰 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그런 보폭의 변경이 그들의 어색함 마저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다. 불쌍한 데스나이트와 성녀는 더욱더 깊은 어색함의 수령 속으로 빠져들었다. 그들은 동시에 입을 열었던 것이다.

        

       “…저 기사님….”

       “…제미니, 그러니까….”

        

       누가 먼저라고 구분하기 힘들만큼 동시에 입을 연 두 남녀는, 순간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고 멍하니 서로를 바라보다가 황급히 말을 덧붙여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 말들 또한 동시에 부딪혔다.

        

       “아…그대 먼저…!”

       “아, 아니에요…! 기사님 먼저 말씀을…!”

        

       둘은 서로의 반대 방향으로 고개를 돌린 채, 말을 중간에서 끊어 버렸다. 결국 대화라고는 할 수 없는 말이 허공으로 나뒹굴기만 했다. 이런 숨막히는 어색함 속에서 둘은 걷기만 했다. 걷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두 남녀는 무어라고 말해야 이 어색함을 타파할 수 있을지 열심히 각자 고민했다.

        

       허나, 생각나는 비상한 계책 같은 것은 없었다. 도대체 뭐라고 말하면 좋을까? 두 남녀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은 공교롭게도 비슷했다. ‘수영’이라는 단어 하나만이 그들의 머릿속을 완전히 차지하고 있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그들은 각자 이 ‘수영’ 이라는 행위를 할지 말아야 할지, 그 여부를 눈 앞의 이성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었다.

        

       특히, 성녀는 너무나도 혼란스러웠다. 이 수영을 하기 위한 복장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과는 몇 펜큐빗이나 떨어져 있었다. 그렇다고 물릴 수는 없었다. 이미 구매를 해버렸기 때문에. 만약, 이 수영복이 형태가 다른 평범한 의류와 유사했다면 그것들 대용으로 쓸 수 있을 수도 있다며 유야무야 넘어 갔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영복은 다른 의류의 대용으로 삼을 수 없을 만큼 천쪼가리와 유사했다. 비용을 생각하더라도 결국 머리 속에 남은 것은 단 한가지 밖에 없었다. 수영을 해야 한다는 것. 그것은 곧 이 천쪼가리를 입고 기사님에게 보여준다는 것을 의미했고, 성녀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전하기 힘든 것이었다.

        

       데스나이트 또한 매한가지였다. 성녀에게 수영복이라는 의류의 파렴치한 사실을 고발하기 위한 각고의 노력은, 그의 아둔한 고민으로 인해 이미 몇 펜큐빗이나 멀어져 버린 후였다.

        

       지금 그에게 남은 것은 제대로 보지도 않고 구매해, 바구니 안에 넣어져 있는 수영복밖에 없었다. 그리고 지금에 와서 수영을 하지 않고 수영복을 구석에 처박아 둔다는 것은 너무나도 비합리적인 일이었다.

        

       성녀와 데스나이트는 결국 되돌아갈 수 있는 지점은 한참 넘어버린 후였다. 이 불쌍한 두 남녀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수영을 해야 한다는 것 밖에 없었다.

        

       다만, 그 사실을 이 앞에 있는 이성에게 도대체 전해야 한다는 말인가?

        

       두 남녀는 방금 전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다. 차라리 말을 동시에 뱉지 않았다면 이렇게 말을 걸기 힘들지 않았을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쏟아진 물을 주워담을 수 없듯이, 이미 뱉어진 말을 돌리는 것은 불가능했다. 둘 사이로 자박거리는 발걸음만이 가득한 어색함을 뚫고 스쳐 지나갔다.

        

       둘 사이를 가득 채운 어색함 때문에 차마 기사님을 쳐다볼 수 없었던 성녀는, 자신의 바로 옆 그러니까 바다가 있는 부분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실리아는 갑자기 시야를 채우는 강렬함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어느새 시간은 늦은 오후를 넘어서 저녁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마지막 불꽃을 불태우는 땅거미의 아찔함이 그대로 바다속으로 빠져 든다. 오후의 햇살은 물결을 따라 부드럽게 부유하며 는지럭거렸건만, 땅거미의 최후는 저 깊은 바다도 채 삼키지 못할 정도로 강렬하다. 마지막이기에, 오히려 스스로가 가진 모든 빛을 내뿜는다.

        

       성녀는 커다란 눈망울을 한번 슴벅였다. 마지막. 다시 한번 눈망울을 슴벅였다. 성녀는 생각했다. 자신이 이 아름다운 바닷가를 볼 수 있는 날이 또 올까? 아마 없을지도 모른다. 지금 자신이 눈에 담는 이 광경이 아마 마지막일지도 모른다. 마지막. 그렇다면 내가 해야 할 일은…….

        

       에실리아는 결심을 굳혔다.

        

       “기사님.”

       “…음? 무슨…? 무슨 일이오?”

        

       반대편, 건물들로 채워진 도심으로 이어진 구역을 거친 생각과, 불안한 눈빛과 함께 한데 뒤섞어 아무렇게나 바라보고 있던 제르피에드는 들려오는 레이디의 말에 허겁지겁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태양 같은 붉은 눈과 바다 같은 푸른 눈을 마주쳤다. 성녀의 선홍빛 입술이 부드럽게 달싹였다.

        

       “기사님, 저랑 같이 수영 하실래요?”

        

       그 순간, 푸르른 바다에 채 빠져들지 못한 강렬한 땅거미 한 줄기가 두 남녀 사이를 스쳤다. 제르피에드는 눈을 깜빡였다. 황혼빛에 잔뜩 물든 성녀의 얼굴은 터질 듯이 붉어져 있었다…….

        

       제르피에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지.”

        

        

       –

        

        

       저녁으로 물들어가는 해변가에 나와 있는 사람은 얼마 없었다. 휴식을 취하며 바다를 감상하고 있는 뱃사람 몇몇들과 늦은 물놀이를 즐기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전부였을 뿐이다. 데스나이트와 성녀는 그런 해변가를 향해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데스나이트는 조용히 주변을 살피다 한 곳을 가리켰다. 그가 가리키는 장소를 본 성녀는 침을 한번 조심스럽게 삼키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가리킨 장소에는 커다란 회색빛 바위 하나가 놓여있었다. 그가 그 장소를 가리킨 이유는 간단했다. 지금 그들은 외출복을 입고 있는 상태였다. 원래라면 여관에 들러 환복을 하고 해변가로 나왔을 테지만 그들이 머무르는 여관은 이 곳에서 좀 떨어져 있었다. 때문에 그들은 옷을 갈아 입을 장소가 필요했다.

        

       다행히, 그들의 찾은 바위와 해변에 머물고 있는 사람들과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었다. 이 정도라면 그들이 환복하는 모습을 타인들이 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성녀는 여전히 황혼빛에 물든 얼굴을 한 채, 바위 뒤로 총총 걸어서 쏙 들어가 버렸다. 바위 앞에 홀로 남은 데스나이트만이 굳어 버린 것 같이 서 있었다.

        

       레이디는 바위 뒤에 있었고, 데스나이트는 바위를 등지고 있었기에 당연히 성녀의 모습은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도대체 왜 그런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부스럭 거리는 소리는 너무나도 선명히 들려 왔다. 그 소리는 한 가지 사실을 명확히 했다.

        

       저 뒤에서 레이디가 옷을 갈아 입고 있다……. 그것도 방금 보았던 그 천쪼가리와 다름 없는 옷으로…….

        

       제르피에드는 갑자기 불쑥 올라온 그 말도 안되는 생각을 다시 한번 해변가의 모래로 아무렇게나 불안한 눈빛을 던지며 흩어 놓으려고 애썼다. 그때, 레이디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 왔다.

        

       “저…기사님…?”

        

       제르피에드는 반사적으로 목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제르피에드는 침을 삼켰다. 그는 자신이 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한다는 작은 바람도 품을 수 없었다. 그만큼 반사적인 행동이었다.

        

       황혼빛이 부드럽게 성녀의 머릿결을 찰랑거리며 타고 흐른다. 그녀의 백금발은 황혼의 빛을 받아서 그런지 더욱 윤기가 흘러 넘치는 듯 하다. 땅거미의 빛방울이 그녀의 살결을 타고 흘러내린다. 자연스럽게 데스나이트의 시선은 빛방울을 따라 움직였다.

        

       그 간드러지는 살결을 따라가자, 봉긋하고 도담한 성녀의 가슴이 수줍게 부드러운 천에 감싸져 있었다. 정말 딱 맞게, 천을 터뜨려버릴 듯이 부담스럽지도 않고, 힘이 없어 흐느적 거리지도 않는, 포근하게 천으로 살짝 감싸여진 아이의 볼살처럼 탱탱하게 솟아오른 도담한 가슴선을 따라 빛방울이 흐른다.

        

       빛방울은 가슴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훅 떨어진다. 제르피에드가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러질 듯한 잘록한 허리가 자리하고 있었다. 잘록한 허리임에도 오밀조밀하게 들어찬 야무진 기립근과 살짝 얼비치는 세로형의 배 근육은 성신의 성녀다운 생명성을 보여주는 듯 하다.

        

       갑자기 매끄럽게 흐르던 빛방울이 위태롭게 튕겨져 나올 것 같았다. 잘록한 허리에서 예상하기 힘들 정도로 넓어지는 골반이 그곳에는 자리잡고 있었다. 풍염함이라는 단어의 예시를 단 한 가지만 들라고 하면, 그 누구라도 주저없이 지목할 듯한 그 골반과 허벅지는 일견 그에게 당혹스러울 정도였다.

       

       

       

       

       

        

       지금껏 성녀가 입는 옷은 순수의 교단의 예법에 걸맞는 펑퍼짐한 옷이었고, 그랬기에 그가 성녀의 몸매를 제대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없었다. 때문에 그가 지금 느끼는 당혹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실제로 그녀가 걸치고 있는 하의는 그나마 옷으로 기능하는 상의와는 다르게, 국소 부위만을 제대로 가려주는 천조각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그를 더욱 멍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그런가, 레이디가 성녀의 신분에 걸맞게 수줍게 몸을 가리고 있음에도 풍겨오는 아찔함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아니, 아니! 레이디가 아니라 골반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는 황혼의 빛이 아찔하다는…!

        

       제르피에드는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 더 있다가는 뭐가 뭔지도 알 수 없게 되어버릴 것만 같았다. 그는 낮은 으르렁거림 같은 말을 읊조렸다.

        

       “입고…오겠소….”

       “네…? 아…! 네, 네…!”

        

       제르피에드는 무언가 형용하기 힘든 기분에 옷을 거칠게 잡아 찢듯이 환복했다. 그렇게 라도 하지 않으면 견디기 힘든 기분이었다. 자신의 수영복을 본 제르피에드는 -방금 성녀를 봤을 때 만큼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당혹을 느꼈다. 상의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바구니에 들어 있는 것은 그저 하의 뿐이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그것만을 입고 성녀의 앞에 나섰다.

        

       바위 앞으로 걸어 나오자, 그를 본 레이디의 얼굴은 사방으로 흩뿌리는 땅거미 때문에 새빨개져 있었다. 레이디를 마주하자 제르피에드는 반사적으로 침을 삼켰다. 간신히 잊고 있던 아찔한 기분이 스멀스멀 피어 오른다. 심장이 미친 것처럼 맥동한다. 그는 겨우 한 마디를 내뱉었다.

        

       “그럼…가지.”

       “네….”

        

       제르피에드와 마찬가지로 에실리아는 그를 제대로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그의 맨살을 처음 보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는 너무 정신이 없어서 어떠했는지 그저 몽롱하기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안절부절 못하던 성녀는 결국 아무 곳으로 시선을 던졌다. 문제는 그 ‘아무 곳’에 제르피에드도 포함되어 있었다는 점이다. 다음 순간, 성녀는 굴 안에서의 기분을 재현해야 했다. 그녀는 넋을 잃어버릴 뻔 했다. 넋을 잃어버렸기에 아무 곳이나 던지던 시선은 그에게 고정되어 버렸다. 그녀는 처음으로 호위기사의 몸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갑주와 옷으로 가려져 있음에도 넓어 보였던 그의 어깨는, 실제로 마주하자 생각했던 것보다 더욱 넓었다. 그녀의 체구가 작아서인지 더더욱 그렇게 보이는 것 같았다. 가벼운 움직임에도 단단한 근육들은 폭발할 듯이 꿈틀거린다.

        

       황혼을 그대로 받고 있기 때문일까, 근육의 선명함은 얇은 옷을 입고 있을 때와 비교도 안되게 도드라져 보인다. 특히 창백한 피부 때문에 확연히 보이는 핏줄들은 성녀에게 지금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기분을 선사하는 것 같았다.

        

       제르피에드는 도저히 이 느낌을 뭐라고 묘사해야 할지 힘들었다. 미친듯이 맥동하는 심장 때문에 피가 마구잡이로 뻗치는 것이 그대로 느껴졌다. 온몸 구석구석에 피가 몰려든다. 특히 상체는 상대적으로 가만히 있는데 다리로 움직이고 있기 때문인가 하체로 피가 많이 몰리는 것 같다. 아랫도리가 이상하게 뻑적지근한 느낌이….

        

       아랫도리?

        

       자신의 아랫도리를 쳐다본 제르피에드는 그대로 모래사장에 털썩 주저앉았다. 갑자기 들리는 털썩거리는 소리에 옆에서 걷던 에실리아가 눈을 깜빡이며 쳐다보았다. 그녀의 목소리에는 걱정이 어려 있었다.

        

       “…기사님?”

       “아…. 그…먼저 들어가 있으시오. 바다를 보는 것이 오랜만이라…조금 더 구경하고 나는 들어가지.”

        

       다행히 성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이내 끄덕이고는 총총한 발걸음을 옮겨 바다로 들어갔다. 처음 경험하는 바다에 에실리아는 ‘꺄앗! 꺄앗! 우와앗!’ 하는 소리를 지르며 그 느낌을 만끽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제르피에드는 그런 그녀의 모습과 함께 황혼을 바라보았을 테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그럴 만한 여유가 없었다.

        

       그는 언제 일어났는지도 모를 하반신의 근육 하나가 왜 지금에서야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론 피가 돌면 일어나는 것이 상식적인 근육이기는 하지만 지금은…. 아니, 지금은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세상에는 무릇 적기라는 것이 있는 법이다. 그리고 작금은 이 근육이 일어나도 되는 적기가 전혀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든 하반신의 근육에서 벗어나 다른 생각을 하려고 노력했다.

        

       그래, 다른 생각. 뭐가 있지? 데스나이트의 율법이라도 외워야 하나?

        

       자신이 사고했음에도 정말 좋은 생각이었다.

        

       그래, 율법을 외우자.

        

       율법을….

       율법을….

        

       율법을…!!!

        

       그는 데스나이트의 율법을 다섯 번이나 속으로 외우고 나서야 좀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런 그에게 성녀의 청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사님-! 안 들어오세요오-?”

       “아…. 곧 들어가겠소! 바다가 오랜만이라 구경한다는 게 그만…!”

        

       그는 자신이 또 제대로 된 생각을 못하기 전에 허겁지겁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바다의 물이 닿는 묘한 압박감은 그에게 안심감을 주었다. 다행히 이곳에서는 때를 구분하지 못하고 하반신의 한 근육이 이상한 자기주장을 펼칠 것 같지는 않았다.

        

       어느덧 물에 익숙해져 있는 에실리아는 싱긋 웃으며 호위기사에게 물을 뿌렸다. 방금 전의 경험으로 살짝 멍해 있던 그에게 물이 철썩 닿는 감각은 그를 정신 차리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잠깐, 제미니…!”

        

       제르피에드는 에실리아를 말리려고 했지만, 성녀는 킥킥 웃으면서 그에게 물을 뿌렸다. 뭐라고 말을 할라 치면 어김없이 물이 뿌려졌다. 결국 그도 절래절래 고개를 저으며 물을 한 움큼 붙잡아 그녀에게 뿌렸다. 아무래도 기본적인 힘의 차이가 있는지라, 성녀는 “꺄아악-!” 거리며 더한 양으로 흩뿌려지는 물을 맞으며 킥킥거렸다.

        

       성녀는 맞은 물에 대한 보답을 꼭 호위기사에게 해줘야겠다고 생각했고, 호위기사 또한 그 기묘한 보답에 대한 느낌을 역시 감각하고 있었다. 어찌 됐든 둘은 예법과 율법을 잘 지키는 성녀와 데스나이트였다.

        

       여러 번의 철썩거리는 물소리가 두 남녀를 향해 젖어 들었다.

        

        

       길게 바스러지는 늦은 황혼이 두 남녀를 가로질렀다. 그 황혼에 시선을 빼앗겨 둘은 고개를 들었다. 서로의 눈이 마주친다. 물을 잔뜩 머금어 수영복이 남녀의 몸선을 따라 무겁게 늘어진다. 몸을 따라 물방울이 떨어진다. 몇 번의 시선이 서로 얽혀간다.

        

       아마도.

        

       아마도, 그 늦은 황혼이 빚어내는 아찔함에 두 남녀는 너나 할 것 없이 고개를 바다에 빠져드는 태양을 향해 돌렸다. 철썩거리는 파도소리만이 두 남녀를 감싼다. 그 파도소리를 따라 제르피에드는 입을 열었다.

        

       “……황혼이 아름답군.”

       “……그러네요.”

        

       순간, 에실리아의 왼쪽으로 튕겨 오른 태양빛이 눈을 찔러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우측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곳에는 그녀의 호위기사가 서서 태양을 보고 있었다. 에실리아는 처음 보는 모습인, 지금껏 본 적 없는 그의 등을 멍하니 보았다.

        

       무수한 흉터가 그의 등에 새겨져 있었다. 자신도 모르게 성녀는 그에게 다가가 그 흉터를 쓰다듬었다. 갑작스러운 성녀의 손길에 데스나이트는 당황했지만 뭐라고 할 수가 없었다.

        

       어느덧 황혼은 바스러져 버리고, 하늘의 색깔은 깊은 바닷속의 색깔과 비슷해져 간다. 그 깊디 깊은 색깔에 얼비친 성녀의 모습은 금방이라도 그 깊음에 빠져버릴 듯 애처로워 보였다. 그를 쓰다듬는 손길도, 애처로워 보였다. 그렇기에, 그는 내버려두었다.

        

       하늘과 깊은 바닷속의 색깔이 같아질 때 즈음, 제르피에드는 입을 열었다.

        

       “…바람이 차갑소. 이제 들어가지.”

        

       에실리아는 멍하니 호위기사를 쳐다보다가 싱긋 웃었다.

        

       

       “네, 기사님.”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그러고보니 죠죠의 기묘한 모험 4부에서 키라 요시카게가 모나리자의 손을 보면서 뭐라고 했던 것 같은데 기억이 안나네요.
    감명 깊다고 했던가요? 다시 한번 보러 가야겠습니다.

    오잉? 그러고보니 수영한다고 해놓고 수영은 정작 하지를 않았군요.
    아마, 다음에 또 할 기회가 있을거라 생각합니다.

    ———————————————————

    1만 큐빗은 1 펜큐빗으로 변환이 가능합니다. 1m가 100cm인거랑 비슷한거죠.
    펜큐빗은 이영도 작가님의 에서 나온 단위 표현이며 오마주적 요소로 집어 넣었습니다.

    읽어주신 Ilham Senjaya님 정말 감사합니다!!

    다음화 보기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The Death Knight Became The Saint’s Bodyguard

데스나이트는 성녀의 호위기사가 되었다
Score 3.3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Betrayed by her own Order*, the Saint begged the death knight to become her guard—the death knight who could destroy the world. *tl note: she was betrayed by the church, not her own doing. Author Notes: Contains Authentic fantasy, and wholesome love. I hope this brings you the reader a little bit of jo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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