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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천재 아역 돌연 은퇴? 아뇨! 다시 돌아옵니다!>

       <연화공주로 일약 화제에 오른 아역이 돌연 은퇴를 결심한 이유는?>

       <태숨달 절호조! 평균 시청률 25% 돌파! 최고 시청률 갱신 눈앞>

       

       “…….”

       

       한선아는 눈을 비볐다.

       꿈인가 싶었는데 꿈이 아니었다.

       

       ‘언니, 저 다음 작품 할 때까지 오래 기다려줄 수 있어요?’

       

       문득.

       시사회에서 서연이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 그래서 오래 기다려줄 수 있냐고 물었구나.

       

       충동적인 결정이 아닌, 오랜 고민끝에 내린 답이겠지.

       그 사실을 깨닫자, 한선아는 고개를 휙휙 저었다.

       

       “……은퇴한다는 말이 아니었으니까.”

       

       서연은 말했다.

       다음 작품을 할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아마, 꽤 긴 휴식기를 가지려는 생각일 것이다.

       아역들에겐 꽤 흔한 경우다.

       

       단지, 한창 화제가 된 순간에 바로 휴식기에 들어가는 경우가 없을 뿐.

       

       “공부해야지.”

       

       서연 덕에 서울 S대에도 붙을 수 있었다.

       그러니 한선아는 계속 기다릴 거다.

       제대로 된 어른이 되어, 지금보다 더 멋진 언니의 모습으로 만날 수있도록.

       

       아마 서연이 남긴 유일무이한 싸인.

       그것을 바라보며, 선아는 다짐했다.

       

       ***

       

       “말도 안 돼!!”

       

       비명과도 같은 조서희의 외침이 거실에 울려 퍼졌다.

       한창 딸과 뉴스를 보고 있던 조서희의 부모는, 갑작스런 딸의 외침에 귀를 막았다.

       

       “아, 아니 서희야. 갑자기 왜 소리를 지르니…….”

       “저거 못 봤어요?! 쟤!”

       

       조서희는 아빠의 멱살을 잡을 듯 옷깃을 움켜쥐고 마구 흔들었다.

       자존심 강하고, 기운차며 참 뭐라 형용하기 힘든 딸.

       이전에 있었던 태양을 숨긴 달의 오디션에서 떨어지고, 풀이 잔뜩 죽었었다.

       

       ‘분명 윗선에서 뭔가 있었을 거야. 안 그러면 서희 네가 질 리가 없잖니.’

       

       부모님은 그리 이야기하며 서희를 달랬지만.

       그래도 불만족스러운 마음은 변하지 않았다.

       

       누가 봐도 자신이 위였다면, 설령 윗선에서 말이 나왔어도 질 리가 없었으니까.

       서연과 자신의 연기는 비슷했다.

       

       감정 연기, 분위기를 살리는 건 서연이 위였고.

       순수한 연기의 안정성과 실력은 조서희가 위였다.

       

       일일연속극의 공주님.

       그렇게 불리던 조서희의 아역 인생은 탄탄대로였다.

       

       설마, 그런 곳에서 초짜에게 패배할 줄은 상상도 못 했을 정도로.

       하지만, 그런 조서희도 태양을 숨긴 달 2화와 3화를 봤을 때는 인정했다.

       

       아직 어린 조서희도 무심코 넋을 놓고 볼 연기.

       아마 실제 촬영 현장에서 보았다면 조서희는 완벽히 서연에게 잡아먹혔을 것이다.

       

       “그런 연기를 한 주제에…….”

       

       조서희는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TV를 쏘아보았다.

       그 눈이 어찌나 매서운지, 함께 자리에 있던 조서희의 부모들은 슬슬 자리를 피했을 정도다.

       

       「황금 알을 낳는 오리이지 않습니까? 그런데 이게 배를 가르는 경우는 있어도. 아예 내버려두고 떠나 버렸어요」

       「덕분에 서연 양이 마지막으로 찍은 CF가 화제라고 합니다. 두유 CF에 이어 찍은 어린이 영양제 광고요.」

       「아, 저도 봤습니다. CF도 물밀 듯이 들어올 텐데 도통 이유를 모르겠네요」

       

       화면에 비친 사회자들은 그리 말하며, 참조 영상으로 나온 CF를 보았다.

       서연이 중년의 배우, 김미연과 함께 찍은 광고.

       

       사이좋은 엄마와 딸을 연기하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드라마와는 전혀 다르지만 역시 깔끔한 연기다.

       

       ‘이렇게 잘하면서.’

       

       지금도 연예계 가십을 다루는 뉴스에서 서연에 대한 이야기는 연신 흘러나왔다.

       그만큼 갑작스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인 거겠지.

       

       ‘이기고 도망친다는 거야?’

       

       다음 오디션에선 절대 안 지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이번 오디션 탈락은 조서희에게 약이 되었다.

       

       모두가 그녀를 일일연속극의 공주님이라 불리며 칭찬했기에.

       그만 만족했고, 오만했다.

       

       그야 조서희도 아직 아이니까.

       그러니 아역은 이 이상 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녀를 아끼던 정은선 배우도 늘 그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서희의 연기는 이미 아역으로서 최고라 부를 수 있을 정도라고.

       

       그래, ‘아역’으로서.

       하지만 서연은 지금, 아역이 아닌 성인 배우들과 연기를 비교당하고 있었다.

       

       4화에서 성장한 이혜월 역의 하예서와.

       

       “두고 봐.”

       

       은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뉴스에선 은퇴라느니 뭐니 떠들지만, 연예생중계 ‘화제의 스타’에서 나온 내용을 찾아보니 은퇴가 아니라 ‘잠시 휴식’이라는 것에 가까웠다.

       

       그 휴식이 얼마나 길지는 모른다.

       아역들은 보통 십 년을 넘게 쉬는 경우도 많으니까.

       

       특히 서연처럼 어리다면, 더더욱 공백기가 길다.

       일반적으로 아역들을 가장 많이 찾는 연령대는 5~7세.

       

       이후에도 활동은 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맡을 수 있는 배역은 많지 않다.

       뭣보다 학교도 다녀야 하지 않은가?

       

       그러니, 고등학생이나 성인이 된 이후 모습을 드러내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성인 배우들이 맡는 역을 소화할 수 있게 되었을 때.

       

       하지만 조서희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일일연속극의 공주님이 아닌, 제대로 된 배우로서 계속 성장할 것이다.

       서연이 없는 동안 계속.

       

       박정우조차 재치고, 또래 배우 중에 최고라 불릴 때까지.

       

       “다음에는…….”

       

       ……내가 무조건 이겨.

       조서희는 그렇게 다짐했다.

       

       ***

       

       “서연 양은, 우선 감정을 쓰지 않고 연기를 해봐야겠는데요?”

       

       화양 연기학원의 연기 강사.

       홍정훈은 서연을 향해 그리 말했다.

       

       “이게 서연 양은 사람들의 시선을 끄는 게 있어요. 확, 하고. 그게 아마 감정 연기에서 강점으로 작용하는 것 같은데…….”

       

       사람의 시야를 사로잡는 연기.

       아마 서연이 그게 가능한 건, 저 어여쁜 외모.

       그리고 신비한 눈과 특유의 분위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 정적인 연기를 보여줄 때는 말 그대로, 서연의 연기는 또래에서 적수가 없다.

       성인 연기파 배우들도 긴장할 수준이었으니까.

       

       실제로 그 연기를 코앞에서 경험한 아역 지망생들이 어땠냐면.

       

       “선생님, 저, 저는 저렇게 못 해요.”

       “나 쟤 TV에서 봤는데……. 왜 여기 있는 거예요?”

       

       의욕 상실 상태가 되어 이지연에게 엉덩이를 차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또래 아역이라곤 생각할 수 없는 ‘배우’연기를 진짜 경험하니 얼어버린 모양이다.

       

       “뭐야, 너희들 제대로 안해? 한 번 더 찰 거야?”

       “아, 알았어.”

       

       2인 1조로 연기 연습을 하던 소년은, 지연의 발길질에 다시 연기를 시작했다.

       대단한 건 아니고, 간단히 대사를 주고받는 수준의 연기다.

       사실 연기보단 ‘구연동화’에 가까운 수준.

       

       저 정도가 일반적인 아이들의 연기.

       

       “감정을 쓰지 않고 연기가 되나요?”

       “아예 쓰지 말라는 건 아닙니다. 그리고 몸을 써야죠.”

       

       손가락, 눈동자의 움직임. 사소한 행동.

       

       “캐릭터를 해석했다면, 응당 그 캐릭터의 버릇도 있을 테고. 대사마다 취해줘야 할 재스쳐도 생겨요. 연화공주는 어땠죠?”

       “연화공주는…….”

       

       나름대로 박정우를 흉내내기는 했다.

       하지만, 그건 연화공주보단 주서연의 행동.

       그게 자연스러웠던 건, 궁을 빠져나온 연화공주가 ‘평범한 소녀’를 연기하는 상태였기 때문이다.

       

       ‘아마, 궁에서 빠져나온 연화공주 연기는 어설펐을 거야.’

       

       한 번에 오케이 사인이 나오긴 했다.

       아마 그건, 서연의 어설픔을 의도된 어설픔으로 해석했을 확률이 높다.

       혹은, 그냥 잘 어울려서 넘어갔을 수도 있고.

       

       ‘그때 박정우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지.’

       

       서연은 그게, 자신을 대하는 정우의 일반적인 태도라 생각했다.

       담담하고 무심한 열 살 아이.

       서연도 타인에겐 무감각한 부분이 있어, 비슷한 부류라 여겼다.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까지 연기할 수 있어?”

       

       3화를 촬영한 이후, 박정우의 반응은 전혀 달랐다.

       서연의 연기에 충격을 받은 얼굴.

       아마 2화까지는 ‘자신보다 못한 아역 수준’ 정도로 생각한 게 분명했다.

       

       아역치고 저 정도면 잘하네~ 정도의 감각 아니었을까?

       

       ‘지도 아역이면서.’

       

       3살 연상이라고 아주 제대로 무시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꼴좋다.’

       

       하지만 3화에서 제대로 한 방 먹여준 터라, 서연은 무척 속이 시원했다.

       ……전생의 나이까지 치면, 조금 미묘한 느낌이긴 했지만.

       

       “그러니까, 감정 연기를 최대한 빼고 동작으로만 캐릭터를 표현해보라는 거죠?”

       “네, 바로 그겁니다!”

       

       홍정훈은 이해가 빠른 서연을 보며 함박 웃음을 지었다.

       

       ‘처음에 왔을 때 당황하긴 했지만……, 이건 큰 기회야.’

       

       보통 연기 학원은 에이전시를 겸하는 경우가 많다.

       이건 화양 연기학원도 마찬가지여서, 이지연이 은하 엔터를 떠나 정착한 장소다.

       

       서연이 추천해준 에이전시.

       이후 대배우를 몇 명이나 배출한 훌륭한 에이전시이자 연기 학원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역 몇 명을 데리고 CF나 엑스트라 오디션을 잡는 게 전부인, 평범한 연기 학원이었다.

       

       ‘천재 아역 주서연.’

       

       최근 가장 화제가 되는 아역.

       이 아이를 화양 연기학원에서 데리고 있는다면, 이후에 많은 이들이 찾아올 게 분명했다.

       

       이름을 알릴 기회라는 거다.

       거기에 주서연이 가진 재능은 경악을 금치 못할 수준이었다.

       

       ‘알아듣는 것도 빠르고. 도저히 일곱 살 같지 않아.’

       

       당장 이지연만 해도 나이치고 엄청 똑똑한 아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서연은 그 이상.

       도저히 아이라 볼 수 없을 정도의 이해력이었다.

       

       “그럼, 한번 해볼게요.”

       

       감정을 쓰지 않은 연기.

       오직 몸의 동작만으로 펼치는 연기를, 서연은 시작했다.

       이번에는 또 얼마나 자신을 놀래켜줄지 기대하며.

       

       그리고.

       

       “음, 우리 하나부터 해보죠. 서연 양.”

       “…….”

       

       감정을 뺀 서연의 연기는 그냥 뻣뻣한 주서연일 뿐이다.

       그 사실을 깨달았다.

       

       ‘이게 다, 몸 때문이야.’

       

       아이를 아득히 뛰어넘는 신체 능력.

       분명 그것 때문에 제대로 못 한 거라고.

       혹은 감정과 육신의 괴리도 원인일지 모른다.

       

       ‘맞아, 분명해.’

       

       서연은 애써 그렇게 속으로 변명했다.

       이게 무적의 TS 육신이라고 처음부터 다 잘하는 건 아니구나.

       

       라는 사실을 깨달으며.

       

       ***

       

       연기 학원에서 있었던 굴욕이야 어쨌든.

       나의 일과는 꽤 규칙적이었다.

       

       월수는 연기 학원.

       화목은 성우 학원에 다닌다.

       

       그리고 마지막 금요일은 이런저런 운동을 해보는 편이었다.

       태권도도 다녀보고, 어린이 복싱도 해보며 몸에 맞는 운동을 찾고 있었다.

       

       “근데, 주서연. 성우랑…… 배우는 아무리 생각해도 다르지 않아?”

       “발성을 쓰잖아, 발성.”

       “아니, 전혀 다른 것 같은데.”

       

       그리고 오늘은 성우 학원에 가는 날.

       나는 이미 어느 정도 발성 연습을 해서, 그럭저럭 괜찮은 소리로 말할 수 있었다.

       

       ‘성우는 목소리 연기의 달인.’

       

       다만 똑같이 연기를 해도 배우와는 발성 방법이 전혀 다르다.

       그 느낌부터 천지 차이라고 할까.

       

       ‘이지연 말대로 연기에서 쓰긴 어렵겠네…….’

       

       그냥 감정 잡을 때나 써야겠다.

       거기다 성우의 발성은 무척 어려워서 상당히 고전했다.

       

       ‘이게 연기 때도 느꼈지만 다 잘하는 건 아니구나.’

       

       그렇게 생각하니, 새삼 다행이라 생각했다.

       연기, 쉬길 잘했다…….

       

       그대로 연기를 계속했으면 천재 아역이라는 타이틀이 얼마나 갔을지.

       물론 감정 연기로 잘 비벼볼 수 있겠지만. 

       그건 몸에 부담도 되고, 사춘기 때는 어려웠을 거다.

       

       “지연이 참 잘하네. 어디서 배운 거 정말 아니지?”

       “그럼요. 근데 제가 잘해요, 주서연이 잘해요?”

       “아, 그건…….”

       

       강사는 잠시 나와 이지연을 힐끗 보더니, 귓속말로 뭐라 속삭였다.

       혹여 내가 들으면 기분이 나쁘리라 생각한 모양이다.

       

       ‘근데, 그렇게 말하는 거나. 의기양양한 저 얼굴을 보면…….’

       

       나, 이지연에게 지는 거야?

       어떻게 이럴 수 있지?

       

       “크흠. 그럼 다시 해보자. 목소리는 조금 더 높게 해보면 좋을 거 같아.”

       “네!”

       

       이게 또 성우 연기라는 게 단순히 말을 잘하는 게 다가 아니다.

       나레이션부터, 캐릭터 연기.

       거기에 애니메이션 더빙을 위한 발성.

       

       등등 아무튼 아주 많다.

       성우 학원은 그에 대한 커리큘럼도 재대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현재 나와 이지연은 그 기본만 듣고 있는 상태였다.

       

       “흐음.”

       

       나는 칼칼해진 목을 달래고자, 물을 마시며 잠자코 이지연의 목소리를 들었다.

       

       오늘은 아마, 동화에서 나오는 캐릭터를 직접 연기해보는 거였을 거다.

       작은 다람쥐였나. 

       이지연과는 어떤 의미로는 잘 어울리는…….

       

       「내 도토리, 도토리 어딨어?」

       

       귀여운 아이의 발성.

       확실히 배우보다 이지연은 이쪽을 더 잘했다.

       

       “푸흡!!”

       

       그런데 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무심코 물을 내뿜고 말았다.

       여태 나레이션이나, 일반적인 캐릭터 연기와는 다른.

       전혀 다른 톤의 목소리가 이지연의 목에서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이게 보통 아이의 목으론 저런 게 안된다고 들었는데, 이지연은 놀랍게도 가능했던 모양이다.

       

       “……뭐야, 왜 갑자기 비웃어. 주서연.”

       “응? 비, 비웃은 거 아니야.”

       “흐음, 그래?”

       

       이지연은 잠시 나를 새치름하게 노려보았지만, 굳이 더 캐묻지는 않았다.

       등을 휙 돌리고 걸어가는 지연을 보며, 나는 입가에 흐른 물을 닦았다.

       

       ‘서, 설마 아니지?’

       

       나는 애써 그렇게 생각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건 너무 나간 게 아닌가 싶었으니까.

       

       

       

    작가의 한마디 (작가후기)
    이번 화로 끝날 줄 알았는데… 아무래도 다음 화로 유년기가 끝날 것 같네요.
    그리고 어린 시절은 간간히 막간 형식으로 중간중간 나올 수도 있습니다.
    다음화 보기


           


I Want to Be a VTub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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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I definitely just wanted to be a VTuber... But when I came to my senses, I had become an ac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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