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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P.33

       ‘꿰뚫었어!’

       

        양하나는 검이 신체를 꿰뚫는 현상을 인지했다.

       

        그녀의 검은 날카롭다. 랭커에 비하면 아쉬운 S급 히어로지만, 가진바 검술은 능히 아카데미 제일이라 칭해도 좋을 정도니까.

       

        속결.

       

        양하나가 방금 적을 꿰뚫은 찌르기에 붙인 명칭이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쇄도하는 섬전 같은 공격. 평범한 괴수는 물론, 뛰어난 히어로라 할지라도 쉬이 대응하기 힘든 기습이었다.

       

        “깜짝 놀랐네.”

        “어, 어어?!”

       

        헌데 이어지는 상대의 입에서 평온한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현상거절> 임혜성. 갑작스레 승천전에 나타난 D등급의 괴인!

       

        “분명 꿰뚫었는데……?”

       

        양하나는 멍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태어난 순간부터 검을 쥐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다. 그런데…… 어찌하여 저 상대는 그녀의 감각을 속일 수 있었던 말인가!

       

        으득!

       

        양하나가 이를 악물었다.

       

        그녀는 <뇌전검>이라는 칭호의 주인이오,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의 검가 중 으뜸으로 꼽히는 ‘고양양가’의 일원이다. 승천전 본선의 첫 경기에서 패배하는 굴욕을 보일 수는 없었다.

       

        “역시…… 숨겨둔 힘이 있네요.”

       

        훌쩍 거리를 벌린 양하나가 진중한 얼굴로 읊조렸다.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기도 싫었다. 하지만 확실한 사실은 그녀의 상대는 멀쩡하다. 분명 꿰뚫는 감각을 느꼈지만, 그녀의 검은 적을 뚫지 못했다!

       

        “숨겨둔 힘은 아니고, 그냥 드러내지 않은 힘이지.”

        “……그게 그거 아닌가요?”

        “달라. 의도적으로 힘을 숨긴 적이 없으니까.”

       

        여유가득한 적의 모습. 양하나는 곧장 입을 다물었다.

       

        이조차 적의 계략일 수도 있었다. 그녀의 명경지수 같은 마음을 흐트리고, 빈틈을 찾기 위한 전략 중 하나일 수도 있단 말이다.

       

        “<뇌전검> 양하나. 역시 상상 이상이야.”

        “……저를 아시나요?”

        “물론이지. 히어로 아카데미에서 가장 검을 잘 쓰는 검수잖아?”

       

        [ 무, 무슨 일일까요? <현상거절>이 처음으로 상대방과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그간의 속전속결이 믿기지 않는 장면입니다! ]

       

        “…….”

       

        양하나는 진지한 얼굴로 상대를 응시했다.

       

        그녀도 자신의 첫 상대, 임혜성의 전투를 그간 한번도 빼놓지 않고 지켜보았다.

       

       상대방의 전략을 대략이나마 파악했다. 싱거울 정도로 빠른 전투. 예상컨대 그의 힘은 ‘제한시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판단이 앞선 덕분이었다.

       

       따라서 행했던 기습이 허무하게 실패했다.

       

        빛살처럼 빠르게 가한 공격이 먹히지 않아 일순간 평정심을 잃었지만, 양하나는 그리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었다.

       

        “후우.”

       

        호흡을 갈무리한 양하나는 더없이 침착하게, 흔들리지 않은 검끝을 들었다.

       

        이제부터 미지의 세계다.

       

        그녀는 물론, 승천전에 참여한 그 누구도 <현상거절>의 힘을 제대로 목격하지 못했으니 뻔한 일이었다.

       

        “절삭력 강화.”

        “……!”

       

        양하나가 입을 작게 열어, 능력을 개방했다.

       

        <절삭력 강화>… 하늘을 날아다니고 바다를 가르는 히어로 생태계에선 한 없이 미약한 능력.

       

        “절삭력 강화.”

       

        양하나는 집중을 잃지 않았다.

       

        그녀는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위해서라도, 여기에서 패배하고 쓰러질 수는 없었다.

       

        “절삭력 강화.”

       

        스으으으!

       

        양하나의 푸른 검신에 새하얀 기운이 덧씌워지기 시작했다.

       

        마치 일렁이는 아지랑이처럼 보이는 힘. 무형의 기운을 갈무리해 방출하는, 히어로 아카데미의 검사들에게 꿈과 같은 경지.

       

        “절삭력 강화.”

       

        그 힘의 상징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연히 결투장 위에서 벌어지는 일을 지켜보던 관중들의 입이 쩍 벌어졌다.

       

        “미, 미친!”

        “검기다! 검기야!”

        “돌았다! 저 사람, 3학년 아닌가? 현역 히어로도 힘들어하는 검기를?”

        “이거 흥미진진하네! <뇌전검>과 <현상거절>. 생각보다 더 재밌겠어!”

       

        와아아아아아-!

       

        일평생 히어로 아카데미를 굴러도 보기 힘든 ‘검기’의 등장에 어마어마한 열광이 몰아쳤다.

       

        “절삭력 강화.”

       

        양하나는 무감정한 눈으로 말했다.

       

        유형화된 기운의 방출, 검기. 그 검기에 양하나의 능력 ‘절삭력 강화’를 중첩해 덧씌운다. 그 검이 향할 사람은 바로 앞에 있었다.

       

        <현상거절> 임혜성.

       

        “……돌았네.”

       

        그가 황당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아마도 양하나의 전력, 검기와 능력의 조합에 위기감을 느꼈을 수도 있겠다.

       

        빠직! 빠지직!

       

        양하나의 검이 가만이 멈춘 허공에서 하얀 스파크를 자아냈다.

       

        간단한 힘의 작용이다. 극한으로 치달은 ‘절삭력 강화’라는 그녀의 능력이…… 검이 점한 ‘공간’ 자체를 베어내고 있다.

       

        “절삭력 강화.”

       

        빠지직! 파직!

       

        양하나는 깨달았다.

       

        이제 한계다. 그녀의 몸과 검이 더이상은 버티지 못할 것이다.

       

        또각!

       

        일평생을 수련해온 비장의 수가 찬란한 빛을 토해냈다. 신화 속 등장하는 전장의 여신처럼, 양하나는 천천히 그녀의 상대에게 다가갔다.

       

        * * *

       

        ‘어이가 없네.’

       

        지금 내 심정이 딱 그렇다.

       

        어이가 없다. 지금 내 눈 앞에서 일어나는 꼴을 보면 누구라도 그리 생각할 것이다.

       

        <뇌전검> 양하나.

       

        그녀는 ‘히사있’에 등장하는 캐릭터 중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보유한 사람이다.

       

        애당초 딱히 ‘주인공’이라 칭할 것이 없는 소설이다. 그런데도 그녀가 인기가 많은 이유는 아주 간단했다.

       

        ‘열혈. 진짜 열혈이네.’

       

        그녀는 꺾이지 않는다.

       

        부러질 지언정 꺾이지 않고, 쓰러지되 패배하지 않고, 승리하되 오만하지 않는다.

       

        후에는 <검성>이라 불리며, 당당히 랭커 중 한 자리를 차지할 양하나가…… 그녀의 진심을 내게 던진다.

       

        푸른 안광과 스파크를 일으키는 검을 보면 외면할 수가 없는 노릇이다.

       

        “좋다.”

       

        그런 상황 속, 나 역시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근성엔 근성이다. 나도 딱히 티를 내지 않고 있을 뿐이지, 한 근성 하는 놈이다.

       

        자신의 전력을 내던지는 그녀에게 나또한 전력으로 응수하고 싶은 욕심이 뭉클뭉클 샘솟았다.

       

        “현상거절.”

       

        척.

       

        천천히 다가오는 그녀에게 손을 뻗은 나는 입술을 달싹였다.

       

        [ 내게 가해지는 모든 공격을 무효로 돌린다. ]

       

        움찔.

       

        진언을 읊는데 약간의 부담이 느껴졌다. 이전에 ‘죽음’을 거절할 때보다는 훨씬 미약한 반동이었지만, 역시 모든 공격에 면역 상태를 갖는 것은 제법 부담인 행동이었다.

       

        “현상거절.”

       

        [ 내게 가해지는 ‘절삭력’을 경감시킨다. ]

       

        진언을 반복한다. 내가 펼친 방어와 양하나가 펼친 ‘절삭’ 중에서, 누구의 힘이 더 우위인지 순수한 궁금증이 든 까닭이다.

       

        어차피 결투장을 가득 에워싼 치유계 능력자들 덕분에 신체의 결손이나 생명의 위협은 느끼지 않아도 좋았다. 그렇기에, 나도 전력을 다할 생각이었다.

       

        “저, 저놈 뭐야?”

        “<현상거절>이 이렇게 전투가 길어지는 건 처음이군! 역시 <뇌전검>이 호락호락하지 않은 건가?!”

       

        [ 아……! <현상거절> 선수, 이 상황에서 웃고있어요! ]

       

        관객들과 해설자의 경악이 스타디움 내를 울렸다.

       

        그런 쓸데없는 것에 신경을 빼앗기지 않고, 나는 계속해서 진언을 뱉었다.

       

        [ 현상거절. 내게 가해지는 모든 물체의 운동 에너지를 무효로 돌린다. ]

       

        와중에 저 멀리서 복잡한 대화소리가 귀에 울렸다.

       

        “모든 방어계 능력자! 관중석에 실드 작동해! 어서!”

        “그, 그정도로 위험합니까?”

        “멍청한 새끼야! 정신 차려! 이게 ‘본선’이다!”

       

        사태를 관망하던 히어로 아카데미와 협회의 운영진 측도 위기를 감지한 모양이다. 일사분란한 그들의 움직임에 더이상 고민할 필요도 없었다.

       

        [ 현상거절, 이 장소 안에서 행해지는 참격은 사람을 살상할 수 없다. ]

       

        파직! 파지직!

       

        마지막 진언을 읊은 직후.

       

        척!

       

        내 지척까지 다가온 <뇌전검>이 새하얀 안광으로 검을 몸 안쪽으로 끌어들였다.

       

        온다.

       

        좌하단에서 좌상단으로 이어지는 간단한 베기. 하지만, 그것을 휘두르는 자가 히어로 아카데미 최고의 검수이며, 중첩된 ‘절삭력 강화’의 힘이 공격을 더 없이 증폭시킨다.

       

        촤아아아악!

       

        소름끼치는 소음과 함께 새하얀 검격이 시야를 가득 매운다.

       

        번쩍! 번쩍! 

       

        공간을 가르는 극강의 절삭력이 시공을 뒤틀며 날아든다. 스스로의 능력에 자격지심을 가진 양하나가 황당할 정도로 경이로운 수준의 공격이었다.

       

        “미쳤네.”

       

        그 새하얀 검격의 파도에 나는 황당함을 가득 담아 말했다.

       

        * * *

       

        침묵.

       

        수만 명이 들어찬 스타디움에 그것이 흘렀다.

       

        열띤 응원이 한창이던 관객도, 돈을 베팅했다며 울부짖던 꾼도, 마이크를 쥔 진행자도 지금의 현상에 말을 뱉지 못했다.

       

        털썩!

       

        그런 와중, 한 사람이 힘 없이 바닥에 무릎 꿇었다. 그리고 이내 몸이 힘 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챙그랑!

       

        무릎 꿇은 자의 손아귀에 힘이 풀렸다. 자연히 손에 잡힌 검이 바닥을 나뒹굴었고.

       

        우와아아아아-!

       

        “와아아아아아! 씨바아아알!”

        “미친! 미쳤다. 돌아이야 뭐야!”

        “내가 지금 꿈을 꾸는 거냐? 어?”

       

        관객들의 비명에 가까운 함성이 스타디움 전체를 쩌렁쩌렁 울린다.

       

        [ 아, 아아! 이게……! 이게, 무슨……! ]

       

        진행자의 목소리가 스피커에서 흘러나오지 못하고, 어마어마한 함성 속에 파묻혔다.

       

        “제법이었다.”

       

        그 시끄러운 분위기 속.

       

        손을 튕긴 <현상거절>은 앞으로 걸어가 한쪽 무릎을 꿇고 말했다.

       

        “저, 정말…… 대단하시네요.”

       

        이미 모든 체력과 기력을 모두 소진한 양하나가 힘 없이 중얼거렸다.

       

        D급의 <현상거절>과 S급 상위의 <뇌전검>의 결투가 끝났다. 양하나, 그녀의 패배로 말이다.

       

        하지만.

       

        “당신은… 그 공격을 온전히 맞이하고 상처하나 없군요.”

       

        <현상거절>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결투장에 오를 때와 달라진 것이 없는 모습이 양하나의 시선에 밟혔다.

       

        “아니.”

        “……?”

        “닿았다. 네 공격.”

       

        그리 말한 <현상거절>이 와이셔츠를 팔락거렸다.

       

        양하나는 정신이 혼미한 와중에 안력에 온 힘을 집중했다.

       

        닿았다고? 그렇다기엔… 너무 멀쩡한 모습이 아닌가.

       

        “아……!”

       

        그러던 중, 이내 무언가 달라진 모습에 양하나가 탄성을 터뜨렸다.

       

        달라진 것.

       

        드디어 찾았다. 그녀의 시선에 너무 미약한 변화라 미처 발견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와이셔츠.

       

        그가 입은 하얀 와이셔츠 앞섶이 가로로 작게 찢어져있었다.

       

        “상상 이상이었어. 너, 진짜 강하구나.”

        “…….”

       

        양하나는 눈을 감았다.

       

        강하다고? 내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렇게, 그녀의 의식이 멀어졌다.

       

        ……<신속>의 최영웅은 그 작은 스크래치조차 못 냈다는 사실은 모른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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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t Hiding My Power at Hero Academ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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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tus: Ongoing Author:
Hero. Everyone admires them as they wield supernatural powers that defy the laws of physics. The ability I possess is to 'reject' those pow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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