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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괴도 학센 VS 셜록 홈즈]

       

       ‘미니 앤 라이프’라는 잡지에서 연재하는 이 작품은, 대놓고 셜록 홈즈의 명성을 이용하겠다는 악의가 돋보이는 추리소설이었다.

       

       내용은 그리 특별할 건 없었다. ‘라인스 학센’이라는 이름의 괴도가 셜록 홈즈라는 탐정을 곯려주는 게 대부분이었다.

       

       특이한 점은 셜록 홈즈에서 사용된 ‘추리소설’의 구조를 꽤 그럴듯하게 응용했다는 것 정도일까? 의외로 추리소설로서의 완성도는 나쁘지 않은 편이었다.

       

       

       “이건 잡지사에 항의해야하는 거 아닙니까? 당장 중재를 요청해야─.”

       “아니, 음, 솔직히 나로서는 괜찮은 작품이 나와준다면 그걸로 충분하긴 한데….”

       

       

       이 작품에 대한 나의 평가는 간단했다.

       

       

       “이건 재미가 없네.”

       “예?”

       

       “모리스 르블랑 정도의 인물은 아닌 모양이다.”

       

       

       재미가 없었다.

       

       셜로키언들 사이에서 악명 높은 ‘아르센 뤼팽’ 시리즈의 모리스 르블랑은 그래도 탁월한 작가였다.

       

       불어권에서는 뤼팽의 인기가 홈즈를 뛰어넘을 정도였다.

       

       그런데 이 ‘괴도 학센’이라는 작품은… 솔직히 그 정도는 아니었다. 셜록 홈즈의 영향을 받았지만 아무래도 아직 미숙한 부분들이 많았다.

       

       

       “이걸 어떻게 처리하는 게 좋을까….”

       

       

       제국법에서 지정하는 저작권의 범주에 캐릭터의 이름─ 고유 명사는 포함되지 않는다. 예외로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자세하게 안 적혀있다.

       

       아직 충분한 판례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니 제국에서 처벌하려면 처벌할 수 있는 정도의 문제이기는 했다. 그럴 경우 이게 판례가 되겠지.

       

       그런데 이런 줄타기를 시도하는 걸 보면 이 양반도 보통 인간은 아닌 모양이다.

       

       

       “작가 이름이… 리오넬 발자크?”

       

       

       흐음. 이름은 조금 마음에 드네.

       

       번역가들 괴롭히기 좋은 이름이었다. 역시 스펠링은 다르겠지만.

       

       이제 막 그 형식이 잡힌 추리소설의 구조를 흉내내서 이런 글을 쓰는 걸 보면 글재주도 꽤 있는 것 같다.

       

       

       

       “누군지 알아?”

       “발자크라는 가문명은 들어본 적 없습니다. 평민이거나, 필명을 사용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겠지. 으음.”

       

       

       머릿속에서 여러 키워드들이 맴돌았다.

       

       셜록 홈즈. 모리스 르블랑. 괴도 학센. 발자크. 표절과 캐릭터 저작권….

       

       그리고 결정했다.

       

       

       “좋아. 결정했어.”

       “고소를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 하프 앤 하프에서 소설 하나를 더 연재해야겠다.”

       “…예?”

       

       

       셜로키언인 나로서는 역시 ‘이 소설’을 출판하는 건 여러모로 거부감이 있었지만.

       

       마침 샌드백을 자처하는 인물이 나왔으니 차라리 잘 됐다.

       

       

       “이 작품 등장인물 이름을 어떻게 바꿀까 고민했는데… 여기서 그대로 가져오면 되겠네.”

       

       

       셜록 홈즈의 명성에 편승한 추리소설이자 ‘아르센 뤼팽’이라는 괴도의 전형을 만든 위대한 모험 소설.

       

       영문학도로서는 좋게 보기 힘든 소설이지만,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로서는 역시 애정이 갈 수밖에 없는 소설.

       

       

       “진짜 괴도가 뭔지 제대로 보여주자고.”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이제 셜록 홈즈를 도용한 아르센 뤼팽은 없을 거다. 대신─.

       

       

       “아르센 뤼팽 VS 라인스 학센. 으음. 어감도 나쁘지 않네.”

       

       

       셜록 홈즈를 도용한 라인스 학센을 도용한 아르센 뤼팽만이 남겠지. 기암성이 연재되면 꽤 볼만할 것이다.

       

       이 리오넬이라는 작가는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지 알까.

       

       무려, 추리소설의 역사상 가장 유명한 두 캐릭터 사이에 자신의 캐릭터의 이름이 들어가는 것이다! 후대 추리소설 매니아들은 오히려 포상이라며 그를 부러워하겠지.

       

       

       “으음, 그냥 처벌하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도련님께서 그렇게까지 하시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뭐, 추리소설은 장르소설이기도 하고….”

       

       

       조금 충동적인 결정이기는 한데.

       

       

       “이름이 마음에 들어서.”

       “리오넬 말씀이십니까?”

       

       “아니. 발자크. 재미있는 작품을 여럿 써줄 것 같은 이름이잖아.”

       “그렇습니까…?”

       

       .

       .

       .

       

       [충격! 헤로도토스, 두 작품 동시 연재 선언!]

       [괴도신사 아르센 뤼팽 시리즈를 지금 ‘하프 앤 하프’에서 만나보세요!]

       

       .

       .

       .

       

       아르센 뤼팽은 추리소설인 동시에 모험 소설이다.

       

       그중에서도, 다소 환상적이고 신비주의적인 요소가 섞인 모험 소설. 어찌보면 딱 프랑스인다운 소설이기는 했다.

       

       

       “이거 재미있네요오…. 개인적으로는 셜록 홈즈보다 나을지도요…?”

       “이번에도 잘부탁드립니다.”

       

       

       이번 소설 역시 밀리 클레앙의 자문을 받아 완성되었다.

       

       특히, 밀리 클레앙은 ‘코난 사가’의 깊은 팬이기도 했던만큼 모험 소설인 아르센 뤼팽을 굉장히 마음에 들어했다.

       

       오히려 셜록 홈즈보다 더 재미있다고 평가했을 정도다.

       

       그렇게 완성된 소설은 ‘셜록 홈즈’와 함께 하프 앤 하프에서 연재되었다.

       

       

       “헤로도토스 작가의 신작이라니, 이런 걸 쓸 시간에 셜록 홈즈를 두 편씩 올려주면 안 되는 건가?”

       “그러게 말일세! 물론 그 헤로도토스의 소설이니 재미있기는 하겠지만, 지금은 홈즈의 다음 내용이 궁금해서 미칠 것 같다고!”

       

       

       사람들은 셜록 홈즈의 연재가 느려지는 것이 아니냐며 우려를 표했지만─.

       

       

       “이것도 엄청 재미있잖아…?”

       “다, 다음화 가져와! 그래서 어떻게 되는 건데!”

       

       

       아르센 뤼팽 시리즈가 정식으로 연재되자, ‘이런 거’ 연재할 시간에 셜록 홈즈나 두 편씩 연재하라는 의견은 사라졌다.

       

       아르센 뤼팽 시리즈 역시 셜록 홈즈만큼이나 재미있는 소설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괴도라는 특이한 캐릭터성과 뤼팽 시리즈 특유의 음산하면서도 환상적인 분위기가 사람들의 마음을 깊게 사로잡았다.

       

       

       “읽을 게 늘어나서 좋구만! 이게 사람 사는 낙이지! 그래서 다음 편은 언제 나온다고? 뭐? 일주일 뒤?”

       “크아악! 이건 지옥이야!”

       

       

       셜록 홈즈의 다음편을 애타게 기다리던 사람들은.

       

       이제 아르센 뤼팽의 다음 편까지 애타게 기다려야만 했다. 그야말로 연재 소설이라는 이름의 지옥이라고 할 수 있었다.

       

       

       “헤로도토스는 우리를 시험하기 위해 천주께서 보내신 악마가 아닐까…?”

       “이렇게 급박한 상황에 이야기를 끊다니! 이게 어찌 사람이 할 일인가?”

       

       

       몇몇 사람들은, 한때 거리에서 떠돌았던 ‘호메로스 성자설’을 근거로 헤로도토스가 호메로스와 대립하는 ‘악마의 사도’라고 떠들기도 했다.

       

       물론 워낙 불경한 이야기였던 탓에 진지하게 믿는 사람은 없었다.

       

       단지 그만큼 사람들의 ‘다음 편’을 향한 갈증이 커졌다는 뜻이다. 출판사를 습격하려다 ‘화이트렉 탐정사무소’의 탐정들에게 제압당하는 빈도도 늘어났다.

       

       그리고 유명한 작품이 동시기에 연재하면 발생할 수밖에 없는 문제가 있었으니─.

       

       

       “아르센 뤼팽이야말로 진정한 신사야! 그는 어떠한 경우에도 레이디를 지키고, 항상 공의롭지!”

       “하! 그래봤자 결국 도둑이 아닌가? 셜록 홈즈야말로 진정한 영웅이야! 그는 정의를 추종하며, 범죄자를 심판대 위에 올리지!”

       

       

       바로 ‘VS 놀이’였다.

       

       ‘셜록 홈즈 VS 아르센 뤼팽’은 전생에서도 현대까지 끊임없이 이어지던 논란 중 하나다.

       

       그런데 이 세계에서는 두 작품이 동시에 연재되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은 비교의 대상이 될 수 밖에 없었다.

       

       

       “아르센 뤼팽은 정의로운 도둑이라고!”

       “정의로운 도둑이 어디있나? 좀도둑이든 큰 도둑이든 결국 도둑이지!”

       

       “약에 의존하는 약쟁이보다는 낫지!”

       “범죄에 의존하는 좀도둑보다는 낫지!”

       

       “결투다!”

       “결투다!”

       

       

       신사적이고 조국과 공의를 우선하는 괴도 아르센 뤼팽.

       

       괴팍하지만 정의를 추종하고 유쾌한 성격을 가진 셜록 홈즈.

       

       두 캐릭터 중 누가 더 나은 캐릭터인지에 대한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야말로 제국의 모든 술집과 공원, 거리와 상점 등에서 이 논쟁만이 하루종일 이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으, 괴도 학센은 어떤가?”

       “학센? 아아, 아르센 뤼팽한테 당하다가 사고까지 친 그 머저리 말인가?”

       

       

       괴도 학센은….

       

       아르센 뤼팽에서 나름 비중있는 조연 정도로 평가받았다. [괴도 학센 VS 셜록 홈즈]라는 작품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작가님! 사랑합니다!”

       “남자의 사랑은 조금….”

       

       

       “하하!”

       

       

       ‘하프 앤 하프’의 사장 라이안은, ‘셜록 홈즈’와 ‘아르센 뤼팽’의 인기에 편승해 여러 캐릭터 상품을 만들어 팔아치웠다.

       

       어린 왕자에서 사용했던 전략을 그대로 벤치마킹했다.

       

       어찌보면, 어린 왕자보다도 더 효과적이었을 것이다. 캐릭터 상품의 본질은 결국 캐릭터의 매력에 호소하는 것이었으니까.

       

       

       “수익의 대부분은 작가님의 계좌로 보내뒀으니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아마 굉장히 놀라실 겁니다! 하하!”

       “아, 네.”

       

       

       내 재산은 또다시 늘어났다.

       

       이걸로 작가 지망생들에 대한 출판 지원 정책같은 걸 운영해볼까. 아예 예술 재단같은 걸 건립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하지만 우선은─.

       

       

       “안녕하십니까. 미니 앤 라이프의 사장, 매니 클레버입니다.”

       “예. 작가 헤로도토스입니다.”

       

       

       리오넬 발자크라는 작가를 한번 만나볼 생각이다.

       

       구조를 따라 익히는 재주가 있어보이던데.

       

       우리 아카데미의 학생으로 삼아서 머리에 소설을 잔뜩 넣어줘야겠다.

       

       .

       .

       .

       

       “안녕하세요.”

       “누구신가요…?”

       

       “작가 헤로도토스라고 합니다. 이곳이 리오넬 발자크─.”

       “죄송합니다! 면목이 없습니다! 부디 선처를 부탁드립니다!”

       

       

       어, 뭔가 생각한 이미지랑 다른데.

       

       

       “돈이 필요해서 그랬습니다! 편집자님이 이렇게 쓰면 원고료를 올려주겠다고 해서… 정말 죄송합니다!”

       “흐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왜 괴도 뤼팽이 ‘셜록 홈즈’ 에피소드에 포함되어있냐고요?

    어, 그야… 셜록 홈즈가 나오잖아요?

    #####

    아르센 뤼팽 시리즈는 그 자체로 위대한 모험 소설이고, 탁월한 추리소설이지만… 다른 소설의 등장인물을 등장시켜서 엉망으로 까내리는 것은 역시 좋게 보기가 어렵겠네요. 물론 나름의 역사적 배경이 존재하고, 소설이 연재되던 당시의 사회상을 고려해야겠지만….

    그래도 역시, 영문학사상 가장 사랑받는 캐릭터를 가져와서 헤이트물의 소재로 쓴 시점에서 다소의 비난은 감수해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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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st in Another World

Surviving as a Plagiarizing Author in This World 이세계에서 표절 작가로 살아남기
Score 4.6
Status: Ongoing Type: Author: Native Language: Korean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was atrocious.

So, I plagiarized.

Don Quixote, Anna Karenina, Alice’s Adventures in Wonderland, The Metamorphosis… I thought that unraveling the literature of the original world would advance the literature of this other world.

“Those who dream and those who do not, who really is the mad one?”

“To live or to die, that is the question.”

“No matter how fatal the mistake, it is different from a sin.”

But then, people began to immerse themselves too deeply in the novels I plagiarized.

Can’t a novel just be seen as a nov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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